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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665
한자 金玉均先生遺墟
영어의미역 Tomb of Gim Okgyun
이칭/별칭 김옥균 출생지,김옥균 생가 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3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제연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12월 6일연표보기 - 김옥균선생유허 충청남도 기념물 제13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 삭제
성격 생가지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조선 말기
지정면적 8,475㎡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38 지도보기
소유자 공주시
관리자 공주시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남도 기념물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 있는 김옥균의 출생지.

[개설]

김옥균선생유허는 조선 말기 개화파의 대표적인 인물인 김옥균[1851~1894]이 태어난 곳이다. 김옥균은 본관이 안동, 자는 백온(白溫), 호는 고균(古筠) 또는 고우(古愚)로 아버지 감역(監役) 김병태(金炳台)와 어머니 은진송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 직후부터 1853년(철종 4) 천안으로 이사하기까지 약 3년 동안 이곳에서 자랐다고 전해진다. 다만 출생 이후부터 여섯 살까지 거주하였다는 설도 있다.

[변천]

현재 감나무골이라 불리는 김옥균선생유허는 부근 일대에 경작지만 있을 뿐, 마을은 형성되어 있지 않다. 터는 없어지고 넓은 밭 가운데 감나무만 서 있다. 전언에 의하면, 김옥균의 생가 이외에 8~9호의 민가가 있었으나 마을이 쇠퇴하여 호수가 점점 감소하였고, 김옥균의 생가 역시 약 90여 년 전에 화재로 전소되었다고 한다.

[위치]

정안면 면소재지인 광정리에서 공주-서울 방면의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약 300m를 가다보면 김옥균선생유허가 위치해 있다. 국도변에서 김옥균선생유허까지는 150m의 거리이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김옥균선생유허는 고택의 복원을 위하여 2004년 충남발전연구원에서 발굴사업을 시행하였다. 1차 조사는 2004년 11월 17일~12월 14일까지, 2차 발굴조사는 2006년 4월 3일~4월 28일까지 진행되었다. 이상의 발굴 조사를 통해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유구로서 적심 시설이 다수 노출됨에 따라 3동(棟) 이상의 건물지와 건물지보다 앞선 시기의 유구들로 초석 시설, 부석 시설, 온돌 시설, 배수로, 우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배치와 주칸 거리 등을 고려할 때 ‘ㄱ’ 자 구조로 배치된 건물지 3동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해당 발굴 조사 범위 내에서는 기와, 분청사기, 백자, 도기, 철기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현황]

김옥균선생유허는 1976년 12월 6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1977년 김옥균 생애비를 화강석 지대에 오석으로 비신을 갖추어 세웠다. 그 자리에 1989년 2월 22일 공주시[구 공주군] 주관으로 대지 8,475㎡에 생가지 터를 다듬었다.

[의의와 평가]

현재 김옥균선생유허 일대는 화재로 전소되어 터에 비석만 세워져 있다. 하지만 김옥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답사지나 관광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어,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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