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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 살았던 류당근의 후손이 소장한 조선 후기 과거시험 답안지. 조선 후기 류당근(柳唐根)[1816~1886]이 선향인 용인으로 낙향할 때 가지고 온 문서로 현재 증손 류만희(柳萬熙)가 소장하고 있는 과거시험 답안지. 조선시대 과장에 나아가 과거시험을 본 후 장원이 아닌 경우는 그 답안지를 응시자에게 돌려주었다. 본 답안지는 소과, 대과 두 가지의 답안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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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순조 1) 간행된 여류학자 사주당 이씨의 태교서. 사주당 이씨(師朱堂 李氏)[1739~1821]는 여류문장가이며 박학으로 당세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유한규(柳漢奎)와 혼인하여 1남 3녀를 두었는데, 34세 되던 해에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매산리에서 출산한 아들이 유희(柳僖)[1773~1837]이다. 유희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며 음운학자로서 독창적인 방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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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갈담리 선사유적은 세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갈담리 540-4[독점로113번길 18-15] 일원의 유적을 갈담리 선사유적1, 갈담리 580-14 일원을 갈담리 선사유적2, 갈담리 산8[갈월로 33] 일원을 갈담리 선사유적3으로 구분한다. 갈담리 선사유적1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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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강세황의 서첩.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은 조선 후기 영조·정조 연간의 문인이자 서예가이며 뛰어난 감식안을 가진 서화 평론가로 시·서·화 삼절로 알려져 있다. 당대 최고의 화원인 김홍도(金弘道)·신위(申緯)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강세황 행초 표암 유채』는 끝에 경술년(庚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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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생원. 강숙지는 조선 중기 중종 때의 생원으로서, 용인현에서 살았는데, 도둑 누명을 쓰고 발가락이 뽑히는 형장으로 죽임을 당하였다. 더불어 그 아내도 결박당하여 감금되었다가 풀려났다. 이에 명확히 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신(武臣)인 포도장(捕盜將) 이종례(李宗禮)가 함부로 형장을 써서 무고한 사람을 죽게 하였다며 조정에서 이종례를 추고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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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었던 시장. 개천장은 양지와 이천의 경계에 위치했던 장시이다. 개천장은 설시(設市) 연대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신설되었다가, 경기도 이천 오천장의 설시와 함께 이설·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개시일은 4일과 9일의 5일장이었다. 개천장에서 거래되었던 물품은 쌀·면포·마포·과일·어염·연초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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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고구려 때 용인의 지명은 구성(駒城)이었고, 멸오라는 별칭이 있었다. 신라 경덕왕 때 전국 군현을 정비하면서 그 명칭을 거서로 바꾸고 한주(漢州)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구성은 본래 큰 성 또는 높은 성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데, 거서도 크다는 뜻이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는 그 개칭 시기에 대해서 757년(경덕왕 16)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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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건지산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내지봉수(內地烽燧). 건지산 봉수는 동쪽으로 안성 망이산 봉수(직선 거리 23㎞), 서쪽으로 용인 석성산 봉수(직선 거리 15.5㎞)와 교신하였다. 봉수가 위치하는 건지산은 산 정상의 중심부가 약간 움푹한 채 남북으로 길게 마안형(馬鞍形)의 능선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는 석성산 봉수가 마주 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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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경종지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이 의주까지 몽진하는 데 참여하였다. 1597년(선조 30) 임실의 수령으로 재직 중, 이 고을이 새로 병화를 겪어 흩어진 백성들을 소집하고 창고 곡식을 수습하는 일을 결코 예사 사람에게 위임할 수 없는데, 수령된 자의 사람됨이 용렬하여 탕패한 고을을 다스리기에 적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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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시와 편지를 모은 첩(帖). 1680년(숙종 6)에 홍수주(洪受疇)가 경북 영덕으로 떠날 때 친구들이 이별을 아쉬워하며 장도를 기원하기 위해 지은 증별시(贈別詩)와 편지들을, 조선 후기에 해주오씨 문중에서 묶은 것이다. 첩장(帖裝)이며, 필사본이다. 표제는 ‘고간(古簡)’으로, 크기는 가로 28.7㎝, 세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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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 터. 용인시 수지구 고기2리 관음사에서 서편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광교산에서 뻗어 내린 나지막한 구릉의 끝에 위치한다.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백자는 비교적 양질의 백토를 사용했으며, 유색은 회백색을 띠고 굵은 모래를 받쳐 포개어서 구웠다. 문양 장식은 전혀 없으며 그릇 종류로는 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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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용인 고기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세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용인 고기동 유물산포지1·2·3으로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분당에서 국지도 23호선을 따라 경기도 성남시와 용인시의 시계가 지나는 동원교를 건너 분기되는 지방도 14호선으로 진입하여 3.5㎞ 정도를 가면 낙생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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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고당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으로 넘어가는 국도 304호선변의 안골마을 뒤쪽, 해발 170m 정도의 야산에 위치한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용인시 문화유적 지표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으로, 많은 양의 백제 토기편들이 채집되었다고 한다. 채집된 토기편들은 외면에 격자문과 승석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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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의 역사. 고려는 918년 왕건(王建)의 건국 이래 1392년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이며 현재의 경기도 용인 지역은 고려시대에 용구현(龍句縣)으로 지칭되었다. 고려는 통일 전쟁 기간부터 군현의 주속 관계를 통해 지방을 지배하였다. 통일을 이룬지 4년이 지난 940년(태조 23)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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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고림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유물산포지. 고림동 유물산포지는 두 곳에 분포하고 있는데 각각을 고림동 유물산포지1, 고림동 유물산포지2로 구분하고 있다. 고림동 유물산포지1은 경기도 용인시 고림동 758-1답[고림로110번길 23-21] 일원에 위치한다. 해발 222m의 봉두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간 능선 사이의 곡간 경작지 일대에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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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기흥 IC에서 동쪽으로 국지도 23호선을 따라 500m쯤 나아가 나타나는 ‘강동냉장’의 맞은 동편 구릉에 자리한다.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6점이 채집되었다. 채집된 빗살무늬토기의 바탕흙은 다량의 가는 돌가루에 약간 굵은 돌가루가 조금 섞인 점토질이다. 또 토기의 표면은 매끈하게 다듬었으나 내면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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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고매동 유물산포지는 세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각각을 고매동 유물산포지1, 고매동 유물산포지2, 고매동 유물산포지3으로 구분하고 있다. 고매동 유물산포지1은 공세천 변의 신고매 주변과 배후의 구릉지 일대에 위치하며 넓은 범위에 걸쳐 유물이 산포되어 있다. 고매동 유물산포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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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무덤. 우리나라에서 고분을 비롯한 매장 유적 중 가장 이른 것은 강원도 석회암 동굴 지대의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인 흥수굴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매장 유적은 각 시대별로 변화하였다. 신석기시대의 패총 유적에서 발견되는 매장 유구는 주로 토광을 만들고 여러 가지 치레걸이로 장식한 시체를 안치하는 간단한 구조였다.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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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고안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고안리 대주천 마을에서 남동쪽 진위천 방향으로 뻗어나간 나지막한 구릉 말단부에 위치한다. 채집된 유물들은 외면에 사격자문을 전면 타날 시문한 후 횡침선을 돌린 연질의 백제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지표에 노출된 토양이 마사토인 점으로 보아 유적의 상당한 부분이 유실되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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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고려 이래 조선 초기까지 특수한 행정 단위의 하나로 기능했다. 일반적으로 군현으로 삼아 운영하기에 인구와 토지가 적은 곳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태종실록(太宗實錄)』권28에, "용구(龍駒)와 처인(處仁)을 병합하여 용인(龍仁)으로 하고 광주(廣州) 임내인 주계(朱溪)·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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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묘제 중 하나. 고인돌은 작은 돌이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에서 유래하였다. 예부터 고엔돌·되무덤·도무덤 등으로 부르거나 거북바위·독바위·칠성바위·마귀할멈 바위 등으로 불려진다. 대부분 강이나 바닷가 옆의 평지, 구릉 지대에 있으며 드물게는 산기슭이나 산마루에 있는 경우도 있다. 기능에 따라 제단 고인돌과 무덤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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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곡부). 자는 희성(希聖)·응성(應聖), 호(號)는 휴암(休巖). 창원공씨의 시조인 공소(孔紹)의 5대손이자, 공숙(孔俶)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공의달(孔義達)이다. 어머니는 죽산 박원인(朴元仁)의 딸이며, 처는 파평 윤영세(尹永世)의 딸이다. 공서린은 1507년(중종 2) 진사시를 거쳐 같은 해에 급제하였다. 낭관과 사간원 정언으로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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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공세동 유물산포지는 6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데,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 630구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1, 162전 일대를 공세동 유물산포지2, 291전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3, 324-2전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4, 81전 일원을 공세동 유물산포지5, 602유 일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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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정옥형과 아들 정응두의 신도비. 정옥형은 1513년(중종 8)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검열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쳤다. 대사간, 대사헌으로 있을 때에는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는 데 힘썼으며, 당시 김안로의 권세가 높아지자 조정을 떠나 외지를 돌며 민심을 두루 살피기도 하였다. 1544년(중종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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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원(곡부). 자(字)는 사홍(士弘)·성지(星之). 공서린(孔瑞麟)의 9대손이며, 공원인(孔源仁)의 아들이다. 공윤항은 가세가 몹시 빈곤하였으나, 1792년(정조 16) 정조가 초계문신(抄啓文臣)을 직접 시험하는 과강(課講)과 일차유생의 전강을 실시할 때 학문이 뛰어나다고 해서 왕명으로 특별히 전시를 볼 수 있었다. 1794년 알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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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무신. 1576년(선조 9) 전라도우수사, 1578년 경상도병마절도사, 1591년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방어사로서 용인·금산(錦山) 전투에 참가하였으나 패주, 사헌부로부터 전란 이후 단 한 번도 용감하게 싸움을 못한 졸장(拙將)이라 하여 탄핵을 받았다. 1595년 우변포장(右邊捕將)·행호군(行護軍)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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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현풍. 호는 석천(石川). 시호는 문헌(文憲). 아버지는 밀직부사를 지낸 곽돈효(郭敦孝)이며, 어머니는 조운경(趙雲卿)의 딸이다. 곽원진은 문과에 급제하고 1306년(충렬왕 32) 총랑(摠郞)으로서 원 황제의 생일을 축하가기 위한 성절사로 파견되었다. 당시는 고려가 정치적으로 몽고의 간섭을 받던 시기였다. 여몽관계가 중요했던 시기에 곽원진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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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경기도 용인 광교산에서 벌어진 청나라 군대와의 전투. 1637년 1월 4일부터 6일까지 전라병사 김준룡이 광교산에서 청나라 장수 양굴리[楊古利]가 이끄는 청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이다. 1636년 12월 1일, 청나라 태종이 조선을 침략하자 인조는 세자와 백관을 대동하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이후 인조는 1만 3,000여 명의 군사로 남한산성을 지키도록 하고 도원수·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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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에 있는 백제의 취락 유적. 