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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산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624
한자 陽化山城
영어의미역 Yanghwasanseong Fortress
이칭/별칭 양화산성(良化山城)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서정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성곽
양식 석성
건립시기/연도 백제
높이 4m
둘레 484m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 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 성재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축 산성.

[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양화산성(良化山城)은 공주 남쪽 40리 지점에 있는데,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1,050척이고, 그 안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양화산성은 석성이었고, 성내에 우물이 한 곳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건립경위]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으로 볼 때 고려시대 이전에 축성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성내에서 출토되고 있는 백제 유물로 보아 백제시대에 왕도를 방비할 목적으로 축조한 것이 아닌가 한다.

[위치]

공주에서 논산으로 통하는 국도 23호선을 타고 15㎞쯤 가다 보면 계룡면 화헌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계룡산이 있는 동쪽으로 1.5㎞쯤 더 들어가면 경천리의 양화저수지에 닿게 되는데, 이 양화저수지의 남쪽에 솟아 있는 산이 성재산이다. 양화산성은 바로 이 성재산의 정상부에 있다.

[형태]

양화산성은 성재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테뫼식으로 축조되어 있다. 다만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아 전체적인 성내 지형은 북고남저(北高南低)형을 이룬다. 성내의 지형을 고려해 볼 때 북쪽으로 약 6㎞ 정도 떨어진 중장리 산성과 더불어 공주 쪽으로 북상하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현황]

양화산성은 동벽과 남벽의 일부가 협축식 형태를 하고 있다. 남벽은 석성벽이 붕괴된 것이 분명하지만 동벽은 토루의 형태로 되어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양화산성을 토석 혼축성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성벽의 면석은 모두 유실되고 뒤채움석만 남아 있으며, 성내의 건물 터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어 훼손이 심하다. 두 개의 우물 중 성내 정상부에 있는 우물 터는 반쯤 메워진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성내에서 발견되는 유물로만 본다면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이 확실하며, 백제 웅진시대 왕도 방비 체제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다만 발굴 조사를 거쳐 축조 시기가 좀더 분명해져야만 양화산성의 역사적 의미가 제대로 밝혀질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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