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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520
한자 公山城光復樓
영어의미역 Gwangbongnu Pavilion of Gongsanseong Fortress
이칭/별칭 폐문루(閉門樓),웅심각(雄心閣)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2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서정석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5월 17일연표보기 - 공산성광복루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공산성광복루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 삭제
문화재 지정 일시 2024년 5월 17일 - 공산성광복루 충청남도 문화재자료에서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성격 누각
양식 익공식
건립시기/일시 조선시대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2 지도보기
관리자 공주시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위치]

광복루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53-51번지공산성 안에 있다. 공산성은 동서로 마주하고 있는 두 개의 산봉우리를 에워싼 형태로 축조되어 있다. 동쪽에 있는 산봉우리는 해발 110m고, 서쪽에 있는 산봉우리는 해발 85m인데, 광복루는 동쪽에 있는 해발 110m의 산봉우리 정상부에 있다. 공산성의 남문인 진남루(鎭南樓)에서 동문인 영동루(迎東樓)를 거쳐 임류각(臨流閣)으로 향하는 길 우측의 낮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변천]

광복루는 원래 조선시대 공산성안에 자리하여 군사 행정을 주관하는 중영(中營) 또는 중군영의 정문 문루였고, 명칭도 폐문루(閉門樓)였다.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拱北樓) 옆에 있었으나 일제 초기 중군영이 폐쇄됨에 따라 문루만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는데, 이때 명칭도 웅심각(雄心閣)으로 바꾸었다. 그 후 건물이 낡아 보기 흉해짐에 따라 1945년에 공주 읍민들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광복루라는 명칭은 1946년 4월에 이곳을 방문한 김구, 이시영이 국권 회복을 기념해서 나라를 다시 찾았다는 뜻을 담아 붙여 준 이름이다.

[형태]

2층 누각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평면적은 24.6㎡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한 개의 익공(翼工)으로 공포를 구성한 초익공(初翼工) 양식으로 기둥머리에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해 주는 창방(昌枋)을 우미량(牛尾樑)과 같이 깎아 내어 장식적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8각의 높은 화강암 주초 위에 기둥을 올렸으며, 처마는 서까래만으로 형성한 홑처마이고, 네 귀퉁이를 반전시켜 경쾌한 느낌을 준다.

[현황]

공산성광복루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로 지정된 이후, 지속적인 관리가 이루어져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고,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에서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2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층계도 있는데, 층계도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처마 아래는 ‘광복루(光復樓)’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1층에는 단상을 설치해 방문객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였다. 산봉우리 정상부에 위치한 광복루에서는 공산성을 비롯하여 공주 시내 일대를 관망할 수 있어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공주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조선시대 건축물 중의 하나다. 또한 중군영의 문루였다는 점에서 공주의 역사적 위치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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