구갈동 유적은 경기개발공사에서 시행한 구갈3 택지개발 지역에 위치하며 기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이후 삼국시대의 원형 수혈유구들은 현 위치에 보존되었으며, 나머지 유구들은 조사 후 모두 훼멸되었다. 이 지역은 조사자에 의해 편의상 A, B, C 세 개 지역으로 나뉘어 보고되었는데,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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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뗀석기를 사용하던 시기. 인류가 연모를 사용한 것은 지금부터 약 300만 년 전이며, 이 시기부터 빙하가 물러간 약 1만년 까지를 구석기시대라고 한다. 전기 구석기는 인류가 연모를 처음 사용한 시기부터 약 12만 년 전의 마지막 간빙기가 시작되는 시점까지다. 중기 구석기는 약 12만 년 전부터 3만 5천 년 전까지이다. 이때 사람들이 만든 연모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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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고구려의 행정 구역. 17세기 중엽 편찬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는 본래 백제 땅이었으나 고구려가 빼앗아 구성현으로 삼았다고 서술되어 있고, 19세기 중엽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본래 백제의 멸오였는데 후에 구성으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구려가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조령과 죽령 지역까지 점령하게 됨에 따라 한강 유역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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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대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며 관수 물자를 운반하던 교통통신 기관 중 하나로, 조선 초기에 경기도 용인 지역에 금령역(金嶺驛)과 함께 설치되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18세기 중엽)·『여지도서(輿地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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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으로 유배된 문신. 황보인(皇甫仁)[?~1453]의 사위이며, 홍원숙(洪元淑)의 동서이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한명회(韓明澮)[1415~1487] 등과 함께 문종의 유지를 받드는 황보인·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자 권은은 용인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의금부(義禁府)에서 백호(百戶)를 보내어 쫓아가서 체포하여 변방에 안치하도록 건의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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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경하(景賀), 호는 창백헌(蒼白軒)·남애(南厓)·계형(繼亨)이다. 증조부(曾祖父)는 권항(權伉), 할아버지는 권속(權謖), 아버지는 권수(權𢢝)이다. 1710년(숙종 36) 생원(生員)이 되고, 1713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홍문관에 등용되어 정자(正字)가 되었다. 1716년 검열, 이듬해 대교(待敎)가 되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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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삼리 장계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 백암면소재지에서 지방도 329호선을 따라 안성 삼죽 방향으로 가면 근삼교를 지나기 전에 장계마을이 있다. 고인돌 유적은 장계 뒷산의 능선(해발 118m)에 위치한다. 유적 주변의 지세는 동쪽에 청미천이 흐르고 이 물줄기를 따라 비교적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확인된 3기 중에 1호의 덮개돌은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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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산포지. 근창리 유물산포지는 네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근창리 유물산포지1, 근창리 유물산포지2, 근창리 유물산포지3, 근창리 유물산포지4로 구분하고 있다. 근창리 유물산포지1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근창리 새터말의 야산 서사면상 경작지 일대에 형성되어 있고, 근창리 유물산포지2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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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는 조선시대 표시석. ‘금양(禁養)’이란 ‘풀과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여 숲과 나무를 기르는 일’을 의미하므로 금양계(禁養界) 표석은 땔감 채취 등을 금지하는 구역임을 알리기 위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뒷면에는 구역의 범위도 명기되어 있다. 머리 부분이 둥글게 처리된 원수형(圓首形) 비석으로 장방형 대리석제 받침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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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금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금어리 유물산포지는 경안천의 지류인 금어천을 따라 난 도로를 타고 북동쪽으로 가다보면 금어리 어매실마을에 이르게 되는데, 이 어매실마을의 남쪽에 길게 뻗은 구릉지에 형성되어 있다. 청동기시대 무문토기편과 통일신라시대의 회색 경질토기호와 완 등의 조각이 채집되었다.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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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의금부 관원들의 계첩. 『금오계첩(金吾契帖)』은 조선 후기에 의금부에서 근무하던 관원들의 모임을 그림과 글로 기록한 계첩(契帖)으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 있는 해주오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1817년(순조 17) 8월에 의금부에서 근무하던 10여 명이 모여 계회(契會)를 마련하고 이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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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8년(인조 16) 김육이 기묘사화와 관련된 인물들의 전기를 모아 간행한 책. 『기묘록(己卯録)』은 본래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화를 당한 김정국(金正國)의 『기묘당적(己卯黨籍)』과 기묘팔현(己卯八賢)의 한 사람인 안당(安瑭)의 손자 안로(安璐)가 저술한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기묘당적』은 기묘사화 때 화를 당한 인물 94인의 생년·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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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의 지방세력가. 기훤(箕萱)은 신라 말기 안성·죽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지방 세력가로 가계나 출생에 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없다. 진성여왕 때 실정이 겹치고 재해가 잇달아 일어나던 가운데 국내의 여러 주와 군에서 공물과 조세를 바치지 않으므로 국고가 비어 재정이 궁핍하였다. 이에 신라 조정이 공부(貢賦)를 독촉하자 889년(진성여왕 3) 전국에서 이에 저항하는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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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김덕붕의 선정비. 1571년(선조 4) 양지현감에 부임하여 1576년(선조 9)까지 재임한 김덕붕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용인시 양지면 남곡리의 용동중학교 정문 못 미쳐 동아일레콤 담장에 남향(南向)으로 서 있다. 비신과 이수가 일석(一石)으로, 비좌는 임시로 마련하여 비신을 고정하고 있다. 비의 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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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대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며 관수 물자를 운반하던 교통통신 기관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되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18세기 중엽)·『여지도서(輿地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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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 김범문이 용인 지역을 공격하였던 사건. 김범문이 한산주를 공격할 때 한산주의 직할 영현인 거서현이 그 직접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다. 거서현은 지금의 용인 지방으로 비정되고 있으므로 김범문의 난을 당하여 직접적인 전투를 치룬 정병들이 바로 용인 출신의 장정들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범문의 할아버지 김주원은 원성왕과의 왕위 계승 경쟁에서 패하여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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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백심(伯深), 호는 운소(雲巢). 경은부원군(慶恩府院君) 김주신(金柱臣)의 손자이며, 형조판서 김효대(金孝大)의 아들이다. 김사목은 문음(文蔭)으로 관직에 나간 뒤 김제군수를 거쳐, 1772년(영조 48)에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홍문관 부교리, 보덕(輔德), 승정원동부승지를 거쳐 1774년에는 승지가 되었다.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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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사백(斯百), 호는 식암(息庵)이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육(金堉)이고, 아버지는 병조판서 김좌명(金佐明)이다. 1657년(효종 8) 진사가 되었으며,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장원하여 전적이 된 후 이조좌랑·정언·지평·부교리·수찬·헌납·교리 등을 차례로 역임하고, 1674년 겸보덕(兼輔德)에 이어 좌부승지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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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김호(金灝)이다.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였고, 1696년(숙종 22)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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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지비옹(知非翁)이다. 할아버지는 한성소윤(漢城少尹) 김근(金近), 아버지는 첨정 김훈(金薰)이며, 어머니는 진천(鎭川) 송씨 송학(宋翯)의 딸이며, 부인은 부사 이탁(李鐸)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다음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여러 관직을 거쳐 수찬, 사헌부지평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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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구경(久卿), 호는 척약재(惕若齋). 아버지는 대광(大匡) 김정(金鼎)이다. 아들은 김처(金處)와 김허(金虛)이다. 아들 김처는 아버지가 명나라에서 죽자 미쳤으며, 김허는 벼슬이 부정(副正)에 이르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1371년(공민왕 20)에 실시된 문과에 급제하면서 관로로 나섰다. 이후 전교주부(典敎注簿)가 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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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도상(道常), 호는 기오당(寄傲堂). 충정공 김약시(金若時)의 후손이다. 김우형은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1657년 정언(正言), 1661년 헌납·사간, 이듬해 집의·홍문관교리를 지냈고, 시독관으로 임금 앞에서 통감강목과 대학을 강론하였다. 1669년 좌부승지, 이듬해 도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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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계림군 김균(金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찰방 김성진(金聲振)이다. 처는 정응규(鄭應奎)의 딸이다. 1613년(광해군 5) 성균관에 있을 때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모하자 몇몇 유생들과 함께 이를 비판하는 복합상소를 올려 광해군의 미움을 받아 하옥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1627년 전주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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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있는 김유의 초상화. 단령(團領)과 오사모(烏紗帽)를 갖춘 전형적인 관복본의 초상화로 얼굴과 몸체 모두 좌안 9분면이다. 화면 왼쪽 상단에 ‘검재김선생화상 육십사세시사(儉齋金先生畵像 六十四歲時寫)’라고 표제를 종서(縱書)하여 검제 김유의 나이 64살 때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머리에는 높은 사모를 썼으며, 짙은 녹색의 단령을 입었다. 두 손은 공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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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회정당(晦靜堂)이다. 증조부는 김덕수(金德秀), 할아버지는 김비(金棐), 아버지는 김흥우(金興宇)이고, 외조부는 조희맹(趙希孟)이다. 아들은 김좌명(金佐明), 손자는 김석주(金錫胄)이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급제하고 이후 성균관에서 수학했다. 성균관 유생의 신분으로 16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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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김이중의 선정비. 1782년(정조 6) 용인에 부임하여 1783년(정조 7)까지 재임한 김이중의 선정을 기념하여 건립되었다. 옛 용인현 관아가 소재하였던 치소의 관문이자 수도 한양으로 통하던 삼남대로변인 현재의 지방도 393호선 도로변에 인접하여 다른 비석들과 함께 남향으로 서 있다. 비좌와 비신 및 팔작지붕 옥개석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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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또는 소미산인(少微山人). 일찍이 용인 탁영봉(濯纓峰)의 한림대에서 김구(金龜) 등과 학문을 하였다. 그에 따라 봉우리도 김일손의 호를 따 탁영봉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1486년(성종 17)에 생원이 되었고, 같은 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가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가 되었다가 곧 정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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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학광(學光). 증조는 지중추부사 김영유(金永濡), 할아버지는 첨정 김훈(金薰), 아버지는 김세필(金世弼)이며, 외조는 이탁(李鐸)이다. 