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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흥동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에 있는 성균관 생원 노혁에게 1401년에 발급한 진사 합격 증서. 「노혁왕지」는 성균관 생원으로 있던 노혁이 1401년(태종 1) 진사 23인으로 합격한 후 발급받은 증서이다. 노혁은 만경노씨(萬頃盧氏) 시조인 노극청의 6세손으로, 만경노씨 공주 입향조인 노충윤의 아들이다. 1399년(정종 1)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401년 문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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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문신 조익이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쓴 일기. 조익(趙翊)[1556~1613]은 송강(松江) 정철(鄭澈)[1536~1593]을 제거하려는 선조(宣祖)에게 맞서다가 탄핵을 받아 1602년(선조 35) 4월 공주로 유배를 오게 되었다. 이후 1607년(선조 40) 6월까지 약 6년간 충청남도 공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쓴 일기가 『공산일기(公山日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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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흥동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에 있는 1811년 조선통신사 정사로 대마도에 다녀온 김이교가 작성한 일록. 1811년(순조 11) 김이교(金履喬)[1746~1832]는 조선통신사 정사로 대마도에 다녀오면서 관련 문서들을 모아 『신미통신일록』을 작성하였다. 통신사 파견 직전인 1809년(순조 9) 8월 27일 강정(講定) 교섭부터 시작하여 통신사행이 대마도에 가 국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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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가척리에 있는 거석 기념물. 가척리 선돌이 위치한 탄천면 가척리 2구는 공주시에서 남서 방향으로 19.8㎞ 정도 떨어져 있다. 가척분교에서 북쪽 방향으로 250m 정도 떨어진 가척리 2구 초입에 느티나무가 있다. 그 왼쪽 뒤편으로 10m 정도 떨어져 있는 논 가운데에 선돌이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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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마한의 54개 소국(小國) 중 하나. 마한 지역 소국의 대부분은 기원전 3~2세기 이래의 세형동검(細形銅劍) 문화를 배경으로 대두된 다수의 정치 집단들이 발전한 결과 형성되었을 것으로 본다. 2세기 이후 마한 지역은 한강 유역에 위치한 백제국(伯濟國) 중심의 소국들과 목지국(目支國) 중심의 토착 세력권이 병존하였다가, 3~4세기에 이르러 점차 백제가 대두됨에 따라 점진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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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시 의당면 도신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峯)·한계(閑溪)·청월헌(聽月軒)이다. 강인(姜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운상(姜雲祥), 아버지는 강주(姜籒)이다. 어머니는 안동김씨 김응서(金應瑞)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김씨 김광수(金光燧)의 딸이다. 강백년이 죽은 후 그의 후손들은 사패지(賜牌地: 나라에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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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도신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강백년의 묘와 신도비. 강백년(姜柏年)[1603~1681]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峯)·한계(閑溪)·청월헌(聽月軒)이다. 시호는문정(文貞)이다. 아버지는 죽창(竹窓) 강주(姜籒)이며, 어머니는 김응서(金應瑞)의 딸 안동김씨이다. 1627년(인조 5)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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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경천역에 관한 기록은 여러 지리지나 읍지에 위치, 소속된 말과 노비의 수 따위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세조실록』에는 “세조 6년 2월 5일자 기사에서는 성환도, 일신도, 증약도, 율봉도를 합하여 성환도라 칭하고 증약도찰방으로 책임을 맡게 하였다.” 이 기록에 따르면 경천역은 공주의 광정역·유구역·단평역, 연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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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과 반포면 사이 계룡산에 있는 나말려초의 석축 산성. 계룡산성은 지금까지의 조사 연구에 의하면 후삼국시대에 축조된 산성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산성은 후백제에서 축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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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북계리 봉화산에 세워진 조선시대 봉수. 고등산 봉수대는 공주시 옥룡동의 월산성 봉수대에서 연결받은 봉화를 북쪽에 있는 쌍령산 봉수대로 연결하는 봉수이다. 고등산 봉수대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처음 보인다. 이후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호서읍지(湖西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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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고려 개국 때부터 1392년 멸망 때까지 충청남도 공주시의 역사. 통일신라시대의 웅주는 940년(태조 23) 공주(公州)로 개명되었다. 당시 전면적인 주(州)·부(府)·군(郡)·현(縣)의 명칭 개정이 있었는데, 그 일환으로 오늘날의 이름인 공주가 탄생한 것이다. 이후 고려 초기에 공주도호부가 되었다는 『공산지(公山誌)』의 기록이 있으나 정사인 『고려사(高麗史)』나 『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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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분포하고 있는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이르는 무덤. 고분은 과거 우리 조상이 묻힌 무덤을 통칭하는 옛무덤을 말하지만, 고고학에서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 한정된 시대의 무덤을 말한다. 여기에서 한정된 시대란 고대까지를 말한다. 물론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무덤이 없었던 것은 아니며, 이 시기의 무덤 역시 옛무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당시의 사회와 문화를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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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고인돌은 거대한 돌을 이용하여 만든 선사시대 거석 건조물의 일종이다. 고인돌은 그 분포권이 북유럽·서유럽·지중해 연안·북아프리카·서남아시아 일대의 신석기시대 묘제로 분포한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고인돌과는 직접적인 문화적 관계가 없는 듯하다. 중국 랴오닝[遼寧]성과 산둥[山東]반도 및 일본 규슈[九州] 등을 포함한 동북아시아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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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학자 서기의 묘갈. 고청 서기 묘갈은 서기의 무덤 앞에 세운 작은 돌비석이다. 서기(徐起)[1523~1591]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자는 대가(大可), 호는 고청(孤靑)·귀당(龜堂)이다. 서경덕(徐敬德)·이중호(李仲虎)·이지함(李之函)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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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동성왕과 무령왕의 아버지로 백제의 좌현왕과 내신좌평을 역임한 왕족. 곤지(昆支)[?~477]는 백제 21대 개로왕(蓋鹵王)과 22대 문주왕(文周王)의 동생이자 24대 동성왕(東城王)과 25대 무령왕의 아버지이다. 한성기 좌현왕(左賢王)에 임명되었으며, 461년(개로왕 7) 왜국에 파견되어 가와치[河內] 지역에 정착하였다. 백제계 이주민을 규합하여 백제와의 군사 동맹에 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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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안에 있는 조선 중기 공주 공산성의 북문루(北門樓). 공주시청에서 웅진로를 타고 공주시외버스터미널 쪽으로 약 2.33㎞ 가면 공산성 주차장이 나온다. 공북루는 금강에 인접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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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각. 일반적인 누정들이 주변 풍광을 고려하거나, 강학 위주로 건립되었다면 공산성 만하루는 공산성 동쪽 누대에 있는 군사적 기능이 중심이 된 누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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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내에 있는 백제 웅진 시기 왕궁터. 공산성 왕궁지는 충청남도 공주시의 산성동과 금성동에 있는 공산성(사적 12호) 안에 있다. 공산성은 북쪽에 금강과 접해 있어 군사적 방어지점으로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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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광복루는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53-51번지의 공산성 안에 있다. 공산성은 동서로 마주하고 있는 두 개의 산봉우리를 에워싼 형태로 축조되어 있다. 동쪽에 있는 산봉우리는 해발 110m고, 서쪽에 있는 산봉우리는 해발 85m인데, 광복루는 동쪽에 있는 해발 110m의 산봉우리 정상부에 있다.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鎭南樓)에서 동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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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 공주시청 정문에서 웅진로를 타고 공주시외버스터미널 방향으로 약 2.3㎞ 정도 가면 공주 공산성 입구가 나온다. 공산성 쌍수정은 진남루 부근의 서쪽 고지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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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문루(門樓). 진남루는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53-51번지의 공산성(公山城) 안에 있다. 공주 시내의 중동 교차로에서 웅진로를 따라 공산성 회전 교차로 방면으로 향하는 길의 우측에 남문길이 있는데, 남문길의 끝에서 진남루로 진입할 수 있다. 공산성 전체를 놓고 보면 남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정자인 쌍수정(雙樹亭), 동쪽으로는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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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주목에서 강상죄인(綱常罪人)이나 배역자(背逆者)가 생겼을 때 강등하여 부르던 이름. 『인조실록』권 47, 인조 24년(1646) 5월 1일 기사에 처음으로 공산현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공청도(公淸道) 공주목을 강등하여 공산현으로 삼고, 이산(尼山)·연산(連山)·은진(恩津)을 혁파하여 1개현으로 합하여 은산현(恩山縣)이라고 하고, 공청도를 홍청도(洪淸道)로 바꾸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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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 내원암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불상과 복장유물. 공주 갑사 내원암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公州甲寺內院庵木造釋迦如來坐像-腹藏遺物)은 갑사 성보보장각에 모셔져 있다. 복장물 가운데 조성기에 불상 제작에 참여한 시주자와 조각승들의 이름 등이 남아 있다. 2013년 12월 2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9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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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 대성암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불상. 공주 갑사 대성암 목조보살좌상(公州甲寺大聖庵木造菩薩坐像)은 대성(大聖)이 문수보살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문수보살로 봉안되어 있다. 제작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상호와 신체 표현, 착의법 등에서 조선 후기 보살상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2013년 12월 2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230호로 지정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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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대적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목조 아미타 삼존불 좌상. 공주 갑사 대적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公州甲寺大寂殿木造阿彌陀三尊佛坐像)은 중앙에 본존인 아미타불과 좌우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구성된 불상이다. 아미타불은 죽은 사람을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영혼을 구제한다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 대세지보살은 중생 구제를 의미한다. 공주 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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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석가여래 삼불 좌상 및 사보살 입상과 복장유물. 공주 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사보살입상 및 복장유물(公州甲寺塑造釋迦如來三佛坐像-四菩薩立像-腹藏遺物) 가운데 보살상은 1617년(광해군 9) 행사(幸思) 등 9명의 조각승이 제작한 총 7존(尊)으로 구성된 대단위 작품이다. 2011년 7월 2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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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계룡산 산신에게 제사하던 제향 건축물. 1879년(고종 16) 중수한 건축한 건물이지만, 계룡산신에 대한 제사 공간으로서의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계룡산은 신라의 제사 규정에서 중사(中祀)에 속한다. 신라 5악 신앙에 의한 국가적 제사의 전통이 후대로 계승된 것이다. 15세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는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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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금성동·옥룡동에 걸쳐 있는 백제시대 석축 성곽. 공주 공산성의 축성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천도 이전에 축조된 것인지, 아니면 천도 후에 축조되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천도 이전에 축조되었다면 축조 배경을 잘 알 수 없지만, 천도 이후에 축조되었다면 왕궁 및 왕도 방비를 위해 축성된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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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대리와 단지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공주 단지리 고분군 은 우성면소재지의 북쪽에 있는 산의 남동사면 일대에 넓게 분포한다. 기존의 지표 조사에서는 단지리 토성 남쪽의 가장골을 포함한 지역에만 고분이 분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국도 32호선 확·포장공사 과정에서 발굴 조사를 통해 동대리와 단지리를 가로지르는 전체 범위에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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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 동불사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목조 불상. 공주 동불사 목조석가여래좌상(公州東佛寺木造釋迦如來坐像)은 동불사 불교회관 2층에 설치된 법당에 모셔져 있다. 법당 상단에 석가 삼존상과 천불상, 하단에 목조 석가여래 좌상과 목조 지장보살 좌상을 봉안하였는데, 이 가운데 목조 석가여래 좌상은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공주 동불사 목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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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 대광보전 바닥에 깔려 있는 조선 후기 굴피자리.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 굴피자리는 대광보전 바닥에 펴는 깔개의 용도로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습한 기운을 차단하고 위생적인 실내 활동에 필요한 필수품이다. ‘삿자리’라고도 불리며 갈대나 억새, 부들, 볏짚, 버들가지 등과 지역에 따라 참나무나 귀룽나무, 껍질을 벗긴 삼대 등으로 만든다. 공주 마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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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 대광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전기의 불상. 비로자나불은 불교의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는 부처로, 진리의 몸이 온누리에 두루 비치는 광명의 빛을 내어 모든 이를 지혜의 길로 이끈다. 또한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은 대적광전(大寂光殿), 대적전(大寂殿), 비로전(毘盧殿), 대광명전(大光明殿), 대광보전(大光寶殿)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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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 천왕문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소조 사천왕상. 공주 마곡사 소조사천왕상(公州麻谷寺塑造四天王像)은 서방 광목천왕의 좌대 내부 기둥에서 발견된 ‘강희이십삼년 계해 삼월 오일(康熙二十三年癸亥三月五日)’ 묵서명을 통해 제작 시기가 ‘1683년(숙종 9)’으로 밝혀졌다. 또한 동방 지국천왕 보관(寶冠)의 떨어진 화염 장식 뒷면에서 ‘동방’이라는 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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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 영산전에 봉안된 조선 후기 목조 불상과 복장유물. 공주 마곡사 영산전에 봉안된 목조 칠불 좌상은 천불상의 주존불로는 현전하는 조선 후기 불상 중 유일하게 과거칠불(過去七佛)로 조성되어 있다. 목조 칠불 좌상 모두 나무로 제작한 팔각 대좌 위에 앉아 있으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우측에 비바시불, 비사부불, 구나함모니불을 배치하였고, 좌측에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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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 대광보전에 있는 조선 후기 영산회상도. 공주 마곡사 영산회상도(公州麻谷寺靈山會上圖)[대광보전]는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에 후불탱화로 걸려 있는 불화이다.