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짚을 소재로 물고기집을 만들었어유. 물고기들이 짚으로 엮은 집을 들락거리듯 사람들도 우리 마을에서 쉬고 교류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예술을 주제로 열리는 2006년도 ‘예술과 마을’이 7월 25일 개막식을 열고 8월 21일까지 신풍면 동원리 원골마을에서 작품 전시를 하였다. ‘예술과 마을’ 예술제는 2006년이 10회째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
내산리 정사골 뒷산에는 일명 평사할머니묘로 통하는 무덤이 있다. 묘는 정사골 뒷산 정상에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산을 산순날이라 부르고 있다. 평사할머니의 후손인 김현진 씨는 이 무덤이 여기에 있게 된 데에는 비밀스런 사연이 전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평사할머니로 불리는 인물은 바로 한재 이목의 처이자 이세장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남편이 무오사화로 처형당하자 어린 아들을...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평기리에 있는 시멘트 제품 생산공장. 시멘트를 원료로 사용하여 시멘트 2차 제품을 생산하고, 그에 따른 이익 창출과 함께 레미콘 산업의 발전을 목표로 건립되었다. 아세아산업개발 공주공장의 전신은 대성산업개발이다. 대성산업개발은 1990년 12월 6일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평기리에 대성기업의 계열사로 설립되었다. 4년 뒤인 1994년 3월...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공주대학교 내에 있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 업체. 아이뮤직소프트는 멀티미디어 전문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로서 동영상, 정지영상, 음향, 애니메이션 등의 멀티미디어 솔루션이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는 21세기 인터넷·정보화 시대에서 지속적인 연구 개발을 통해 다양한 미디어를 빠르게 처리, 가공하는 기술과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하여...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음력 1월 15일에 남녀가 모든 행동을 아홉 번씩 반복하는 권면 의례. 농군들 사이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은 농군의 명절이다. 바쁜 농사철을 준비해야 하는 준비 시점임을 뜻한다. 본격적인 농사를 앞두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차원에서 많이 먹고, 일도 많이 하라는 의미의 권면 의례이다. 장정들 사이에는 “보름 밥은 아홉 번 먹고 나무도 아홉 짐을 해야 한...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보흥리 안골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보흥리 안골 고분군은 우성면소재지에서 청양 방면으로 약 2.5㎞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형성된 능선의 동남사면 하단부에 해당하며, 현재는 산림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흥리 안골 고분군은 1986년 문화재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이후 구체적인...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발양리에 있는 산. 정확한 유래는 찾아볼 수 없으나, 안골산의 서편 정면에 있는 곡저 평야인 안산들과 안산을 통해 안쪽산, 안쪽골짜기라는 표현의 줄임말로 생긴 지명으로 추측된다. 이인면과 계룡면 사이는 골짜기와 산릉이 번갈아가며 나타나고 있는데, 안골산은 그 경계부의 중앙이자 안산들의 동편에 위치해 있다. 높이는 321.8m이며, 이 지...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안병두(安秉斗)는 1910년 7월 4일 충청남도 공주군 주외면 옥룡리 364번지(현재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364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안병두는 공주소년동맹 집행위원장으로 1931년 10월 충청남도 공주군 우성면 방흥리에서 소작쟁의가 발생하자 박명열(朴命烈)과 함께 쟁의를 지도하였다. 1931년 12월에는 이학근(李學根) 등...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덕지리에 있는 산. 안산은 높이가 96.3m이며, 안구상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잔구성 구릉이다. 안산의 동서로 곡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남동쪽으로 산릉을 따라 내려오면 하안 단구가 형성되어 있다. 북쪽은 낯몽딩이고개이다. 안산으로부터 남동쪽으로 내려오면 화정들이 있으며, 남쪽으로 부여군 초촌면의 송정들로 이어지고 있다. 안산 동...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 성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석축 산성. 송곡리 산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시기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산성을 축조한 배경에 대해서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다 보면 안산교(案山橋)가 나온다. 송곡리 산성은 안산교 왼쪽에 있는 성재의 정상부에서 중복(中腹)에 걸쳐 위치...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대산리 안소랭이에서 음력 정월 열나흗날에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산제와 노제. 대산리 안소랭이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호환을 막기 위해 산신제를 지낸다. 산신의 신격은 ‘복주산신령’이다. 산제를 지내기 열흘이나 일주일 전에 공양주를 선출하여 음식 장만과 제사를 주관하도록 한다. 제비는 동계 기금으로 충당한다. 동계 기금은 마을에 있는...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자리한 지대가 높고 양지바른 곳에 마을이 있다 하여 고양골이라 하였다. 또한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독안리(獨安里)와 고양리(高陽里)에서 ‘안(安)’자와 ‘양(陽)’자를 따 ‘안양(安陽)’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성두면(城頭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성두면 독안리·고양리·중산리(中山里)·덕암리(德岩里)·산현...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안영사(安永寺)가 있었던 곳으로 안영(安永)골 또는 안영동(安永洞)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곡화천면(曲火川面) 지역으로, 1914년 곡화천면 만매(萬梅)·신매(新梅)·월산리(月山里)·월봉리(月峯里)·탑동(塔洞)·윤산리(尹山里)·중산리(中山里)·사양(沙陽)·남곡리(南谷里)·반송(盤松)·신기(新基)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안영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 터. 탄천면 안영리의 서남쪽에 있는 탑산골 계곡에 있다. 사역(寺域)의 중앙 부분에는 자연석을 포개어 탑의 형태를 하고 있는 석축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불탑(佛塔)이라 부르며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지명과 관련하여 볼 때 탑지로 추정된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남아 있던 탑이 외부로 반출되었고, 마...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가신(家神)을 초청하여 치르는 굿거리의 하나. 공주 지역에서는 보통 정초나 가을에 안택고사를 모신다. 정초에 행하는 안택고사는 특히 액막이의 성격이 강한데, 이는 집 안에 있는 여러 신들을 잘 달래어 한 해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또한 명절이나 별식이 생기면 이를 집안신에게 골고루 바치기도 하며, 가을에 추수가 끝나면 동네...
-
충청남도 공주시에 서식하는 잉어과에 속한 민물고기. 몸 길이는 약 10㎝이다. 머리와 몸통은 가늘고 길며 옆으로 납작하다. 입은 주둥이 밑에 달려 있으며 밑에서 보면 말굽 모양과 비슷하다. 머리는 약간 튀어나와 있고 눈은 작고 두 눈 사이가 넓고 머리 중앙보다 약간 앞과 위쪽에 위치한다. 입은 작고 위 턱은 밑으로 길게 늘어뜨릴 수 있으며 윗 입술은 얇고 가늘며 아래 턱...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서식하는 잉어과에 속한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10㎝이다. 모래주사와 비슷하게 생겼다. 몸 빛깔은 등 쪽이 청갈색이며 눈 밑에는 희미한 1줄의 암색 띠가 있다. 배 쪽은 은백색을 띤다. 몸은 거의 원통형이며 약간 납작하다. 배 쪽은 납작하여 바닥에 붙는다. 눈은 머리 위쪽에 붙어 있으며 아래에서 본 입의 모양은 말굽모양이며 비교적 넓다. 위턱이 아래턱...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 호는 애일당(愛日堂). 판중추부사 문정공 정이오(鄭以吾)[1347~1430]의 아들이다. 그러나 정분에게 자손이 없어 종가에 봉사손(奉祀孫)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홍주목사 정효안(鄭孝安)이 자신의 장자인 정지산(鄭之産)을 그 종숙(從叔)인 정분의 계자(系子)로 입양시켜 대를 잇게 했다. 진주정씨가 이곳 호계리에 정착하게 된...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가정이나 개인에게 닥칠 ‘액’을 미리 막는 의례. ‘액(厄)’이란 재액이나 고통, 병고 따위의 모질고 사나운 운수를 말한다. 옛날 사람들은 모든 재액과 질병 등은 액신(厄神)이나 액귀(厄鬼)가 몸에 침입하여 일어난 현상으로 믿었다. 따라서 이런 액을 면하려면, 액신이나 액귀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미리 ‘막거나’ ‘건너뛰어야’ 한다. 또한 일단 병에 걸리...