김저는 1539년(중종 34) 문과에 급제하고 홍문관 박사, 이조좌랑을 지냈다. 1545년(명종 1)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중형을 받고 안동으로 유배되었으며, 1547(명종 2)년 벽서(壁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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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광교산 전투에 참여한 무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수부(秀夫). 할아버지는 전설사별좌(典設司別座) 김영(金瑛)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두남(金斗南)이며, 어머니는 도호부사 김희필(金希弼)의 딸이다. 1608년(선조 41)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황해도·경상도·함경도의 병영에 근무하였다. 1617년(광해군 9) 인동부사가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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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숙진(叔珍), 호는 눌암(訥庵). 조부는 김려(金濾), 아버지는 형조참의 김언침(金彦沈)이다. 1567년(명종 22)에 진사가 되고, 1568년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1570년에 검열(檢閱)이 되고, 이후 대교·봉교·전적·형조정랑·검상·사인·이조정랑 등의 관직과 지평·집의·정언·헌납·사간·수찬·교리·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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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의 금령 전투에서 승리한 의병장. 본관은 언양. 자는 사중(士重), 호는 건재(健齋)·극념당(克念堂)이다. 증조부는 김응복(金應福), 할아버지는 김식(金湜), 아버지는 김중기(金重器)이며, 외할아버지는 이용(李蓉), 부인은 박덕창(朴德昌)의 딸이다. 1573년(선조 6)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가 되고, 1578년 임실현감(任實縣監)을 지냈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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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서흥(瑞興). 자(字)는 여문(汝文), 호(號)는 창죽헌(倉竹軒)이다. 아버지는 충무위 부사과 김린(金燐)이다. 죽산부 양지현(陽智縣) 월노동(月老洞)[현재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월향리]에서 태어났다. 1555년(명종 10) 6세 때 서당(書堂)에서 글을 깨우쳐 즉흥시를 지었으며, 9세 때 부친상을 당하여 그 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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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도원(道源).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거주하였다. 1759년(영조 35) 정시(庭試) 문과에 급제하였고, 벼슬은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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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에서 활동한 의병. 본관은 서흥(瑞興). 할아버지는 충무위 부사과 김린(金燐)이고, 아버지는 김충수(金忠守)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아버지 김충수가 4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농민을 규합해 의병을 조직하여 10월 말경에 죽산(竹山)의 청용산(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옥신리 경계)에 주둔하고 있던 왜장(倭將) 후쿠시마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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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평숙(平叔). 1735년(영조 11) 식년시(式年試)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찰방(察訪)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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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중(子中), 호는 낙애(樂涯). 1691년(숙종 17) 증광시(增廣試) 문과에 갑과(甲科) 제2위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지사(知事)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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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인 박세채의 초상화. 관복본은 녹색 단령(團領)을 입은 전신 교의 좌상의 정면상이고, 편복본은 동파관에 도포를 입은 전신 정면 입상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얼굴 모습은 거의 흡사하여 편복본은 관복본의 얼굴을 보고 모사한 것으로 보인다. 두 점 모두 표제나 명문은 보이지 않아 제작 경위나 작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관복본은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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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일소(逸少), 호는 일호(一濠), 초명은 영시(永詩). 숙종 연간의 문신 남구만(南九萬)의 5대손이며, 아버지는 부사 남진화(南進和)이다. 부인은 심대항(沈大恒)의 딸인 청송(靑松)심씨[1808~1848]이다. 자식은 2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남주원(南周元), 남시본(南蓍本)이나, 남주원은 백부인 남영서(南永書)에게 양자로 들어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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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 터. 남곡리 은니골 골짜기 속에 집 터를 닦기 위해 평탄 작업을 한 곳에서 발견된 가마 터로 정확한 유적의 위치와 범위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발굴조사는 되지 않은 상태이다. 남곡리 요지에서 백자편·요도구·가마벽편 등이 발견되고 있다. 백자는 대접과 접시 종류가 대부분이며 문양은 전혀 없다. 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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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또는 미재(美齋). 개국공신 남재(南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남식(南烒)이고, 아버지는 현령 남일성(南一星), 어머니는 권박의 딸이다. 송준길(宋浚吉)[1606~1672]의 문하에서 수학, 1651년(효종 2)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56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가주서·전적·사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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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의 남춘희가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남구만의 초상화. 남구만 초상은 현재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갈담리 파담마을에 사는 남구만의 후손인 남춘희가 소장하고 있다. 본래 남구만 초상은 모두 5본이 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충청도 해미(海美) 영당(影堂)에 임진년(壬辰年)에 봉안하였다는 초상은 실전되었다.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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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도사(道士).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격암(格庵)이다. 남사고는 일찍이 이인(異人)을 만나 공부하다가 진결(眞訣)을 얻어 비술(秘術)에 정통하게 되었고 앞일을 정확하게 예언하기도 하였다. 명종 말기에 이미 1575년(선조 8)의 동서분당(東西分黨)을 예언하였고, 1592년(선조 25)에 백마를 탄 사람이 남쪽으로부터 나라를 침범하리라 하였는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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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에 있는 백제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남곡초등학교에서 남사면사무소로 가는 지방도 333호선을 타고 남쪽으로 가다 보면 후촌교를 건너게 되는데, 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오목재마을이 나오고, 남산봉 유물산포지는 이 마을의 뒷산인 해발 104m의 나지막한 남산봉 정상에 자리한다. 동쪽으로는 방아천, 서쪽으로는 봉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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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자빈(子彬)이다. 남재(南在)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승지 남언순(南彦純)이고 아버지는 부호군 남타(南柁)이며, 외조는 장사랑 현덕형(玄德亨)이다. 남구만(南九萬)의 조부이다. 부인은 연산 서주(徐澍)의 딸이다. 남식은 문음(門蔭)으로 집현전참봉을 배수한 이후, 사옹원봉사·장악원직장·사복시주부를 지냈다. 외직으로 무주현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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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에 있는 조선 중기와 후기의 남양홍씨 집안의 무신 묘역. 남양홍씨 시정공파 무관 묘역에 있는 무신들은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다. 임진왜란 때 수원 방어에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으로 책훈(策勳)된 홍제(洪霽), 홍제의 증손자로 1655년(현종 6)에 무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의 위계에 올랐던 홍하창(洪夏昌), 1668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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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개국공신.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지영광군사(知靈光郡事) 남천로(南天老), 아버지는 검교시중(檢校侍中) 남을번(南乙蕃)이며, 형은 영의정 남재(南在), 아우는 우정승 남지(南贄)이다. 1374년(공민왕 23) 성균시에 급제, 1380년(우왕 6) 사직단직(社稷壇直)이 되고 이어서 삼척지군사(三陟知郡事)가 되어 왜구를 격퇴,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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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의령남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남은·남재 관련 고문서. 「남은유서분재기부남재왕지(南誾遺書分財記附南在王旨)」는 조선의 건국공신인 남은(南誾)[1354~1398]의 재산 상속문서인 분재기(分財記) 형식의 유서 한 점과 남재(南在)[1351~1419]에게 내려진 왕지(王旨) 한 점을 말한다. 남은은 조선을 건국할 때 공을 세워 1등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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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무신. 기개와 호기의 대장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로 출생지가 분명하지 않으나, 『용인읍지(龍仁邑誌)』 ‘충효열 인물’ 조항 중에 “용기가 매우 뛰어났으며 이시애(李施愛)를 토벌, 건주위(建州衛)를 정복하는 등 큰 공을 세웠다.”라는 기록이 있어 용인 출신임을 가늠하게 한다.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태종의 부마인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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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 자는 중휘(仲輝), 호는 의졸(宜拙). 좌의정 남지(南智)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강원도 평강현감 남식(南烒)이다. 어머니는 연산서씨 증참판 서주(徐澍)의 딸이다. 형은 남일성(南一星)이다. 부인은 청송심씨 감역 심지함(沈之涵)의 딸이다. 아들이 요절하여 남수만(南受萬)으로 뒤를 이었다. 딸이 둘 있는데 장녀는 우의정 민진장(閔鎭長)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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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덕휘(德輝), 호는 의졸(宜拙). 부친은 남식(南烒)[1589~1650]이고, 동생은 남이성(南二星)[1625~1683], 아들은 남구만(南九萬)[1629~1711]이다. 평소에는 어버이를 공경하는 데 힘을 썼고, 관직에 종사할 때는 절용(節用)을 우선으로 하였으며, 재물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1656년(효종 7) 내시교관(內侍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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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고려 이래 조선 초기까지 특수한 행정단위의 하나로 기능했다. 일반적으로 군현으로 삼아 운영하기에는 인구와 토지가 적은 곳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양지현(陽智縣)조에 “본래 수주(水州)에 속한 양량촌부곡(陽良村部曲)인데, 본조(本朝: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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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 터. 대대리 요지는 세 곳에 흩어져 있어, 대대리 요지1·대대리 요지2·대대리 요지3으로 구분되는데, 대대리 요지1은 대대리 사기점을 넘어 광주시 도척면으로 가는 지방도 329호선의 좌측 편 밭에 위치한다. 대대리 요지2는 대대리 요지1에서 광주시 도척면 방향으로 250m 정도 더 가서 도로 우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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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안동권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1840년(헌종 6) 관상감 간행 역서. 1840년에 간행된 『경자시헌서(庚子時憲書)』와 1847년에 간행된 『정미시헌서(丁未時憲書)』로 이루어져 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의 안동권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불분권 각 1책이며, 목판본이다. 표제는 대청도광이십년세차경자시헌서(大淸道光二十年歲次庚子時憲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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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덕성리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에서 이동읍으로 이어지는 국도 45호선을 통해 덕성리에 이르러 사챙이마을로 들어서면 좁은 콘크리트 포장 소로가 동편 구릉지까지 이어진다. 이 콘크리트 포장 소로와 연접하는 남쪽 경작지 일대에 유물이 광범위하게 산포하고 있다. 유물산포지 서쪽으로 약 700m 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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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횡구식 석실분. 동백동 고분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과 중동 일원에 건설 중인 용인동백 택지개발지구 내에 위치한다. 동백동 고분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 의해, 건설 공사에 따른 구제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양상이 밝혀졌다. 출토된 유물은 없다. 고분은 입구가 남단벽에 위치한 횡구식 석실분으로 자연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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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이원명이 야담과 패설(稗說) 등을 수집하여 편찬한 한문소설집. 『동야휘집(東野彙輯)』은 이원명(李源命)[1807~1887]이 역대 야담집을 참고하여 그 형식을 가다듬고 규범을 마련하여 편찬한 한문소설집이다. 