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법화경』을 설법한 법회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화기에 따르면, 이 불화는 1788년(정조 12) 동홍(錬弘)의 주도하에 모두 15명의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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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공주시의 서북쪽에 있는 해발 130m의 송산을 북쪽의 주산으로 한 구릉 중턱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이곳은 공주시 중심부에서 서북방으로 약 1㎞ 떨어진 지점인 공주시 금성동과 웅진동에 연접한 송산소라는 지역이다. 고분군은 송산의 동남쪽 8부 능선상 해발 약 75m 정도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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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학자 서기가 유생을 가르쳤던 서당 건물. 공주 박약재(公州博約齋)는 충현서원(忠賢書院)의 모태가 된 건물로 서기(徐起)[1523~1591]가 1574년(선조 7)부터 1591년(선조 24)까지 유생들을 가르치던 서당 건물을 가리킨다. 서기의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자는 대가(大可), 호는 고청(孤靑)·귀당(龜堂)이다. 지금의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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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 공북루 앞 구 금강철교 동쪽에 있던 배를 엮어 만든 다리. 배다리는 과거에 하천에서 배를 엮어 다리로 이용하던 것이다. 배다리에 관한 자세한 기록이 전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조선 후기 정조의 화성(華城) 행차를 위해 한강에 설치한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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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마암리 보림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목판본 『묘법연화경』의 제4권.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법화경(法華經)』이라고도 불리며, 중요 사상으로는 부처가 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는 것을 보편화한 내용이 특징이다. 천태종에서는 근본 경전으로 삼으며, 『화엄경(華嚴經)』과 함께 불교사상을 정립하는 데 매우 큰 영향을 준 경전에 속한다. 『묘법연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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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임시로 설치된 조정.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피난을 떠난 선조(宣祖)는, 전세가 갈수록 악화하자 자신은 요동으로 옮겨 갈 생각을 하고 세자인 광해군(光海君)에게 조선에 머물도록 하여 조정(朝廷)을 나누었다. 이 기간 광해군이 공주에 임시로 조정을 두었는데 이를 공주 분조(公州分朝)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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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 관내 상원암에 있는 승탑군. 공주 상원암 승탑군(公州上院庵僧塔群)의 승탑은 모두 5기로, 대부분 조선 후기 승탑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2024년 4월 22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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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장암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적. 공주 석장리 유적은 공주시에서 북동쪽으로 약 6㎞ 떨어진 거리의 금강 북안 하안단구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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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공주 수촌리 고분군은 공주시의 북쪽에 위치한다. 유적을 중심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서 흘러내려온 의당천과 정안천이 합류하여 남쪽의 금강에 유입된다. 유적이 위치한 지역은 북쪽의 천태산에서 서쪽으로 늘어진 작은 가지 능선의 말단 구릉에 해당하는 표고 50m 내외 지점이다. 세부적으로는 정서향한 지형이 약간 남으로 치우쳐 흘러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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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원효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에 간행된 경전. 공주 원효사 소장 경전 일괄에는 모두 3종의 경전이 포함되어 있는데, 『대방광불화엄경입불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 『현수제승법수-봉서사본(賢首諸乘法數-鳳栖寺本)』, 『현수제승법수-용천사본(賢首諸乘法數-龍泉寺本)』이다. 공주 원효사 소장 경전 일괄은 2013년 4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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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이귀의 묘. 공주시청에서 송산리 고분군을 지나 소정펄길을 타고 약 7.95㎞ 가면 이인면 만수리가 있다. 만수리 아랫마을의 남서쪽 계성산 능선에 연평부원군 이귀의 묘소와 묘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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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장선리와 안영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이르는 분묘와 생활 유적. 공주 장선리 유적은 탄천면 장선리와 안영리 일대의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 하행선 휴게소 부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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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정지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제사 유적. 공주 정지산 유적은 2006년 11월 6일 사적 제47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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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학림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목판본 불서. 공주 학림사 육조대사법보단경(公州鶴林寺六祖大師法寶壇經)은 2018년 8월 1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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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학림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 후기 목판본 불서. 공주 학림사 호법론(公州鶴林寺護法論)은 송나라 장상영(張商英)[1042~1122]의 『호법론』을 충주 청룡사에서 간행한 것이다. 2020년 9월 1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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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조선시대 전기의 철회분청 가마 터. 공주 학봉리 요지는 유성에서 동학사쪽으로 가면 나오는 신도안과 동학사로 가는 길 일대의 계룡산 기슭 낮은 구릉의 경작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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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교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충청감영 부속의 옥 터 유적. 공주옥 혹은 공주 향옥의 정확한 건립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1603년(선조 36) 공주에 충청감영이 설치된 이후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 기록은 이 지역을 ‘옥거리’로 부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나타나며, 1872년(고종 9) 「공주목지도(公州牧地圖)」에는 ‘향옥(鄕獄)’으로 표기되어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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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에 있는 백제시대의 연못. 공주공산성연지는 모두 집수지 기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주 공산성 내에는 지형상 원지 같은 것을 조성하기 어렵고, 공주 공산성 북쪽에 해자 같은 기능의 금강이 흐르고 있어 수경을 인공적으로 조성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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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귀산리에 있는 노응환·노응탁·노응호 3형제의 생가 터. 노응환(盧應皖)[1555~1592], 노응탁(盧應晫)[1560~1592], 노응호(盧應皓)[1574~1592] 등은 본관이 만경이다. 이들은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아들로서 일찍이 공주목사였던 중봉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공부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이 의병을 모아 왜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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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공주 금학동 고분군은 공주시의 남동쪽에 위치하는 해발 312m의 월성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능선의 남향 사면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서쪽의 물안주에서 동쪽의 월성산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게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성산 주변에는 동쪽과 남쪽에 능치 고분군·신기동 고분군·남산 고분군, 북쪽에 옥룡동 고분군과 보통골 고분군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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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고려 전기부터 조선 후기에 걸쳐 설치된 행정구역. 고려 전기 성종은 즉위하자마자 5품 이상의 중앙 관리들로 하여금 봉사(封事)를 올려 좋은 정책을 건의하게 했는데, 그 중 최승로(崔承老)의 봉사가 채택되어 정책에 반영되었다. 최승로가 올린 시무 제28조 중 제7조는 전국의 주요 지역에 외관을 파견할 것을 건의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983년(성종 2)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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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충청남도 공주 지역을 다스리기 위하여 설치한 공주목의 관아 터. 공주목(公州牧)은 983년(성종 2) 처음 설치되었으며, 공주목사가 행정 업무를 수행하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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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공주 지방을 맡아 다스린 정3품의 외직(外職) 관리. 고려시대의 지방 제도는 성종 때 이르러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983년(성종 2)인 983년에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국의 12개 주에 주목이란 외관을 파견하였는데, 12개의 주목 중에서 공주도 포함되어 상주하는 외관이 파견됨으로써 충청 지역 행정 중심지로 부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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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태봉동 태봉산에 있는 조선 중기 숙종대왕의 태실비 2기. 숙종의 태실과 관련한 기록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와 『태봉등록(胎封謄錄)』에 나타난다. 1661년(현종 2) 숙종이 태어났을 때 태실을 조성하기 위한 과정이 진행되었다. 태실을 조성하기 위한 장소로는 공주, 청주, 춘천이 후보로 올랐고, 그 가운데 공주로 결정되었다. 안태사(安胎使) 여이재(呂爾載)와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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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소장되어 있는 1507년(중종 2)과 1625년(인조 3)에 간행된 공신 녹권. 공주순천박씨공신녹권2책은 계룡면 양화리에 세거하는 순천박씨가에 소장되어 있는 『십공신회맹록(十功臣會盟錄)』1책과 『정사원종공신녹권(丁巳原從功臣錄券)』1책 등 2책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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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시목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 공주신관리석실고분은 공주의 금강 북안에 있는 신관동 시목골 속칭 감나무골 뒷산에 위치한다. 이곳은 금강대교의 북쪽 건너편에 해당하며, 강안의 북편 구릉지대로 후면에 비교적 높은 산이 자리한다. 고분은 이 산릉이 남쪽인 강으로 흘러내리는 경사면에 2기가 남북으로 서로 가까이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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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0년경부터 약 160년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개설된 약령시. 약령시는 원래 감영 소재지로 모이는 약재 중에서 국가가 구입한 뒤 일반인에게 판매를 하는 장터로서 처음에는 각종 약재의 채집과 집산 등의 사정으로 월령(月令)에 따라 몇 차례 개설하였으나 점차 봄과 가을 두 차례 개시로 정착되었다. 한 달 동안 열리는 장터에는 전국 각지의 약초 재배자와 심마니, 상인과 한의사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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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있는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碑石)의 받침돌. 조선 16대 왕 인조의 제5남 숭선군(崇善君)[? ~1690] 이징(李徵)의 묘가 1766년(영조 42)에 이인면 오룡리로 이장되어 서북쪽 마을 안 골짜기에 있다. 숭선군은 인조와 귀인 조씨 사이에서 태어나 1646년(인조 24) 숭선군에 봉해졌다. 효종이 즉위한 후 1651년(효종 2) 숭선군을 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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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옥녀봉 정상부에 있는 백제시대의 토축 산성. 공주옥녀봉성은 백제시대 때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옥녀봉성의 서쪽으로 공주 공산성이 자리하여 공주 공산성의 동쪽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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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상왕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인 이유태가 여생을 보낸 장소. 공주이유태유허지는 초려 이유태(李惟泰)가 말년에 후학을 가르치고 독서로 여생을 보냈던 곳이다. 이유태는 현종·숙종 대의 문인으로 특히 현종 때 학덕이 높은 유학자로 크게 활약하였다. 1675년(숙종 1) 복상 문제로 제2차 예송(禮訟)이 일어나자 남인의 배척을 받아 영변에 유배되었다. 유배 이후 중동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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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성재산 정상부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축 산성. 광정리 산성이 자리한 광정리는 북쪽으로 차령산맥을 넘어가면 천안에 닿을 수 있고, 남하하면 곧장 공주 시내로 진입할 수 있다. 또한 서쪽으로는 유구를 거쳐 예산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이렇게 교통의 요충지에 있는 만큼 다양한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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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이 6곳이니 일신·광정·경천·이인·단평·유구이다.”라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 북쪽 45리에 있다. 설장수의 시에 ‘아침 해 둥그렇게 뜨자 광정역을 떠나니, 흰 구름이 깊숙이 일만 산 푸른 것을 깊이 감추었네. 들꽃 난만히 주인 없이 피어서 봄빛을 단장하여 그림 병풍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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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교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교촌리 고분군은 공주시의 서쪽에 있는 교동 향교골에 위치한다. 북쪽의 송산리 고개를 경계로 무령왕릉이 위치한 송산리 고분군과 단절된 형태를 이루는데, 지형상으로는 남북 방향으로 연결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고분군이 확인된 지역은 해발 95m 야산의 남동사면 중하단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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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 원료를 채굴하던 동굴. 구무동굴은 공주 학봉리 요지와 매우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2018년 4월 16일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었다가 2024년 5월 17일 조례에 따라 공주시 기념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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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뗀석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구석기시대는 지구상에 등장한 인류가 유인원과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리·진화를 거듭하면서 도구를 제작하여 사용했던 약 400만 년 전 내지 250만 년 전부터 약 1만 2000년 전까지다. 이 기간은 인류 역사의 99.5%를 차지하는 아주 장구한 시간이며, 지질학상 제4기 갱신세(Pleistocene)에 속한다. 구석기인들은 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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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구암리 1구 작은말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구암리 고인돌군은 이인면소재지의 북쪽에 있는 구암리 1구 작은말의 안쪽에 위치한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형성된 구릉의 남사면 하단부에 3기가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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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구암리 1구 윗말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 구암리 석실고분은 이인면 소재지의 북쪽에 있는 구암리 1구 윗말에 위치한다. 고분은 마을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형성된 구릉의 남동사면 중하단부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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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귀산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고분. 귀산리 고분은 공주시의 북서쪽으로 약 8㎞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다. 고분은 해발 40m 내외의 나지막한 구릉의 남서사면 하단부에 입지한다. 