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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157
한자 交通
영어의미역 Transportation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류주현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인간 및 재화 또는 정보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공간적 이동.

[개설]

교통이란 인간 및 재화 또는 정보의 공간적 이동을 의미한다. 교통 기관의 발달은 생활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경제 생활 및 사회 문화를 발달시키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좁은 의미에서의 교통은 그 중 인간과 재화의 공간적 이동만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통 수단은 일반적으로 육상 교통, 수상 교통, 항공 교통으로 분류한다. 다시 육상 교통은 도로, 철도, 그밖의 육상 교통 시설을 이용하여 실시되는 교통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우리 국토의 중앙부에 위치한 충청도는 삼남의 관문으로서 남부 지방과 기호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으며, 수도권과의 인접성으로 인해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변천]

공주시는 과거 금강의 하운이 편리하여 백제 전성기에는 중국과 교류하고 일본에 선진 문화를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 공주에는 충청도의 관찰사가 머물렀으며, 감영도시라는 점 이외에도 금강 수계와 공주로부터 남쪽의 평야 지대로 이어지고, 공주에서 천안을 거쳐 서울로 이어져 있는 호남가도의 중요한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였다.

교통로로서 내륙 수로는 해로에 비해 풍랑의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우며, 하천의 상류와 하류를 오가며 지역 특산물을 교역할 수 있으며 중량에 비해 값이 싼 물건 수송에도 적합한 장점이 있다. 충청 지역 최대의 하천인 금강은 하구에서 부강까지 24개의 하항이 있었으며, 특히 조수의 왕래가 가능한 64㎞ 내의 입포, 강경, 논산, 길산포, 규암을 포함하여 상류의 왕진, 공주, 태평, 부강 등이 유명하였다.

그러나 1910년대 공주의 도로와 교량은 차량 운행이 어려워 도보 통행 정도가 가능한 수준이었으므로 당시 교통 수단은 배를 주로 이용하여 충청북도의 부강(청원군 부용면 부강리)까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웅진도(熊津渡), 음암진(陰岩津) 등을 비롯한 공주의 나룻터의 역할이 중요하였다.

그러나 점차 금강을 이용한 내륙 수로는 경부선, 호남선, 장항선 등의 개통으로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인근의 철도 교통 요충지에 교통의 중심축을 빼앗기게 되면서 공주는 철도시대에서 소외되기 시작하였다. 1933년 건설된 금강교는 공주가 철도 교통 대신 자동차 교통의 중심으로 다시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어 공주시를 중심으로 국도 23호선, 국도 32호선, 국도 36호선, 국도 39호선, 국도 40호선 등 5개 노선이 남북으로는 아산, 천안, 논산, 부여와, 동서로는 대전, 조치원, 청양 등과 연결되어 다시금 교통 요충지로 주목받게 되었다.

1980년대 대전을 지나는 호남고속국도가 부설되면서 공주시는 호남가도의 교통 중심지 기능을 다시 상실하기도 하였으나, 천안~공주~논산 간 국도 23호선이 확·포장되고, 천안~논산 간 고속국도가 개통되어 접근성과 도로 서비스 수준을 향상시키게 되었다.

오랫동안 금북정맥의 차령(車嶺)은 한양에서 충청도 공주로 가던 관문이었다. 국도 23호선을 타고 천안과 공주 사이에 있는 차령을 넘는 게 가장 전통적인 방법이다. 조선시대에 한양과 호남 지방을 잇는 호남대로에서 가장 큰 고개였던 차령은 영남대로의 문경새재 위상에 버금갈 정도로 유명했다.

공주 지방의 대표 고개로 이름이 높았던 차령이건만 2001년 길이 400m 터널이 뚫리고 나서는 고갯마루는 왕래하는 차가 거의 없이 한적해졌다. 사실, 국도 23호선은 호남고속국도가 생기면서부터 이미 전라도를 잇는 기능을 상실하여 공주와 부여 정도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더욱이 천안~논산 간 고속국도가 개통되면서 국도 23호선은 새롭게 확·포장되었지만 통행량은 더욱 줄어들었다.

