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산리는 과거 수백 년간 ‘뜸밭[浮田洞]’이라고 불리우던 큰 마을에 속해 있다. 뜸밭은 공주에서 예산(청양) 방면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가면 연미산 터널을 지나자마자 왼쪽에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 지역으로, 오늘날의 행정구역상으로는 우성면의 한천리·내산리·도천리·신웅리의 4개 리, 15개의 자연촌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전동의 남쪽 끝에는 연미산과 채죽...
부전동의 명칭을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는지 분명하게 알기는 어렵다. 다만 조선후기의 기록인 「부전대동계 문서」에서 부전동을 찾을 수 있다. 이 기록의 서문에 의하면 부전동에서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마을 계가 있었던 것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부전이라는 이름도 조선초기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을 이름이 뜸밭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형국론과 관련된 이야기 외에 두 가지...
기호지방의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이 사림화한 부전동 사족들은 16세기에 이르러 동계를 창설했다. 그 후 17세기에 들어서 양난, 자연재해, 이괄의 난 등과 같은 내우외환을 겪으면서 이 지역의 사족들은 하민(下民)을 포섭하는 상하합계(上下合契) 형식의 동계를 1663년에 중수하였다. 이때 중수된 동계자료는 지금까지 남아 있으며, 비록 원래의 모습에서 많이 변질되어 있기는 하지만, 부...
부전동대동계는 불과 50여 년 전만하더라고 마을의 풍속을 바로잡는 일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이러한 풍습을 ‘동네볼기’라고 불렀다. 구속력을 행사하는 법률보다 전통에 입각한 예법이 보다 강조되었던 것이다. 임일순 씨와 허은 씨의 증언에 의하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루는 동네 노인이 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자식의 도리는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이 마땅...
뜸밭골의 산신제는 40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대동계가 결성된 이래부터 지금까지 매년 정월 보름과 시월 초하루에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과연 현재의 산신제는 40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역사와 전통문화를 간직한 마을 내산리를 찾아 갔다. 흔히 산신제라 하면 산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옛 사람들은 산신령이...
산 속의 제사가 끝나고 날이 샐 무렵 마을에서는 특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마을 사람들이 집집마다 싸리문 밖에 나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두 손에는 시루떡이 놓여 있다. 이른 새벽 산새가 지저귀고 수탉이 목청을 뽐내는 시골 풍경과 그 속의 사람들을 상상해 보라. 이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종종걸음으로 이웃집을 오가는 사람들도 있다. 무슨 일일까. 왜 사람들은 떡을 들고...
부전동은 공주에서 예산(청양) 방면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약 4㎞로 정도 가서 왼쪽에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 지역으로 오늘날의 행정구역상으로는 공주시(公州市) 우성면(牛城面)의 한천리(韓川里)·내산리(內山里)·도천리(道川里)·신웅리(新熊里)의 4개리, 15개의 자연촌락으로 되어 있다. 본래 부전동은 ‘뜸밭 열두동네’라 하였던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크고 작은...
산제문은 제사를 지낼 때 음색을 갖추어 신명께 고하는 글이다. 문헌기록상 임진왜란 이전부터 부전대동계의 실시가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제사도 이와 비슷한 시기에 봉향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부전동에 전해오는 산제문은 기해년 음력 11월 겨울[己亥仲冬]에 미산(美山)이라는 사람이 베껴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산제문은 총 52구 208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