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05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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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雙樹亭事蹟碑 |
영어의미역 | Ssangsujeong Monument|Monument of Ssangsu Pavili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14-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박범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6년 1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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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쌍수정사적비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 삭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4년 5월 17일 - 쌍수정사적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
성격 | 사적비 |
건립시기/일시 | 1708년![]() |
관련인물 | 인조 |
높이 | 176㎝ |
너비 | 80㎝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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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자 | 충청남도 |
관리자 | 공주시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건립경위]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발생하자, 인조는 공주로 파천하여 공산성 내에 머물렀다. 당시 인조가 머물던 곳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는데, 인조는 두 나무 사이를 거닐며 이괄의 난이 평정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중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인조는 크게 기뻐하며 두 나무, 즉 쌍수(雙樹)에 정3품의 품계를 하사하였다. 이어 인조의 주필 사실과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로를 기념하고자 비문을 마련하려 했다. 이괄의 난이 종식된 직후 당시 충청도관찰사였던 이명준과 공주목사였던 송홍주가 우의정 신흠에게 비문을 받아 비석을 세우고자 했으나 당시에는 완성하지 못하였다. 이후 1668년(현종 9)에 송시열이 쓴 기문을 바탕으로 충청도관찰사를 역임했던 민유중(閔維重)이 다시 비석을 세우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1708년(숙종 34)에 이르러서야 당시 충청도관찰사를 지내던 이선부에 의해 비로소 비석을 세울 수 있었다. 이후 1734년(영조 10)에는 그 유지를 기념하고자 당시 충청도관찰사였던 이수항이 쌍수정을 건립하게 되었다.
[위치]
공주시청에서 공주고등학교를 지나 옛 공주시내버스터미널 방면으로 약 3㎞ 정도 가면 공산성 입구가 나온다. 공산성의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왕궁지로 가는 길과 영은사로 가는 갈래 길이 나오는데, 왕궁지로 가는 길을 따라 10분여를 따라가면 왕궁지 안에 있는 쌍수정이 나온다. 쌍수정사적비는 이 쌍수정의 동쪽 50m 거리에 있다.
[형태]
쌍수정사적비는 귀부와 비개를 갖추고 있으며, 비신은 오석을 사용하였고 귀부와 비개는 화강암을 사용하였다. 비개는 지붕[옥개] 모양이나 정상부에 대형의 보주를 올려 높게 처리하였고, 귀부는 이인면의 오룡리 귀부와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비석의 규모는 총 365㎝로, 비신의 높이는 176㎝, 너비는 80㎝, 두께는 60㎝이다.
[금석문]
우의정 신흠이 찬(撰)하고 전 중추부사 남구만(南九萬)이 서(書)하였으며,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이 전(篆)하였다. 비문의 내용은 이괄의 반란과 인조의 남천에 대한 내력을 쓰고 공산성에 머물렀던 10일 동안의 행적과 왕의 주필지지(駐蹕之地)로서 공산성에 대한 찬양, 수축에 대한 사적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송시열의 기문과 비석의 건립 경위에 대한 설명이 있다.
[현황]
쌍수정사적비는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에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관리 주체인 공주시에서 보호하고 있으며, 중요한 유적지로서 관람객들에게 꼭 필요한 관람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 정면 3칸, 측면 1칸에 맞배지붕으로 된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쌍수정사적비는 쌍수정의 건립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자료로, 연혁과 관련 고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이괄의 난과 관련하여 인조의 공주로의 피난과 공주에 전해지는 인조 관련 여러 설화 등과의 관련성을 높여 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쌍수정사적비는 17세기 전반 공산성의 수축 과정과 내용에 대해 기록하고 있기에 공산성의 내력을 이해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