-
일제강점기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야학을 통해 민족 실력 양성을 꾀했던 교육 운동. 야학은 3·1운동 이후 민족 실력 양성 운동이 전개되면서 교육열이 고조된 데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일제의 차별적인 식민지 교육 정책으로 인하여 교육 시설이 부족한 데다가 민족 교육이 온상지로 지목되어 사립 학교가 탄압을 받고 있어서 정규 사립 학교 설립이 어려웠다. 여기에다가 일제강점기에는 의무교...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화월리에 있는 산. 약산은 약산동의 주민들이 마을의 흉제를 예방하기 위해 산신당을 짓고 매년 정월 보름 영시에 산제를 올리던 곳이었다. 전국에 약산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산이 많이 있는데, 보통 약산은 명칭 그대로 좋은 약초(藥草)나 약수(藥水)가 나올 때 붙여지곤 한다. 반면에 사곡면 화월리의 약산은 마을의 흉사를 예방하는 산신당을 모...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입석리에 전해지는 양반을 풍자한 민요. 관찰사가 근무했던 충청남도 공주의 특성상 양반을 비난하거나 풍자하는 민요는 많지 않다. 풍자를 담은 노랫말 또한 노골적이지 못하고 생활 속에 존재하는 일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예를 들어 고을 사또나 방백의 횡포가 심한 경우 이들이 빨리 죽기를 원하여 하는 말이 ‘땡감두 떨어지데’ 하는 식으로 표현되었다....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원(南原). 남원양씨의 공주 입향조(入鄕祖)인 양계무(梁季武)의 8세손으로 양정규(梁廷揆)와 홍관휴(洪觀休)의 딸 남양홍씨 사이에서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양진언(梁震彦)[1791~1853]은 어려서부터 예의가 바르고 효성이 매우 지극하였다. 16세 되던 해, 어머니의 병환이 매우 위중해지자 밤낮으로 정성을 다하...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양천손(梁千孫)은 1902년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으며, 1938년 36세의 늦은 나이에 공주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양천손은 1922년 20세부터 공주 읍내에서 도자기 상점을 경영하여 부를 축적하였으며, 주조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혀 1935년에는 공주주조 조합장을 역임할 정도였다. 특히 양천손의 특별한 양조방법은 애주가들로...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전기에 양화부곡(良花部曲)이 있었고, 양화산성(陽花山城) 아래에 위치하여 양화(陽化)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진두면(辰頭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공주군 진두면 신기리(新基里)·금곡리(金谷里)·능산리(陵山里)·송현리(松峴里)가 통합되어 양화리라 하여 계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 성재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축 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양화산성(良化山城)은 공주 남쪽 40리 지점에 있는데,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1,050척이고, 그 안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양화산성은 석성이었고, 성내에 우물이 한 곳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 성재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축 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양화산성(良化山城)은 공주 남쪽 40리 지점에 있는데,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1,050척이고, 그 안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양화산성은 석성이었고, 성내에 우물이 한 곳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도천리에 전해지는 부녀자들의 인생 한탄조 민요. 충청남도 공주시에는 신세 타령이라는 이름이나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신세 타령조 노래들이 전한다. 이 노래는 크게 남정네들의 소리와 여인네들의 소리로 나뉘고 이는 또한 한탄조로 일관하는 소리와 놀이마당에서 부를 수 있도록 힘없이 시작하여 흥겹게 바뀌는 것으로 나뉘는데, 「어떤 사람은 팔...
-
충청남도 공주시의 시화(市花). 개나리는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약 3m이다. 가지 끝이 밑으로 처져 덩굴 모양을 하기도 한다. 어린 가지는 녹색이나 점차 회갈색으로 변한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의 긴 타원형이며 3개로 갈라지는 잎도 있다. 잎의 양면에는 털이 없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4월에 밝은 노란색으로 피는데 잎겨드...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도천리에 있는 공원. 어린이교통공원은 교통 안전에 대한 살아 있는 지식을 전달하고 놀이와 체험 학습을 통해 한발 앞선 새로운 모습의 어린이 교통 안전 체험 교육장으로서 어린이들이 보고, 이해하고, 느끼고, 체험을 통해 즐기며, 교통 법규 준수의 중요성을 인식해 장래 어린이들을 건전한 시민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조성한 공원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이 지역에 큰 못이 있는데 그 못 속에 큰 고기가 많아서 고기가 춤을 춘다 하여 어무(漁舞)라고도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정안면(正安面) 지역으로, 1914년 정안면 어무리(漁舞里)가 어물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정안면 어물리가 되었다. 어물리의 대부분 지역에는 해발 고도 20...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하어리(下魚里)와 건천리(乾川里)에서 ‘어(魚)’자와 ‘천(川)’자를 따 ‘어천(魚川)’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성두면(城頭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성두면 건천리·하어리와 반탄면 소명리(召明里)·운암리(雲岩里), 정산군(定山郡) 목면(木面) 석화동(石花洞)·건예동(乾藝洞)의 각 일부가 통합...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어천리에서 정월 열 나흗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어천리 장승제는 한 해 동안 주민들의 동안의 액운을 막고 마을에 전염병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민간신앙으로서 마을의 수호신인 장승에게 제사를 지낸다. 다른 모든 마을 장승은 남녀 한 쌍인데 비해, 어천리 장승은 남자장승 하나에 부인장승 둘이 있어 첩을 둔 장승...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 있는 산. 옥백산·억복산이라고도 불리며, 전국에서도 유명한 활석광산이 있던 산이다. 서반봉 꼭대기에는 돌로 만든 간결한 제단이 있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외지 사람들이 와서 가끔 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서반봉은 명우산 남쪽 산릉에 해당하는 봉우리로 명우산과 같은 화강편마암, 주입편마암, 안구편마암으로 이루어진 산봉우...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매체를 통하여 사실을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언론은 넓게는 말이나 글로 자기의 생각을 발표하는 일 또는 말이나 글 그 자체를 의미하며 좁게는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또는 그 관련 기관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언론이라는 용어는 주로 이러...
-
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언평(彦平), 호는 포신(逋臣) 또는 포옹(逋翁)이다. 생부는 홍주목사 정효안(鄭孝安)이며, 어머니는 진주유씨이다. 우의정을 지낸 종숙(從叔) 정분이 후사 없이 죽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정효안이 자신의 장남인 정지산을 정분의 계자로 입양시켰다. 어려서부터 학문이 깊어 이름을 떨치더니 1445년(세종 27) 사마시에...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대룡리에서 엄대암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7년 공주시에서 시행 중인 ‘5도 2촌’ 정책의 일환으로 『공주 5도2촌』이라는 이야기 자료집이 발간됨에 따라, 현지조사 과정에서 주민에게 이길구가 채록하였다. 백제 말기에 공주시 신풍면 대룡리 무르실의 아랫마을에는 힘이 센 엄대장이란 장사가 살고 있었다. 백제가 멸망하기 직전의 상황이라...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동학사 인근에서 개최되는 야외 무용 예술제. 1996년 홍보를 통해 관객을 모으는 대신 현대 예술 분야와 관련된 특별한 문화가 없는 계룡산에서 ‘계룡산 자락에 가면 달리 광고가 있든 없든 볼만한 춤 공연이 자연 속에서, 그것도 무료로 펼쳐진다’는 것을 인식시켜 관객들에게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계룡산에서의 춤 공연이 기획되었...
-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집안의 재물을 지켜주는 수호신. 제주 지역에서 재신(財神)이며 사신(蛇神)인 업은 칠성신으로 여겨진다. 이 칠성신은 안 칠성과 바깥 칠성이 있는데 그 내력이 칠성 본풀이이다. 이와 관련하여 업에 대한 믿음에서 상업학교의 상징에는 예외 없이 뱀의 도상이 들어가 있다. 인도 철학에서의 업(業)은 과거 행위가 미래 세계인 다음 생에 영향을 끼...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 자는 여국(汝國).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의정부좌참찬을 지낸 최유경(崔有慶)의 9세손이다. 1646년에 최발원(崔發源)과 박계성(朴繼聖)의 딸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행용양위부사과(行龍驤衛副司果)를 지냈다. 겨울에 병환 중인 어머니께 잉어를 구해드렸으며, 부모가 병들자 허벅지를 베어 드려 효험을 얻기도 했다....
-
삼국시대 백제 제24대 왕. 백제 제22대 왕이었던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昆支)의 아들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동성왕을 가리켜 ‘문주왕의 동생인 곤지(昆支)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곤지의 5명의 아들 중 둘째’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성왕(東城王)[재위 479~501]은 모대(牟大)·말다(末多)·마제...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신영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북서쪽과 남서쪽에 각각 산이 있어 해가 비치는 시간이 짧으므로 어두니라 부르다가 발음이 변하여 여드니라 부르게 되었다. 혹은 이 마을로부터 공주시내, 예산, 온양이 각각 80리가 되어 여드니라고도 한다. 팔십리, 팔계라고도 부른다. 여드니는 북서쪽에 있는 장산[403m]과 남서쪽에 있는 녹산[288m]에...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여망(汝望)이고, 호는 석호(石湖)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윤황(尹煌)이며,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성혼(成渾)의 딸이다. 아들은 송시열(宋時烈)의 사위 윤박(尹搏)과 목천현감을 지낸 윤륜(尹掄)이다. 1630년(인조 8) 생원시에 급제하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승문원주서·시강원설서·예조...
