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교직생활을 마치고 내산리에 들어 온지도 벌써 20여년이 넘었다. 1985년 서산 운신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정든 교정을 떠나 내산리에 들어오신 윤을용 할아버지. 농촌의 하루라는 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무의미한 일상의 연속 같이 보이지만 여든이 넘은 노부부에게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감사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모른다. 하루도 변함없이 이렇게 규칙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선생님이란 호칭을 듣던 때가 벌써 5년 전이다. 지금은 손발에 흙 묻히고 몸에서는 땀 냄새나는 평범한 시골 아저씨의 모습이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우연찮은 기회에 친구와 함께 입시학원을 운영하게 되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당시 초등학교 교사셨고 큰 누님과 매형도 교직에 계셨다.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도 되었지만 그래도 최언평 씨는 알고 있는...
조각가 신동수씨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무척 좋아했었다고 한다. 만화책을 보지 말라는 부모님의 성화에도 불을 끄고 이불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볼 정도로 광적이었다. 물론 책장과 노트마다 그림으로 가득 차고, 그림을 그린다는 자체를 좋아하였다. 그 후 고등학교의 미술부 활동과, 대학에 진학하여 미술을 전공하면서 조각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대학 졸업 후 돌 작업에 대해 심취하여...
서울에서 섬유업을 경영하던 장영덕 씨는 1990년대 초 도심공장의 지방이전이라는 서울시 방침에 따라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중소기업이 어렵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잘됐구나 싶었다. 낙천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힘들 때면 어린 시절 시골생활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이겨내곤 했었다. 그러나 막상 적당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곳을 찾아 다녔지만 딱히 마음...
풍물이 좋아 내산리에 이사 온 엄철용씨. 그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미군부대를 따라다녔다. 한창 학교 갈 나이였지만 ‘살기 위해’ 힘겨운 홀로서기를 감당해야 했다. 미군부대를 따라 다니며 구두 만드는 기술을 터득했는가 하면 건축현장을 돌며 벽돌 쌓는 기술을 익혔다. 풍물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 배고픈 아이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힘닿는 데로 찾아 다녔다. 사람들이 모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