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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533
한자 公州宋山里古墳群
영어의미역 Tumuli of Songsan-ri, Gongju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산5-1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남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분군
양식 굴식 돌방무덤
건립시기/연도 백제 5~6세기
면적 238,301㎡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산5-1 지도보기
소유자 국유|사유
관리자 공주시
문화재 지정번호 사적 제13호
문화재 지정일 1963년 1월 21일연표보기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위치]

송산리 고분군은 공주시의 서북쪽에 있는 해발 130m의 송산을 북쪽의 주산으로 한 구릉 중턱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이곳은 공주시 중심부에서 서북방으로 약 1㎞ 떨어진 지점인 공주시 금성동웅진동에 연접한 송산소라는 지역이다. 고분군은 송산의 동남쪽 8부 능선상 해발 약 75m 정도에 자리한다.

현재 서쪽으로는 곰나루가 있는 금강이 아늑하게 감싸 돌고 있으며, 동쪽에는 공산성이 위치한다. 고분군은 계곡을 중심으로 지형에 따라 구분되는 분포상을 보이며, 계곡 서쪽의 무령왕릉·5~6호분·29호분, 동북쪽의 1~4호분과 7~9호분으로 구분된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송산리 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일제시대부터 이루어졌다. 1927년 동북쪽에 분포하는 1~5호 굴식 돌방무덤이 조사된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이후 기루베 지온[輕部慈恩]에 의해 1~4호분으로 재명명되었다. 현재의 5호분과 7호분은 1932년 송산리 고분군의 관람로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조사되었으며, 6호분과 29호분은 1933년 경부자은에 의해 조사되었다.

1971년에는 5호분과 6호분의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무령왕릉이 우연히 발견되었다. 무령왕릉은 피장자와 축조 연대를 명확히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양의 중요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고분 문화 연구와 백제사 연구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송산리 고분군은 현재 벽돌무덤인 무령왕릉과 6호분, 돌방무덤인 송산리 1~5호분, 파괴분, 9호분, 29호분으로 분류된 고분을 포함한 다수의 굴식 돌방무덤, 7~8호분으로 구분된 구덩식 돌덧널무덤 등이 알려져 있다.

[형태]

1~5호분은 모두 자연 할석으로 축조한 굴식 돌방무덤으로 널길은 현실의 동쪽 벽에 축조되어 있으며, 벽면은 백회를 발라 미장(美粧)하였다. 천장은 돔 형식의 궁륭상이며, 바닥은 냇자갈을 깔아서 관대로 이용하고 있는데, 5호분만은 벽돌로 관대를 만들었다.

5호분은 남향 사면에 무덤구덩이를 만들고 그 안에 자연 할석으로 현실과 널길을 축조한 굴식 구조이다. 바닥에서 약 130㎝ 정도는 수직으로 쌓았고, 그 위부터는 약 25° 가량 안쪽으로 기울여 할석을 엇물림하며 맞조여 네 벽을 쌓아 궁륭상 천장을 이룬 후 1매의 커다란 판석을 덮었다. 현실 내에는 벽돌로 만든 관대가 남아 있다. 널길은 현실의 정면 동쪽에 편재되어 있으며, 현실의 입구에서부터 90㎝ 간격을 두고 벽돌을 종횡으로 하여 이중으로 쌓아 폐쇄하였다.

무령왕릉과 함께 유일한 벽돌무덤인 6호분의 현실은 남북이 긴 직사각형 평면이며, 바닥에는 동벽쪽으로 치우친 곳에 벽돌로 쌓은 관대 하나가 설치되었다. 널길은 남벽의 가운데에 시설되어 있으며, 현실 입구에서 남쪽으로 길이 약 20m의 배수로가 시설되어 있다. 현실과 널길을 축조한 벽돌들은 각기 그 쓰인 위치에 알맞게 크기나 모양이 다양하게 만들어졌으며, 안쪽으로 드러나는 면에는 오수전 모양, 마름모꼴 등 여러 가지 선무늬를 넣었다.

벽은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반복하여 동서 장벽을 맞조여 구축했고, 벽돌은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마름모꼴을 사용했으며, 남북 단벽은 수직으로 쌓았다. 동서벽의 각각 세 곳과 북벽 한곳에는 등잔을 놓았던 보주형 벽감(壁龕)이 마련되어 있으며, 벽감 위에는 가창이 설치되었다.

