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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528
한자 圓山亭
영어의미역 Wonsanjeong Pavilion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유하리 산13-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춘진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자
건립시기/일시 조선 중기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유하리 산13-3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공주시 유형문화유산
문화재 지정일 1997년 6월 5일연표보기
문화재 지정일 2024년 5월 17일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유하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정자.

[변천]

원산정은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에 활동한 인물인 박의립[1556~1616]에 의해 창건되었고, 의 아들 5형제가 살았던 곳이다. 따라서 원산정의 건립 연대는 박의립의 생몰년을 감안하면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건립 후 사적은 정확하지 않다. 건립 이후 언제, 어떤 이유로 정자가 없어졌는지 전해지지 않으며, 공주 관련 읍지나 지리지에도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1971년 봄에 본손 박기운(朴基雲)과 박구식(朴九植)이 발의하여 공사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중건하였다.

[형태]

원산정 내부에는 1973년 이규헌(李揆憲)이 지은 「원산정중건기」, 1973년 황한(黃澣)이 지은 「원산정중수기」, 그리고 이규헌, 황한, 박영준(朴永俊), 이원경(李源慶), 박길래(朴吉來) 등의 시를 모은 ‘원산정낙성운(圓山亭落成韻)’이 걸려 있다. 추사 김정희가 쓴 공산무인 수류화개(空山無人 水流花開)라는 현판도 걸려 있다. 이규헌은 1896년(고종 33) 출생으로, 원산정 중건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의 기록은 중건 과정과 배경을 상세히 전한다. 황한은 문인으로서 중건에 참여해 「원산정중수기」를 작성했으며, 다른 인물들과 함께 낙성 시를 남겨 원산정의 의미를 기렸다. 이들의 기록은 원산정이 단순한 정자가 아니라 지역 문화와 인물들의 역사를 담고 있음을 보여 준다.

[현황]

지금의 원산정은 박의립의 후손들이 중수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원산정은 1997년 6월 5일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4년 5월 17일 조례에 따라 공주시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원산정은 박의립이 학문을 닦았던 정자로,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호서 지역 사림의 학문적 중심지로 기능했다. 사계 김장생을 비롯하여 추포 황신, 명재 윤증, 지소 황일호, 추사 김정희 등 당대의 대표적 유학자들이 방문하며 학문적 교류를 이어 갔고, 관찰사와 고을 수령들 역시 이곳을 찾아 원산정의 학문적 위상을 높였다. 1973년 중건 과정에서 남긴 기록과 시는 원산정의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의의를 더욱 부각시키며, 학문적 전통과 지역사회의 문화적 유산을 후대에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상의 여러 요소들로 인해 지금까지도 원산정금강 일대에 유명한 정자인 이른바 ‘금강 팔정’의 하나로 손꼽히기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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