일제강점기 사람과 차량의 내왕이 가장 빈번했던 도로는 전막(공주 금강철교 건너편)을 지나 조치원과 청주로 이어지는 이른바 공청가도(公淸街道)였다. 철도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대개 승합차편으로 이 도로를 이용해 조치원을 갔다.

공주의 가장 중요한 다리인 금강교금강을 가로질러 공주시 산성동신관동을 연결하는 철교로 1932년 1월 2일 착공하여 1933년 10월 23일에 준공하였다. 완공될 당시 철교의 길이는 약 514m, 폭 6m였으며, 교각의 높이는 약 20m였다.

6·25전쟁 당시 파괴되었던 것을 1952년에 복구하였으며, 2002년에 보수 공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공법으로 건설되어 교량 건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교량사적 가치와 조형적 가치가 더해져 교량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철교 건설 이전에 배를 연결하여 왕래하였던 공주 배다리의 흔적이 금강교 인근에 아직도 남아있다.

[현황]

공주시의 금강을 가로지르는 주요 다리 수는 5개 소이다. 마티터널을 통과하여 나오면 청벽대교가 먼저 보이고, 그 다음으로 2000년에 준공된 국도 23호선을 연결하는 신공주대교, 1985년 준공된 옥룡동신관동을 연결하는 공주대교, 1933년 가장 먼저 생긴 금강교, 그 다음으로 2001년 준공된 백제큰다리 순이다.

공주시의 주요 터널을 살펴보면, 대전과의 연결성을 높여주는 국도 32호선 마티터널은 1997년 왕복 4차선으로 준공되었다. 공주시 내부의 옥룡동금학동을 연결하는 공주터널은 1993년에 1차로 준공되고, 2003년에 2차로 준공되어 공주시의 원활한 교통 상황에 도움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단기간에 많은 터널들이 준공되었다. 2001년 국도 23호선차령터널, 2002년 천안~논산 간 고속국도의 정우터널과 차령터널, 지방도 651번의 정지산 터널, 2003년 국도 32호선연미터널, 국도 39호선의 솔치터널, 2006년 우금티터널, 2007년 조평터널, 2007년 갑사터널 등이 준공되었다.

특히 늘어나는 교통 수요에 대처하고자 지난 1997년 12월 천안-논산간 고속국도 공사를 착공하여 2002년 12월 23일 총 연장 82㎞가 개통되었다. 민간 자본으로 건설한 천안~논산 간 고속국도는 수도권 및 충청권과 호남권을 최단 거리로 연결하여 상호 접근성을 향상시킴은 물론, 백제문화권 관광 자원 및 지역 개발을 촉진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전~당진 간 고속국도와 공주~서천 간 고속국도가 2008년 12월 완공을 앞두고 있으며, 이밖에도 충청남도는 취약한 동서 교통망 해소를 위해 공주~보령 간 고속국도를 추진하고 있다.

자동차 및 대중 교통 현황을 살펴보면, 자동차 등록대 수는 1995년 20,276대에서 2005년 42,299대로 10년 사이 두 배가 넘게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2007년 45,154대로 인구 100명당 자동차 보유대수가 35.7%에 달하게 되었다. 2007년 차종별 등록대 수를 살펴보면, 승용차가 29,357로 65.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화물차 12,304대(27.2%), 승합차 3,374(7.5%), 특수차 119대(0.3%) 순이다.

공주시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자동차 등록대 수의 꾸준한 증가는 대중 교통 여객 수송의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2002년 영업용 자동차는 737대, 수송 인원은 16,070,350명이었으나, 2006년 영업용 자동차 수가 659대로 감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수송 인원 또한 15,242,500명으로 감소하였다.

2006년 차종별 여객 수송 현황을 살펴보면, 시내 버스 70대, 9,524천명(62.5%), 택시 404대, 3,351천명(22.0%)로 시내 버스의 수송 실적이 높은 특징을 나타낸다. 공주시의 통근 통학 경향을 2005년 인구 총 조사에 근거하여 살펴보면, 공주 외 지역으로는 대전에서 유입되는 통근 통학자의 비중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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