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B01010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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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대연 |
뜸밭골의 산신제는 40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대동계가 결성된 이래부터 지금까지 매년 정월 보름과 시월 초하루에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과연 현재의 산신제는 400여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역사와 전통문화를 간직한 마을 내산리를 찾아 갔다.
흔히 산신제라 하면 산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옛 사람들은 산신령이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고 믿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산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믿음을 전제로 지내는 산신제는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는 중요한 의례의 하나였다.
제사는 전적으로 부전대동계에서 주관하고 있으며 임원에는 존위(尊位)와 집강(執綱), 공사원(公事員), 장재유사(掌財有司), 별유사(別有司) 등이 있다. 지금의 대동계는 내산리를 비롯한 도천과 한천 사람들로 구성된 40여 명이 주축을 이루고 있지만 예전에는 부전동 12마을에 계원들이 있었으므로 지금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로 돌아가지 않고서 수백 년 전부터 지내온 제사의 원형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외길을 걸어온 마을 사람들이 있었기에 부전동대동계는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조상이 물려준 정신문화를 이어 계승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였다.
산신제의 절차와 형식은 시대적 변화와 맞물려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농촌사회에서 제사의 역할과 기능이 축소되면서 그 의미도 퇴색되었다. 게다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는 설 자리를 잃어갔다. 바쁜 일상과 농촌의 어려운 현실은 자연스레 준비과정의 간소화를 초래했다. 그렇다면 제사준비는 어느 정도의 시일이 필요했을까. 장재유사 허은 씨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듯 창밖을 지긋이 내다보았다. 아마도 무성산을 바라보는 듯했다.
“젊은 시절 동네 어르신에게 듣기로는 아, 그 때는 석 달 전부터 산제집에 들어가서 제사를 준비했었다고 하더라고...”
석 달이란다. 고작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제사를 위해 무려 석 달을 준비했다니 과연 정말 그랬을까. 그러면 90일 동안 뭘 하고 지냈을까. 의문은 금방 풀렸다. 제수준비를 남자들이 손수 장만했기 때문이다. 제사떡을 만들 때도 대동계 소유의 논에서 경작한 쌀을 사용했다. 이를테면 벼에서 떡이 되기까지의 모든 공정이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얼마나 더디고 번거로운 작업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여자는 부정탄다고 하여 산제집에 살던 여자도 내보내고 산제당 주변을 얼씬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남자들의 몫이었다. 그래서 제수에는 전이라든가 부침과 같이 당시 여자들이나 만들 수 있었던 음식은 없었다고 한다.
제사 음식은 대부분 자급자족했지만 마을에서 생산되지 않는 물품은 시장에서 구입했다. 이때 제수를 구매하는 사람이 지켜야하는 원칙이 있다. 제사에 쓸 물건의 가격은 깎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도 제수 장만을 위해 시장에 가면 절대로 가격을 깎는 법이 없다. 또한 물건을 놓았다 들었다 이리저리 고르는 법도 없었다. 한 눈에 적당한 물품을 정하면 그대로 부르는 값을 치르고 가져왔다고 한다.
이러한 준비 과정이 언제부턴가 간소화되기 시작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제사를 이어 나갈 젊은이들이 하나 둘 농촌을 떠나갔고 계원의 감소는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장재유사 허은 씨는 이렇게 말한다.
“한 50년 전부터인가 한 달 이상 산제집에 들어가 있는 것은 못 봤어요.”
그러나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보릿고개가 존재했던 어려운 시절에도 제사를 지내기 위해 꼬박 한 달의 정성을 기울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일주일 전부터 산제집에 들어가 매일 목욕제계하고 제당을 청소하며 제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일주일 동안 바깥출입을 삼가고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했던 것이다.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경비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1985년경부터는 3일로 단축하였고 요즘은 하루 전에 올라가서 산제당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밤 0시가 되면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지금도 제사 지내는 시간만은 정확하게 지켜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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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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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각 - 현판
제의(祭儀)는 분향→참신→초헌→하헌→종헌→독축→첨작→사신→분축→음복 순으로 이루어졌다. 지금도 예전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 삼헌관으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제주는 장재유사가 맡고, 초헌은 상재유사, 첨작은 별유사가 각각 집행한다. 초헌 다음에 둘째 잔을 올리는 아헌부터는 참사자 중 연장자순으로 잔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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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리 - 산신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