-
중장1리는 여섯 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마을들은 각각 약간 거리를 두고 서로 다른 골짜기에 형성된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여섯 개의 마을은 때로는 함께하고 때로는 각자 자신들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다음과 같이 각각 1반~7반으로 편성되어 있다. 1반 : 행이펄 2반·3반 : 솔아티 4반 : 삼거리 5반 : 갑산수 6반 : 배살미 7반 : 윗장(상장)...
-
조선 중기 공주목제독을 지낸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도원(陶原)·후율(後栗)이다. 아버지는 조응지(趙應祉)이다. 이이(李珥),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65년(명종 20)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1567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68년(선조 1) 관직에 올라 정주목, 파주목, 홍주목의 교수를 역임하면서...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서식하는 퉁가리과에 속한 민물고기. 몸 길이는 약 10~14㎝이다. 몸통 앞부분은 원통형에 가까우나 뒤로 갈수록 옆으로 납작하다. 주둥이는 몹시 납작하며 주둥이 끝에 입이 있고 좌우로 길게 찢어졌다. 아래 턱이 위 턱보다 짧고 입술은 두껍다. 입의 위쪽 앞에 가는 이빨의 넓은 이빨 띠가 있으며 아래 턱에는 좁은 이빨 띠가 있다. 눈은 작으며 머리의 위...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신종교의 하나. 1872년 미국의 찰스 러셀에 의해 설립되었다. 뉴욕의 브루클린에 본부가 있으며 한국에는 1912년 선교사 홀리스터에 의해서 전파되기 시작하여 현재 1,400개 회중에 9만 4천여 명의 신도가 있다. 왕국회관이라 부르는 교회당에서 매주 세 차례의 집회를 가지고 있다. 각 회중(會衆)들은 정해진 구역이 있으며 증인마다 전도할 이웃들이...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여호와의증인 교단 소속의 교회. 여호와의증인 왕국회관은 충청남도 공주시의 여호와의증인 신자들이 집회와 침례를 행하는 교회당이다. 1958년 옥응두·이서주 부부가 워치타워 성서책자협회 한국지부로부터 임명되어 공주 지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0년대 초에는 국민은행 공주지점에서 설립되었으며, 여호와의증인이었던 국민은행 공주지점장...
-
동원 1리의 이장을 맡아온 역대 이장들은 마을을 봉사하고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이다. 다른 마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원골의 이장들은 임기는 보통 2년이지만, 사정에 따라 연임하기도 하였다. 신풍면사무소나 동원 1리 마을회관 등에는 역대 이장에 관한 자료가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동원 1리 이장을 맡고 있는 조학묵 이장으로부터 과거부터 현재까지 동원리...
-
중장1리의 관문인 통미산 입구에는 주유소를 가운데에 둔 삼거리가 있다.(삼거리마을과는 상관없다.) 여기에서 갑사 방향으로 가면 중장1리의 삼거리마을로 들어가고, 좌측의 대전 방향으로 가면 윗장마을과 배살미마을이 있다. 배살미마을은 중장리에서 가장 전통있는 삼척진씨의 터전이다. 삼척진씨는 계룡면 열두대장의 대표적인 세 성씨중의 하나로, 1500년대 후반에 진응린(陳應麟)[...
-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남도 공주시의 역사. 공주는 금강의 중류에 위치한 역사 도시이다. 선사 이래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부 지역 거점으로서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한 중부 지역 대표 도시의 하나이다. 남한에서 최초로 조사된 석장리 구석기 유적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이미 50만 년 전 인류가 거주하던 공간이며 신석기와 청동기시대를 거치며 도시 형성이 이루어진다....
-
고려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교통 통신 기관. 역참은 전통시대 육상 교통로에 설치되어 역부와 역마를 이용하여 중앙과 지방 및 외국과의 공문서 전달, 변경의 긴급한 군사 정보 전달, 관물 수송, 관리 및 사신 왕래에 따른 숙박 등을 담당하였다.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통해 역(驛)은 삼국시대부터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고려시대에 원(元)의 참적...
-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유구역이 있던 지역은 호남과 서울을 연결해 주는 중심 통로로 조선시대 교통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행인들의 이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나라의 중요 역원으로서 기능을 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이 6곳이니 일신·광정·경천·이인·...
-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인 문중대의 문집. 문중대(文重大)[1919~1993]는 본래 황해도 연백군 봉서면 출생으로 월남하여 충청남도 공주에 정착하였으며, 한때 공주 금성시사(錦城詩社)의 회장을 맡아 공주 지역 시회(詩會)를 이끌었다. 1979년 문중대의 회갑 때 받은 수연시(壽筵詩)를 모아 1980년 『연강수연시집(延岡壽筵詩集)』을 간행할 때, 책 뒤편에...
-
충청남도 공주시의 시화(市花). 개나리는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약 3m이다. 가지 끝이 밑으로 처져 덩굴 모양을 하기도 한다. 어린 가지는 녹색이나 점차 회갈색으로 변한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의 긴 타원형이며 3개로 갈라지는 잎도 있다. 잎의 양면에는 털이 없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4월에 밝은 노란색으로 피는데 잎겨드...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행해지는 무대에서 연기를 통해 내용을 전달하는 종합 예술. 연극은 삶의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경험에 기원을 두고 있어 다른 어떤 문화적 산물 못지않게 역사적·지역적·민족적 소산인데 비해 영화는 제작 과정에 창조적 요소와 기계적·기술적 요소, 그리고 경제적 요소가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제작자, 스튜디오, 카메라,...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송곡리 성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석축 산성. 송곡리 산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시기를 알 수 없다. 따라서 산성을 축조한 배경에 대해서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다 보면 안산교(案山橋)가 나온다. 송곡리 산성은 안산교 왼쪽에 있는 성재의 정상부에서 중복(中腹)에 걸쳐 위치...
-
충청남도 공주시 쌍신동에 있는 산. 연미산은 산의 꼬리가 제비꼬리를 닮았다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연미산은 높이가 192m이며, 공주시가지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공주시를 관류하는 금강이 북서 방향에서 남서 방향으로 방향을 바꾸는 곳에 있다. 연미산 정상을 기준으로 북쪽은 안산암질암, 남쪽은 역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북동-남서 방향의 단층이 연미산...
-
16세기 사림의 시대를 맞이하여 일찍이 사림화에 앞장섰던 부전동민들은 근대 신학문 수용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리하여 부전 대동계에서는 일제시기인 1920년대에 장자동학교라는 강습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이 학교는 약 3년간 유지되었다고 하는데, 이 때 신식교육 교사의 월급으로 산제답을 제외한 동답재산이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부전동 주민들은 이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 중에서 가장 성...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산웅리에 있는 미술 공원. 연미산(燕尾山)[239m]은 산의 형세가 제비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연미산은 제비가 금강을 박차고 하늘로 비상하는 듯한 모습을 연상케 한다. 연미산은 2006년 8월 8일부터 10월 31일까지 약 3개월간 한국자연미술가협회인 야투가 추진하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개...
-
충청남도 공주시 쌍신동과 우성면 도천리에 걸쳐 있는 터널. 연미터널을 연미산 터널로도 부른다. 2003년에 준공되었으며, 서산과 대전을 잇는 국도 32호선상에 있다. 연미터널을 건설하기 이전에는 연미산의 서쪽 산과 들을 개착(開鑿)한 도로를 둘러 가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 관리한다. 연미터널의 도천리 방향 출구 인근에는...