벽면에는 그림을 그릴 부분만 진흙을 바른 후, 그 위에 호분(胡粉)으로 벽화를 그렸으나 지금은 많이 박락되고 퇴색되었다. 벽화는 동벽에 청룡, 서벽에 백호, 북벽에 현무, 남벽에 주작과 좌우에 해와 달을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널길부는 현실과는 달리 채색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

[출토유물]

송산리 고분군은 대부분 유구를 확인할 당시 중요 유물이 이미 도굴되거나 반출되었기 때문에 보고된 유물의 출토 현황만을 알 수 있다.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금속 제품·장신구류가 주를 이룬다.

2호분에서는 토기류·순금제 이식·경옥·흉옥 등이 수습되었다. 3호분에서는 금동수패금구편(金銅垂佩金具片)·금동 과대(跨帶) 2점·금동대단금구(金銅帶端金具) 1점·금동 도금 행엽편·은제 화형식 금구 1점 외에 덩이쇠 등 약 102점의 유물과 추가로 은제판·소나무 관재·철제 긴칼편 2점 등이 수습되었다.

4호분에서는 금제 투조대과(透彫帶跨) 2점·금동대단금구 1점·순금제 동장금구(銅張金具)·금동제 식금구(飾金具) 11점·금동수하금구편(金銅垂下金具片) 1점·철지금동장금구편(鐵地金銅張金具片)·은제 금구 2점·은제 병두금구(柄頭金具) 1점·은제 당(當) 1점 외에 칠기와 은박판편이 출토되었다. 5호분에서는 순금제 행엽장신구 8점·순금제 능형 장신구·순금제 원형 6판 화형 장신구·은제 화형 좌식(花形 座飾)이 붙은 못 5점·황색 유리제 소옥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송산리 고분군은 1936년 사적지로 관리되다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모형 전시관이 건립되어 전시되고 있다. 송산리 고분군에는 발굴 조사된 무령왕릉과 6호분, 1~5호 굴식 돌방무덤 등 대외적으로 공개되거나 정비된 고분과 더불어 이미 조사가 이루어져 조사 내용만 전하는 고분들이 다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사가 1927~1933년 사이에 이루어진 관계로 현재는 공개된 고분 일부를 제외하고는 당시에 조사되었던 고분들은 모두 외형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전체 현황을 파악할 수 없는 상태다. 송산리 고분군의 지형으로 미루어 볼 때, 기존에 알려져 있는 고분군 외에 미확인된 고분도 상당수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의의와 평가]

송산리 고분군은 백제가 도읍을 웅진으로 천도한 후 조성된 왕릉군으로는 유일하게 알려진 유적이며, 웅진 도읍기 백제 왕실의 무덤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그러나 무령왕릉을 제외한 나머지 고분들은 대체로 백제가 웅진에 도읍하던 전 기간에 걸쳐 조영된 것으로 볼 수 있을 뿐, 피장자와 관련된 내용은 모두 불분명한 상태다. 다만, 1~5호분으로 분류된 굴식 돌방무덤의 경우 웅진 도읍기 초기형으로 보이는 궁륭상 돌방무덤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입지나 고분의 형태상 무령왕릉과 6호 벽돌무덤보다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무령왕릉과 6호 벽돌무덤은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백제시대의 벽돌 무덤으로 모두 터널형 현실 앞에 짧은 터널형의 널길이 있다. 벽돌의 무늬와 축조 방법으로 보아 6호 벽돌무덤이 무령왕릉보다 다소 앞선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터널형 벽돌 무덤은 중국 남조의 무덤 양식을 받아들인 것이나, 벽화만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송산리 고분군에서 조사된 벽돌무덤은 중국 남조의 벽돌무덤을 모방한 선진 문화로 백제고분 문화에서 궁륭식 천장의 돌방무덤에서 터널식 천장으로 변화하는 전기를 이룬다. 따라서 송산리 고분군 내의 궁륭식 돌방무덤은 무령왕릉보다 먼저 만들었거나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무령왕 이전의 백제 왕의 무덤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