주변에는 정안천에 유입되는 작은 하천이 있으며, 낮은 구릉과 평야지대가 잘 발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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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에 강은 지리적으로는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고, 문화와 문화를 연결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금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넓은 충적평야와 낮고 완만한 구릉들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선사시대 이래로 생활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고, 이러한 금강을 따라 펼쳐진 선사 유적은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상을 보이고 있다. 금강 유역에서 조사된 선사 유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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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발견된 철이나 청동 등 쇠붙이나 석재에 기록한 글씨나 그림. 금석문은 보통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를 뜻하며, 넓게는 나무·토기·그릇·직물·전돌·기와 등에 기록된 문자를 포괄하여 부르기도 한다. 역사 연구에 있어 고문서 등의 기록과 함께 특히 주목되는 자료이다. 금석문의 기록을 통해 지역의 지명·인명(행적)·연대 및 건립 경위와 주체 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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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문신. 순천김씨는 원래 순천에 세거하였던 성씨였으나 김종서의 조부 김태영(金台泳) 때에 이르러 공주에 세거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世宗實錄)』과 『단종실록(端宗實錄)』의 여러 기사를 통해 공주에 김종서의 집과 농장이 있었으며 선대의 묘도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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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이자 개화 운동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백온(伯溫)이고, 호는 고균(古筠)·고우(古愚)이다. 김병태(金炳台)의 장남으로, 6세 때 당숙 김병기(金炳基)의 양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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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 있는 김옥균의 출생지. 김옥균선생유허는 조선 말기 개화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김옥균[1851~1894]이 태어난 곳이다. 김옥균은 본관이 안동, 자는 백온(白溫), 호는 고균(古筠) 또는 고우(古愚)로 아버지 감역(監役) 김병태(金炳台)와 어머니 은진송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 직후부터 1853년(철종 4) 천안으로 이사하기까지 약 3년 동안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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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인주이씨 이허겸(李許謙)의 사위이다. 현종(顯宗)의 왕비인 원성왕후(元成王后)·원혜왕후(元惠王后)·원평왕후(元平王后)의 아버지이자 정종(靖宗)의 외조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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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흥동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이교의 유물. 죽리(竹里) 김이교(金履喬)[1764~1832]는 1789년(정조 13)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정조(正祖) 연간에 여러 관직을 거쳤다. 순조(純祖)가 즉위하자 시파였던 김이교는 벽파에 의해 함경도로 유배를 갔다. 귀양에서 풀려난 이후 이조참의와 강원감사 등을 역임하였다. 1810년(순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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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학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희원(希元)이고, 호는 사계(沙溪)이다. 할아버지는 지례현감 김호(金鎬)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김계휘(金繼輝)이다. 어머니는 평산신씨(平山申氏)로 우참찬 신영(申瑛)의 딸이고, 아들은 김집(金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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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절재(節齋)이다. 할아버지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김태영(金台泳)이고, 아버지는 공주에서 도총제(都摠制)를 지낸 김추(金錘)이며, 어머니는 성주배씨로 대사헌 배규(裵規)의 딸이다. 3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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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대교리[현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대교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종서의 묘. 김종서는 조선 단종 대의 충신으로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절제(節齊),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공주 의당면 월곡리에서 출생한 것으로 전하는데, 1405년(태종 5)에 문과에 급제한 후 관직을 두루 거치면서 어린 신왕 단종을 보위하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란에 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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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김종서의 생가지. 김종서유허지가 있는 의당면 월곡리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이자 명장이며 절의인으로 이름 높은 절재(節齋) 김종서(金宗瑞)의 생가 터와 김종서를 배향하던 사우 요당서사(蓼塘書社)가 있던 마을이다. 김종서는 천태산 아래 하월곡리에서 태어났다. 죽은 후 이곳 천태산 아래에 묻었다가 장기면 대교리 밤실로 이장하였다. 이 마을의 비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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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사회(士晦), 호는 설송(雪松)이다. 아버지는 행영흥도호부사(行永興都護府使)를 지낸 김반천(金半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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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년(헌덕왕 14) 웅천주에서 김헌창이 일으킨 난. 김헌창(金憲昌)[?~822]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김주원(金周元)이다. 김주원은 선덕왕(宣德王) 6년에 김경신(金敬信)[원성왕]과의 왕위 계승 경쟁에서 패한 후 정계에서 물러났으나, 780년(혜공왕 16)에 일어났던 정변에서 큰 공을 세운 덕에 아들 김헌창은 정부에 참여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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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백제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남산리 고분군은 해발 63.5m의 구릉 남동사면 일대에 위치한다. 행정구역상 공주시 탄천면과 부여군 초촌면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다. 주변에는 금강에 유입되는 ‘하관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하천변에 평야가 잘 발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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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남산 2리 송정골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거석 기념물. 공주시에서 국도 40호선으로 부여 방향으로 가다가 탄천면 삼각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지방도 799번을 따라 4.2㎞ 남짓 가다 보면 남산리로 진입하는 소로가 나온다. 남산리 입석은 공주시에서 남서 방향으로 18.6㎞ 정도 떨어진 공주시와 부여군의 경계에 인접한 남산 2리에 위치한다. 농산물 간이 집하장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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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적만(敵萬), 호는 시북(市北)이다. 아버지는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지내고 참판에 추증된 남위(南瑋)이고, 어머니는 청주한씨이다. 6형제 가운데 셋째로 아버지의 6촌인 남대우(南大佑)[영의정과 의흥부원군에 추증됨]의 양자가 되었으며, 양모는 영일정씨이다.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안주성에서 최후를 마친 남이흥(南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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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충신.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문백(文伯), 호는 관류당(觀流堂)이다.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노응환(盧應晥)[1555~1592]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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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계회(季晦), 호는 국재(菊齋)이다. 공주의 만경노씨 입향조(入鄕祖) 노혁의 5대손으로,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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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시회(時晦), 호는 체헌(棣軒)이다. 공주의 만경노씨 입향조(入鄕祖) 노혁의 5대손으로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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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명원(明遠), 호는 수암(守庵)이다. 공주의 만경노씨 입향조(入鄕祖) 노혁의 5대손으로,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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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선비. 노이복(盧以復)[1704~1785]은 생전 학문과 도덕이 남들보다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일찍이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자연과 더불어 풍월을 즐겼으며 빈궁 속에서도 근심이 없었다.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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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대래(大來), 호는 무척와(無慽窩)이다. 충신 노응환(盧應晥)의 5대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노현급(盧賢及), 할아버지는 노결(盧潔), 아버지는 노언상(盧彦相)이다. 어머니는 풍천임씨로 임강(任矼)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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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과 신기동의 경계인 능치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능치(陵峙)는 금학동과 신기동의 경계 지점으로 공주시의 남동쪽에 위치한다. 능치 고분군은 월성산이 남쪽으로 길게 흘러내린 능선의 남동사면에 위치하며, 신기동 고분군과 마주하고 있다. 따라서 신기동 고분군과 능치 고분군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지형이 구분되고, 조사 시기가 다르다는 점에 근거한 인위적인 구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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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토축 산성. 단지리 토성의 축조 경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다만 위치나 성내에서 출토된 유물을 감안해 볼 때 백제 웅진시대에 축조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공주 지역에 있는 다른 산성들과 마찬가지로 왕도 웅진을 방비하기 위해 외곽에 배치된 산성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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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단평역은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존재하였던 조선시대 중요한 역참이다. 역참은 주요 도로 30리마다 존재하였으며, 단평역은 공주의 다른 역참인 이인역·경천역·광정역·유구역과 함께 중요한 도로 교통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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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대성리 안골에 있는 백제시대로 추정되는 고분군. 대성리 고분군은 공주시 우성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1㎞ 정도 떨어진 대성리 대문안의 남쪽에 동서 방향으로 길게 형성된 능선상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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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성동구 거여동에 있었던 덕천군(德川君) 이후생(李厚生)의 묘를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대산리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의 분청사기 2점. 덕천군은 조선의 2대 왕인 정종[재위 1398~1400]의 열 번째 아들로, 홍수가 났을 때 이재민을 구제하는 등 덕을 쌓아 적덕공(積德公)으로 불렸다고 한다. 덕천군의 무덤 속에서 원형의 분청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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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도신리에 있는 거석 기념물. 공주시에서 동혈사 방향으로 가다가 동혈사 안내판이 서 있는 언덕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의 604번 도로를 타고 1㎞ 정도 가다가 우회전하여 덕학리 방향으로 간다. 덕학리 마을회관 앞에서 우회전하면 도신리가 나온다. 도신리 마을회관을 지나 다시 우회전하여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도신교가 있다. 도신리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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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백제 제24대 왕. 백제 제22대 왕이었던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昆支)의 아들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동성왕을 가리켜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昆支)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곤지의 5명의 아들 중 둘째’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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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공주목사가 정무를 집행하고 공사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 동헌은 조선시대 지방 관아에서 고을의 원(員)이나 현감(縣監), 병사(兵使), 수사(水使), 감사(監司) 및 그 밖의 수령(守令)들이 주재하는 건물로 정무(政務)를 집행하고 공사(公事)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을 말하며, 대청을 이르기도 한다. 지방의 일반 행정 업무와 재판 등이 동헌에서 행하여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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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시대 구리 종. 마곡사동종은 태화산(泰華山) 남쪽 기슭의 마곡사 경내에 있는 종으로서, 조선 후기의 범종이다. 마곡사의 경내 중에서도 마곡사 오층석탑[보물] 동쪽 심검당(尋劍堂)의 툇마루에 자리하고 있는데, 높이는 107㎝, 입지름은 75㎝이다. 주종장은 보은, 법현, 민화, 학순, 학준이다. 마곡사동종은 1976년 1월 8일 충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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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만수리 고분군은 이인면 만수리 아랫만수동 북쪽에 위치한 산의 남사면 일대에 위치한다. 주변으로는 서북쪽에 금강이 있으며, 북서쪽 정상부에는 해발 172m의 개숭산에 백제시대 만수리 산성이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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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산성. 산성인지조차 불분명한 만큼 축조 경위는 알 수 없다. 다만 금강 변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금강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된 산성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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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년(명종 6)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의 주도로 일어난 민란. 무신 집권기에 들어서면서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력 약화, 신분제의 변화, 지방관의 수탈 등이 원인이 되어 전국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났는데, 특히 소(所)는 특산물을 생산하여 국가에 공납하는 지역으로서 국가나 지방관에 의한 수탈은 다른 지역보다 욱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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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公山城) 안에 있는 명나라 장수의 송덕비. 명국삼장비는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년(선조 31) 가을 공주에 주둔하면서 군기를 엄히 단속하고, 주민을 정성껏 보살핌으로써, 왜군의 위협 하에서도 안전하게 생업에 안주할 수 있게 하였던 명나라의 장수 제독(提督) 이공(李公), 위관(委官) 임제(林濟), 유격장(遊擊將) 남방위(藍芳威)의 업적을 기리는 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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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한제국의 황후. 생전에 충남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위치한 신원사 내의 중악단이 1651년(효종 2)에 폐지된 것을 명을 내려 재건하였다.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府大夫人) 민씨의 천거로 왕비에 간택되어 1866년(고종 3) 한살 아래인 고종의 비로 입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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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조선 후기 공주목사를 역임한 김효성의 선정비. 공주목사 김효성(金孝誠)[1585~1651]은 청렴 결백하고, 백성을 잘 다스렸으며, 군대 통솔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를 칭송하기 위하여 목사김효성의비가 세워졌다. 김효성은 광주김씨로 영양부사를 역임했던 김수연(金秀淵)의 아들이다. 김효성은 1615년(광해군 7) 이이첨의 사주를 받아 정조와 윤인, 이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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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시대 마한의 54개 소국 중 하나. 목지국(目支國)은 초기 국가시대 이래 충청남도와 전라남도·전라북도 지역에서 형성, 발전되어 온 토착 정치 집단의 하나로, 백제(百濟)가 마한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하기 전까지 마한 소국 연맹체의 중심 세력이었다. 