-
충청남도 공주시 쌍신동과 우성면 도천리에 걸쳐 있는 터널. 연미터널을 연미산 터널로도 부른다. 2003년에 준공되었으며, 서산과 대전을 잇는 국도 32호선상에 있다. 연미터널을 건설하기 이전에는 연미산의 서쪽 산과 들을 개착(開鑿)한 도로를 둘러 가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 관리한다. 연미터널의 도천리 방향 출구 인근에는...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한천리 무성산 정상부에 있는 시대 미상의 석축 산성. 한천리 주민들은 홍길동이 축성하였다고 전하는데, 실제로 홍길동이 축성하였다고 볼 만한 근거는 없다. 따라서 앞으로 발굴 조사를 통해 축성 시기가 밝혀져야 산성의 축성 배경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공주 지역에서 예산으로 통하는 국도 36호선을 타고 12㎞쯤 가면 사곡면 면...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신흥리에 전해지는 모내기(삭모) 노래. 공주시 일원의 모심는 소리는 지역에 따라 메나리에 가까운 경조 고장, 육자배기조 고장 등으로 나뉘어 차이가 심하고 변화가 많은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후렴이 거의 없이 부르는 마을부터, 후렴을 흘림소리라 하여 구음만으로 이루어진 마을, ‘어럴럴러 상사디야’를 부르는 마을까지 다양한 후...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의 높은 산이 연(蓮)꽃 형세이므로 연(蓮)마루 또는 연종(蓮宗)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사곡면(寺谷面) 지역으로, 1914년 사곡면 구수동의 일부가 통합되어 연종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유구읍 연종리가 되었다. 연종리의 동부와 서부·남부로는 각각 해발 고도 300~...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연종리에서 음력 1월과 10월에 지내는 마을 제사. 연종리 산신제는 들보다는 산이 위주였던 시절에 호랑이를 보호하고자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다. 산신당은 마을 뒤편에 울창한 소나무 아래에 6.6116m² 남짓한 당집이며, 매년 음력 10월에 제사가 치러진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면서 초저녁에 시작된 제사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어울...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연종리 연마루에서 음력 시월 초이틀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연종리는 원래 사곡면에 포함된 17구의 하나였다가 1973년에 유구읍으로 편입되었다. 연마루에서 산신제를 모시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집안의 발전을 기원하고, 산신이 기도를 들어주어 무병장수하며, 산신제를 모시는 것으로 부자가 되...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있는 계룡산 연봉 중의 하나. 전설에 따르면 이성계가 계룡산 연천봉에 올라 제단을 차려 놓고, 이곳에 왕도가 서고 모든 일이 잘 되도록 천지신명께 엄숙히 기도를 드린 곳이라고 한다. 꿈에 신선을 만났는데 신선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도록 명하였다 한다. 연천봉의 명칭 뜻 그대로 하늘과 이어진 곳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 쌍신동과 우성면 신웅리 사이에 있는 고개. 백제 때부터 선비들의 한이 서린 고개이며 연미산 비탈길이라고도 했다고 한다. 연미라는 이름은 산세가 제비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연치미고개의 정상은 높이 71m이다. 중생대 백악기의 역암층으로 되어 있고, 고개로 접근하는 길은 대부분 흙, 모래, 자갈로 이루어진 신생대 제4기의 충적층으...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조선 중기 연평부원군 이귀의 신도비. 이귀[1557~1633]는 연안이씨로,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모집하였고, 양곡을 거두어 개성으로 운반하여 서울 수복전에 공로를 세웠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1623년(광해군 15)에는 김류(金瑬), 신경진(申景禛) 등과 함께 인조반정을 일...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안동김씨의 열녀비. 향지리 열녀비는 지방 유림의 발의로 군수가 세운 열녀비이다. 안동김씨는 부안임씨인 임완수의 처로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죽는 슬픔을 맞았다. 그러나 흐트러짐 없이 지극 정성으로 3년간 남편의 묘소를 옆에서 보살폈다. 안동김씨는 남편의 3년상이 끝난...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계실리에서 장수 김기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62년 4월 5일 충청남도 공주군 사곡면 운암리에서 임헌도 교수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신수남(남)이다. 옛날 김기남이란 장수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무예를 닦아 말타기·활쏘기·칼쓰기를 잘해서 마을에서는 장차 훌륭한 무인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와 하대리에서 칠석날 열리던 두레 막음 민속놀이. 계룡면 중장리·하대리는 계룡산 아래 위치하여 지형이 삼태기 속처럼 안온하고, 하나의 생활 권역을 이루고 있었으며, 중장리·하대리 지역 12개의 두레는 여름두레를 먹는 날이 모두 칠석날로 같았다. 중장리 마루들[宗谷]에는 선인이 심었다는 12그루의 느티나무 정자가 있는 큰 두레 마당이...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와 하대리에서 칠석날 열리던 두레 막음 민속놀이. 계룡면 중장리·하대리는 계룡산 아래 위치하여 지형이 삼태기 속처럼 안온하고, 하나의 생활 권역을 이루고 있었으며, 중장리·하대리 지역 12개의 두레는 여름두레를 먹는 날이 모두 칠석날로 같았다. 중장리 마루들[宗谷]에는 선인이 심었다는 12그루의 느티나무 정자가 있는 큰 두레 마당이...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도천리에 전해지는 부녀자들이 놀이판에서 부른 민요. 「열둘이 얼러서」는 공주시 일원에서 흔하지 않은 난봉가류의 노래이다. 더구나 다른 난봉 소리는 앞부분에 정상적인 노랫말로 이어지다가 난봉소리로 가는 데 반해, 「열둘이 얼러서」는 처음부터 난봉의 노랫말로 시작되고 끝나는 특징을 보인다. 가락이 단조롭고 빠르면서도 청춘가와 유사한데 변화를...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서식하는 잉어과에 속한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8~10㎝이다. 몸은 가늘고 길며 옆으로 납작하다. 긴몰개보다 크게 자란다. 주둥이는 다소 둥글고 큰 편이며 입도 매우 크고 입구석이 눈의 앞 끝에 닿는다. 1쌍의 입수염은 눈의 반지름보다 짧다. 옆줄은 몸 양쪽 한가운데를 지나며 앞부분이 배 쪽으로 활처럼 휘어 있다. 비늘은 크고, 옆줄의 비늘 수는 33...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승려이자 승병장. 속성은 박씨(朴氏)이고,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기허(騎虛)이다. 계룡산 갑사에서 출가한 뒤 사명대사 유정(惟政)과 함께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법을 깨우쳐 휴정의 제자가 되었다. 공주 천련암(天蓮庵)에 있으면서 선장(禪杖)을 가지고 무예를 익히기를 즐겼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 수백 명을 규합하였...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 갑사의 표충원에서 매년 10월 임진왜란 때 순국한 영규대사를 비롯한 800 의승의 넋을 기리는 제사. 2000년 11월 5일 갑사 표충원에서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승병 800명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마친 승장 영규대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대제(大祭)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하여 매년 시행되고 있다. 1594년 열반 이후 408년 만에 처음으로 열...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규대사의 묘.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당(騎虛堂), 속성은 박씨이다. 공주 출신으로 갑사에 들어가 출가하고, 뒤에 휴정의 제자가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승병을 일으켜 승병 궐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조헌과 합세하여 청주성을 탈환한 후, 1592년 금산성 전투에서 항전하다가 부상을 입고 현재의 비각 자리에서 숨...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있는 영규대사의 임진왜란 당시 행적을 기리는 비. 영규대사 비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인들의 침략과 약탈을 참지 못하고 승병장(僧兵將)이 되어 승려 수백 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영규대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騎虛)이고, 속성은 박씨이며, 본관은 밀양으로 전해지고 있다. 본래 휴정대사의 수제...
-
충청남도 계룡면 유평리에서 영규대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73년 임헌도 교수가 갑사에 가는 도중 만난 구십 노인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을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갑사에 가는 도중 만난 구십 노인이다. 영규대사는 공주시 계룡면 봉명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조실부모하여 외로운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어느 날 나뭇짐을...
-
임진왜란이 시작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처음으로 승려를 규합해 전장으로 나선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영규대사’이다. 영규대사는 공주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속성은 밀양박씨, 이름은 영규(靈圭), 호는 기허당(騎虛堂), 공주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계룡산 갑사에 들어가 출가한 뒤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법을 깨우쳐 그의 제자가 되었다. 공주 청...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기독교 사랑을 실천하는 도덕인, 수준 높은 학력을 지닌 지식인,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지성인, 튼튼한 체력과 정서를 갖춘 건강인을 육성한다. 교훈은 박애·진실·면학이다. 공주 지역에 공주영명고등학교가 설립된 것은 1904년 샤프 목사가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로 공주에 오면서부터였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의 노골적인 침...
-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 있는 사립 중학교 기독교 사랑을 실천하는 도덕인, 수준 높은 학력을 지닌 지식인,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지성인, 튼튼한 체력과 정서를 갖춘 건강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한다. 교훈은 박애·진실·면학이다. 1905년 미국에서 선교사로 파송된 앨리스 샤프(Alice Sharp, 한국명 사애리시)가 설립하였던 명설학교가 1906년 10월 15일 윌리엄스(...
-
조선 말기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은거한 문신 정달영의 문집. 『영암집(寧菴集)』은 2권 1책이다. 장정법은 선장본이다. 광곽은 사주쌍변으로 반곽 크기는 가로가 16.5㎝이고, 세로가 22.3㎝이다. 행수는 12행이고, 한 행의 자수는 25자이다. 서문은 정달영(鄭達泳)[1828~1891]의 4종손(四從孫) 정헌태(鄭憲泰)가 썼고, 발문은 정달영의 재종손(再從孫) 정헌극(...