이원명은 누구보다 야담 장르의 독자성을 인식하고 그 형식과 내용을 재정비하고자 했는데, 이록(移錄)·차용(借用)·번안(飜案) 등의 방법을 활용하여,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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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동천동 유물산포지는 세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각각을 동천동 유물산포지1, 동천동 유물산포지2, 동천동 유물산포지3으로 구분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국지도 23호선을 따라 성남시와 용인시의 시계가 지나는 동원교를 건너 지방도 14호선으로 진입하여 1.5㎞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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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오명신이 편찬한 책. 조선 후기에 오명신(吳命新)[1682~1749]이 조상 선양 사업의 일환으로 선조들과 관련한 기록을 모아 필사하였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다. 2권 1책이며, 필사본이다. 표제는 동호록(東湖録)이며, 크기는 가로 21㎝, 세로 25.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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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두창리 유물산포지는 세 곳에 나뉘어 분포하는데, 각각을 두창리 유물산포지1에서 두창리 유물산포지3으로 구분한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 북촌의 목원규 효자 정문이 위치한 작은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뻗어 올라간 능선길을 따라 약 100m 가량 올라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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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둔전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정광산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낮은 산자락의 끝부분에 위치한 구릉지 일대에 분포한다. 무궁화아파트 건너편인 둔전5리에 해당하는데, 현재 과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유적지 주변의 군부대까지 적갈색의 고토양층이 넓게 덮여 있다. 유적의 단애에 나타난 층위 단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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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한 조선 후기 무신. 본관은 전주이며,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류익(柳翊),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서 4남 중 막내로 1651년 용인에서 출생하였다. 류문수는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하여 1682년 영등만호(永登萬戶), 1685년(숙종 11) 토산현감(兎山縣監)을 역임하였다. 1698년(숙종 24)에는 보성군수,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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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문화. 자는 계창(季昌), 호는 만암(晩菴). 영의정을 지낸 류상운(柳尙運)의 아들이다. 1697년(숙종 23) 과거에 합격하였다가 그 부친이 고시를 주관하면서 아들을 급제시킨 것이 문제가 되어 삭과되었다가 1699년 다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다. 첫 부임지인 용인현에서 재임기간 동안 선치하여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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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학원(學源). 찬성사(贊成事) 류만수(柳曼殊)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를 지낸 류은지(柳殷之)이다. 1445년(세종 27) 류사(柳泗)[1423~1471]는 내금위에 소속되었다가 1447년(세종 29) 오위(五衛) 부사정(副司正)으로 있었다. 이때 죄를 지어 죽은 할아버지 유만수의 녹권이 삭제당하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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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문신 유순정(柳順汀)[1459-1512]의 초상화. 유순정 초상은 유순정이 1506년 중종반정 때의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에 책록되었을 때 제작된 공신상으로 보인다. 현전하는 유순정 초상은 모두 네 점으로, 표제와 발문이 남아 있는 완전한 형태의 전신상 1점, 표제와 발문이 없는 전신상 1점, 12등분으로 분리되어 훼손이 심한 전신상 1점, 역시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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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실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덕부(德夫), 호는 반계(磻溪)다. 증조부는 현령 류위(柳湋), 할아버지는 정랑 류성민(柳成民), 아버지는 예문관검열(藝文館檢閱)이었던 류흠(柳흠)이다. 어머니는 참찬 이지완(李志完)의 딸이다. 부인은 심수경(沈守慶)의 증손녀이며, 부사 심은(沈誾)의 딸이다. 외삼촌 이원진(李元鎭)과 고모부 김세렴(金世濂)으로부터 글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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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조사 당시에는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마북리 하늘말의 북동쪽에 자리했으나, 유적이 있던 구릉은 단국대학교 신캠퍼스가 들어서면서 일부가 훼손되었고, 나머지는 원형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마북동 고분군1은 단국대학교 신캠퍼스 부지 조성에 따른 사전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지표 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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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군. 마북동 고분군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어, 마북동 산2-2 일대 고분을 마북동 고분군1, 마북동 산46-1 일대를 마북동 고분군2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 마북동 고분군2에서는 고려 중기의 석곽묘 4기, 토광묘 4기가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녹청자반구병 2, 청자접시 1, 청자대접 10, 토기매병 2, 토기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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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축 유구(遺構). 마북동 석축유구는 탄천을 따라 형성된 잔구성 산지의 끝자락 구릉에 축조된 관방(關防) 유적이다. 내부와 주변에서 관련 시설이 확인되지 않고 구릉의 남측 사면에만 낮게 할석재를 이용하여 축조한 점으로 보아, 단기간의 전투 목적을 위한 군사 방어 시설인 보루로 판단된다. 마북동 석축유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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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선정비군. 송덕비군이 있는 마북동 일대는 용인현의 치소가 있었던 곳이다. 과거 읍치였던 곳에는 행정의 중심인 관아가 있고, 관아를 중심으로 수령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 군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북동 송덕비군 역시 이런 일반적인 경우이다. 총 14기로 현령 등의 선정 송덕비 10기, 군수 선정비 1기, 효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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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마북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세 곳에 분포해 있는데, 각각을 마북동 유물산포지1부터 마북동 유물산포지3으로 구분한다. 마북동 유물산포지1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구성초등학교와 초등학교 북쪽의 충정마을 우림아파트 사이의 경작지 일대에 형성되어 있다. 마북동 유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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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마평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돌무지무덤. 토지박물관은 마평동 돌무지무덤이 북한강·임진강 유역에서 조사된 적석총과 유사하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 근거로는 장축 방향이 서쪽 가까이에 흐르는 경안천의 방향과 동일한 점, 돌무지무덤의 평면 형태가 길쭉한 점, 돌무지무덤 아래의 기반토가 주변보다 높은 점 등이다. 이런 지적과 함께 돌무지무덤이 군집을 이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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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 있었던 삼한 중의 하나. 용인이 마한 54개 소국 중 어느 집단에 속하였는지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소국들인 중 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 일화국(日華國), 고탄자국(古誕者國) 등이 용인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확실한 것은 3세기 무렵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을 거듭한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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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여종. 조선 중종(中宗)[1488~1544] 때 용인에 사는 이수손(李守孫)의 여종으로서, 이수손이 아내 김씨와 아들 이균(李均)·이돈(李墩)에 의하여 살해당하자 이에 연루되어 관가에 끌려가 문초를 받았다. 이때 막덕의 공초(供招)에 의하면, 김씨가 아들 이균·이돈과 공모하여 이수손을 살해하였다고 하였고, 안성(安城)에 살다가 죽은 유운(柳雲)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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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에서 남편을 살해한 여인. 만장은 조선 전기의 여인으로, 양지 사람인 선군(船軍) 정귀생(丁貴生)의 처이다. 1430년(세종 12) 평소 사통하던 선군 이흥(李興)과 공모하여 남편을 살해하였다. 뒤에 붙잡혀 감옥에서 옥사하였고 정부 이흥은 참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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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맹리 유물산포지는 네 곳에 분포되어 있어, 각각을 맹리 유물산포지1, 맹리 유물산포지2, 맹리 유물산포지3, 맹리 유물산포지4로 구분하여 일컫고 있다. 용인시와 음성 간 국도 17호선에서 맹리 행군이마을로 진입하여 동편으로 계속 가면 해발 411m의 건지산에서 남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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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용인의 지명인 구성현(駒城縣)의 다른 이름 용인의 옛 지명중 하나인 구성현(駒城縣)은 본래 고구려의 지명이었는데, 멸오는 그 이칭이다. 『고려사』·『세종실록』·『신증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지』·『대동지지』·『용인현읍지』(18세기중엽)·『여지도서』(1760)·『용인현읍지』(1842-1843)·『용인현읍지』(1871)·『용인군지도읍지』(1899)·『용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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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 재상들의 간찰첩. 『명재수간(名宰手簡)』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만년에 10여 년간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1559~1636]에게 이름 있는 재상들이 보낸 간찰들을 묶은 간찰첩(簡札帖)이다. 간찰들은 1640년(인조 18)부터 1659년(효종 10) 사이에 쓰여진 것들로 짐작되며, 모두 18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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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목신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에서 지방도 392호선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죽능리를 지나 후동마을이 나타난다. 후동마을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면 새터말이 있는데, 이 곳에 유적이 위치한다. 유적의 주변에는 목신천이 흐르고, 언저리에는 충적 대지가 형성되어 있다. 199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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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목악부곡은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고려 이래 조선 초기까지 특수한 행정단위의 하나로 기능했다. 일반적으로 부곡은 군현으로 삼아 운영하기에는 인구와 토지가 적은 곳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양지현(陽智縣)조에 “본래 수주(水州)에 속한 양량촌부곡(陽良村部曲)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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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경노(景魯). 할아버지는 병조좌랑(兵曹佐郞)을 지낸 평숙(平叔) 목천수(睦天壽)이고, 아버지는 공집(公集) 목회경(睦會敬)이다. 1747년(영조 23)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761년(영조 37)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벼슬은 사직서령(社稷署令)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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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부터 1258년까지 몽고가 고려를 침략한 전쟁. 13세기 초에 만주와 중국 북부 지방에서 일어난 몽고는 아시아와 유럽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 과정에서 몽고는 고려에도 침략하여 80여 년 동안 고려의 정치를 간섭하였다. 몽고는 1231년부터 1258년까지 계속 고려를 침략하였다. 몽고는 여러 차례에 걸쳐 고려를 공격하였다. 이때 광주를 비롯한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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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묘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묘봉리 선사유적은 두 곳에 분포되어 있어, 묘봉리 선사유적1과 선사유적2로 구분한다. 묘봉리 선사유적1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의 하리저수지 동편에 위치한 구릉지(해발 100m) 산43임 일원에 위치한다. 유적의 남쪽으로 이동저수지로 유입되는 묘봉천이 흐르고, 북쪽으로는 시궁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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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묘봉리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묘봉리 유물산포지는 총 네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묘봉리 유물산포지1에서 묘봉리 유물산포지4로 구분한다. 이동읍 송전리에서 동편의 묘봉리 방향으로 난 도로를 따라가면 해발 514m의 시궁산에서부터 남쪽으로 흘러나온 완만한 가지 능선들 사이에 이루어진 골짜기들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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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199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지표 조사가 실시되어 ‘덕성리 구석기시대 유적’으로 보고된 바가 있다. 이 때 구석기시대 석기들이 채집되었다. 