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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리 토광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572
한자 長院里土壙墓
영어의미역 Earthen Tomb in Jangwon-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장원리 440-4
시대 고대/초기 국가 시대
집필자 이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양식 주구토광묘
건립시기/연도 원삼국시대
소유자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장원리 440-4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장원리 강성기미에서 확인된 원삼국시대의 무덤.

[위치]

장원리 유적은 공주에서 북쪽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0㎞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유적은 표고 71.2m의 야산 정상부와 동쪽 경사면을 포함한 지역에 넓게 분포하며, 특히 원삼국시대 무덤은 야산의 북쪽 경사면 일부를 제외한 전체 조사 범위에서 확인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장원리 유적은 1995년 정안~행정 간 국도 23호선 도로 확·포장공사 부지에 대한 문화재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당시 무문 토기편이 수습되어 무문 토기 산포지로 보고되었으나, 1999년 발굴 조사를 통해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와 원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는 202기 등의 다양한 생활 유적과 매장 유적이 확인되었다. 구체적인 유적 내용은 신석기시대의 퇴적층과 청동기시대의 집자리 및 저장 구덩이, 원삼국시대의 주구토광묘와 토광묘, 옹관묘, 조선시대 건물지와 민묘 등이 있다.

신석기시대의 문화층은 이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유물 퇴적층에서 빗살무늬 토기편과 돌괭이·갈돌·숫돌 등의 석기류가 노출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유구로는 원형과 방형의 주거지와 저장구덩이가 조사되었다. 특히, 송국리형 원형 주거지에서 원형 점토대토기·두형 토기편·파수편 등이 출토되어 주목된다. 원삼국시대 유구는 모두 매장 유적으로 조사 지역 최상단에서부터 하단부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된 상태로 확인되었다. 조선시대 유구는 하단부의 건물지를 제외하면 토광묘가 주를 이룬다.

[형태]

원삼국시대의 토광묘는 대부분 주구가 돌려진 주구토광묘이다. 주구의 일부가 유실되어 활 모양으로 남아 있는 것이 많으나, 정상부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 것은 말각방형의 모습이며, 주구에 대칭되는 모서리 두 곳이 개방부로 남아 있다. 주구는 넓고 깊은 편이다.

주구묘의 묘광은 장단비가 3:1 이상으로 세장한 편이며, 평면 형태는 말각장방형이 대부분이다. 묘광의 깊이는 50㎝ 미만으로 얕은 편이며, 특히 1호분은 주구의 깊이보다 묘광의 깊이가 오히려 얕다.

매장 주체부는 크게 목관과 목곽으로 구분된다. 목관은 판재를 결구한 조립식으로 파악되며, 목관 내부에는 대부분 오른쪽 또는 왼쪽 단벽에 격벽으로 부장칸을 구분해 설치하였다. 목곽이 확인된 분묘는 1호묘 1기뿐이다. 이 목곽 역시 조립식으로 결구된 것으로 보이며, 목곽 중앙부에 목관을 안치한 후 양쪽 단벽쪽은 부장 공간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구가 설치되지 않은 토광묘는 2기가 상하로 분포하여 이혈 합장묘일 가능성이 있는 것과 주구토광묘의 주구에 일부 중복된 것도 있다. 대체로 주구토광묘보다 묘광이 작고, 1기를 제외하고 모두 목관의 흔적이 확인된다. 옹관묘 가운데 6기는 주구토광묘의 주구에 조성된 것도 있다. 이 옹관은 주구토광묘에 배장된 것일 가능성도 있다.

조사된 토광묘는 모두 일정한 묘역을 가지고 상호간에 중복 없이 조성되었다. 능선 상부의 방형 주구를 갖춘 2기의 무덤을 중심으로 그 주위 사면에 ‘ㄷ’자형 도랑을 두른 주구토광묘와 토광묘가 등고선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모습은 친족 관계 혹은 위계 등에 의한 일정한 원칙을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한다.

[출토유물]

출토유물은 모두 매장 유적에 부장된 것으로 토기류와 철기류로 구분된다. 토기류는 원저단경호와 심발형 토기를 조합하여 부장했으며, 극히 드문 예로 2호에서 대부 토기와 16호에서 양이부호가 출토되기도 하였다. 철기류는 환두소도·도자·철모·철촉·철착 등이 있다.

[현황]

현재 장원리 유적지는 보고서를 통해 기록이 보존되어 있으며, 도로 개설로 인해 개발이 이루어진 상태다.

[의의와 평가]

장원리 주구토광묘는 3세기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인근의 공주 하봉리 유적·천안 청당동 유적·청원 오창 유적 등과 비교 검토가 가능하다. 이러한 비교 연구를 기초로 주구묘의 계통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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