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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448
한자 舊石器時代
영어의미역 Paleolithic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이남석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뗀석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개설]

구석기시대는 지구상에 등장한 인류가 유인원과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리·진화를 거듭하면서 도구를 제작하여 사용했던 약 400만년 전 내지 250만년 전부터 약 12,000년 전까지다. 이 기간은 인류 역사의 99.5%를 차지하는 아주 장구한 시간이며, 지질학상 제4기 갱신세(Pleistocene)에 속한다. 구석기인들은 뗀석기와 뼈·나무 연모 등을 만들어 사냥이나 식량을 채집하면서 살림을 꾸리고, 강가나 언덕 등에 막집을 짓거나 동굴·바위그늘을 집터로 삼으면서 무리를 지어 옮겨 다니며 생활하였다.

구석기시대는 자연 환경의 변화와 뗀석기의 발달 정도 등에 의해 몇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대체로 전기(400만~12만 5천년 전), 중기(12만 5천년 전~4만 혹은 3만 5천년 전), 후기(4만 혹은 3만 5천년 전~1만년 전)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구석기시대에서 생활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로는 석기·동물 화석·예술품·주거지 등이 발견된다. 전반적으로 큰 강가에서는 야외 유적이, 석회암 지대에서는 동굴 유적이 발견되고 있기도 하다.

한국의 구석기 문화와 관련된 연구는 1935년 동관진 유적에서 출토된 흑요석제 석괴와 골각기가 구석기 유물로 주장된 이래, 1960년대 들어와서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과 굴포리 유적이 발굴되면서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연천군 전곡리 유적의 발굴로 종합적이고 광범위한 연구 조사 및 분석이 시행되었다.

이후 1983년과 1984년 충주댐 수몰지구에 대한 조사에서 발굴된 명오리 유적·금굴 유적·창내 유적·수양개 유적은 한반도 구석기 문화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주었다. 이 유적들은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 창원 샘골 유적과 더불어 중부 내륙 지방을 관통하는 남한강과 금강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석기 문화권을 설정할 수 있게 하기도 했다.

[유적과 유물]

공주 지역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으로 알려진 곳은 장기면 석장리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과 반포면 공암리 공암굴 동굴 유적이 있다.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은 발굴 조사를 통해 확인된 반면에, 공암굴 동굴 유적은 지표 조사된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은 사적 제334호로 지정되었으며, 공주시에서 북동쪽으로 6㎞ 정도 거리의 금강 북안 하안 단구에 위치한다.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은 선캄브리아에 속하는 지질층으로 운모편암류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역에 따라서는 후기에 형성된 화강암류와 반암류가 분포되어 있다. 특히, 운모편암류는 엽리가 발달되어 있고, 여기에 규암이나 결정질 석회암류가 얇게 끼어 퇴적암 기원의 변성암류로 보기도 한다.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은 1964년부터 1974까지 10차에 걸쳐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이후 1990년과 1992년에 각각 조사가 이루어져 모두 12차례 걸쳐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1964년 이후 10년간의 조사에서 전기·중기·후기 구석기층과 중석기 문화층이 조사되었다.

제1층의 문화층은 구석기시대 전기(민델(Mindel), 빙하기), 제2~6층의 문화층은 구석기 중기에서 후기에 걸친 시기(리스(Riss), 빙하기에서 제3간빙기까지의 시기), 제2층의 문화층은 구석기시대 후기 및 중석기시대로 추정하였다. 출토된 유물인 석기는 제1~4층에 외날도끼(Chopper)와 쌍날도끼(Choppingtool), 제5~6층에 밀개(Scraper)와 주먹도끼 등이 있다. 제7~10층에는 밀개(Scraper)와 1차~10차 조사에서 확인된 그래이버(graver) 등이 있다. 제11층에서 출토된 그래이버와 밀개 등은 유럽의 구석기시대 후기 문화의 하나인 오리냐크(Auriqnac) 문화와 닮았다.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은 중기와 후기까지 밝혀졌으나, 애석하게도 당시에 서식한 동물의 화석은 찾아볼 수 없다. 제6층과 제12층에서 채집한 숯을 분석한 결과, 30,690±3,000 BP, 20,830±1,880 BP의 절대 연대가 나와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후 1990년대에 다시 이루어진 조사 결과, 전기 구석기층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의 집자리를 비롯해 중석기시대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후기 구석기시대 집자리는 지면에 빙열이 형성되기 이전의 점토층에서 2기가 확인되었다. 이로써 집자리는 이미 조사에서 1기가 확인된 바 있어 모두 3기가 알려지게 되었다.

3호 집자리로 구분된 유구는 큰 기둥을 정면에 세우고 잔가지로 울타리 형태의 벽면을 구성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면은 넓지만 뒷면으로 가면서 좁아진 세모꼴의 형태로 복원되었다. 집 앞에는 화덕과 석기를 제작하던 흔적이 확인되었다. 또한 언땅트기 위층에 점토성이 강한 층에서 차돌과 수정을 사용하여 만든 세석기가 많이 수습되어 중석기 문화층으로 추정되었다. 수습된 석기는 좀돌날몸돌·수정새기개·잔격지 등이 알려져 있다.

[문화 성격]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은 남한에서 처음으로 발굴 조사되고 공주 지역에서 유일하게 발굴 조사된 구석기 유적이다. 이 유적은 1935년에 함경북도 동관진에서 조사된 유적과 더불어 일본에 의해 부정되었던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의 존재를 확고하게 입증시킨 중요한 유적으로 전기·중기·후기 구석기층과 중석기 문화층이 층위를 달리하여 조사되었다.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의 발굴 성과는 구석기시대 연구를 활성화시켰으며, 우리나라에 인류의 출현과 거주가 구석기시대부터 이루어졌음을 말할 수 있는 적극적인 증거 자료가 되었다. 나아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 우리 역사의 시작 시기를 더 오랜 시기로 올려놓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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