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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944
한자 李穆
영어음역 Yi Mok
영어의미역 Yi Mok
이칭/별칭 중옹,한재,정간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471년연표보기
몰년 1498년연표보기
본관 전주
대표관직 영안남도병마평사

[정의]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로 유배된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옹(中雍), 호는 한재(寒齋). 조선의 개국공신 이백유(李伯由)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증호조참의(贈戶曹參議) 이윤생(李閏生)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아들은 명종 때 청백리에 녹선된 이세장(李世璋)이다.

[활동사항]

이목은 1489년(성종 20) 19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해 성균관의 재생이 되었다.

1490년 성종(成宗)이 병환에 있을 때 대비가 무당을 시켜 성균관 벽송정(碧松亭)에 음사(陰祀)를 설치하고 굿을 하자, 이목은 유생들과 함께 제단을 부수고 무당을 쫓아내니 대비가 대노해 성종에게 고했다. 그러나 얼마 뒤 성종은 유생들을 처벌하지 않고, 성균관대사성을 불러 “그대가 학생들을 인도해 사습(士習)을 정도(正道)로 돌아가게 하니 내가 가상하게 여기노라.”하고 어주(御酒)를 하사하였다.

1495년(연산군 1)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성균전적(成均典籍)이 되었고, 종학사회(宗學司誨)를 겸하였다. 1496년 영안남도(永安南道)[현 함경남도의 옛 명칭] 병마평사(兵馬評事)를 거쳐 다음해 호당(湖堂)에 들어가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1498년 무오사화 때 훈구파의 모함으로 조의제문(弔義帝文) 사건에 연루되어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김일손(金馹孫)·권오복(權五福)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1504년 갑자사화 때에 다시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가 1506년(중종 1)에 신원되었다.

[학문과 사상]

14세에 김종직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김굉필, 정여창 등과 동문이다. 24세 때 연경(燕經)에 가 중국의 다성(茶聖) 육우의 ‘다경(茶經)’과 마단림(馬端臨)의 『문헌통고(文獻通考)』 등을 탐독한 뒤 중국차 산지와 유적지를 돌아보았다. 귀국 후 「다부(茶賦)」라는 글을 통해 차와의 인연, 중국차의 품종과 산지 및 그곳의 풍광, 차 달이기[煎茶], 차 마시기[七修], 그리고 차의 오공(五功)과 육덕(六德), 다심일여(茶心一如)의 경지 등을 설파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한재문집(寒齋文集)』과 『이평사집(李評事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충현서원(忠賢書院)과 전라북도 전주시 황강사(黃岡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1552년(명종 7) 이조참판으로, 1707년(숙종 33) 이조판서로 각각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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