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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2674
한자 鷄龍山城
영어의미역 Gongju Gyeryongsanseong Fortress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서정석정재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산성
건립시기/연도 나말려초
높이 3m
둘레 3.5㎞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반포면 사이 계룡산에 있는 나말려초의 석축 산성.

[건립경위]

계룡산성은 지금까지의 조사 연구에 의하면 후삼국시대에 축조된 산성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산성은 후백제에서 축조했을 가능성이 높다.

[위치]

신원사에서 연천봉으로 통하는 등산로를 따라 1시간 정도 등산하면 계룡산성의 남문지 입구에 닿게 된다.

[형태]

계룡산은 정상인 해발 845m의 천황봉을 비롯하여 연천봉·문필봉·관음봉·쌀개봉 등이 이어진다. 계룡산성은 이 연접한 능선들과 그 남쪽의 계곡부에 걸쳐 내외 이중의 성벽으로 축조되었다. 외성 둘레 약 3,960m, 내성 둘레 약 546m로 이루어진 내성과 외성의 포곡식 산성 구조이다. 지표조사에 의하면 계룡산성은 외성을 두르고 다시 그 내부에 내성을 돌린 것이 아니라, 내성을 포함한 성벽을 축조하면서 남문지 외곽으로 외성 성벽 구간을 추가로 축성한 구조로 보고 있다.

성벽은 비교적 잘 다듬어진 성돌을 이용하여 축조했으며, 자연 암반을 지날 때에는 자연 암반 그대로를 성벽으로 활용하였다. 대부분의 성벽은 이미 붕괴된 상태이나 군데군데 성벽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성벽은 대부분 일정한 크기의 성돌을 이용하여 축조했으며, 성돌 사이사이에 할석을 쐐기돌 모양으로 채워 넣어 더욱 견고하게 하였다.

산성의 출입을 확인할 수 있는 문지(門址)로는 계곡 중심부의 내성 남문지, 연천봉고개의 외성 북문지, 관음봉 고개의 동문지가 파악되고 있다. 또한 다수의 수문지가 보이는데. 지표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성 남벽의 수문지에서 발도(發道)가 된 옛길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외성 남문과 수문의 기능을 동시에 했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장대지 1개소와 망대지, 용도(甬道) 2기도 확인된다.

[현황]

계룡산성은 2003년에 약식으로 지표조사가 이루어졌고, 이후 2017년 지표조사를 통해 다량의 기와가 수습되었다. 기와 중 ‘계룡산방호별감금(鷄龍山防護別監金)’, ‘계룡산별감금(鷄龍山別監金)’ 등의 명문 기와가 수습되어, 계룡산성 운용 방법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확보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계룡산성계룡산 정상부 가까이의 깊은 산 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축조 시기는 출토유물로 보아 나말려초로 판단된다. 나말 려초는 전국적으로 후삼국을 통일하기 위한 전쟁이 끊임없이 되풀이되던 시기였던 만큼 이러한 시기에 축조된 산성은 깊은 산 속에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축성 시기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 자료가 확보되어야만 할 것이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지** 계룡산성은 고려 대몽항쟁기 때 지역 방어 목적의 산성 입니다. 내용에 맞게 수정해주세요.
https://www.yna.co.kr/view/AKR20200715108300063?input=1195m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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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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