-
1458년 세조의 명에 의하여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에 창건한 사찰. 1458년(세조 4) 세조가 명하여 창건되었다. 처음 사찰 이름은 묘은사(妙隱寺)이었으나,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때 인조가 영은사에서 피신한 뒤 은적사로 바꾸었다. 1616년(광해군 8) 영은사에 승장(僧長)을 두어 전국 8도의 사찰을 관장하게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승병 합숙...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말기의 대방 건축. 조선 후기의 사찰에서는 강당과 대중방을 겸하는 건축물이 나타난다. 특히 한양 근교의 사찰에서 많이 보이는 건축 형태인데, 이를 대방 건축이라 한다. 건물 가운데 불단을 두고 법회와 강론, 염불 등을 행하기도 하는 커다란 승방 기능을 하기도 한다. 대방에 붙여 작은 방을 두거나 근처에 요사채를 두기도 한다. 따...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말기의 법당. 공산성 북쪽에 위치한 영은사의 정면 중심에 있다. 사찰 전체가 북향을 하고 있어 대웅전 역시 북향이다. 영은사는 조선 전기인 1458년(세조 4)에 처음 창간되었다고 하나 사찰의 연혁과 관련된 자세한 기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영은사에는 대웅전을 대신하여 원통전이 있으나 이 건물은 조선 말기...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후기 청동으로 제작된 범종. 공주 영은사 청동 범종은 크게 용뉴부(龍鈕部)와 종신부(鐘身部)로 구성되어 있어, 신라시대 이래 제작된 우리나라 범종의 전형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 용뉴부는 용이 네 개의 발을 힘차게 아래로 뻗쳐 발가락으로 동종의 천판을 강하게 짚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어 역동적으로 보인다. 볼록한 용...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후기 청동으로 제작된 범종. 공주 영은사 청동 범종은 크게 용뉴부(龍鈕部)와 종신부(鐘身部)로 구성되어 있어, 신라시대 이래 제작된 우리나라 범종의 전형적인 양식을 취하고 있다. 용뉴부는 용이 네 개의 발을 힘차게 아래로 뻗쳐 발가락으로 동종의 천판을 강하게 짚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어 역동적으로 보인다. 볼록한 용...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영은사에 있는 조선 말기의 법당. 공산성 북쪽에 위치한 영은사의 정면 중심에 있다. 사찰 전체가 북향을 하고 있어 대웅전 역시 북향이다. 영은사는 조선 전기인 1458년(세조 4)에 처음 창간되었다고 하나 사찰의 연혁과 관련된 자세한 기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영은사에는 대웅전을 대신하여 원통전이 있으나 이 건물은 조선 말기...
-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서 영은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공주시 공산성내에 영은사라는 절이 있다. 임진왜란 때 산신령의 도움으로 왜적을 번번이 물리쳤다는 전설로 이 절에는 신령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로 영은사(靈隱寺)라 불렀다는 전설이다. 1956년 5월 7일 충청남도 공주시 중학동에서 임헌도 교수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에 속하는 법정리. 보(湺)가 있어 전답(田畓)을 기름지게 하고 사람도 영생한다 하여 영생(永生)이라 하였고,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반영동(班永洞)과 냉정리(冷井里)에서 ‘영(永)’자와 ‘정(井)’자를 따 ‘영정(永井)’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신하면(新下面) 지역으로, 1914년 신하면 반영동·냉정리·소학리(巢鶴里)·복동(福洞)·의동(儀...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 냉정에서 정월 열나흗날 공동 우물에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냈던 마을 제사. 신풍면 면사무소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영정리는 본래 신하면(新下面) 지역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마새와 냉정을 합쳐 반영리라 하였고, 복골과 성황뎅이를 합쳐서 영정리라 했다가 나중에 영정리로 통합하였다고 한다. 이...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 마새에서 정월 대보름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공주 지역에서 둥구나무제는 봉정동 반선말, 정안면 보물리, 정안면 월산리, 정안면 대산리 죽암, 우성면 귀산리 심산, 신풍면 쌍대리 짐대울 등에서 치러진다. 정안면 보물리에서는 둥구나무제를 괴목제(槐木祭)라고도 부르는데, 제일(祭日)에는 둥구나무에 황토 무...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한천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영천리, 한산리, 구화리 일부를 병합하여 한산리와 영천리에서 한 자씩 따서 한천으로 명명하였고, 이에 따라 한천지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한천리라는 지명이 생기기 전에는 신령스러운 무성산(武城山) 산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마을이라 하여 영천(靈川)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한천지를...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한천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영천리, 한산리, 구화리 일부를 병합하여 한산리와 영천리에서 한 자씩 따서 한천으로 명명하였고, 이에 따라 한천지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한천리라는 지명이 생기기 전에는 신령스러운 무성산(武城山) 산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마을이라 하여 영천(靈川)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로 인해 한천지를...
-
충청남도 공주시 중학동에서 영천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55년 7월 9일 공주시 중학동에서 임헌도 교수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고병운(남)이다. 공주시 중동초등학교 남쪽으로 조금 가다보면 영천지가 있다. 옛날 백제 때 웅진에 가난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들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어찌나 가난했는...
-
충청남도 공주시의 시화(市花). 개나리는 쌍떡잎식물 용담목 물푸레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는 약 3m이다. 가지 끝이 밑으로 처져 덩굴 모양을 하기도 한다. 어린 가지는 녹색이나 점차 회갈색으로 변한다.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의 긴 타원형이며 3개로 갈라지는 잎도 있다. 잎의 양면에는 털이 없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4월에 밝은 노란색으로 피는데 잎겨드...
-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산학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스승이 머물고 있는 도량으로 영원하고 궁극적인 행복을 선사하는 곳이며, 또한 도량에서 추구해야 할 일이 바로 중생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라고 믿기 때문에, 이 도량에 상주하는 대중은 물론 한 번 다녀가거나 절 이름을 생각만 해도 최고의 행복을 얻으라는 원력으로 영평사(永平寺)라고 한다. 조선시...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영화를 상영하는 전문 극장. 영화관은 영사를 위한 스크린과 음의 재생 장치를 포함한 스테이지, 객석, 영사실, 로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는 영화관이 다수 생겼으며, 오늘날에는 복합관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영화는 영화관의 영사 재생 장치가 중요한데,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난 영화라 해도 재생 장치가 불량하면 충분한 효과를 올릴...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와 예술 활동. 예술은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등으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 또는 작품의 창작과 감상에 의해서 정신의 충실 체험을 추구하는 문화 활동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문학·음악·조형 미술·연극·무용·영화 등을 총칭하는 말이며 공간 예술, 시간 예술, 종합 예술 등으로 나눌 수...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 1구 원골에서 열리는 마을 예술제. 예술과 마을전은 자연 미술의 시원적 형태라 할 수 있는 민중의 솜씨와 예술가의 예술이 만나는 접점을 시도하여 농즉예(農卽藝) 예즉농(藝卽農)이라는 관점을 실현하였다. 예술과 마을전은 농민과 예술가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질적 문화 간의 교류를 통한 상호이해의 장이 됨은 물론 국내 최초로 농촌 마을에...
-
농어촌에 ‘브랜드 마을’이 뜨고 있다. 농어촌에 ‘마을 관광상품화’ 바람이 불고, 시골 마을들이 ‘전통 브랜드화’를 앞세우기 시작하여 체험마을과 테마마을이란 이름으로 마을을 브랜드화하고 있다. 충청남도도 주5일 근무제 확산과 웰빙 바람에 발맞추어 농촌지역 특색을 살린 체험마을 조성사업에 집중 투자를 하고 나섰다. 충청남도에 따르면 도와 각 시·군이 추진하고 있는 체험마을...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 있는 공주문화원이 후원하는 문화 예술 단체. 예인촌은 공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선무용단, 극단 파고, 월가리 풍장단, 웅진어린이합창단, 극단 금성, 우리문화공연단 논두렁 밭두렁, 햇님스튜디오 등이 모여 만든 문화 예술 단체이다. 정부 지원금 없이 순수한 예술 활동으로 공주의 지역 문화 예술의 창달을 도모하고, 단체 간 상호 협력 공연을...
-
충청남도 공주시 반죽동에 있는 공주문화원이 후원하는 문화 예술 단체. 예인촌은 공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최선무용단, 극단 파고, 월가리 풍장단, 웅진어린이합창단, 극단 금성, 우리문화공연단 논두렁 밭두렁, 햇님스튜디오 등이 모여 만든 문화 예술 단체이다. 정부 지원금 없이 순수한 예술 활동으로 공주의 지역 문화 예술의 창달을 도모하고, 단체 간 상호 협력 공연을...
-
어떻게 농사가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예즉농(藝卽農), 농즉예(農卽藝)’는 신풍면의 한 작은 마을인 동원리 원골마을에서 마을예술제의 주제로 내건 문구이다. 이 마을예술제를 시작한 사람은 임동식이라는 한 자연미술가이다. 그는 공주 자연미술비엔날레를 발기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자연미술의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농사가 곧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공주 자연미술비엔날레의 모...