『삼국지(三國志)』위서 동이전에는 월지국(月支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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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백제 제25대 왕. 무령왕의 가계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기록들이 남아 있다. 먼저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는 무령왕을 동성왕의 둘째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지석의 내용으로 볼 때 무령왕이 동성왕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무령왕은 461년에 태어났는데, 동성왕은 적어도 464년 이후에나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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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의 금제 귀걸이. 귀걸이는 삼국시대 장신구류 중에서 비교적 많이 발굴되었고 장식 기법이 우수하다. 귀걸이의 형태는 나라간의 인적, 물적 교류에 따라 모방하는 사례가 생기면서 새로운 형식으로 발전되어 왔다. 삼국시대 귀걸이는 귓불에 닿는 부위의 넓이에 따라 세환식과 태환식으로 나뉘는데, 백제의 귀걸이는 모두 세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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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백제시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의 관식(冠飾). 관식은 지위 또는 신분을 상징하는 격조 놓은 장신구로서, 왕이나 그에 필적하는 지배자들의 무덤에서만 출토된다. 관식을 만드는 데 쓰인 금속은 금, 은, 금동 등이며, 각 나라마다 독특한 형태의 관식이 사용되었다. 무령왕의 머리 부분에서 2매로 이루어진 1쌍의 관식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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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백제시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뒤꽂이. 고대 국가에서는 신분을 상징하기 위하여 머리에 관을 썼는데, 가장 높은 신분을 상징하는 관에는 새 장식이 많이 사용되었다. 이는 새를 하늘과 연결해 주는 신조로 여겼기 때문이다. 백제의 경우 관에 새가 장식된 예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무령왕의 머리 장식용 금제 뒤꽂이에 새가 장식되어 있어 그 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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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의 발받침[足座]. 무령왕릉의 목관에서 발견된 장의용 나무 발받침으로, 시신의 두 발목을 올려놓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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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 고분군에 있는 백제 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능. 무령왕릉은 무령왕(武寧王)[재위 501~523년]과 왕비가 합장된 능이다. 널길 입구에 놓인 지석(誌石)에 의하면 무령왕은 523년 5월에 사망하여 525년 8월에 왕릉에 안치되었으며, 왕비는 526년 11월에 사망하여 529년 2월에 안치되었다. 왕릉은 왕이 죽기 11년 전인 512년에 이미 축조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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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백제시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석조 동물상. 무령왕릉 석수는 발굴 당시 널길의 중앙에 밖을 향해 놓여 있어서 무덤 문을 열었을 때 제일 먼저 사람들의 눈에 띄었던 유물이다. 무덤을 수호하는 의미를 갖는 진묘수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발견된 것이다. 진묘수는 기괴한 형태의 상상 속의 동물로, 무덤 안이나 앞에 놓아 악귀를 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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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백제 시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2매의 명문석(銘文石). 지석이란 죽은 사람의 행적이나 무덤의 소재지를 기록하여 묻은 판석(板石)이나 도판(陶板)을 말한다. 대개 본관과 이름, 조상의 계보, 태어난 날, 사망일, 행적, 가족 관계, 무덤의 소재와 방향 등이 기록되며, 무덤의 앞이나 옆에 묻는다. 이러한 지석은 묘지(墓誌)와 묘명(墓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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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국립 공주 박물관에 있는 고대 삼국 시대 백제의 청동거울 일괄.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은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으로, 청동 신수경(靑銅神獸鏡)·의자손 수대경(宜子孫獸帶鏡)·수대경(獸帶鏡) 세 점이다. 무령왕릉은 송산리 제6호 벽돌무덤 북쪽의 나지막한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송산리 고분군이 조사되면서 무령왕릉은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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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귀고리. 삼국시대의 장신구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귀걸이는 당시에 금속 공예가 발전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세공품이다. 무령왕비의 금귀걸이는 널방 내 서쪽에 자리한 왕비의 머리 부근에서 한쌍으로 출토되었다. 1974년 7월 9일 국보 제15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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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백제시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경식(頸飾). 삼국시대의 목걸이[頸飾]는 대체로 옥으로 제작되었으나 금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고, 세 나라마다 독특한 제작 기법을 지녔다. 무령왕비 금목걸이는 1974년 7월 9일 국보 제158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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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백제 시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관식(冠飾). 관식은 지위 또는 신분을 상징하는 격조 놓은 장신구로서, 왕이나 그에 필적하는 지배자들의 무덤에서만 출토된다. 관을 만드는 데 쓰인 금속은 금, 은, 금동 등이며, 각 나라마다 독특한 형태의 관식이 사용되었다. 무령왕비 금제 관식은 1974년 7월 9일 국보 제1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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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으로 만든 무령왕비의 팔찌. 무령왕릉에서는 무령왕비의 금팔찌 각 두 쌍씩 확인되었다. 널방의 서쪽에 자리한 왕비의 관재 밑에서 한쌍, 널방 내 서쪽에 자리한 왕비의 발 쪽에서 한쌍이 출토되었다. 관재 하단으로부터 북쪽으로 35㎝ 위치인 왕비의 오른팔 쪽에서 금팔찌가 확인되었고, 왕비의 발 쪽에서 금팔찌 외에도 금동 신발, 그 옆으로 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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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백제 시대의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베개. 무령왕비 베개는 잘 다듬은 나무 토막을 U자 모양으로 파내어 붉은 칠을 하였고, 가장자리를 따라 금박 테두리를 돌린 다음, 그 속에 금박으로 육각 무늬를 그물처럼 연속적으로 표현하였다. 육각 무늬 안에는 흰색, 붉은색, 검은색 안료로 비천(飛天), 새, 어룡(魚龍), 연꽃, 인동, 네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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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백제 시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의 은제 팔찌. 삼국시대의 팔찌는 남녀가 공용으로 착용했던 장신구인데, 무령왕릉에서는 왕비의 것만 출토되었다. 왕비의 팔찌는 금제와 은제로 만들어졌는데, 그중 은제 팔찌[銀製釧]가 제작의 우수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글자를 새긴 용무늬 은팔찌는 널방의 서쪽에 자리한 왕비의 관재 밑에서 각 한쌍씩 겹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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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한천리 무성산 정상부에 있는 석축 산성. 한천리 주민들은 홍길동이 축성하였다고 전하는데, 실제로 홍길동이 축성하였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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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중기 송악(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덕병(德柄)이다. 아버지는 지문하성사 집현전태학사를 지낸 문공유(文公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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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백제의 제22대 왕.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문주왕이 개로왕의 아들이라고 되어있지만 개로왕이 통치할 때 상좌평(上佐平)이 되어 통치를 도운 것을 보면 동생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실제로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문주왕을 개로왕의 동생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문주왕은 개로왕의 동생이면서 다 같이 제20대 비유왕(毗有王)의 아들이었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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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박산소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박산소 고분군은 공주시의 서북쪽에 있는 송산리 고분군에 인접한 지역에 위치한다. 현재 고분군 주변으로는 웅진동 고분군이 밀집되어 분포한다. 고분군이 위치한 지역은 남쪽의 해발 205m 서열봉에서 서북쪽으로 흘러내린 능선 하단부의 동사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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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에 입향한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아버지는 박이검(朴而儉)이다. 박인손의 손자인 박정제(朴廷濟)는 1624년 이괄의 난 때 어가를 호종하여 공신녹권(功臣錄卷: 공신 전체의 공적과 상훈을 기록한 문서)을 받음으로써 공신 집안으로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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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 있는 백제시대에 공주 제민천 돌다리 교각 밑에 받쳐 두었던 초석. 정확한 건립 경위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원래 초석이 있던 자리가 대통사지(大通寺址)의 남동쪽으로, 인근에 당간지주가 있어 대통사로 통하는 다리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처음 만든 시기는 대통사가 건립된 백제 때였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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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8년부터 660년까지 존속한 고대 삼국 시대 국가의 하나.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는 BC 18년에 건국하여 660년에 나당연합군에게 망하여 678년간 존속한 것으로 되어 있다. 백제는 이렇게 장구한 세월을 유지하는 동안 2번의 천도를 단행하였다. 따라서 흔히 백제의 역사는 도읍지를 기준으로 한성시대(BC 18~AD 475)·웅진시대(475~538)·사비시대(538~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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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7월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정복당한 뒤 금강 유역을 비롯해 백제 전역에서 일어났던 백제부흥운동. 백제 의자왕(義慈王)이 642년 신라를 공격하여 대야성(大耶城)[현 경상남도 합천군] 등 40여 성을 함락시키는 등 관산성(管山城) 전투에서 성왕(聖王)의 전사로 실추된 백제의 국위를 만회하기 위해 신라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자, 위협을 느낀 신라는 김춘추로 하여금 당의 고종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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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인조 14) 12월 2일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침략으로 발생한 전쟁.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형제의 의’를 맺은 이후 조선은 후금(後金)과 무역뿐만 아니라 일정한 정도의 공물을 바쳐야만 했다. 그러나 후금은 만주의 대부분을 석권하고 만리장성을 넘어 명(明)의 북경 부근까지 공격하면서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의 의’을 ‘군신의 의’로 고치자고 요청을 해올 뿐 아니라,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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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소학동 보통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보통골 고분군이 위치한 지역은 공주의 동쪽에 위치한 월성산이 북쪽으로 뻗으면서 금강의 남안에 형성된 산곡이다. 고분군은 계곡의 동쪽 산기슭에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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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보흥리 박선달골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보흥리 박선달골 고분군은 우성면소재지에서 청양 방면으로 약 2.5㎞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곳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형성된 능선의 남서사면 하단부에 해당하며, 경작지로 이용하기 위한 벌목으로 초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장승백이로도 불리기 때문에 고분군은 장승백이 고분군으로도 전한다.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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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보흥리 2구 수옥동에 있는 거석 기념물. 공주시에서 북서 방향으로 6.8㎞ 정도 가면 우성면소재지가 나온다. 여기서 남쪽으로 약 3.2㎞ 정도 가면 보흥리 2구의 수옥동이 있다. 보흥리 선돌은 수옥동 입구 왼쪽 도로변에 위치한다. 본래는 마을 입구 노변인 논둑에 쓰러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50여 년 전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이 선돌의 재건에 관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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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보흥리 안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보흥리 안골 고분군은 우성면소재지에서 청양 방면으로 약 2.5㎞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형성된 능선의 동남사면 하단부에 해당하며, 현재는 산림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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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조선시대의 통신 수단. 봉수제도는 변방의 다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군사적 목적으로만 사용하였다. 봉수대는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횃불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횃불 3개, 국경을 침범하면 횃불 4개, 전투가 벌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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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봉정동 새재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공주시의 남쪽으로 약 1㎞ 정도 떨어진 거리에 봉정동 새재가 있다. 이 마을의 북서쪽으로는 금강에 연결된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봉정동 고분군은 마을 동북쪽에 있는 해발 205m의 서열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의 남서사면 구릉 중하단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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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신라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존속한 특수한 지방 하급 행정구역 우리나라 전근대 사회에 존속하였던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부곡 집단은 조선시대 이전인 고려시대의 부곡 집단이다. 고려시대는 부곡 이외에도 소(所)·처(處)·장(莊) 등 특수한 집단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공주 지역에서 부곡과 관련된 큰 사건이 12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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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흥동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부전동의 대동계 자료. 부전대동계는 1663년(현종 4)에 중수(重修)되어 현재까지도 운영되고 있는 우성면 부전동에 속하는 4개 리, 15개 자연 부락의 대동계 운영 자료이다. 2013년 4월 22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26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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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분강리와 부여읍 저석리의 경계 지점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백제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분강·저석리 고분군은 부여에서 8㎞, 공주에서 16㎞ 떨어진 지점인 능선에 위치한다. 이 능선은 금강에 맞닿아 있는 해발 120.5m의 산으로 고분군은 능선 상부에서부터 남쪽 경사면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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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분강리와 부여읍 저석리의 경계 지점에 있는 분강·저석리 고분군에 속하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분강·저석리 고분군은 부여에서 8㎞, 공주에서 16㎞ 떨어진 부여~공주 간 국도의 북쪽 지점인 능선에 위치한다. 이 능선은 해발 120.5m의 산에서 서쪽으로 금강변까지 점차 낮아지다가 서남쪽으로 꺾여 금강을 따라 이어진다. 분강리 돌널무덤은 금강을 굽어보는 능선 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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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마한의 54개 소국(小國) 중 하나. 『삼국지(三國志)』위서 동이전 한조(韓條)에는 우리나라 고대 삼한의 여러 소국 이름이 열거되어 있으나, 개별 소국의 위치에 관하여 명확한 정의는 되어 있지 않다. 