경기도 용인시에서 이동읍으로 이어지는 국도 45호선을 통해 덕성리에 이르러 사챙이마을로 들어서면 해발 166m의 능골산이 나타난다. 유적은 이 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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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흑자 가마 터. 묵리 요지는 두 곳에 나뉘어 있는데, 묵리 요지1은 15~16세기의 백자 요지이고, 묵리 요지2는 19~20세기의 백자·흑자 요지이다. 이들은 서로 시기상·거리상 서로 연관이 없는 별개의 유적이다. 묵리 요지1은 용인에서 국도 45호선을 통해 이동읍으로 가다가 천리에서 용덕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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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 적동마을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산포지. 경기도 용인시에서 송전으로 가는 국도 45호선을 따라 가다가 묵리에서 좌회전하여 용덕저수지로 가는 길을 가다 보면 적동마을이 나온다. 적동마을에서 염치 쪽으로 가는 길로 올라가면 라이프아파트 뒤편에 골짝기가 있는데, 묵리 적동 토기산포지는 골짜기의 왼편 산자락 일대에 위치한다. 맞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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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세필과 그 후손들의 묘역. 이 묘역은 이조참판을 지낸 문간공 김세필(金世弼)[1473~1533]의 묘를 중심으로 한 경주김씨의 세장지이다. 김세필은 기묘사화 때 화를 당했고, 김세필의 삼남 김저는 을사사화 때 화를 당하였다. 김세필을 비롯하여 김세필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이곳에 세장되었다. 문간공 김세필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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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의병. 1727년(영조3) 청주에서 이인좌가 반란을 일으키자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는데, 이 때 문성천은 양지현(지금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거주하던 가의대부(嘉義大夫) 주헌(朱櫶)이 의병을 모집하자 그를 도와 좌찬현(佐贊峴)에서 서울로 진격하는 적을 막고 수백 여 명을 죽였다. 이 일이 임금께 보고되었으나 상을 받지 못하였다가, 1785년 경기관찰사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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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강상죄인(綱常罪人). 1680년(숙종 6) 수원부 양지현(현재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주인을 죽인 죄인으로서 삼성(三省)에서 추국하자 스스로 시인하고 사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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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남평. 자는 순해(舜諧) 또는 순서(舜瑞), 호는 휴헌(休軒). 아버지는 현령 문위세(文緯世)이며, 큰아버지인 첨지중추부사 문위지(文緯地)에게 출계(出系)하였다. 용인향교의 학생으로 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문위세와 함께 호남에서 의병을 일으켜 용담(龍潭)에서 방어진을 구축하고, 치열한 항전을 벌였고 세 번이나 크게 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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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조광조의 묘와 신도비.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조선 중기의 학자·문신으로,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중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유교를 통해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왕도정치를 실현하려 했고, 소격서(昭格署)의 폐지를 단행했다. 대사헌에 올라 신진사류를 과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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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 터. 문촌리 마을의 포장도로에서 약 200m 떨어진 야산 구릉에 위치하며, 측면 한 곳은 작은 개울과 접해 있다. 지번은 산35-1임, 383-1전, 384-2전, 384-3전 일대에 해당한다. 발굴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가마 터는 잡목 숲 속에 자리하고 있는데, 현재 가마의 구조물이 지면에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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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경원(景園), 호는 황사(黃史), 사호(賜號)는 지당(芝堂)이다. 증조부는 민백흥(閔百興), 할아버지는 민상섭(閔相燮), 아버지는 민치오(閔致五), 외조부는 김원식(金元植)이고, 아들은 민영소(閔泳韶)다. 1859년(철종 10) 증광문과에 합격한 뒤, 명성황후가 왕비로 책립되자 중용되기 시작하여 1867년(고종 4) 이조참의로 등용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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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복경(復卿). 시호는 충정(忠正). 민치구(閔致久)의 아들로, 민치록(閔致祿)에게 입양되었으며,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오빠이다. 1860년(철종 11) 명릉참봉에 임명되었고, 1864년(고종 1) 증광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66년 여동생이 왕비로 책봉되자 중용되어 이조참의, 1867년 호조참판에 임명되었다. 1872년 형조판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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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민승호의 묘. 민승호(閔升鎬)[1830~1874]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복경(復卿),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민치구(閔致久)의 아들로 민치록(閔致祿)에게 입양되었으며,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오빠이다. 민승호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의 민재궁마을 흥국생명연수원 왼쪽 구릉의 풍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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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말기 문신 민영환의 묘. 민영환(閔泳煥)[1861~1905]은 당대 최고의 권문세가 집안 출신으로 예조판서, 병조판서, 형조판서를 지낸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순국지사이다. 민영환은 빈번한 해외여행으로 새 문물에 일찍 눈을 떠 국가의 제반 제도의 개혁을 시도하였고, 친일적인 각료들과 대립하여 일본의 내정간섭을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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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 자는 사원(士元), 호는 섬촌(蟾村)·정암(貞庵)이다.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의 손자이고, 문충공(文忠公) 진후(鎭厚)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연안이씨(延安李氏)로 현감 이덕로(李德老)의 딸이다. 1714년(숙종 40) 사마시(司馬試)에 장원으로 합격하고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 권상하(權尙夏)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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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보(聲甫), 호는 오헌(梧軒)이다. 증조부는 민광훈(閔光勳), 할아버지는 민시중(閔蓍重), 아버지는 이조판서 민진주(閔鎭周)이다. 외조부는 정상징(鄭尙徵), 부인은 조태동(趙泰東)의 딸이다. 1710년(숙종 36) 사마시(司馬試)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1715년에는 주부·정랑에 올랐다. 신임사화(辛壬士禍)에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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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대수(大受), 호는 노봉(老峯)이다. 증조부는 민여건(閔汝健), 할아버지는 민기(閔機), 아버지는 관찰사 민광훈(閔光勳)이며, 어머니는 이조판서 이광정(李光庭)의 딸이다. 부인은 신승(申昇)의 딸이고 아들은 민진장(閔鎭長), 형제는 민시중(閔蓍重)·민유중(閔維重)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에서 거주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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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유(聖猷), 호는 단암(丹巖)·세심(洗心)이다. 증조부는 민기(閔機), 할아버지는 민광훈(閔光勳), 아버지는 여양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이다. 외할아버지는 송준길(宋浚吉), 부인은 윤지선(尹趾善)의 딸이다. 또한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오빠이자 우참찬 민진후(閔鎭厚)의 동생이다. 아들은 민형수(閔亨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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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여흥. 자는 치구(稚久). 증조부는 민기(閔機), 할아버지는 민광훈(閔光勳), 아버지는 좌의정 민정중(閔鼎重)이다. 부인은 예조판서 남이성(南二星)의 딸이고, 외할아버지는 홍처윤(洪處尹)이다. 1686년(숙종 12)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함으로써 조(祖)·부(父)·자(子) 3대가 장원하여 ‘삼세문장(三世文壯)’이라 일컬어졌다. 장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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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字)는 회부(晦父). 1455년(세조 1) 현감으로 있으면서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60년(세조 6)에 용인현(龍仁縣)에 현령(縣令)으로 부임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용구현(龍駒縣)과 처인현(處仁縣)을 합하여 용인현이라 하였으며, 이때부터 현령이 임명되었겠지만 기록에 전하는 것이 없다.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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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고령(高靈). 초명은 박승업(朴承業), 자는 응휴(應休), 호는 암수(巖叟)·추탄(秋灘). 박은(朴誾)의 증손이다. 1594년(선조 2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장령·사간원정언을 지냈다. 1599년 대사헌 홍여순(洪汝諄)을 탄핵·파면시켰으나, 뒤에 그가 다시 기용되자 사헌부집의 김신국(金藎國), 사간원사간 송일(宋馹) 등과 함께 파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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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호는 회헌(晦軒). 고려에서 정승을 지낸 박전지(朴全之)의 고손이며, 할아버지는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박문보(朴文珤)이며, 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박영충(朴永忠)이고, 부인은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澣)의 딸이다. 아들은 영의정 박원형(朴元亨)이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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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에 거주한 귀화인. 북쪽 오랑캐 출신으로 광해군 초에 조선에 귀화하여 용인의 고을 5리 안에 있는 장터 큰길가에 7~8년 거주하였는데, 그곳은 크고 작은 행인들이 밤낮으로 오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하 16~18명을 거느리고 밤에 산행을 한다고 칭하면서 무리를 지어 행인이나 짐을 쫓아가 약탈을 일삼았다. 또한 읍내의 원전(元田)을 빼앗아 경작하거나 무성하게 자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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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만기(萬基).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박환(朴煥)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부안임씨(扶安林氏)이다. 박세성은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1년(효종 2)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관을 거쳐 홍문관정자·예문관검열·봉교 등을 역임하였다. 1653년 겸설서(兼說書)·전적·감찰·정언 등을 역임하고, 그 뒤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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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현석(玄石)·남계(南溪)이다. 아버지는 교리(校理) 박의(朴猗)이며, 부인은 원두추(元斗樞)의 딸이다. 성균관 유생 시절에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주장, 효종의 꾸지람을 받자 과거를 포기하였다. 1659년(현종 즉위) 1차 예송논쟁(禮訟論爭)에서 기년복(朞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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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박용민의 선정비. 1867년(고종 4) 용인현령으로 부임하여 1869년(고종 6) 9월 친상(親喪)으로 사임한 박용민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옛 용인현 관아가 있었던 치소의 관문이자 수도 한양으로 통하던 삼남대로변인 현재의 지방도 393호선변에 인접하여, 다른 비석들과 함께 남향(南向)으로 서 있다. 비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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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죽산(竹山). 자는 지구(之衢), 호는 만절당(晩節堂). 증조부는 순성좌리공신(純誠佐理功臣) 정당문학(政堂文學) 박문보(朴文珤)이고, 할아버지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박영충(朴永忠)이며, 아버지는 병조참의를 지낸 연흥군(延興君) 박고(朴翶)이다. 어머니는 양성이씨(陽城李氏)로 판사복시사(判司僕寺事) 이한(李澣)의 따님이다. 아들은 찬성사(贊成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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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시인.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중열(仲說), 호는 읍취헌(挹翠軒). 아버지는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 박담손(朴聃孫)이며, 어머니는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 이이(李苡)의 따님이다. 부인은 대제학 신용개(申用漑)의 딸이고, 맏아들은 박인량(朴寅亮)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능하여 15세에 이르러서는 문장에 능통하였다. 당시 대제학(大提學)이었던 신용개(申用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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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어의. 1882년(고종 19)에 유학(幼學)으로서 의약동참(議藥同參)에 차하(差下)되어 내의원에 군직(軍職)으로 직사(職仕)하다가 1883년 어의(御醫)의 신분으로 용인현령(龍仁縣令)이 되었다. 그 이듬해 막중한 대동미(大同米)를 마음대로 대봉(代捧)하고 한 해가 지나도록 납기를 어겼다 하여 직무불이행 죄로 용인현령직에서 파직되었다. 이에 규례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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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박창근의 선정비. 1873년(고종 10) 윤6월 양지현감으로 부임하여 1875년(고종 12) 7월 진위현감으로 전출한 박창근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용인시 양지면 양지리 양지면사무소 안의 주차장에 청사를 바라보고 좌측에 동향으로 총 7기의 비가 있는데, 그중 여섯 번째 비이다. 