-
뜸밭골의 산신제는 40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대동계가 결성된 이래부터 지금까지 매년 정월 보름과 시월 초하루에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과연 현재의 산신제는 40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역사와 전통문화를 간직한 마을 내산리를 찾아 갔다. 흔히 산신제라 하면 산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옛 사람들은 산신령이...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순국지사. 본관은 보성. 자는 명여(明汝), 호는 무이재(無貳齋)이다. 아버지는 오치국(吳治國)이며, 어머니는 파평윤씨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함을 인정받았는데, 가학으로 배움의 기초를 세우고 20살 무렵에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의 문하에 들어갔다가 임헌회의 권고로 간재 전우(田愚)에게 학문을 배웠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된 것에 격분...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법정동. 오동나무가 많은 골이라 오곡(梧谷) 또는 오실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목동면(木洞面)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태봉(下胎封), 외태봉(外胎封), 태산리(胎山里), 하태산(下胎山)을 병합하여 오곡리라 하고 목동면에 편입되었다. 1938년 이인면(利仁面)에 편입되었으며, 1983년 다시 공주읍에 편입되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오곡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오곡동 고분군은 공주시에서 남쪽으로 약 3㎞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오곡동 장척 동남쪽 산의 남서사면 하단부에 위치한다. 이곳은 북쪽의 해발 213m의 태봉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능선 사면부에 해당하며, 남서쪽 전방에는 오곡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다. 오곡동 고분군은 1980년 1기의 돌방무...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남원. 아버지는 찰방 윤형준(衡俊)이다. 손자 오시수(吳始壽)[1632~1681]가 공주 지역에 전장을 마련하고,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오시수의 종숙(從叔) 오정창(吳挺昌)의 묘를 쓰면서 후손들이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세거하게 되었다. 남편 오횡(吳竑)[1606~1626]이 죽자 음식을 먹지 않고, 자결하여 정려를...
-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서 오뉘바위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63년 2월 10일 임헌도 교수가 공주시 중학동 184-7번지에서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정연사, 1973)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최건구(남)이다. 300여 년 전 공주의 개울동리에 김의삼이란 사내와 김의숙이란 남매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무술에 뛰어나며 칼쓰기·말타기에 능숙하였다. 또한 이 마...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청량사 폐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오층 석탑. 건립 연혁과 관련된 기록이나 변천 내용이 자세히 전해오지 않는다. 전체적인 탑의 조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낮은 단층 기단에 5층 탑신으로 만들었으나 현재 4층까지만 남아 있다. 지대석 위에 올린 기단에는 면석과 우주석을 각각 별도의 석재로 만들어 세웠고, 그...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청량사 폐사지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칠층석탑. 건립 연혁과 관련된 기록이나 변천 내용이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탑의 조형으로 보아 통일신라 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50년대에 무너진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계룡산 동학사 뒤편 비로봉 아래 산 중턱에 공주 청량사지 오층 석탑과 남북으로 나란히 있...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충신.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경도(景圖)이다. 보성오씨 시조 오현필(吳賢弼)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오응두(吳應斗)이고, 어머니 전의이씨 이경우(李景佑)의 딸이다. 부인은 연안이씨 이희정(李希程)의 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촌형 오대린(吳大麟)과 함께 왕을 호종한 공으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겸오위도총부부총관효충장의선무원종공신(嘉善大夫同知中...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이고, 아버지는 오달천(吳達天)이다. 어머니는 조간(趙幹)의 딸이다. 1673년(현종 14) 정시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1680년(숙종 6) 사헌부지평·홍문관부수찬, 1683년 지제교(知製敎)를 거쳐 1687년 승지가 되었다. 1694년 개성부유...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동(梧桐)나무가 많이 있어 오동리(梧桐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성두면(城頭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성두면 오동리가 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우성면 오동리가 되었다. 오동리의 북부와 서부로는 해발 고도 100~200m의 산지가 형성되어 있고, 북부로는 검은봉고개가 있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오동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 오동리 돌방무덤은 오동리의 서쪽으로 깊게 형성되어 있는 큰골 안쪽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해발 308m의 사마산에서 동북쪽 해발 208m의 검은봉으로 연결되는 능선에서 동주한 능선의 남동사면 하단부에 해당한다. 주변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동쪽의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흐르...
-
공암이발소는 약 50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의 미용실이 남녀를 불문하고 가는 곳이라면 이발관은 남자들만의 헤어샵이다. 공암이발소 는 반포면사무소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골목을 따라 내려간 첫 번째 골목에 자리하고 있다. 이 골목은 현재도 옛 장터라고 불릴 정도로 반포면의 작은 시장이 섰던 곳이다. 시장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 아직도 여기저기...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의 명당(明堂)이 있다 해서 오룡(五龍)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목동면(木洞面) 지역으로, 1914년 목동면 상조리(上調里)·하조리(下調里)·만수동(萬樹洞)·내조리(內調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오룡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가 되었다. 오룡...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 밤갓에서 정월 열 나흗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현재 공주 지역의 노신제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장승제를 뜻하기도 하고, 공주시 검상동의 경우처럼 마을 앞의 여러 선돌(주석지신, 여석지신, 구석지신, 와석지신)에 대한 제사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구읍 신영리 여드니, 우성면 도천리, 우성면 동대리, 의당면...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 요룡리 오룡이라는 명칭은 옛날 마을 앞 못에 다섯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오룡동 남쪽 끝에는 욧골이라는 마을이 있으며, 마을 서쪽 정안천 가에 요당(蓼塘)이라는 큰 못이 있는데, 이곳에도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조선 말기에는 이 부근을 요당변이라 불렀다. 이러한 전설에 따라 요룡...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 요룡리 오룡이라는 명칭은 옛날 마을 앞 못에 다섯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오룡동 남쪽 끝에는 욧골이라는 마을이 있으며, 마을 서쪽 정안천 가에 요당(蓼塘)이라는 큰 못이 있는데, 이곳에도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조선 말기에는 이 부근을 요당변이라 불렀다. 이러한 전설에 따라 요룡...
-
갑사에서 중장리 삼거리까지 이어지는 길가 양쪽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우거진 나무 숲의 터널은 햇빛이 들지 않을 정도로 풍성한 녹음을 자랑한다. 숲은 장승이 자리한 곳에서 시작해 갑사까지 1㎞에 못 미치는 거리로 이어져 있는데 사람들은 이 숲을 ‘오리숲’이라고 부르고 있다. 예전의 오리숲은 약 2㎞에 달하는 거리로 지금보다 훨씬 우람한 나무들이 대단한...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 살던 효부. 본관은 창녕(昌寧). 아버지는 참봉 성언홍(成彦弘), 남편은 오몽렬(吳夢烈)이다. 슬하에 아들 오복립(吳復立)을 두었다. 병든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셔 효부라고 칭송되었으며 특히 호랑이에게 물려 간 시아버지를 구출해 낸 일화는 『충효등록(忠孝謄錄)』을 비롯하여 『공산지(公山誌)』, 『호서읍지(湖西邑誌)』, 『금고실기(今古實記)』, 『조선환여승람...
