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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475
한자 驛站
영어음역 Yeokcham
영어의미역 Post Station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서태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고려시대
시행연도/일시 고려시대
폐지연도/일시 1895년(고종 32)연표보기

[정의]

고려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교통 통신 기관.

[개설]

역참은 전통시대 육상 교통로에 설치되어 역부와 역마를 이용하여 중앙과 지방 및 외국과의 공문서 전달, 변경의 긴급한 군사 정보 전달, 관물 수송, 관리 및 사신 왕래에 따른 숙박 등을 담당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통해 역(驛)은 삼국시대부터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고려시대에 원(元)의 참적(站赤) 제도의 영향을 받아 참이 설치됨으로써 역참(驛站)으로 통용되었다.

[제정경위 및 목적]

고려시대에 이르러 왕권 강화와 함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외관(外官)을 파견함으로써 역의 조직도 구체화되고 체계적인 조직망도 확립하게 되었다. 고려 성종대에 와서 더욱 구체화된 역참제는 개경을 중심으로 전국 22역도(驛道) 525속역(屬驛)으로 구성되었다.

[내용]

각 역에는 말과 역장(驛長), 역정(驛丁)을 두었다. 경천역은 22역도 중의 하나인 전공주도(全公州道)에 속하는 역으로 득연역(得延驛)·이도역(利道驛)과 함께 공주에 설치되었다. 경천역 터에서 조금 떨어진 야산에 산성이 있었다는 점에서 경천역은 국방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려가 원의 간섭을 받게 되면서 역참이 역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고, 일본 원정 및 고려와 강남 또는 고려와 요동과의 미곡 운송과 관련하여 고려의 역로망 운영에 대한 원의 개입이 강화되는 등 변화가 있었다.

역의 구성원으로는 종6품 찰방을 비롯하여 역리(驛吏)·역노(驛奴)·역비(驛婢) 등이 있었다. 18세기 『여지도서(輿地圖書)』나 영조~헌종 연간에 편찬된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등을 통해 경천역에는 역노 37명과 역비 18명이 소속되었고, 기마(騎馬) 7필과 복마(卜馬) 8필이 배치되어 국가의 명령이나 공문서, 군사 정보의 전달 등에 활용되었다.

아울러 공수전(公須田)·마위전(馬位田)·유역인전(有役人田) 등 역토도 지급되었다. 『영남역지(嶺南驛誌)』 금천역에는 역의 건물로 창사(倉舍)·제리청(諸吏廳)·양마청(養馬廳) 등이 있었다는 점에서 경천역에도 이와 유사한 역사(驛舍)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변천]

조선 전기에는 고려의 역참 제도를 계승하면서 역의 신설과 이속 및 폐지를 통해 역로를 재정비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경천역은 충청도 일신도(日新道)에 속하였다가, 1462년(세조 8) 역도 개편 사실을 수록한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일신역·광정역·단평역·유구역과 함께 충청우도 공주의 이인도(利仁道)에 소속되었다. 1884년(고종 21) 서울에 우정총국이 창설되어 현대화된 통신 우편 제도를 실시하게 되면서 경천역 등 전국의 역참 제도는 1895년(고종 32)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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