『삼국지』에 기록된 삼한(三韓) 소국 이름의 한자 표기는 우리말 이름을 당시의 중국 고대음에 따라 한자로 표기한 것이며, 중국 고대의 북방음은 현행 우리 한자음에 가까우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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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공주 지역의 정치와 사상의 흐름을 주도한 양반 지식인 세력. 공주 지역은 지리적으로 호서 지방의 중앙에 위치하지만, 역사적으로 그 비중이 더욱 심원하다. 공주 지역은 오랜 역사를 지낸 고도일 뿐만 아니라 고려 말 조선 초 이후로는 유서 깊은 유향으로서 청주, 충주 등과 더불어 호서 사림의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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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년(성왕 16) 백제 제26대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긴 사건. 고대 사회에서 도읍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이다. 천도는 곧 중심지의 이동이며, 지배 세력의 변화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렇기에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의 평양 천도 이후 국내성에 거주한 귀족들의 반발이나 신라 신문왕(神文王)의 달구벌[현 대구광역시] 천도 실패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기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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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산정리 오얏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공주시 신풍면과 유구읍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신풍면 산정리가 있다. 산정리 고분군은 산정리 3구 쇠실의 북쪽에 있는 산의 동남사면 하단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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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백제 제23대 왕.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삼근왕이 문주왕의 맏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아울러 아버지 문주왕은 개로왕, 곤지 등과 더불어 제20대 왕이었던 비유왕(毗有王)의 아들이었다. 장남이었던 개로왕의 직계 가족들은 한성(漢城) 함락과 더불어 고구려군에 의해 몰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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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 있는 입석. 공주시에서 남동 방향으로 13.2㎞ 정도 가면 상신리 마을 입구가 나오는데, 이곳에 상신리 입석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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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상왕 2동 큰목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 공주에서 동쪽으로 약 4㎞ 떨어진 거리에 상왕동이 있다. 이곳은 금강의 남안 지역이면서 계룡산 줄기가 서북으로 이어진 산지에 포함된다. 상왕동 고분은 큰목골이라 불리는 계곡의 가장 북단부에 있는 해발 50m 미만의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조사된 고분은 북쪽으로 전개된 구릉이 약간 동쪽으로 틀어지면서 남향의 경사면을 이룬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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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이천(利川). 자는 대가(待可)이고, 호는 고청초로(孤靑樵老)·구당(龜堂)·봉와(蓬窩)이다. 아버지는 서구령(徐龜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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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선사시대부터 근세에 이르는 거석 기념물의 한 종류. 선돌은 자연석이나 자연석을 일부 다듬어 세워 놓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고인돌과 조합을 이뤄 세워 놓은 것도 있다. 선돌의 연대를 추정하기는 매우 어려우며 지역에 따라 다르다. 서유럽의 경우에는 신석시시대 후기부터 시작하여 청동기시대에 유행한 것으로 나타난다. 선돌에 성혈(性穴)을 새겨 놓은 것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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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발견된 역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의 유적과 유물. 선사시대는 역사시대와 대비되는 시대 구분 용어로, 일반적으로 문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기, 즉 구석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까지를 포함한다. 우리나라의 선사시대는 구석기시대를 비롯하여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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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관아 건물. 조선시대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곳을 감영이라고 하는데, 감영에는 다양한 업무 기능을 하는 각종 건축물이 건립되어 있었다. 감영에는 감사본아(監司本衙)로 상방, 청옥, 행랑, 각종 누고, 도사청, 부관청, 육방청 등 큰 규모의 건물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 감사의 행정청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을 선화당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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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분포하고 있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흙이나 돌로 축조한 방어시설. 성곽(城郭)이란 내성(內城)과 외곽(外郭)을 함께 가리키는 말이다. 시가지 전체를 에워싼 나성(羅城)을 ‘곽’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곽의 안쪽에 또 다른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독립된 공간을 ‘성’이라고 한다. 나라를 뜻하는 ‘국(國)’이라는 말이 성곽[口]을 창[戈]으로 지키고 있는 형상을 본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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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성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성리 고인돌은 탄천면소재지에서 부여 방향으로 약 2㎞ 정도 거리의 성리에 위치한다. 유적의 북쪽 전방으로는 서쪽으로 흘러 금강에 유입되는 하천이 있으며, 하천변에는 나지막한 구릉과 평평한 충적지대가 잘 발달되어 있다. 고인돌이 위치한 지역도 주변의 지형 환경과 동일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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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백제 제26대 왕.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성왕은 무령왕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맏아들이라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성왕은 무령왕의 맏아들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513년 8월 무령왕의 아들 순타태자(淳陀太子)가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왕의 맏아들은 위덕왕인데, 554년에 29세였다고 『일본서기』에 되어 있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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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경(子敬), 호는 동주(東洲)이다. 시조는 고려 때 중윤(中允)을 지낸 성인보(成仁輔)이다. 6대조는 이헌(怡軒) 성여완(成汝完)으로, 고려 말에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내다가 조선 태조가 등극하자 포천의 왕방산에 은거하면서 삭망 때면 송악을 바라보고 통곡하면서 스스로 왕방거사라 칭하며 고려를 잊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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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전기의 가마. 세조대왕연은 조선시대에 세조가 타고 다니던 가마로 마곡사를 방문할 때 쓰인 것을 절에서 보관해 온 것이다. 현재 마곡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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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던 지방 행정 구역. 속군(屬郡)은 속부(屬府), 속현(屬縣) 등으로 구분될 수 있으나 통상 속현으로 총칭된다. 지방관이 파견된 지역을 주현(主縣)이라 하였는데,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을 통하여 인근 속현을 간접 통치하는 주현·속현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공주 지역은 1018년(현종 9)의 관제 변화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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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던 공주 지역의 행정 구역. 속현(屬縣)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지역을 말한다.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을 통하여 인근 속현을 간접 통치하는 주현·속현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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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 성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석축 산성. 송곡리 산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시기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산성을 축조한 배경에 대해서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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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탄천면소재지의 북쪽에 송학리 방재가 있다. 송학리 고분군은 송학리 방재의 북쪽에 있는 해발 184m의 무명산에서 남쪽으로 길게 흘러내린 능선의 남사면에 위치한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분토골이라는 자연 골짜기가 남북 방향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는 주변의 산림 지역으로 전체적으로 나지막한 구릉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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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 소라실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공주에서 부여로 통하는 국도 40호선의 북쪽에 탄천면 송학리 소라실이 있다. 송학리 독무덤[옹관묘]은 이 마을의 북동쪽에 있는 해발 80m 미만의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한다. 이 구릉은 송학리와 국동리를 연결하는 ‘메골고개’로도 불리며, 북서-남동간으로 연결된 나지막한 구릉의 남사면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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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토성. 수촌리 토성은 축성 시기와 사용 기간을 단정할 수 없지만, 대체로 신라 하대 이후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의당면 일대의 평야를 생활 근거지로 하는 집단의 치성(治城)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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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숭선군묘. 숭선군은 인조의 다섯째 아들로 이름은 이징(李澂)이고, 시호는 효경(孝敬)이다. 1646년(인조 24)에 숭선군에 봉해졌으나, 1651년 모친과 누이가 역모에 관련되었다 하여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1656년 부수찬 홍우원의 소청으로 풀려나 관직이 복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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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신기동 고분군은 공주시의 동남쪽으로 약 2㎞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다. 고분군은 월성산에서 남으로 뻗어내린 능선이 마안형(馬鞍形)의 지형으로 능치를 이루고, 여기서 남으로 연장되어 흘러내린 구릉의 남사면에 자리한다. 고분은 주로 산의 중턱에서 돌출된 선상부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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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구석기시대와 중석기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간석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BC 8,000년경이 되면 홍적세가 끝나고 충적세가 시작된다. 문화적으로는 구석기시대가 끝나고 중석기시대를 거쳐 신석기시대가 시작되는 때이다. 기후도 빙하기가 끝나고 후빙기가 되어 점점 따뜻해져서 현재와 거의 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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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달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신유의 묘. 신유(申濡)[1610~1665]의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자는 군택(君澤), 호는 죽당(竹堂)·이옹(泥翁)이다. 첨지중추부사 신말주(申末舟)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신기한(申起漢)이고, 어머니는 김영국(金英國)의 딸이다.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6년(인조 14)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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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산정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토축 산성. 신풍산성이 있는 곳은 나지막한 구릉으로, 해발 110m에 해당되며, 전체 성벽의 둘레는 약 350m에 이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신풍산성을 “신풍현 남쪽 3리 지점에 있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7백 1척이다, 지금은 폐성이 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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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의 고려와 조선시대의 지방행정구역. 백제·신라시대에는 벌음지현(伐音支縣)이었으며, 고려 초에 신풍현이 되었다고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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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평산(平山).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19세손으로 영의정에 증직된 신화국(申華國)과 첨정 벼슬을 지낸 윤양정(尹讓貞)의 딸 파평윤씨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또한 충주전투로 유명한 충장공(忠莊公) 신립(申砬)[1546~1592]이 셋째 형이며, 둘째 형 신급은 피난 중 왜군을 만난 어머니가 벼랑에서 투신하자 그 뒤를 따라 뛰어내려 모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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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신흥리 안너추골에 있는 거석 기념물. 신흥리 선돌은 신흥리 입구의 삼거리에서 안너추골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15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있는 도로의 오른쪽 논둑에 위치한다. 공주시에서 남서 방향으로 7.6㎞ 정도 떨어져 있다. 안너추골은 남쪽·서쪽·북쪽이 산으로 둘러싸여 동쪽만이 들로 연결되는 자루 형태를 하고 있는 지역으로 매우 아늑한 지형 조건을 지니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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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 쌍령산 정상에 있는 조선 전기의 봉수대. 쌍령산 봉수대는 조선 전기에 설치되었으며, 나라에 병란이나 사변이 있을 때 신호를 받아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를 피웠다.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와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무학리에 걸쳐 있는 쌍령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남쪽에 있는 공주의 고등산 봉수에서 연락을 받아 북쪽에 있는 천안의 대학산 봉수로 전달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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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발생하자, 인조는 공주로 파천하여 공산성 내에 머물렀다. 당시 인조가 머물던 곳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는데, 인조는 두 나무 사이를 거닐며 이괄의 난이 평정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인조는 크게 기뻐하며 두 나무, 즉 쌍수(雙樹)에 정3품의 품계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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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 성재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축 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양화산성(良化山城)은 공주 남쪽 40리 지점에 있는데,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1,050척이고, 그 안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양화산성은 석성이었고, 성내에 우물이 한 곳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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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교통 통신 기관. 역참은 전통시대 육상 교통로에 설치되어 역부와 역마를 이용하여 중앙과 지방 및 외국과의 공문서 전달, 변경의 긴급한 군사 정보 전달, 관물 수송, 관리 및 사신 왕래에 따른 숙박 등을 담당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통해 역(驛)은 삼국시대부터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고려시대에 원(元)의 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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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조선 중기 연평부원군 이귀의 신도비. 이귀[1557~1633]는 연안이씨로, 임진왜란 당시 삼도소모관(三道召募官)과 삼도선유관(三道宣諭官)을 역임하며 의병을 모집하고 군사를 조직하였다. 그는 전쟁 중 양곡을 거두어 개성으로 운반하여 한양 수복 작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전쟁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사회를 안정시키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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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순국지사. 본관은 보성. 자는 명여(明汝), 호는 무이재(無貳齋)이다. 