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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603
한자 公州五龍里龜趺
영어의미역 Tortoise-shaped Pedestal in Oryong-ri, Gongju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 296-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춘진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1월 8일연표보기 - 공주오룡리귀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1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공주오룡리귀부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 삭제
문화재 지정 일시 2024년 5월 17일 - 공주오룡리귀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성격 귀부
건립시기/일시 조선 후기 추정
관련인물 숭선군
재질 단일 석재
높이 103㎝
너비 205㎝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 296-4 지도보기
소유자 이우종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있는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碑石)의 받침돌.

[개설]

조선 16대 왕 인조의 제5남 숭선군(崇善君)[? ~1690] 이징(李徵)의 묘가 1766년(영조 42)에 이인면 오룡리로 이장되어 서북쪽 마을 안 골짜기에 있다. 숭선군은 인조와 귀인 조씨 사이에서 태어나 1646년(인조 24) 숭선군에 봉해졌다. 효종이 즉위한 후 1651년(효종 2) 숭선군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가 벌어져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사망하였다. 왕족의 무덤을 도성과 멀리 떨어진 공주에 조성한 것은 숭선군의 유언 때문이라고 하는데, 공주 오룡동은 숭선군 집안의 사패지였다. 이인면 오룡리는 다섯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얻으려고 서로 다툰다는 ‘오룡쟁주형’의 명당 터로 숭선군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공주오룡리귀부숭선군 묘로 진입하는 도로변에 자리하는데, 숭선군의 신도비를 세우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 전한다. 그러나 비(碑)를 완성하지 못하고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碑石)의 받침돌만이 남아 있다. 비록 비는 세워지지 못했어도 마을에 전해지는 전설로 보아 귀부가 오룡골에 주는 의미는 컸던 것 같다. 공주오룡리귀부는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1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건립경위]

공주오룡리귀부인조의 제5남 숭선군의 신도비를 세우기 위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어떤 사정인지는 알 수 없으나 비는 세우지 못하고 비좌대(碑座臺)인 귀부만이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의 논 가운데에 남겨져 있다.

[위치]

공주시청에서 부여 방면으로 6㎞를 가다가 태봉교차로에서 이인 방면으로 2.6㎞ 더 가면 오룡리로 접어드는 소로가 나온다. 소로를 따라가다 나오는 본오룡 앞 논에 귀부가 있다.

[형태]

공주오룡리귀부는 전체 길이 385㎝, 높이 103㎝, 비좌 길이 54㎝, 너비 205㎝인 거대한 단일석재로 되어 있다. 장방형의 지대석에 조각한 귀부는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거북등무늬는 세선을 사용하여 매우 크게 묘사하였으며, 지대석 위에 하엽형(荷葉形)의 장방형 비좌를 올려놓고 있지만 비좌는 홈이 파여 있지 않다. 귀부의 머리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형태이다. 조선 후기의 귀부 중에서는 수준급에 속하는 작품이다.

[의의와 평가]

공주오룡리귀부가 오룡골에 주는 의미는 크다. 오룡골 입구에는 수구매기로 조성된 버드나무숲이 있었는데, 숭선군 묘에서 바라보면 마을 입구 쪽으로 길게 버드나무가 늘어 서 있어 마을 밖에서는 마을 안이 안 보일 정도로 큰 규모였다.

귀부가 바라보고 있는 마을은 부유한 마을로 성장하며, 자신의 마을은 그러지 못한다는 유래 때문에 그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수구매기 버드나무숲을 조성하였다 한다. 숲이 조성된 후로 오룡리에서는 수호신처럼 더욱 귀부를 소중히 여기게 되었고, 정성어린 제사도 지내 오고 있다. 과거에는 제사를 마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씨름판을 벌이거나 풍악을 즐겼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수구매기 버드나무는 수령이 약 200년 된 버드나무 두 그루뿐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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