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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672
한자 布政司門樓
영어의미역 Gate Pavilion of Provincial Government Office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30-8[웅진동 332-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왕기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0년 12월 29일연표보기 - 포정사 문루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포정사 문루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 삭제
문화재 지정 일시 2024년 5월 17일 - 포정사 문루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성격 관영 건축물
건립시기/일시 1706년연표보기
정면칸수 5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30-8[웅진동 332-7]지도보기
소유자 공주시
관리자 공주시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 공주시 옛 감영 터에 있는 조선 후기 관아의 정문.

[위치]

포정사 문루는 원래 충청감영의 옛터인 국립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옆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이후 옛 공주군청 부근으로 이건되었다가 현재는 충청남도역사박물관[구 국립공주박물관] 인근에 복원되어 선화당, 동헌 건물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변천]

1706년(숙종 32) 감사 이언경이 선화당을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포정사 문루도 이때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포정사 문루는 『여지도서(輿地圖書)』, 『공주감영읍지(公州監營邑誌)』, 『공산지(公山誌)』 등 18~19세기의 지리지 수록 지도에서 ‘포정사(布政司)’ 또는 ‘포정문루(布政門樓)’ 등의 명칭으로 그 존재가 지속적으로 확인되며, 건립된 이래 줄곧 충청도관찰사가 공무를 보던 충청감영의 정문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포정사 문루는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1920년대 사진 자료에서는 포정사 문루가 일제에 의해 ‘충청남도포정사’로 명칭이 변경된 모습이 확인된다. 포정사 문루는 이후 또다시 ‘금남루(錦南樓)’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일본인에게 매각되어 ‘금남사’라는 이름의 일본 절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포정사 문루 건물은 교동[옛 공주군청 옆]으로 옮겨져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이익공 계통 단층 건물로 만들어졌고, 사무실과 공주 제2감리교회 등 전혀 다른 용도로 쓰이게 되면서 문루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이후 옛 공주군청 옆에 자리하고 있던 포정사를 1985년에 해체하여 공주군청 경내에 보관해 두었다가 1993년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포정사 문루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0년 12월 29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형태]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문루로, 감영 정문답게 규모가 매우 크다. 무출목 이익공식 공포(栱包)의 무고주 오량집 구조에 겹처마 우진각지붕이다. 정면에는 ‘충청도포정사(忠淸道布政司)’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기단은 장대석 외벌대로 만들었고, 기단 바닥은 강회다짐으로 마감하였다. 초석은 높이 2.2m, 가로 세로 각각 0.55m로 약한 민흘림이 있는 장초석을 사용하였는데, 이런 장초석은 관아의 문에서 흔히 사용하던 건축 기법이다.

평면은 중심열 3칸에 장판 분합문을 달았고, 양 협칸은 판벽이며, 양 측면에는 판벽을 설치하였다. 서쪽 면 뒷면에 계단을 설치하여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였다. 2층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고, 사방으로 계자난간을 설치하였으며, 난간 하부에는 궁판을 달아두었다. 2층은 1층과 달리 벽을 두지 않고 사방을 개방하였다.

포정사 문루 기둥은 약한 민흘림이 있는 원기둥을 사용하였다. 기둥 상부의 공포는 무출목 2익공으로 짜 올리고, 각 칸의 창방과 도리 사이에는 복화반을 세 개씩 끼워두었다. 단면 구조는 도리 간격의 경우, 4등분한 4분 변작이고, 대들보 양측에 하나씩 동자주를 세우고 종보를 올렸다.

대들보 위에 세운 양쪽의 동자주는 포대공 형식으로 짜 맞추었다. 종보 중심부에는 파련대공을 세우고 종도리를 걸었다. 파련대공에는 단청으로 당초문을 그려두었고, 주변부는 파련문을 조각하였다. 중도리 밑에는 납도리를 하나 더 끼우고 중도리와 납도리 사이에는 장여를 끼워두었다.

종보 밑에는 장여를 끼웠고, 장여 밑에 또 하나의 납도리를 걸어 구조를 보강하였다.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하였으나 양 측면의 추녀 뿌리와 선자연 뿌리가 모이는 부분에는 장방형 우물반자를 설치하여 뿌리 부분의 복잡한 구조를 깔끔하게 처리하였다. 우물반자에는 연판을 단청으로 그려 넣었다. 건물 내·외부에는 모루단청을 하였고, 특히 대들보에는 용 문양을 그려 화려하게 보인다.

[의의와 평가]

포정사 문루충청감영의 정문으로, 누문 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높은 장초석을 사용한 누문이 당시 기능을 어떻게 발휘하였는지 볼 수 있는 건축물이다. 복원한 위치는 다르지만 충청감영의 일부 건축물을 재현해 놓음으로써 당시 관청의 건축적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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