아버지는 오치국(吳治國)이며,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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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오곡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오곡동 고분군은 공주시에서 남쪽으로 약 3㎞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오곡동 장척 동남쪽 산의 남서사면 하단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북쪽의 해발 213m의 태봉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 사면부에 해당하며, 남서쪽 전방에는 오곡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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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충신.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경도(景圖)이다. 보성오씨 시조 오현필(吳賢弼)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오응두(吳應斗)이고, 어머니 전의이씨 이경우(李景佑)의 딸이다. 부인은 연안이씨 이희정(李希程)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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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이고, 아버지는 오달천(吳達天)이다. 어머니는 조간(趙幹)의 딸 한양조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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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오동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 오동리 돌방무덤은 오동리의 서쪽으로 깊게 형성되어 있는 큰골 안쪽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해발 308m의 사마산에서 동북쪽 해발 208m의 검은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에서 동주한 능선의 남동사면 하단부에 해당한다. 주변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동쪽의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흐르는 금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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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덕구(德耉), 호는 묵재(默齋)이다. 할아버지는 직장 오극권(吳克權)이고, 아버지는 직장 오세현(吳世賢)이다.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참봉 성근(成近)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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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덕이(德而), 호는 수촌(水邨)이다. 아버지는 관찰사 오정원(吳挺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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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있는 오시수의 신도비와 묘비. 신도비는 임금이나 종이품 이상 벼슬아치의 무덤 남동쪽의 큰길가에 세운 석비(石碑)를 말한다. 숙종 대 남인 세력의 중심 인물 중 하나였던 오시수(吳始壽)[1632~1681]의 신도비는 두 기가 존재한다. 우측의 비는 1694년(숙종 20)에 세워진 것이고, 좌측의 비는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에 연루되어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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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오인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성. 오인리 산성은 발굴 조사를 통해 축성 시기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지표 조사를 통해 수습된 유물 중 백제시대 것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북쪽의 경우도 왕도 웅진을 향해 침입하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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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옥성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토축 산성. 옥성리 산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축성 시기를 전혀 짐작해 볼 수 없다. 따라서 산성의 축조 배경도 현재로서는 잘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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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가마 터. 요지(窯址)는 토기·질그릇·오지그릇·도자기·기와·벽돌·숯 따위를 구워내는 시설을 뜻한다. 공주 지역에도 이와 같은 요지 유적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백제의 왕도였던 공주에서는 왕실을 비롯한 민간인들이 사용하는 그릇과 기와 등을 다량으로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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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용성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토축 산성. 공주에서 부여로 통하는 국도 변에 있는 만큼 축조 경위는 왕도의 방비 체제와 관련시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남아 있는 형태로 볼 때는 사비보다 웅진을 방비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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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에 있는 우공로의 무덤 앞에 세운 비석. 우공로(禹恭老)는 본관이 단양으로 단양우씨는 공주의 토착 성씨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우현보이고 할아버지는 개성부 유휴사 우홍부이다. 우공로는 1481년(성종 12) 만경현령으로 재임 중 사망하였다. 이후 우공로는 1498년(연산군 4)에 가선대부로 증직되었다. 우공로 묘비는 1499년(연산군 5) 8월 15일에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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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주미동에 있는 백제시대 고분군. 우금치는 공주 시내에서 남쪽으로 40번 도로를 따라 부여 방향으로 넘어가는 첫번째 고개를 말한다. 이곳은 동학혁명군의 위령탑이 위치한 유명한 곳이다. 우금치 고분군은 이 우금치 산록의 남동사면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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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년 백제 문주왕이 왕도를 한성[현 서울특별시]에서 웅진[현 충청남도 공주시]으로 옮긴 사실. 백제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은 3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백제 왕도인 한성을 공략하였으며, 개로왕은 이를 막아내지 못하고 한성이 함락되었다. 그 과정에서 개로왕은 죽임을 당하였다. 이에 한성에서 즉위한 문주왕(文周王)은 고구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자 그해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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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당나라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한 통치 기구. 웅진 지역은 사비 천도 이전 63년간 백제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사비로 천도하기 이전까지 웅진이 수도로 결정된 이유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으며, 방어상 유리하다는 점도 그중 하나였다. 나당연합군의 침공으로 사비성이 함락될 당시 의자왕 역시 웅진성으로 피신한 사실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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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웅진동 고분군은 송산리 고분군과 더불어 백제시대의 고분군 지역으로 일찍부터 주목되었다. 이 일대에서는 1960년대 말 수습 조사된 박산소 고분군을 제외하고도 3번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1979년 웅진동 산610-1번지를 포함한 지역에서 조사된 것을 웅진동 고분군(1), 1989년 수습 조사된 것을 웅진동 고분군(2),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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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웅진동 고분군은 송산리 고분군과 더불어 백제시대의 고분군 지역으로 일찍부터 주목되었다. 이 일대에서는 1960년대 말 수습 조사된 박산소 고분군을 제외하고도 3번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1979년 웅진동 산610-1번지를 포함한 지역에서 조사된 것을 웅진동 고분군(1), 1989년 수습 조사된 것을 웅진동 고분군(2),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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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웅진동 고분군은 송산리 고분군과 더불어 백제시대의 고분군 지역으로 일찍부터 주목되었다. 이 일대에서는 1960년대 말 수습 조사된 박산소 고분군을 제외하고도 3번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1979년 웅진동 산610-1번지를 포함한 지역에서 조사된 것을 웅진동 고분군(1), 1989년 수습 조사된 것을 웅진동 고분군(2),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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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백제시대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수신제를 올렸던 사당의 터. 웅진사가 있는 고마나루에는 처녀곰과 나그네, 또는 나무꾼 총각에 얽힌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현재 고마나루 북쪽에 솟은 연미산 중턱에 전설 속 곰이 살았다는 곰굴이 고마나루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곰의 원한을 풀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나루터 인근에 웅진사를 짓고 제사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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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공주 공산성의 삼국 시대 명칭. 475년(문주왕 1) 고구려의 침입으로 수도였던 한성이 함락되자, 백제 문주왕은 웅진으로 천도하였다. 이후 538년(성왕 16) 백제 성왕은 사비로 천도를 단행하였다. 따라서 웅진에 도읍한 시기는 63년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웅진으로 도읍한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한 것에서 비롯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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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년부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한 신라의 지방행정조직. 공주 지역은 삼국시대 백제가 475년(문주왕 1) 북한성(北漢城)에서 천도하여, 538년(성왕 16) 다시 부여로 옮기기까지 백제의 도성이었다. 백제가 나당(羅唐)연합군에게 멸망하고 나서 당나라는 공주 지역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두었으며, 670년(문무왕 10)에는 신라가 관장하였다. 신문왕 때 웅천주(熊川州)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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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유하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 원산정은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에 활동한 인물인 박의립[1556~1616]에 의해 창건되었고, 의 아들 5형제가 살았던 곳이다. 따라서 원산정의 건립 연대는 박의립의 생몰년을 감안하면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건립 후 사적은 정확하지 않다. 건립 이후 언제, 어떤 이유로 정자가 없어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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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월성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월성산 고분군은 월성산의 북쪽 줄기에서 서쪽으로 전개된 첫 번째의 능선 서남사면에 위치한다. 월성산은 공주시가지의 동쪽 외곽에 위치한 봉화대로 불리는 해발 314m의 비교적 높은 산이다. 월성산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많은 백제시대 고분군이 분포한다. 남서쪽에는 월성산 고분군, 남쪽에는 능치 고분군, 북쪽에는 보통골 고분군,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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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월성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봉수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따르면, 월성산 봉수대는 조선시대 봉수 체계에서 중요한 중계지 역할을 수행하였다. 월성산 봉수대는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의 정보를 서울로 전달하는 제5로 직봉(直烽) 노선에 포함된 봉수대로, 남쪽의 논산 노성산 봉수대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의 정안면 북계리 고등산 봉수대로 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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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유구역이 있던 지역은 호남과 서울을 연결해 주는 중심 통로로 조선시대 교통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행인들의 이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나라의 중요 역원으로서 기능을 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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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묶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공주 공산성,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2015년 7월 5일 충청남도의 공주시와 부여군, 전라북도 익산시의 삼국 시대 백제 유적지가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묶여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총 8개 유적이 대상이며, 공주에서는 공주 공산성(公州公山城),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公州武寧王陵-王陵園) 두 곳이 선정되었다.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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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숙춘(叔春), 호는 죽당(竹堂)이다. 증조부는 유열(柳悅)이고, 할아버지는 유자문(柳子文)이다. 아버지는 유한평(柳漢平)이며, 어머니는 홍귀해(洪貴海)의 딸이다. 원래 진주유씨의 세거지는 경기도 고양 지역이었는데, 유진동의 증손 유충걸(柳忠傑)[1588~1665]이 광해군 폐모 사건 등의 어수선한 정국을 피해 외향인 공주에 이거하면서 공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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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진주유씨 공주 입향조.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통제사 유형(柳珩)이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진주유씨의 입향조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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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 세거하던 훈신,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성백(誠伯)이다. 아버지는 수군통제사 유형(柳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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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 충민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윤각의 부조묘와 신위. 충민공 윤각(尹慤)[1665~1724]의 본관은 함안(咸安)이고, 자는 여성(汝誠), 호는 창동(蒼東)이다. 아버지는 진사 윤익상(尹翊商)이다. 숙종 연간 무관으로 백두산 정계비 건립에 큰 공을 세웠다. 충민사에 있는 윤각 부조묘 신위(尹慤不祧廟神位)는 2022년 10월 17일 공주시 향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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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망(汝望)이고, 호는 석호(石湖)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선교랑 이전(李瑑)의 딸 평창이씨는 1607년(선조 40)에 윤문거에게 시집왔다. 자식은 아들 셋에 딸 다섯을 두었다. 아들은 송시열(宋時烈)의 사위가 된 장남 윤박(尹搏)과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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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아버지는 윤수(尹脩)이며,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숙부 윤건(尹建)에게 양자로 입계하였다. 부인은 동래정씨(東萊鄭氏)로 공주목사(公州牧使)를 역임한 정유순(鄭惟醇)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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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백분(伯奮), 호는 용서(龍西)이다. 아버지는 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을 역임한 윤전(尹烇)이며, 어머니는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僉知) 윤환(尹晥)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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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윤원거의 묘비. 공주시 계룡면소재지 방면으로 국도23호선을 따라 약 16㎞를 가다 보면 유평리 계룡초등학교가 나온다. 계룡초등학교를 지나 논산 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50m를 가면 영규대사 묘 입구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 300m 들어가면 유평리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윤원거 묘는 파평윤씨 묘소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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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초명은 윤찬(尹燦), 자는 정숙(靜叔), 호는 후촌(後村)이다. 병사(兵使) 윤선지(尹先智)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돈(尹暾)이며,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윤창세(尹昌世)이며, 어머니는 청주경씨(淸州慶氏)로 부제학 경혼(慶渾)의 딸이다. 아우는 문정공(文正公) 윤황(尹煌)이다. 부인은 해평윤씨(海平尹氏)로 첨지(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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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이고,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峰)이다. 할아버지는 윤황(尹煌)이고,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다.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로 이장백(李長白)의 딸이고, 부인은 안동권씨로 권시(權諰)의 딸이다. 아버지 윤선거가 성혼(成渾)의 외손이므로 가학(家學)이 성리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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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윤증의 묘. 