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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745
한자 吳道一
영어음역 O Doil
영어의미역 O Doil
이칭/별칭 관지(貫之),서파(西坡)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수연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645년연표보기
몰년 1703년연표보기
본관 해주(海州)
대표관직 병조판서

[정의]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이고, 아버지는 오달천(吳達天)이다. 어머니는 조간(趙幹)의 딸 한양조씨이다. 또한 오도일(吳道一)[1645~1703]의 아들 오수원이 공주의 청주한씨 한태동의 사위가 되었다고 한다.

[활동사항]

오도일(吳道一)은 1645년(인조 23) 한성부 건덕방에서 오달천과 한양조씨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음직인 정5품직 통덕랑 등의 직임을 맡다가 1673년(현종 14) 정시문과 을과에 급제하며 관직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오도일은 1678년(숙종 4) 충청도사(忠淸都事)로 임명되며 공주에서 관직 생활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치며 활동을 하였다. 1680년(숙종 6) 사헌부지평·홍문관부수찬, 1683년(숙종 9) 지제교(知製敎)를 거쳐 1687년(숙종 13)에는 승지가 되었다. 이후에도 오도일은 다양한 관직을 역임했다.

1694년(숙종 20) 개성부유수를 거쳐 주청부사(奏請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사간원대사간·홍문관부제학·강원도관찰사를 지냈으며, 1696년(숙종 22) 승정원도승지·홍문관부제학·사헌부대사헌을 지냈다. 이듬해 예문관제학·사직·이조참판, 1698년(숙종 24) 이조참판·공조참판을 지내고 양양부사로 좌천되었다가 벼슬을 잃었다. 그러나 복직되어 1700년(숙종 26) 대제학·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하고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이처럼 오도일숙종(肅宗) 대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소론의 핵심 인사 중 하나로, 특히 1694년 갑술환국(甲戌換局) 이후 소론이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된 후에는 병조판서 등을 역임하며 정국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702년(숙종 28) 오도일은 민언량(閔彦良)의 옥사에 관련되어 장성으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인 1703년(숙종 29)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하지만 오도일은 사망한 뒤에 숙종(肅宗)에 의해 곧 복관되었다.

[저술 및 작품]

오도일의 저술로는 문집인 『서파집(西坡集)』이 있다. 오도일은 예문관대제학에 제수되는 등 문장에도 뛰어나 명망이 높았다. 실제로 그는 당대에 이른바 동인삼학사(東人三學士) 혹은 팔학사(八學士)의 일원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서파집(西坡集)』은 총 30권 15책의 구성으로 이뤄져 있으며, 1729년(영조 5) 오도일의 아들인 오수엽(吳遂燁)이 간행하였다. 오도일이 지은 시(詩)와 서간(書簡)을 비롯해 각종 글들이 수록되어 그의 문필 활동과 학문 및 사상을 잘 보여 주는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

[상훈과 추모]

울진에 있던 고산서원(孤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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