-
수백년간 열두대징이를 지킨 집안이 있다. 밀양변씨, 삼척진씨, 전주이씨가 순서대로 입향하여 중장리 일대에 자리잡았고, 훗날 동래정씨가 아랫동네인 하대리 넓은 땅을 소유하면서 세거하였다. 이 네 가문은 오늘날 대부분 마을을 떠나 후손을 찾아보기 힘든데, 지금까지 집안의 터전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윗장마을 진중용씨 부부이다. 중장1리 윗장마을에 입향한 삼척진...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덕구(德耉), 호는 묵재(默齋)이다. 할아버지는 직장 오극권(吳克權)이고, 아버지는 직장 오세현(吳世賢)이다.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참봉 성근(成近)의 딸이다. 오백령은 슬하에 4형제를 두었는데, 오준(吳竣)[1587~1666]은 벼슬이 판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명필로 유명하였다. 오단(吳端)[...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오백령의 사우. 이괄의 난 때 인조를 호종했던 오백령의 사우로, 영정을 봉안하던 것이 사우로 발전한 경우이다. 건립 시기가 명확하지 않으나 조선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공주에서 예산 방면으로 국도 32호선을 따라 약 7㎞ 정도 가다 보면 우성면소재지가 나오는데, 오백령 사우는 면소재지 직전...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아버지는 오한영(吳漢英)이고, 어머니는 공산이씨이다. 평소 효성이 남달라 부모 섬기기를 지성으로 하였다. 병든 어머니를 위해 매일 어머니의 인분을 맛보아 병세를 확인하고,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어 어머니에게 먹여 여러 날 목숨을 연장시켰다. 1782년(정조 6) 뛰어난 효행으로 통훈대부(通訓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서식하는 고양이과에 속한 포유동물. 벵골살쾡이의 아종으로 한국, 중국 북동부 및 우수리 강, 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하며 만주살쾡이라고도 한다. 일본의 쓰시마 섬에 서식하는 쓰시마살쾡이를 같은 아종으로 보는 견해와 독립 아종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몸길이는 약 55~90㎝, 꼬리 길이는 약 25~32.5㎝이다. 몸은 고양이와 비슷하지만 고양이보다 크고 불...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덕이(德而), 호는 수촌(水邨)이다. 아버지는 관찰사 오정원(吳挺垣)이다. 1656년(효종 7)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한 뒤 가주서(假注書)가 되었고, 사간원정언·세자시강원문학·사헌부지평·교리·이조정랑을 역임하였다. 1664년(현종 5) 사복시정(司僕寺正)·평안도암행어사를 지냈으며, 사헌부집의·응교·의정부사인을 거...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있는 오시수의 신도비. 신도비는 임금이나 종이품 이상 벼슬아치의 무덤 남동쪽의 큰길가에 세운 석비(石碑)를 말한다. 오시수 신도비는 두 기가 존재한다. 우측의 비는 1694년(숙종 20)에 세워진 것이고, 좌측의 비는 1694년(숙종 20) 갑술옥사에 연루되어 추탈되었던 오시수(吳始壽)[1632~1681]의 관작이 1784년(정조 8...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의 열녀. 본관은 진주(晋州). 아버지는 정자(正字)를 지낸 유명전(柳命全)이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몰락할 때, 남편인 오시원(吳始元)[1658~1673]이 정원로(鄭元老)의 옥사에 연루되어 사사되자 뒤를 따라 자결하였다. 후손인 오휘상(吳徽相)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명정을 받아 정려가 세워졌다. 정려각 내의 좌측에 걸려 있는 현판에는 명정의 연대...
-
당산제의 기본적인 준비가 이루어지는 것은 매년 연말 마을 총회때부터라 할 수 있다. 이때에 전 주민이 다 모이면 다음해의 당산제를 주관할 제주와 유사를 선출한다. 옛날에는 생기복덕을 가려서 엄하게 선출하였지만, 이제 마을 노인 중에 당산제의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을 골라 뽑고, 유사는 지목하되 총회 직후 당산제 당일까지 1~3개월간 부정한 일이 없을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모든...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익표(吳翼杓)는 1888년(고종 25) 6월 8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공주 영명학교와 서울 감리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 동경의 아오야먀[靑山]학원에 재학 중 1918년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귀국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충청남도 공주 고향에 내려와서 1919년 3...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익표(吳翼杓)는 1888년(고종 25) 6월 8일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공주 영명학교와 서울 감리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 동경의 아오야먀[靑山]학원에 재학 중 1918년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귀국하였다.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충청남도 공주 고향에 내려와서 1919년 3...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오인리에 있는 평야. 오인들은 의당면 서부 지역에서 우성면과의 경계 지대를 흐르는 정안천(正安川)에 의해 형성된 대규모 충적 평야이다. 의당면 서부 경계 지대와 의당면 북쪽과 접한 정안면의 중앙부를 각각 남북 방향으로 흐르는 정안천으로 인해 비교적 넓은 면적의 충적 평야가 연속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의당면 서부 지대를 흐르는...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에 속하는 법정리. 정안천(正安川)가에 있어 언개 또는 어인포(於仁浦)·오인포(五仁浦)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요당면(要當面)의 지역으로, 1914년 요당면 천변리(川邊里) 일부와 반정면(半井面)의 오류동(五柳洞) 일부, 정안면(正安面) 원대리(院垈里)의 일부가 통합되어 오인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오인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성. 오인리 산성은 발굴 조사를 통해 축성 시기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지표 조사를 통해 수습된 유물 중 백제시대 것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북쪽의 경우도 왕도 웅진을 향해 침입하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공주에서 천안으로 통하는 국도를 타고 1...
-
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의 열녀. 본관은 해주(海州). 조부는 지돈녕(知敦寧) 정효준(鄭孝俊)이며, 아버지는 판서 정익(鄭榏)이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남인이 몰락할 때, 남편인 오정창(吳挺昌)[1634~1680]이 정원로(鄭元老)의 옥사에 연루되어 사사되자 뒤를 따라 자결하였다.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에 정려가 있으며, 명정 현판은 정려각 내의 중앙에 걸려...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있는 오정창의 처 해주정씨 정려. 공주에서 청양 방면으로 국도 32호선을 따라 7㎞ 정도 가면 우성면소재지가 나오는데, 그곳에 조금 못 미쳐 도로 오른쪽에 단지리가 나온다. 오정창 처 해주정씨 정려는 도로변 왼쪽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이익공 건물이다. 정려각 내의 중앙에는 ‘열녀자헌대부예조판서겸지경연예...
-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경제인. 오지영(吳智永)은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군 신상면(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아흔아홉 칸짜리 저택을 소유할 정도로 공주 지역의 대표적인 대지주였다. 오지영은 조선 말기 광산의 경영을 통해 부를 축적한 것으로 보이며, 1930년대 말 기준으로 212㏊ 전(田)과 92㏊의 답(畓) 등 392㏊의 토지를 소유한 대주지였다. 오...
-
충청남도 공주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소학리(巢鶴里) 쪽에 용 못이 있어 옥룡골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동부면(東部面)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원동(水源洞), 대추동(大秋洞), 장기대(將棊臺), 강경동(江景洞)의 일부를 병합하여 옥룡리라 하고 주외면(州外面)에 편입되었다. 1938년 주외면이 폐지되어 공주읍에 편입되면...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 있는 산. 옥백산·억복산이라고도 불리며, 전국에서도 유명한 활석광산이 있던 산이다. 서반봉 꼭대기에는 돌로 만든 간결한 제단이 있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외지 사람들이 와서 가끔 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서반봉은 명우산 남쪽 산릉에 해당하는 봉우리로 명우산과 같은 화강편마암, 주입편마암, 안구편마암으로 이루어진 산봉우...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포옥리(浦玉里)와 상성리(上城里)에서 ‘옥(玉)’자와 ‘성(城)’자를 따 ‘옥성(玉城)’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성두면(城頭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성두면 포옥리·상성리·용산리(龍山里)·작동(作洞)·사동(寺洞)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옥성리가 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옥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절 터. 사역(寺域)에 해당되는 대지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윗단은 면적이 약 661㎡이며, 조선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편이 많이 남아 있다. 사역의 아랫단은 평지를 이루고 있는데, 연고 없는 무덤들이 있다. 옥성리 사지는 사역 내로 추정되는 범위에서 확인된 기와편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소규모의 사찰이 있...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옥성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토축 산성. 옥성리 산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축성 시기를 전혀 짐작해 볼 수 없다. 따라서 산성의 축조 배경도 현재로서는 잘 알 수 없다. 공주에서 청양으로 통하는 국도 36호선을 타고 서쪽으로 약 4㎞쯤 가면 우성면 상서리에 닿게 되는데, 여기에서 남쪽으로 난 소로를 타고 약 1.5㎞쯤...
-
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옥여(玉汝)이고, 호는 묵재(默齋)이다. 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기(李夔)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에 추증된 이정화(李廷華)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로 청송부사 권용(權鎔)의 딸이다. 1592년(선조 25) 강릉참봉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였고, 이어 이덕형(李德馨)·이항복(李恒福)...
-
양지머리 국물에 밥을 넣은 충청남도 공주시의 향토음식. 한국인은 주식으로 밥에 국물음식을 같이 먹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밥과 국이 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것을 장국밥이라 하고, 국과 밥이 따로 나오는 경우는 따로국밥이라고 한다. 장국밥 주로 5일장에 오는 외지의 상인이나 나그네에게 제공되었던 음식이다. 장국밥의 명칭은 국물을 끓일 때부터 간장으로 간을 한 국에 밥을 마는 것에서 기...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에 원전(元田)이라 불렀고, 땅에서 뜨거운 물이 나와 원천(源泉) 또는 온천(溫泉)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반포면(反浦面) 지역으로, 1914년 반포면 박정자(朴亭子)·사봉리(沙峯里)가 통합되어 온천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가 되었다. 온천리의 동부와 남부로...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대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완부부곡은 공주의 서쪽 4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완도부곡은 지금의 가랏골을 말하며, 이 마을은 노동·완동으로도 불린다. 가랏골이란 명칭은 마을 주변에 갈대가 무성한 데서 유래하였다. 강아지풀이 무성하여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마곡사에서 정안천으로 흘러...