명재 윤증은 성혼(成渾)의 외증손이자 윤선거(尹宣擧)의 아들로, 17세기 조선조의 격동기를 살다 간 성리학자, 예학자이다. 호서 산림을 대표한 부친과 함께 김집(金集)을 사사(師事)하고, 윤선거의 친구인 유계(俞棨)와 송시열(宋時烈)을 스승으로 섬겼으며, 권시(權諰)의 사위가 되었다. 윤증은 주자학적 종본주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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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서(子恕)이고, 호는 농은(農隱)이다. 할아버지는 윤황(尹煌)이고,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다.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로 이장백(李長白)의 딸이다. 형은 윤증(尹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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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율정리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시대 포곡식 토축 산성. 율정리 산성은 성벽의 흔적이 뚜렷한 편이지만 정확한 축조 시기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산성을 축조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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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공주 지역에서 일반 백성과 승려들로 구성되어 활동한 민간 군사 조직체. 임진왜란 때 공주 지역에서는 영규대사(靈圭大師)[?~1592]를 중심으로 500명의 승병이 궐기하였다. 영규대사는 밀양박씨로 호는 기허(騎虛)이며,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제자이다. 계룡산 갑사(甲寺) 청련암(靑蓮庵)의 승려로 계룡면 월암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무예 익히기를 즐겼다. 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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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곡리에 있는 거석 기념물. 이곡리 선돌은 공주시에서 남서 방향으로 10.8㎞ 정도 떨어져 있는 이곡리에 위치한다. 이인면소재지에서 공주-부여 간 국도 40호선을 따라 약 1㎞ 남짓 지나면 오른쪽으로 이곡리로 들어가는 소로가 나 있다. 이 길은 이인에서 금강으로 넘어가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다. 이 소로를 따라 2㎞ 정도 더 들어가면 도로 옆 언덕에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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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옥여(玉汝)이고, 호는 묵재(默齋)이며,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기(李夔)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이정화(李廷華)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청송부사 권용(權鎔)의 딸이다. 부인 인동장씨는 장민(張旻)의 딸로, 장민은 이괄의 난을 진압하여 일등공신에 오른 장만(張晩)[156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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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개국공신. 본관은 전의(全義). 초명은 이치(李齒)이다. 충청남도 전의현(全義縣)[현 충청남도 연기군 전의면·전동면 일대에 있던 옛고을 이름] 출신으로 이후 전의이씨(全義李氏)의 시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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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 공주(公州). 아버지는 이엽(李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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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 공주 출신의 지사.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경장(敬章)이고, 호는 송은(松隱)이다. 할아버지는 첨의정승 이사손이고, 아버지는 전공판서 충청공 이엽(李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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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옹(中雍), 호는 한재(寒齋). 조선의 개국공신 이백유(李伯由)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증호조참의(贈戶曹參議) 이윤생(李閏生)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아들은 명종 때 청백리에 녹선된 이세장(李世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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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이목과 아들인 이세장과 관련된 유적. 이목(李穆)[1471~1498]은 반포면 충현서원에도 제향된 인물로 조선 전기 호서의 사림 형성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본관은 전주, 자는 중옹(仲雍), 호는 한재(寒齋),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이목 어려서 김종직을 스승으로 섬겨 행실에 힘썼으며 강개하여 높은 절개를 지녔다. 1489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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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년(선조 29) 충청남도 부여 및 홍산 일대에서 이몽학(李夢鶴) 등이 일으킨 난. 임진왜란은 당시 국가의 권위를 상당히 실추시켰고, 백성들의 생활을 점차 피폐하게 만들었다. 계속되는 흉년과 전쟁은 불안한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당시 곡식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벼슬을 나누어주던 모속관 이몽학 등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불안해하는 민심을 쉽게 결속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서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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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금강[충청남도 공주] 출신으로 일본 도조(陶祖)가 된 도공. 공주 금강(錦江)에 살던 이삼평은 도공으로 활동하였다. 이삼평의 출신지를 공주로 비정한 데에는 공주에 소재한 학봉리 분청사기 가마가 큰 영향을 미쳤다. 학봉리의 가마에 대해서는 15세기 기록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공주목조에 등장한다. “자기소가 2개 있다. 공주 북쪽 군지촌(軍知村)과 동쪽의 동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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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의 개국공신 이백유(李伯由)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증(贈)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윤생(李閏生)이며, 아버지는 영안도병마평사(永安道兵馬評事)를 역임한 이목(李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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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현충(玄忠), 호는 사우당(四友堂)이다. 아버지는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이다. 영의정을 지낸 연양부원군 이시백(李時白), 서봉(西峯) 이시방(李時昉)과 형제지간이다. 호조판서로 증직된 숙부 이자(李資)가 양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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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명(季溟), 호는 서봉(西峯)이다. 아버지는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이다. 영의정을 지낸 연양부원군 이시백(李時白), 사우당(四友堂) 이시담(李時聃)과 형제지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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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지(泰之), 호는 초려(草廬)이다. 1607년(선조 40)에 충청남도 금산군 노동리에서 다섯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학(幼學) 이서(李曙)이다. 어머니는 청풍김씨(淸風金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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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서 확인된 원삼국시대의 무덤. 이인리 널무덤은 이인면소재지에 위치한 이인중학교의 동쪽 전방부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남서쪽의 산에서 북동향하여 흘러내린 능선의 남동사면 하단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표고상으로 55m의 위치에 있으며, 지형적으로 구릉의 선상부에 해당하나 비교적 저평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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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있는 조선시대 비석군. 공주시 이인면 면사무소 앞에 충청도관찰사 선정비 3기와 찰방 선정비 5기의 비석군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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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용성리 성항산(城項山) 정상부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성. 공주시내에서 부여로 통하는 국도를 타고 약 9㎞쯤 가면 이인면소재지에 닿기 전에 용성리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2㎞쯤 나아가면 용성리 성항산에 닿게 된다. 이인산성은 성항산 정상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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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있던 역원이다. 고려 때부터 1894년 갑오개혁으로 역원제가 폐지될 때까지 있었다. 1535년(중종 30)부터 찰방(察訪)이 주둔하여 산하의 9개 역을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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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경(順卿), 호는 석탄(石灘)·고산(孤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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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탄금(彈琴), 호는 사포(沙浦)이다. 성호 이익(李瀷)과 『택리지(擇里志)』를 저술한 이중환(李重煥)을 배출한 여주이씨 집안의 종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상홍(李尙弘)이다. 이상홍은 이산해(李山海)[1539~1609]의 사위이다. 이지천은 1598년(선조 31) 형인 풍곡(楓谷) 이지화(李知和)[157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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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에 묘소가 있는 조선 인조의 다섯째 아들. 이징(李澂)[1639~1690]이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묻힌 까닭은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를 따라 공주로 피난 와서 신분을 감추고 오룡골에 사냥을 나가 만난 처녀와의 인연으로 죽어서 처녀가 살고 있는 오룡골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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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정숙(靜叔), 호는 눌재(訥齋)이다. 아버지는 이덕사(李德泗)이고, 우암 송시열이 매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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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에 논밭을 소유하고 직접 농사를 지은 왕족.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조선 제2대 왕 정종이다. 어머니는 정종의 후궁인 성빈 지씨이다. 정종의 열 번째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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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4년(인조 2) 2월 이괄의 난으로 한양이 함락됨에 인조가 공주에 잠시 피난한 일. 선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광해군은 국방의 강화와 중립적 외교 정책 등 민생과 대외 정치에 있어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대내 정치에 있어서는 대북파의 권력 독점을 허용함으로써 다른 정치 세력들을 소외시켰고, 무엇보다도 인목대비를 폐비시킴으로써 효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는 조선 사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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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역참은 중앙 관아의 공문을 지방 관아에 전달하며 외국 사신의 왕래, 공무 여행자에게 말을 제공하고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주요 도로에 대개 30리마다 두었다. 여러 개의 역을 하나로 편성하여 찰방(察訪) 또는 역승(驛丞)이 이를 관장하는 동시에 교통로 상의 지위를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보고하기도 하였다. 기록에 나타나는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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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 낙향하여 살던 충신.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1342년(충혜왕 복위3)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임숙(林淑), 어머니는 유씨(劉氏)이다. 부인은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 최유(崔濡)의 딸로 네 명의 아들을 두었다. 맏이는 임모(林摹)로 수사(水使), 둘째는 임목(林穆)으로 양양도호부사(襄陽都護府使), 셋째는 임서(林叙)로 충의교위좌군사직(忠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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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에 있는 백제 동성왕 때 누각. 임류각(臨流閣)은 백제 동성왕[?~501] 22년인 500년 봄에 축조된 누각으로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즐기던 장소였다. 높이가 16.5m에 달하며, 주변에 못을 파고 진기한 새를 길렀다. 같은 해 5월 동성왕은 좌우의 측근들과 밤새도록 연회를 즐겼다고 전하기도 한다. 1980년 공산성을 발굴하면서 임류각 터를 알게 되었고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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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은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에 조선은 관군과 각처에서 모집된 의병 등이 총력전을 펼쳤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명(明)이 개입하여 조선과 연합군을 형성, 일본에 대항하는 한편, 일본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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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이자 문신. 19세기 한말 대표적인 성리학자로서 충청남도 연기·공주 일대에서 크게 활약한 임헌회(任憲晦)[1811~1876]는 많은 관직들을 사양하고 성리학 특히 주기론(主氣論)을 주장한 인물이다.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의 문인이며, 자신의 문하에 간재(艮齋) 전우(田愚)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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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장원리 강성기미에서 확인된 원삼국시대의 무덤. 장원리 유적은 공주에서 북쪽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0㎞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유적은 표고 71.2m의 야산 정상부와 동쪽 경사면을 포함한 지역에 넓게 분포하며, 특히 원삼국시대 무덤은 야산의 북쪽 경사면 일부를 제외한 전체 조사 범위에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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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전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전평리 고인돌군은 전평리 석송초등학교 북서쪽에 있는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밤나무 단지로 개간되어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는 나지막한 구릉지대이다. 동쪽 전방에 정안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으며, 주변에는 넓은 충적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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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화은2리 점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점골 고분군은 점골마을의 북서쪽에 있는 해발 300m의 무명산 남사면 중하단부에 위치한다. 고분군이 위치한 능선은 2개의 구릉으로 나뉘어 있으며, 양쪽 구릉의 해발 80~100m 내외 지점에 고분과 관련 석재들이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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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장기(長鬐). 할아버지는 도암(陶庵) 이재(李縡)[1680~1746]의 제자 정래교(鄭來僑)이다. 아버지는 종제 정래숭(鄭來崇)의 장남 정광흠(鄭光欽)으로, 후사가 없는 집안에 양자로 입적되었다. 어머니는 풍양조씨 조벽(趙壁)의 딸로 풍녕군(豊寧君) 조응록(趙應祿)의 6대손이다. 부인은 청송심씨 심태진(沈泰鎭)의 딸로 부원군 심온(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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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충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진주. 호는 애일당(愛日堂). 판중추부사 문정공 정이오(鄭以吾)[1347~1430]의 아들이다. 그러나 정분에게 자손이 없어 종가에 봉사손(奉祀孫)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홍주목사 정효안(鄭孝安)이 자신의 장자인 정지산(鄭之産)을 그 종숙(從叔)인 정분의 계자(系子)로 입양시켜 대를 잇게 했다. 진주정씨가 이곳 호계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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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언평(彦平), 호는 포신(逋臣) 또는 포옹(逋翁)이다. 생부는 홍주목사 정효안(鄭孝安)이며, 어머니는 진주유씨이다. 