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4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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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圭大師墓 |
영어의미역 | Tomb of Buddhist Priest Yeonggyudaesa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산5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남석,박범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7년 1월 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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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규대사묘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 삭제 |
성격 | 무덤 |
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 |
관련인물 | 영규대사 |
높이 | 3m |
둘레 | 23m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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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자 | 갑사 |
관리자 | 갑사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남도 기념물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영규대사의 묘.
[개설]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당(騎虛堂), 속성은 박씨이다. 공주 출신으로 갑사에 들어가 출가하고, 뒤에 휴정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영규대사는 선장(禪杖)으로 무예를 익히기도 했다. 영규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승병을 일으켜 승병 궐기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는 유학자 출신의 의병장인 조헌과 합세하여 1592년(선조 25) 8월 1일 청주성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이로써 조선군은 충청도 지역의 주요 거점중 하나인 청주성을 탈환할 수 있었다. 청주성을 탈환한 후, 1592년 8월 18일에 영규대사는 전라도 지역으로 향하는 왜군을 막기 위해 치러진 전투인 금산성 전투에서 항전하다가 부상을 입고 현재의 영규대사 정려비각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후 갑사의 승려들이 현 위치에 영규대사의 묘소를 마련하였다.
[위치]
계룡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계룡초등학교 남쪽 담을 따라 오른쪽으로 약 700m 가량 들어가면 유평리가 나오고, 이 마을의 남서쪽 해발 150m의 산 경사면에 영규대사묘가 조성되어 있다. 묘역의 입구에는 홍살문과 함께 영규대사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이 자리 잡고 있다.
[변천]
임진왜란 당시 영규대사가 계룡면 월암리 지역에서 사망하자 갑사의 승려들이 유평리에서 장례를 지냈고, 묘역은 밀양박씨 7대손인 박경진, 박경태가 묘비를 세우고 단장하였다. 이와 관련된 유적인 영규대사 정려비각도 1813년에 건립되었다. 영규대사묘는 1977년 1월 6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다. 매년 9월 25일에 마곡사에서 영규대사를 기리는 추모제를 열고 있다.
[형태]
영규대사의 현재 묘소는 봉분 높이 3m, 둘레는 23m이다. 봉분과 상석 사이에는 높이 87㎝, 폭 37㎝, 두께 14㎝인 묘비가 있고, 묘역의 경내에는 1994년 공주시와 공주사암연합회가 세운 비가 세워져 있다.
[금석문]
묘비의 앞면에는 ‘의병승장군영규지묘(義兵僧將軍靈圭之墓)’, 뒷면에는 ‘숭정후삼경오사월일립칠대방손박경진경태봉사(崇禎後三庚午四月日立七代傍孫朴景震景兌封祀)’라 새겨져 있어 1810년(순조 10) 박경진, 박경태가 묘비를 세웠음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