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산리도 다른 농촌마을들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마을의 유래와 내력을 알만한 자료들은 대부분 소실되었고 구체적인 사실들은 그 아픔만큼이나 미약하다. 일제강점기 내산리가 처한 현실은 다른 마을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일본의 수탈과 그로 인해 만성적인 기근이 초래된 데 대한 분노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강화된 공출은 농민의 불만을 가중시켰고 이에 대해...
한국전쟁이 남긴 상처는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숙명처럼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내산리의 경우 다행히 다른 마을에 비해 피해가 거의 없었다. 전쟁이 한창일 무렵 북한군은 새벽을 틈타 조용히 마을을 지나갔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산리에는 마을사람들이 퇴각하는 북한군장교를 생포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마을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가슴 아픈 일화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16세기 사림의 시대를 맞이하여 일찍이 사림화에 앞장섰던 부전동민들은 근대 신학문 수용에도 적극적이었다. 그리하여 부전 대동계에서는 일제시기인 1920년대에 장자동학교라는 강습소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이 학교는 약 3년간 유지되었다고 하는데, 이 때 신식교육 교사의 월급으로 산제답을 제외한 동답재산이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부전동 주민들은 이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 중에서 가장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