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B01010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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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대연 |
부전동대동계는 불과 50여 년 전만하더라고 마을의 풍속을 바로잡는 일을 주관하기도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이러한 풍습을 ‘동네볼기’라고 불렀다. 구속력을 행사하는 법률보다 전통에 입각한 예법이 보다 강조되었던 것이다. 임일순 씨와 허은 씨의 증언에 의하면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루는 동네 노인이 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자식의 도리는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이 마땅한데 부모가 자식 때문에 울고 있는 상황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대동계가 나서서 사건의 전말을 조사했다. 그리고 불효의 경중을 헤아려 마을 사람들을 모두 공회당에 소집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효자를 공개적으로 심판하기 위해서였다.
존위는 불효자를 꽁꽁 묶어 무릎을 꿇게 하고 호통을 친다. 야외에 마련된 임시 집회 장소지만 공개법정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민들은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존위의 냉랭한 질문은 계속되었다. 불효자는 존위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허허, 자식이 부모에게 지극 정성으로 봉양하지는 못할지언정 부모를 울게 하였으니 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만일 이때 거짓으로 자백을 하거나 뉘우침을 보이지 않으면 마을에서 영영 추방을 당할 수도 있었다. 당시 공회당에 나와 불효자를 지켜보았던 마을 사람들은 그 아들이 말 한 마디 못했었다고 한다.
“잘못을 시인하지 않으니 다시는 우리 마을에 이같은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매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을 사람들은 불효자에게 매질을 가했다. 지금은 집단폭행에 다름 아니지만 1950년대만 하더라도 내산리에는 동네볼기가 있었다. 임일순 씨는 이후로 우리 마을에서 동네볼기를 본 적은 없다고 한다.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산리에는 부모를 울게 하는 불효자가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