우의정을 지낸 종숙(從叔) 정분이 후사 없이 죽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정효안이 자신의 장남인 정지산을 정분의 계자로 입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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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공주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국좌(國佐), 호는 무동(茂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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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6년(우왕 2) 7월 공주목 정현에서 공주목사 김사혁의 부대가 왜구 침입에 대항하여 벌인 전투. 14세기 말은 원의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고려가 벗어나는 시기이지만 또한,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과 함께 전국적인 왜구의 침입이 심각한 현안으로 대두되는 시기였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은 충청도의 경우만 53건이 기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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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의 서문 입구에 모아 둔 공적비 중의 하나. 제민천 영세비는 공산성 서문 입구에 있는 43개의 비석들 가운데 하나이다. 제민천 영세비는 공주의 제민천과 제민천에 놓였던 교량의 중수에 대한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별하기 때문에 그 역사적인 의의를 지닌다. 제민천은 금학동의 남쪽 지막골에서 발원하여 공주시내를 관통하여 북으로 흘러 정지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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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평양(平壤). 아호는 윤(胤), 자는 거경(巨卿)·종견(從犬), 호는 송산(松山)이다. 할아버지는 시중(侍中) 조인규(趙仁規)이며,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조덕유(趙德裕)이다. 어머니는 오의(吳懿)의 딸이다.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조준(趙浚)의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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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역사. 조선시대에 공주는 지방 행정의 중심지인 감영의 소재지이자 관찰사가 위치하는 행정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충청도는 고려 말 1356년(공민왕 5) 양광도를 개칭한 것으로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행정구역의 조정이 이루어져 태종 때에 대체로 그 윤곽이 정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주는 충청도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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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사극(士克), 호는 퇴수재(退修齋)이다. 아버지는 감역(監役)을 지낸 조시채(趙始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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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공주목제독을 지낸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도원(陶原)·후율(後栗)이다. 아버지는 조응지(趙應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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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오미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중장리 고분군은 계룡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약 2.5㎞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고분군이 위치한 곳은 수정봉에서 서쪽으로 흘러내린 산맥의 서사면 말단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해발 95.2m 내외의 나지막한 산봉의 서남사면 중하단부 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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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성재산 정상부에 있는 백제 시대의 석성. 공주시내에서 논산으로 통하는 국도변에 있는 만큼 공주 남쪽에서 공주시내로 진입하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한 산성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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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지방관의 예헌(禮獻)으로 임금에게 올리던 토산물. 진상이란 임금에 대한 지방관의 예헌으로 관할 구역에서 생산되는 토산물을 상납하는 제도이고, 공물(貢物)은 국가의 재정 수요에 충당하기 위해 지방의 토산물을 세금으로 바치는 것이다. 토산물을 상납한다는 점에서는 진상물과 공물이 같은 성격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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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신석기시대를 이어 나타나는 청동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청동기시대는 일반적으로 인류의 물질 문화 발전 단계 중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때부터 철기를 만들어 쓰기 직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청동기시대는 본격적인 농경사회의 시작, 무문 토기의 등장, 마제 석기의 본격적 사용, 사회 복합도의 증가로 정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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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백제 25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청동 거울. 거울의 지름은 17.8㎝로 중앙의 꼭지를 중심으로 사각의 구획이 있고, 그 주위에 네 마리의 동물과 이 동물들을 사냥하는 사람을 표현하였다. 사냥하는 사람은 신선을 표현한 듯 보이는데, 머리에는 상투를 틀고 반나체에 삼각 하의만 입은 모습이며 손에는 창을 들고 있다. 신선과 짐승을 표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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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의 통일신라시대 지방행정구역. 통일신라시대 경덕왕은 신라 중대에 귀족 세력의 부상으로 전제 왕권이 흔들리던 시기에 왕위에 올라 전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정치 개혁을 시도하여 신라 문화의 절정기를 이끈 인물이다. 이 시기 왕권 강화책의 하나로 전국의 지명에 대한 대대적인 개명 작업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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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시행되었던 향촌 자치 규약. 초려 이유태[1607~1684]가 향촌민의 통제를 위해 향약을 조직하고, 그 규약을 기술하였다. 규약은 오가통(五家統), 향촌 경제의 안정을 위한 사창법(社倉法), 관학 교육으로서 학교 제도 등을 동시에 포괄하는 종합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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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초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공주에서 부여 방향으로 약 12㎞ 정도의 거리에 이인면소재지가 있다. 초봉리 고인돌은 이인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1㎞ 정도 거리에 위치한다. 이곳은 공주와 부여를 연결하는 국도 40호선 변에 해당한다. 유적의 동쪽 전방으로는 용성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그 주변에는 넓은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서쪽에는 산림 지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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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부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관찰사가 파견되어 직무를 보던 관아.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공주 지역은 지방 행정의 중심지인 감영의 소재지이자 관찰사가 위치하는 행정의 중심지로 부상한다. 조선시대에는 고을의 등급에 따라 중앙으로부터 부윤(종2품), 군수(종4품), 현령(종5품), 현감(종6품) 등의 수령이 파견되었다. 공주 지역에는 충주·청주·홍주와 함께 정3품의 목사가 파견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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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된 충청도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관청. 충청감영은 공주 지역의 유리한 지리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1603년(선조 36)에 공주 지역에 설치되어, 1932년 대전 지역으로 충청남도 도청이 이전될 때까지 있었다. 현존하는 많은 조선 후기의 문서들은 조선시대 충청감영으로의 공주 지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유적에 대한 훼손 탓에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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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중동 충청남도 역사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주희의 초상. 주희(朱熹)[1130~1200]는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로 성인의 반열에 올라 주자(朱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살아생전 초상화를 여러 차례 그리도록 했으며, 죽은 후에는 후학들이 그의 초상을 보고 그의 업적을 찬미하였다. 인쇄술의 발달과 더불어 명나라 대부터는 『주자대전(朱子大全)』이나 『성현도(聖賢圖)』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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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취리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취리산 고분군은 공주시내에서 북쪽 방향에 있는 금강의 북안에 위치한다. 공주생명과학고등학교의 북쪽에 있는 해발 52.4m의 취리산 남사면에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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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있는 백제 웅진도독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의 회맹을 위해 취리산 정상부에 쌓은 제단의 터. 당 고종은 웅진도독부 체제로 운영되는 백제가 영토를 유지하며 신라와 평화롭게 지내도록 하기 위해 665년 8월 유인원의 주재로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이 화친의 맹약을 맺도록 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664년, 665년 2회에 걸친 회맹 기록이 발견되는데 이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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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5년 8월 취리산에서 웅진도독 부여융과 신라 문무왕 사이에 맺은 화친의 맹약.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점령당한 뒤 의자왕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간 부여융(扶餘隆)은 백제 태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되찾고 백제를 재건하기 위해 당나라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백제 지역에 친당정권(親唐政權)을 심어놓으려던 당나라는 664년 10월 유인궤(劉仁軌)의 추천이 있은 이후에 부여융을 웅진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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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태봉동과 검상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중기의 주거지. 태봉동 선사 유적은 공주시의 남서쪽에 있는 태봉동과 검상동 경계에 위치한다. 유적의 동쪽 전방에는 남에서 북으로 흘러 금강에 유입되는 검상천이 있어 주변에 넓은 경작지가 형성되어 있다. 유적이 유치한 곳은 표고 57m 내외의 나지막한 저산성 구릉지대로 남서쪽으로는 표고 140m 내외의 산 능선이 길게 형성되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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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출토된 흙을 빚어 불에 구워 만든 용기. 토기는 보통 500~1,000℃ 이하에서 구워 만든 용기이다.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하고, 유약을 바른 것은 자기(磁器)라 한다.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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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마암리 금강 변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세운 공주판관 조병로의 불망비. 조병로(趙秉老)[1816~1886]의 본관은 양주(楊州)이고, 자는 유원(孺元)이다. 아버지는 임파현령을 지낸 조이순(趙頤順)이다. 1849년(헌종 15) 음관으로 처음 출사한 뒤 동몽교관, 보성군수, 합천군수를 거쳐 공주판관에 제수되었다. 이후에도 충주목사, 상주목사 등의 외관직과 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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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포저(浦渚) 조익(趙翼)의 『포저유서(浦渚遺書)』 책판과 송곡(松谷) 조복양(趙復陽)의 문집인 『송곡문집(谷文集)』의 책판. 『포저유서』 책판의 형태는 전체 길이 52㎝이고, 전곽 길이 22.7×337㎝이며, 마구리 길이 25.9㎝이고, 판 두께 3.4㎝이다. 판의 형태는 10행 19자, 상하 내향 4엽 화문어미, 유계(有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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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공주시 옛 감영 터에 있는 조선 후기 관아의 정문. 포정사 문루는 원래 충청감영의 옛터인 국립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옆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이후 옛 공주군청 부근으로 이건되었다가 현재는 충청남도역사박물관[구 국립공주박물관] 인근에 복원되어 선화당, 동헌 건물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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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한산소 한산(韓山)에 있는 시대 미상의 토축 산성. 한산(韓山)은 해발 121m의 나지막한 야산으로, 한산을 속칭 ‘성뫼’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산성이 오래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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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노첨(魯瞻), 호는 시와(是窩)이다. 아버지는 장령 한진(韓縝)이다. 청주한씨의 공주 입향조(入鄕祖)이자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한지(韓祉)[1675~?]가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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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 사족들의 명부. 공주향교에 보관된 『향안』은 불에 탄 것을 배접하여 장첩(粧帖)한 것이다. 책의 크기는 46.5×32㎝이고, 반곽은 32.6×21㎝, 주사란(朱絲欄), 유계(有界), 7행, 철장 저지로 되어 있다. 표지의 제첨은 ‘향안(鄕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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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 입구에 있는 거석 기념물.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는 계룡면 16구(區)의 하나였다. 마을 입구 둥구나무와 논 건너 또 다른 둥그나무에 각각 돌장승, 즉 선돌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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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부안임씨 임완수의 처 안동김씨의 열녀비. 조선은 유학을 정치·제도의 기본 이념으로 채택하며 유교 윤리의 확립을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을 기울였다. 건국 초기부터 충효가 두드러진 인물을 매년 예조에 보고해 정려(旌閭), 복호(復戶), 상직(賞職) 등을 한 것은 도덕 규범을 확립해 사회를 교화시키고자 함이었다. 절부(節婦)도 논상 대상에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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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이자 한의. 『하양허씨세보(河陽許氏世譜)』에 의하면 허임은 하양허씨 문경공파 21세손으로 허락(許珞)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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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호계리 고인돌은 사곡면소재지 서북쪽에 있는 호계리 1구 만수동 입구에 위치한다. 현재 고인돌의 남쪽 전방으로는 만수들이라는 넓은 평야지대가 있고, 금강에 유입되는 유구천이 북에서 남동 방향으로 감싸 안듯이 흐르고 있으며, 북쪽은 산림지대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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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고려 초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호족. 견훤과 궁예가 대결하는 후삼국기, 공주는 양대 세력이 마주하는 접점에 위치하여 있었다. 이 때문에 공주는 때로는 남쪽의 견훤에, 때로는 북쪽의 궁예나 왕건의 세력권에 들었다. 이때 공주의 실제적 지배자는 ‘공주장군’으로 지칭된 홍기(弘奇)였다. 처음에는 견훤에 가까웠으나 중부 지역에서 궁예가 흥기하여 경상도 상주 등지까지 세력을 확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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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정자. 공주에서 예산 방면으로 국도 32호선을 따라 약 17㎞ 정도 달리면 사곡면사무소에 도착한다. 여기에서 북쪽으로 300m 정도 더 가면 예산과 마곡사로 통하는 사곡면 길목에 화암정(花巖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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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화정리에 있는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생활 유적. 화정리 유적은 공주시 중심에서 남서쪽으로 약 20㎞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유적은 화정리 윗가절마을과 아랫가절마을 사이의 잔구성 구릉지에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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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6년(고종 23) 12월 공주 효가동에서 있었던 고려의 야별초와 몽고군과의 전투. 몽고의 고려 침입은 1231년(고종 18)부터 1259년(고종 46)까지 총 6차(학자들에 따라서는 7차, 9차, 11차로 구분하기도 함)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 사이 호남 지역으로까지 침략군이 남하한 경우는 1236년, 1247년, 1256년, 1257년 등 도합 4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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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년에서 936년까지 존속했던 견훤이 세운 나라. 9세기 말 이후 신라 사회는 심한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리면서 경주 정부의 통제력은 상실되었다. 호남 지역에서 견훤(甄萱)은 전주를 도읍으로 정하고 백제의 부흥을 공언하며, 900년에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이어 철원의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웠다. 견훤과 궁예가 대결하는 후삼국시대, 공주는 양대 세력이 마주하는 접점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