비좌와 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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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으로 유배된 무신. 본관은 죽산. 호는 호곡(壺谷). 조선 건국에 대장군으로서 공이 있어 개국공신 2등에 책봉되고, 사헌중승(司憲中丞)을 지냈다. 그러나 1394년(태조 3) 자기는 논공(論功)에서 2등이 되고 이무(李茂)는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에 책봉된 것을 비방하였다가 도리어 죽주(竹州)[현재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에 유배되었으나 얼마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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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반남. 자는 상보(尙甫), 호는 여호(黎湖)·요계(蓼溪)이다. 군수 박태두(朴泰斗)의 아들이다. 1717년(숙종 43) 영의정 송상기(宋相琦)의 천거로 시강원자의(侍講院諮議)가 되었다. 지평(持平)·장령(掌令)·진선(進善)·집의(執義) 등을 지내고, 세자찬선(世子贊善)·이조판서·우찬성(右贊成) 등을 역임하였다. 영조 때 서원을 철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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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여술(汝述), 자호(自號)는 수우(守愚). 참봉 박동민(朴東民)의 아들이다. 박환은 어릴 때 부모를 모두 여의고 둘째 고모와 숙부 밑에서 자랐다. 1623년 인조반정에 참여한 공로로 6품직에 특제(特除)되어 장례원사평(掌隷院司評)·인제현감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고을의 군사를 모아 부원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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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방아리 선사유적은 두 곳에 나누어 분포하는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 144-2전 일대의 방아리 선사유적1과 177-2 일원의 선사유적2로 구분한다. 방아리 선사유적1은 용인에서 지방도 333호선으로 남사면 창리에 이르러 창리교를 지나 방축골저수지 방향으로 진행하면 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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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방아리 유물산포지는 모두 다섯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방아리 유물산포지1부터 방아리 유물산포지5로 구분하고 있다. 방아리 유물산포지1은 창리에서 방아2리 방죽마을로 넘어가는 서낭당고개의 오른편에 있는 구릉 일대이다. 방아리 유물산포지2는 남사면 방아2리 방죽마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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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곤산(昆山)[昆陽]. 자는 달지(達之), 시호는 양호(襄胡)이다. 곤산배씨(昆山裵氏)의 시조이다. 어려서부터 담력이 뛰어났으며 궁마(弓馬)와 병법에 능통했다. 1447년(세종 29) 내금위 사용(司勇)에 임명되었고 1454년(단종 2) 무과에 급제했다. 1464년(세조 10)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있을 때 진응사(進鷹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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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무신. 본관은 해미(海美). 호는 풍암(楓巖). 백광언은 무과에 급제하여 용맹하고 과감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일찍이 정여립(鄭汝立)의 권세가 높아지자 도내(道內)의 문무사류(文武士類)가 모두 이와 결탁하였으나, 홀로 동조하지 않은 까닭에 미움을 받아 1589년(선조 22) 북청판관(北靑判官)으로 체직(遞職)되었다. 15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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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백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백봉리 선사유적은 두 곳에 나누어 분포하는데, 백봉리 1378-1번지의 선사유적1과 백봉리 1380-1번지의 선사유적2로 구분한다. 경기도 용인 양지에서 음성으로 가는 국도 17호선을 통해 백암을 지나 백봉초등학교에서 남서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면 백봉리 4리 속칭 ‘봉리’에 이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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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용인 대학교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 일반적으로 백자 대호(白磁大壺)는 보통 높이가 40㎝ 이상 되는 대형으로, 둥글고 유백색(乳白色)의 형태가 둥근 달을 연상하게 하여 일명 ‘달 항아리’라고 불린다. 17세기 후기부터 18세기 전기의 약 1세기 동안[특히 18세기 전기 50년간] 조선 왕조 유일의 관요(官窯)인 사옹원(司饔院)의 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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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있는 조선 후기 순백자 항아리.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순백자 둥근 항아리로 ‘달항아리’ 부류에 속한다. 상부와 하부를 따로 만들어 접합시킨 다음, 백자유를 바르고 고온에서 환원 번조한 전형적인 달항아리이다. 몸통은 원형보다 마름모 형태에 가까우며 비교적 높게 처리된 입과 굽은 크기가 비슷하다. 높이 44.5㎝, 입지름 18.2㎝, 밑지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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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에 있는 조선 전기 백자병. 연질계의 백자에 조선 전기 특유의 상감 기법으로 연당초문이 시문되어 있다. 순백의 기면에 검은색의 자토를 사용해 상감 문양을 새긴 다음 투명한 백자유를 발라 낮은 온도에서 환원 번조하였다. 조선 전기의 양감이 좋은 전형적인 병 형태를 하고 있으며, 어깨에 당초문대를 돌리고 몸통 3곳에 연꽃을 배치했으며 덩굴 무늬로 연결해 놓았다.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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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에 있는 조선 전기 백자병. 먼저 액체를 담을 수 있는 병을 만든 다음, 다시 그 위에 장식을 할 수 있는 표면을 덧댄 이중 구조를 한 희귀한 병이다. 몸통에는 대담한 투각 수법으로 모란문을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흑상감법으로 세부를 표현하였으며, 어깨에도 흑상감된 초화문대(草花文帶)를 둘렀다. 기본 형태는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모래를 받쳐 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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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용인 대학교에 있는 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 백자 청화 산수 화조문 항아리는 청화로 산수 화조문을 그려 넣은 조선 후기 백자 항아리이다. 화원의 솜씨인 듯한 산수 화조문으로 보아 18세기 청화 백자 중 뛰어난 작품의 하나이다. 아가리 부분이 직립되고 장신의 동체를 이룬 이 항아리는 청화의 산수문·화조문·문자명으로 보아 18세기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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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에 있는 조선 전기 청화백자 병. 순백의 기면에 암청색의 짙은 청화 안료를 사용하여 몸통 가득 운룡문을 그렸다. 담청색의 백자유를 바닥까지 고르게 시유하고 모래를 받쳐 높은 온도에서 환원 번조한 백자병이다. 작고 아담한 병으로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높이 25㎝, 입지름 5.3㎝, 밑지름 7.7㎝이다. 조선 전기에는 극히 드물게 보이는 운룡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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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용인 대학교에 있는 조선 전기 백자 항아리 및 태지석. 백자 태항아리 및 태지석은 16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의 백자 태항아리 및 태지석이다. 태항아리란 왕실의 왕자나 왕녀가 태어났을 때 태(胎)를 담은 항아리를 말하며, 이 태항아리와 주인공의 이름, 생년월일을 기록한 태지석을 함께 묻었다. 1991년 1월 25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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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1월 경기도 이천의 백현에서 이천 의병과 일본군 수비대간에 벌어진 전투. 1895년 음력 8월 20일 일본 공사관의 주도로 자행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인 을미사변을 기화로 조선의 각계각층에서 반일 기운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년 11월 15일 단발령이 공포되자 반일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고, 각처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서울에서 가까운 이천에서도 의병이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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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시첩. 『별장첩(別章帖)』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오명준(吳命峻)[1662~?]이 청나라 연경에 사신으로 떠나기 전에, 당시 조정 중신과 동료들이 연행(燕行)을 전송하며 지은 시문을 모아 놓은 것이다. 불분권 2첩으로, 필사본이다. 표제는 별장첩(別章帖)이다. 크기는 가로 31㎝, 세로 51㎝이다. 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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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청나라 군대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쟁. 1627년(인조 5) 후금(後金)[뒤의 청나라]의 1차 침입 때 조선과 후금은 형제의 맹약을 하고 두 나라 관계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나라 이름을 청(淸)으로 고친 후금은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의 맹약’을 ‘군신(君臣)의 의(義)’로 개조하자고 요청을 해올 뿐 아니라 무리한 세폐와 정병 3만까지 요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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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축 산성. 보개산성은 경안천과 신갈천의 분수령을 이루는 보개산 정상부에 위치한 산성이다. 성내 시설물로는 성문과 건물지 등이 확인된다. 성문은 동문지, 남문지와 암문(暗門)의 성격을 가진 남벽 서측의 문지 등 세 곳이지만 원래는 이보다 더 많은 문 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성내에서는 주로 도기편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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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보라동 선사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어 분포하는데, 보라동 산96-12임에 있는 보라동 선사유적1과 보라동 488답에 있는 선사유적2로 구분한다. 보라동 선사유적1은 2000년 기전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된 바 있는데, 당시에는 수풀이 우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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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고려시대의 청자 가마 터. 보정동 요지는 산3-1번지의 보정동 요지1과 681번지의 보정동 요지2로 나누어져 있는데, 보정동 요지1은 불곡산에서 법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중 대치고개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가지능선, 단국대학교 신축건물 뒤편에서 약 2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남쪽에 탄천의 지류인 옥정천이 흐르고, 주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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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보정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세 곳에 분포하여, 각각을 보정동 유물산포지1, 보정동 유물산포지2, 보정동 유물산포지3으로 구분한다. 보정동 유물산포지1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녹십자 입구에서 남쪽으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가다가 도로 서편에 접해 있는 영남하이츠빌라 뒤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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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방어 시설. 지방도 393호선과 국지도 23호선이 만나는 모서리 지점의 구릉(해발 100m)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보정리 보루는 1999년 한신대학교 박물관의 ‘죽전 지구 문화 유적 지표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구릉의 정상부는 약간의 요철이 있으나 비교적 완만하며, 남쪽과 서쪽 사면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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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명리에 있는 석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봉명리 선사유적은 모두 7곳에 분포하여, 봉명리 선사유적1부터 봉명리 선사유적7까지로 구분한다. 이들 유적은 경기도 용인시 부아산에서 진위천까지 이어지는 구릉상에 분포하며 대체로 구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채집된다. 봉명리 선사유적1은 봉명리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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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방어 시설. 봉무리 보루가 있는 남산봉은 남서쪽의 진위천과 봉무천이 합류하는 지점의 북안에 해당한다. 이곳은 동쪽으로 처인성과 연결되는 완장천과 봉무천이 합류하는 지역과 남서쪽의 평야 지대가 한눈에 조망되는 지리적 요충지에 해당한다. 봉무리 보루는 둘레가 150m로, 남산봉 9부 능선에 남쪽과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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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 봉무리에는 모두 네 곳의 유물산포지가 위치해 있는데, 각각을 봉무리 유물산포지 1부터 4로 구분할 수 있다. 봉무리 유물산포지1은 봉무리 도장동마을 북쪽에 동쪽으로 뻗은 능선 일대에 형성되어 있으며, 봉무리 유물산포지2는 남사면 북리에서 봉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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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에서 남사면 방면으로 지방도 330호선을 따라가다 삼거리를 이루는 남사초등학교 부근에서 국도 9호선을 타고 북쪽으로 향하면 봉무리 기와집마을에 이른다. 유적은 마을 동쪽 구릉지에 자리하는데, 동쪽 마을 도로와 접하여 진위천으로 흘러드는 봉무천이 남류(南流)하고, 서편으로는 낮은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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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무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자기산포지. 경기도 용인에서 남사면 방면으로 330호선을 따라가다 삼거리를 이루는 남사초등학교 부근에서 9호선 북쪽으로 향하면 봉무리 도장골에 이른다. 