-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제민천 상의 교량. 길이는 45m, 총 폭은 25m, 유효 폭은 14m, 높이는 8.4m이다. 경간 수는 3개, 최대 경간장은 15m이다. 상행과 하행은 각각 2차선이다. 왕릉교는 공주시의 구시가지를 남북 방향으로 종단하면서 흐르는 제민천(濟民川) 상에 건설된 여러 개의 교량들 중의 하나로 1991년 준공되었다. 왕릉교...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서식하는 네발나비과에 속한 나비. 날개 편 길이는 60~70㎜, 앞 날개는 길이 32~44㎜ 정도이다. 표범나비류 가운데 중간 크기의 종이다. 날개 아래쪽에는 은색 무늬의 변이가 다양하다. 수컷은 앞 날개 윗면에 검은색 줄무늬의 성표(性標)가 있다. 암컷은 수컷에 비하여 약간 크며 날개 폭도 약간 넓다. 암컷이 수컷보다 날개 바탕색이 진하며, 날개 아...
-
허임의 생애는 매우 드라마틱하다. 부모는 관노와 사비였는데, 특히 부친은 악공으로 당대 최고의 피리꾼이었으며, 만년에는 거문고에도 능했던 만능 음악인이었다. 또한 학춤을 잘 추었다. 가무(歌舞)의 재능을 동시에 겸한 것이다. 부모로부터 미천한 신분과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은 허임은 임진왜란이라는 변수로 인해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광해군을 모시고 침구의로...
-
충청남도 공주시 상왕동에 있는 노인 복지 시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여 노인 복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79년 시공하여 1980년 본관을 완공하였다. 이듬해인 1981년 7월 2일 개원하였다. 1985년까지 4개 동을 신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요 사업으로는 사회 심리 복지 사업, 지역 사회 조직 사업, 의료 서비스...
-
갑사에서 시작되는 익구곡 골짜기에는 도참설에 따라 수많은 명당 터가 있었다. 갑산소의 뒷산을 ‘뜸띠날맹이’ 라고 하는데, 뜸을 뜬 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명산과 명당터를 찾아 그 맥을 끊고 다닐 때에 갑산소 뒷산에 기인이 나온다는 자리를 찾아내서 불을 지폈다. 이 산줄기가 부여로 이어지는데 강한 지기가 흐른다 하여 뜸을 떠 기를 없애버린 것...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입석리에 전해지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놀이판에서 부르던 민요. 「외다리 가진 땅개비가」는 성인이 부르는 소리와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 두 가지가 있다.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는 발 고르기, 발 끼기, 한 커리 두 커리 등의 놀이에 반드시 필요한 노래였다. 이 놀이는 2인 이상이 발을 뻗어 서로 양발 사이로 엇갈리게 끼고 한 사람이 이 노래를...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대리에서 요강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공주시 우성면 동대리 통천보에 요강바위라는 바위가 있다. 옛날에 통천보에는 수구렁이와 암구렁이가 사이좋게 살았는데 암구렁이는 산 중턱 큰 바위 아래에 살았고, 수구렁이는 좀 떨어진 산 아래 바위 아래에서 살았다. 그들은 늘 다정하게 지냈는데, 하루는 구렁이보다 몇 배가 큰 지네가 통천...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명곡리에 있는 한국천주교 대전교구 유구성당의 공소(公所). 요골공소는 1866년 병인박해 이후 각지에서 모여든 신자들이 일군 교우촌(敎友村)에서 기원한다. 이 교우촌은 1883년 프랑스 선교사 두세(Doucet)가 충청도 지역을 순회할 때 최초의 공소 가운데 하나로 설정되었으며, 1884년 초대 공소회장으로 이화진이 부임하였다. 1897...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요랑(要郞)과 요동(要洞)·오룡동(五龍洞)에서 ‘요(要)’자와 ‘용(龍)’을 따 ‘요룡(要龍)’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요당면(要當面) 지역으로, 1914년 요랑·요동·오룡동이 통합되어 요룡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가 되었다. 요룡리의...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절 터. 의당면 요룡리에서 두만리로 넘어가는 요룡리 오룡동마을과 동쪽으로 인접한 산막골 계곡 상단부에 있다. 사역(寺域)으로 추정되는 범위는 약 331㎡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곳은 절 터로 전해지고 있지만 특별한 유구나 유물은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사역 내에서 소수의 백자편이 확인되었다. 요룡리 사...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에 지내는 마을 제사. 충청남도 공주시에는 많은 서낭제가 올려졌으나, 제3공화국 시절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면서 실시한 미신타파에 상징적인 대상이 되어 서낭당의 돌무지들이 대부분 사라졌다. 따라서 마을 단위로 올리던 서낭제들도 모두 사라지고, 오직 의당면 요룡리만 마을고사로 서낭제를 올린다. 요룡리 서낭...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 요룡리 오룡이라는 명칭은 옛날 마을 앞 못에 다섯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오룡동 남쪽 끝에는 욧골이라는 마을이 있으며, 마을 서쪽 정안천 가에 요당(蓼塘)이라는 큰 못이 있는데, 이곳에도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조선 말기에는 이 부근을 요당변이라 불렀다. 이러한 전설에 따라 요룡...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요룡리에 있는 농업관개용 저수지. 요룡리 오룡이라는 명칭은 옛날 마을 앞 못에 다섯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오룡동 남쪽 끝에는 욧골이라는 마을이 있으며, 마을 서쪽 정안천 가에 요당(蓼塘)이라는 큰 못이 있는데, 이곳에도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조선 말기에는 이 부근을 요당변이라 불렀다. 이러한 전설에 따라 요룡...
-
열일곱살에 중장리로 들어왔다. 그해가 1942년. 해방되기 직전이었다. 원래 고향은 충청북도 옥산이었는데, 선비로 사셨던 아버지는 나라가 일제치하에 들어가자 1934년에 고향을 떠나 10승지지로 알려져 있던 공주로 오셨다. 일곱 살부터 10년간 살았던 동네는 이인면 잣골로, 두 형이 이인에 있던 금광산에서 일을 하며 집안의 생계를 이어갔다. 형들 덕분에 어려서는 직접 고생하는 일...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가마 터. 요지(窯址)는 토기·질그릇·오지그릇·도자기·기와·벽돌·숯 따위를 구워내는 시설을 뜻한다. 공주 지역에도 이와 같은 요지 유적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백제의 왕도였던 공주에서는 왕실을 비롯한 민간인들이 사용하는 그릇과 기와 등을 다량으로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령왕릉은 구운 벽돌을 이용해 축조...
-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욕설을 이용하여 흥을 키우면서 부른 민요. 공주시에는 15수의 욕타령이 있었으며 지금도 5수의 욕타령이 전한다. 욕타령은 굿거리장단으로 창부 타령과 흡사하게 부르는 것, 노랫가락과 유사한 노래, 각설이 타령 속에 포함된 욕타령 등이 있다. 이중 「욕질」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욕타령」은 창부 타령재로 부르는데, 흥을 위해서 고함치듯 소리...
-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굴. 동굴의 바위에 용의 발자국이 있고, 용의 꼬리가 스친 자국이 있으므로 용굴이라 부른다. 용굴은 공주시 금학동 지막골 뒷산에 위치한다. 월성산(月城山)과 주미산(舟尾山)의 산줄기가 주변을 에워싼 산골짜기 오지에 해당한다....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용암리에서 발원하여 대교천으로 흘러드는 하천. 본류는 금강이고, 제1지류는 대교천이다. 하천의 지정 근거는 충청남도 88호 지방 2급 하천이다. 하천 연장 2.50㎞, 유로 연장 6.50㎞, 유역 면적 7.05㎢이다. 용두천은 의당면 동부에 있는 하천으로서 의당면과 장기면의 광범위한 지역을 흘러 금강으로 유입되는 대교천의 지류이다. 해발고도 약 8...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옛날 옛적 이곳이 바다였을 때 그 가운데 솟은 봉우리에서 아름다운 선녀가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낚시질 하던 선녀를 발견한 임금이 억지로 선녀를 궁으로 데리고 가자, 이에 노한 옥황상제가 선녀를 용으로 변하게 하였다. 임금은 선녀를 잊지 못하여 선녀가 앉았던 자리에서 늘 낚시질을 하였으며, 용이 된 선녀는 낚시...
-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면 추계리에서 용목동이라는 마을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용목동은 공주시 유구면 추계1리 양지의 뒤쪽으로 산을 가파르게 오르는 지점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양지는 항일의사가 태어난 곳으로 입구에는 황희 정승의 17세손인 항일 독립투사 황병주 선생의 유허비가 서있다. 마을 앞으로 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데, 금계산의 높은 봉우리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