마을 동편에는 진위천으로 흘러드는 봉무천이 남류(南流)하고, 서편은 낮은 야산이 둘러져 있다. 마을 도로 서편에 농업협동조합 창고가 자리한다. 1996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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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의 관아에서 긴급한 상황을 중앙에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전국적으로 5개 망으로 구성되었던 봉수망 중에서 용인의 봉수는 경상도에서 출발하여 충청도를 거쳐 광주 천림산에 도달하는 제2봉에 속해 있었다. 유형에서는 서울의 경봉수와 해륙 변경의 연변봉수를 연결하는 중간 봉수인 내지봉수의 성격을 지녔다. 봉수의 설치 시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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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에서 작성된 산 제사 관련 고문서. 병신년 12월 2일 작성되었는데, 산제사를 위한 절목(節目)이 포함되어 있다. 병신년은 1836년 또는 1896년으로 추정된다. 불분권 1첩이며, 필사본이다. 표제는 부용대동 산제사제례여축문첩(芙容大洞 山祭祀祭礼與祝文帖)이다. 초부리는 연안이씨와 경주김씨의 집성촌으로 이곳에서는 상하계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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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북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서 봉무리로 이어지는 82호선 옆에 있는 삼주알루미늄공장에서 남쪽 봉무천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마을 도로 동편에 형성된 구릉 하단부에 이른다. 이 구릉 하단 산자락에 조성된 묘목장이 유적지에 해당한다. 채집된 유물은 석영암제 석핵 1점뿐이다. 석핵은 원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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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당나라 두보의 시를 한글로 번역한 시집.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는 흔히 두시언해라고도 불린다. 분류란 두보의 시를 분류하였다는 뜻이고, 두는 두보의 이름이며, 공부란 두보의 관직 이름, 시란 두시의 시를 말한다. 언해란 그 당시 언문이라고 불렸던 훈민정음으로 해체한 것을 뜻한다. 원(元)나라 때 편찬된 『찬주분류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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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에 경기도 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 묘지. 분청사기 상감 ‘정통 4년명’ 김명리 묘지는 조선 시대 성천도호부 부사(成川都護府副使)였던 김명리(金明理)[1368~1438년]의 묘지이다. 2014년 7월 2일 보물 제1830호로 지정되었다. 전체 모양은 상부에서 저부로 내려오면서 직경이 약간 좁아지는 비대칭의 원통형이고 상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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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 분청사기 상감 사각 묘지 및 분청사기 인화문 사각 편병은 15세기에 만들어진 분청사기들이다. 2006년 1월 17일 보물 제1450호로 지정되었다. 분청사기 상감 사각 묘지의 높이는 20.5㎝, 폭 12.0㎝이다. 몸통이 세로 방향으로 길쭉한 사각의 통형이다. 몸통의 중간 부분이 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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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원삼면소재지에서 용인 방향으로 지방도 57호선을 따라 가면 사암리주유소가 있고, 이 곳에서 길을 따라 곱등고개 쪽으로 500m쯤 더 가면 오른쪽에 고인돌 유적이 있다. 고인돌이 위치한 이 곳은 청미천의 가장자리로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으며 주변에 청미천의 발원지인 용담저수지가 있다. 8기 가운데 1호는 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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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선돌. 용인에서 양지인터체인지 방향으로 지방도 57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이정표가 있고, 사암리 안골 입구에 들어서면 선돌 3기가 나란히 서 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차례로 1호, 2호, 3호로 명명하여 각각의 규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호는 높이 220㎝, 너비 103㎝, 두께 60㎝이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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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사암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좌항리에서 392호선을 타고 사암리 쪽으로 가다 보면 사암교에 이른다. 사암교를 건너기 직전에 북쪽으로 사암천을 따라 난 작은 포장도로로 가면, 북쪽의 해발 432m의 독조봉으로부터 흘러나온 가지 능선 말단부 자락에 넓은 경작지가 있다. 사암리 유물산포지는 이 일대에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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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처인성을 공격해온 원나라 장수. 살리타는 1231년(고종 18) 몽고 사신 저고여(箸古與)가 고려인에게 살해되었다고 여겨 함신진(咸新鎭)을 넘어 고려를 공격해왔다. 그러나 구주(龜州)에서 박서(朴犀)에게 패하였고, 다시 군대를 정비하고 개경 성의문(省義門) 밖까지 침공해왔다. 이에 고려는 살리타가 있는 안북부(安北府)[安州郡]까지 사신을 보내어 강화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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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정립하던 시대의 용인 지역의 역사. 삼국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은 백제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쇠퇴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마한 군장사회들 중 하나였던 백제가 백제국가로 흥기하게 됨에 따라 그 중심지로부터 불과 30여㎞ 떨어져 있던 경기도 용인 지역은 백제 세력권 안으로 흡수·통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용인 지방은 『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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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에 있었던 신석기시대의 임시 주거 유적.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박물관의 남쪽 해발 100m 이하의 잔구성 구릉에 자리하며, 루터신학교 정문의 동편 구릉에 해당한다. 임시 주거 유적으로서 뚜렷한 주거 형태는 남아 있지 않았다.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빗살무늬토기와 토제품 및 마제석부가 있다. 빗살무늬토기의 기종은 발(鉢)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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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이 곳에는 고인돌이 2기 있었는데 위쪽에 있는 것을 상지석(上支石), 아래쪽에 있는 것은 하지석(下支石)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 이름을 따서 지명도 상하리(上下里)라고 하였다가 상하동으로 승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상지석을 ‘할아버지 바위’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없고, 하지석은 ‘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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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기와 가마 터.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서 보정동 삼막곡으로 넘어가는 도로 동편 구릉의 남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상현동 요지에서 한신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기와 가마 2기가 발굴되었다. 제1호 가마는 풍화암반층을 굴토하여 가마 바닥을 조성한 반지하식 등요(登窯)로, 소성실(燒成室)은 계단식으로 만들었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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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상현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네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각각을 상현동 유물산포지1부터 상현동 유물산포지4로 구분하여 이르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에서 광주시 방향으로 국도 43호선을 따라 수원과 용인 경계 지역을 지나면 동쪽으로 독바위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상현동 유물산포지1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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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3리 상덕골에 있는 고려시대의 자기산포지. 용인대학교에서 서리로 넘어가는 도로를 따라가다 상덕골에 이르면 나타나는 남서쪽 밭에 있다. 사적 329호로 지정된 중덕마을 고려백자 가마 터와는 약 700m 거리에 있다. 199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 지표 조사에서 보고된 바 있는 유적이다. 1996년 조사에서 중덕 고려백자 가마 터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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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 서거정의 서첩. 『서거정 필적』은 1476년(성종 7) 1월 말 우리나라에 온 명나라 사신 호부 낭중(戶部郞中) 기순(祁順)과 사신 일행을 맞이한 원접사(遠接使) 서거정의 글씨가 함께 실려 있는 서첩이다. 표지에는 ‘천사 사한 진적(天使詞翰眞蹟)’이라 쓰여 있다. 표지를 제외한 첩의 안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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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서거정의 묘지석. 묘지석이란 죽은 사람의 인적사항, 묘의 위치와 좌향 등을 적어서 묘에 함께 묻은 판석(板石)을 말한다. 지석에는 주인공의 이름과 조상, 관직, 평생의 행적, 가족관계 등을 적어 후세에게 전하려는 것이다. 서거정 묘지석은 서울시 강동구 방이동 묘역이 도시계획으로 이전하면서 1975년 6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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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백자 가마 터. 서리 요지는 두 곳에 나뉘어 있는데, 이 곳은 서리 상반요지라고도 불리는 서리 요지2이다. 서리 요지1과 마찬가지로 고려백자 요지로 서리 고려백자 요지라고도 불린다. 서리 요지2는 좌우변과 위쪽에 산림이 우거져 있어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유적은 폭이 약 45m이고, 상하의 길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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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 하반 삼막골에 있었던 백제 석실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 하반부락 중앙에 보호수로 관리되는 느티나무에서 서남쪽인 ‘부터골’ 방향으로 약 200m 진입하면 삼막골 입구가 나온다. 이 곳에서 북서쪽으로 개설된 삼막골 농로를 따라 약 200m 올라가면 농로가 갑자기 넓어지는 공터가 나타나는데 이 곳이 석실분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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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평보(平甫), 호는 소고(嘯皐)·재간(在澗)·보졸재(保拙齋)·송현(松峴), 시호는 문익(文翼). 증조부는 남원부사 서정리(徐貞履), 조부는 병조참의 서문상(徐文尙), 아버지는 영의정 서종태(徐宗泰)이다. 어머니는 이헌의 딸이다. 아버지로부터 아들 서지수(徐志修)까지 3대가 대신을 지냈으며, 부인 또한 3대가 대신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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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서천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여섯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서천동 유물산포지1부터 서천동 유물산포지6으로 구분하고 있다. 지방도 343호선에서 외서천마을로 진입하여 소로를 따라 500m 정도 들어가면 소로가 급격히 꺾이는 지역에 소택지가 있는데, 서천동 유물산포지1은 이 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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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오도일의 시문집. 조선 후기 숙종 때 대제학을 지낸 서파(西坡) 오도일(吳道一)[1645~1703]의 시문집으로 1729년(영조 5)에 간행되었다. 1729년(영조 5) 3월 아들인 오수채(吳遂采)에게 분무원종이 녹훈되어 오도일에게는 좌찬성이 추증되었는데, 본집의 총목(總目) 말미에 적힌 간기를 보면 곧이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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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 황덕마을회관에서 남쪽 산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가에 자리하는데, 황새울 뒤산 북쪽 경사면에 해당한다. 작은 빗살무늬토기편 3점이 채집되었다. 토기 외면에 베풀어진 문양은 동일계 횡주어골문(橫走魚骨文)으로 단치구(單齒具)를 사용하여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시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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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분청사기 가마 터. 석천리 요지는 석천리 요지1·석천리 요지2·석천리 요지3·석천리 요지4의 모두 네 곳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석천리 요지1은 반계 유형원 묘소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묘소를 조성하면서 가마 터의 퇴적 일부가 노출되었고, 주변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석천리 요지2·석천리 요지3·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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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석천리 유물산포지는 두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각각을 석천리 유물산포지1, 석천리 유물산포지2로 구분한다. 석천리 유물산포지1은 석천리 황새울골을 따라 난 작은 포장도로를 타고 계곡 안쪽으로 진입하다가, 황덕마을회관 앞의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반계 유형원(柳馨遠)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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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지역에 있는 길쭉한 자연석 혹은 일부를 손질하여 세워놓은 돌기둥. 돌을 세웠거나 서있다는 의미에서 선돌 이외에도 입석(立石, 笠石)·삿갓바위[笠岩]·입암(立岩)이라고 부르며 지역에 따라서는 구지바위·할머니탑·할아버지탑·수구막이·수살장군·돌장승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는 전사(戰士)라고도 한다. 큰돌문화[巨石文化]의 하나로 고인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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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경기도박물관에 기탁 보관된, 선조의 친필 비밀문서와 정조의 어친필(御親筆)을 별책으로 묶은 첩. 『선조어서 사송언신 밀찰첩(宣祖御書賜宋言愼密札帖)』과 『정조어제 선조어서 밀찰발(正祖御製宣祖御書密札跋)』은 모두 2첩으로 묶여진 고문서로, 1987년 12월 26일 보물 제941호로 문화재청에 지정 등록되었다가, 2004년 영정과 분리되고 명칭도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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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송언신의 초상화. 사모와 단령(團領)을 갖춘 전형적인 관복본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이다. 2000년 여산송씨 호봉공 종회에서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송언신(宋言愼)의 본관은 여산(礪山)이고, 자는 과우(寡尤), 호는 호봉(壺峰)이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고, 1577년(선조 10)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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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충신. 본관은 순창(淳昌). 호는 송헌(松軒). 보국판서(輔國判書) 설안통(薛安統)의 아들이고 중랑장을 지낸 암곡 설응(薛凝)의 아우이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건국되자 죽산(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으로 돌아가 자정(自靖) 하였다. 이후 태종이 두 번이나 병조참의를 제수하고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고 절의를 지켰다. 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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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이나 돌로 구축된 방어 시설. 용인은 조선시대의 용인현을 계승한 지명으로 고려시대에는 용구현과 처인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중 용구현은 본래 고구려의 땅으로 구성현 혹은 멸오(滅烏)라 불렸는데, 신라 경덕왕 때 거서(巨黍)로 고쳐졌다가 고려 초에 용인으로 바뀌었다.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고구려가 구성현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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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가마 터. 성복동 요지는 통일신라시대 토기 및 기와가마 유적이다. 성복동 요지에서 조사된 유구는 가마 4기, 용도 불명의 소성유구 2기, 대형 회구 1기, 조선시대 수형주거지 1기, 목관묘 2기, 석관묘 2기, 기타 수형유구 4기 등이다. 전체적으로 여러 시기의 유구들이 복합적으로 조사되었지만, 중심을 이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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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성복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성복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세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성복동 유물산포지 1·2·3으로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성복동 유물산포지1은 성복2리 성서마을 서쪽의 성불골 일대 곡간 경작지에 위치하며, 완만한 경사지에 유물이 산포되어 있다. 성복동 유물산포지2는 성서마을 서쪽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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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송소(宋玿)의 아들이다. 송광우는 어려서부터 착실하고 인품이 출중했다. 문과에 급제하여 시랑이 되었고, 1350년(충정왕 2) 봉익대부 호조전서를 지냈다. 오랫동안 관직에 있었으나 청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수정산에 단(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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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천(鎭川). 호는 대은(大隱). 아버지는 호조전서(戶曹全書) 송광우(宋匡祐)이다. 고려 우왕 때 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자 낙향하였으나, 조선이 개국된 뒤에 다시 관직에 나왔다. 1417년(태종 17) 6월 형조정랑(刑曹正郞)에 있으면서 황단유(黃丹儒)의 자손인 박은·박자청(朴子靑)·조원(曹瑗) 등과 박송비(朴松庇)의 자손인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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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용경(龍卿). 1712년(숙종 38)에 송식(宋熄)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부는 송세익(宋世益)이고, 증조부는 송변, 외조부는 이제(李堤)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거주하다가 1740년(영조 16) 증광문과 병과에 급제하였다. 사간원의 정언·헌납, 사헌부의 장령·지평을 거쳐 승정원의 승지까지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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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천(鎭川). 자는 입지(立之). 송백순(宋伯純)의 아들이다. 송립은 11세인 임진왜란 때 아버지가 검지산(黔指山)에서 병력을 모집하여 싸우다가 죽고 그의 형제도 포로가 되어 밀실에 갇히게 되자, 송곳으로 벽을 뚫고 밤에 달아나 아버지의 시체를 수습하여 안장하였다. 1616년(광해군 8) 무과에 급제, 선전관이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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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의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은진.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또는 우재(尤齋). 증조부는 봉사(奉事) 송구수(宋龜壽), 조부는 도사(都事) 송응기(宋應期), 아버지는 사옹원봉사(司饔院奉事) 송갑조(宋甲祚)이다. 어머니는 선산곽씨로 봉사 곽자방(郭自防)의 딸이다. 1625년(인조 3) 도사 이덕사(李德泗)의 딸 한산이씨와 혼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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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송전리에 있는 선사시대, 고대,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송전리 유물산포지는 두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송전리 유물산포지1, 송전리 유물산포지2로 구분하고 부르고 있다. 송전리 유물산포지1은 송전1리 신사동산이라고 하는 공동 묘지의 남쪽 경사지 일대이다. 송전리 유물산포지2는 이동-송전 간 도로 공사로 인해 절토된 능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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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오씨 문중의 종계첩. 『수양종첩(首陽宗帖)』은 해주를 본관으로 하는 해주오씨 문중의 종계첩(宗禊帖)으로, 『수양종계첩(首陽宗禊帖)』으로도 부른다. 『수양종첩(首陽宗帖)』이라 부른 것은 해주오씨를 수양오씨라고도 부르기 때문이다. 1766년(영조 42) 영의정으로 증직된 감역공(監役公) 오희문(吳希文)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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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을 관할하던 행정 구역. 고려시대인 995년(성종 14) 지방 제도를 정비하기 위해 당나라 제도를 모방하여 10도제를 실시하면서 관내도에 설치했던 29주(『고려사』「지리지」에서는 17개주만 확인이 가능) 중 하나이다. 10도 또는 5도 양계 중 관내도(關內道) 혹은 양광도(楊廣道)에 속해 있던 17개 주 중 하나이다. 고구려의 매홀군(買忽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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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숙종의 필적. 이경석(李景奭)[1595~1671]의 문집 『백헌집(白軒集)』은 1700년(숙종 26) 간행되었다. 숙종 어필 칠언시는 숙종이 『백헌집』을 살펴본 뒤 느낌을 칠언시로 짓고 쓴 필적이다. 칠언시의 내용은 “어렵게 입수한 문집을 피곤한 줄도 모르고 종일토록 보았다. 이경석의 충성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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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순흥안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순흥안씨 제삼파 족보의 총목록집. 1825년(순조 25)에 간행된 것으로 조선 후기 순흥안씨 제삼파 족보의 수록 내용을 일별할 수 있는 자료이다. 2권 2책이며 목활자본이다. 표제는 순흥안씨 제삼파 족보총목(順興安氏 第三派 族譜総目)이다. 선장(線裝)으로 크기는 가로 23.3㎝, 세로 36.3㎝이다. 관향(貫鄕)을 순흥(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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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순흥안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두 종류의 족보. 『순흥안씨 족보(順興安氏 族譜)』는 1796년(정조 20)에 간행된 것과 조선 말기에 간행된 것 두 종을 말한다. 순흥안씨는 관향(貫鄕)을 순흥(順興)으로 하며, 호군공(護軍公) 안자미(安子美)를 시조로 한다. 안자미는 고려 희종 때 흥위위(興威衛) 보승별장(保勝別將)을 지냈고, 뒤에 문성공(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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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순흥안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후기 고문서. 순흥안씨가 고문서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정유재란 때 순절한 안홍국(安弘國)[1555~1597]과 부인 정부인 이씨와 관련하여 조선 중기와 후기에 내려진 교지 세 점을 말한다.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순흥안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두 점은 증직 교지이고, 한 점은 시호(諡號) 교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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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식금리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고분군. 1988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실시한 용인 지역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식금리는 해발 200~300m 정도 되는 산으로 사면이 둘러싸인 작은 분지이다. 일대에 10여 기의 무덤이 분포했는데, 군부대의 연병장을 가로질러 금박산으로 올라가면 산기슭 중턱의 남쪽 경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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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 자는 경초. 단양군수를 지낸 신국량(申國樑)의 아들이다. 1576년(선조 9)에 생원진사시에 급제하여 진사가 된 후 45세에 벼슬길에 올라, 태학의 추천으로 참봉을 거쳐 1590년(선조 23)에 문경현감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상주를 거쳐 문경을 침공하자 당시 문경현감이었던 그는 관병 수십 명을 이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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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신봉동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국도 43호선에서 수지2지구의 수지초등학교 방향으로 개설된 도로를 따라 2㎞ 정도 가면 신봉1리 신봉마을이 나온다. 신봉동 유물산포지는 신봉마을과 마을 주변의 태능골·갱지들·응달말골·언덕믿들 등 광교산에서 뻗어 내린 산사면 하단부 일대를 모두 포괄한다. 마을 앞 완경사지에 조성된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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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간석기를 도구로 만들어 쓰던 시기.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사냥이나 채집, 물고기 잡이를 하면서도 농경과 짐승 기르기를 하였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먹을거리가 부족하게 되자 생산량을 늘리기 위하여 농경이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이 시기의 곡식은 일산 신도시 지역에서 발굴된 볍씨, 옥천 대천유적의 오곡, 평양 남경유적의 조, 봉산 지탑리유적의 피 등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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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경안천 본류의 서쪽을 따라 나 있는 지방도 57호선의 에버랜드~매산교 구간의 중간지점인 양지촌마을 동편 구릉에 자리한다. 전방 300m 정도에 경기도 용인시 환경사업소가 있고, 유적 동쪽 200m 지점에 일광CON공업(주)가 자리한다. 199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이 용인 지역 전체에 대한 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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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용인의 의인. 신태정은 지금의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봉명리 수세마을에 살았다. 그러던 중 흉년이 들어 굶주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어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공덕을 칭송하고 기리기 위하여 동구 밖에 송덕비를 세웠다. 비의 앞면에는 “신공태정 출의구휼비(申公泰貞 出義救恤碑)”라 새겼고, 좌우에 사행시를 썼다. 즉 “경신년 춘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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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통지(通之). 증조부는 전리정랑(典理正郞) 심용(沈龍)이고, 할아버지는 좌정승(左政丞) 청성백(靑城伯) 정안공(定安公) 심덕부(沈德符)이며, 아버지는 영의정(領議政) 청송부원군(靑松府院君) 안효공(安孝公) 심온(沈溫)이다.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동생으로, 세종의 처남이다. 문종과 세조의 외숙부이며, 아들은 심정원(沈貞源)이다 14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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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화오(華五). 심즙(沈檝)의 아들이다. 심규로는 1782년(정조 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97년 집의 이명연(李明淵)의 상소로 조정이 시끄러울 때 교리로서 부교리 이기양(李基讓)·박윤수(朴崙壽)와 함께 이명연에게 제직(除職)한 명을 거두라고 연명소(聯名疏)를 올렸다가 파직됨과 함께 강외(江外)로 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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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공망(公望), 호는 서돈(西墩)이다. 영의정 심온(沈溫)의 5대손이며, 경력(經歷) 심의검(沈義儉)의 아들이다. 유학(幼學)으로 1572년(선조 5) 문과에 급제, 홍문관에 들어가 정자·박사·수찬을 지내고, 1584년 지평에 이르렀다. 이때 동서의 붕당이 생기려 하자, 언관으로서 붕당의 폐단을 논하였으며, 이어서 사인·사간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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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604년(선조 37) 심대에게 발급된 공신 교서. 심대(沈垈)[1546~1592]는 1572년(선조 5) 문과에 급제하고, 1592년 선조를 의주로 호종하는 데 공을 세웠다. 권징(權徵)의 후임으로 경기도관찰사에 제수되어 서울을 수복하기 위해 시민들의 내응을 시도하다 삭녕에서 왜병의 야습으로 전사하였다. 「청원군심대호성공신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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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심대의 묘. 심대(沈岱)[1546~1592]의 본관은 청송이며, 자는 공망(公望), 호는 서돈(西敦), 시호(諡號)는 충장(忠壯)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징(權徵)의 후임으로 경기관찰사를 제수받고 왕을 의주로 호종(扈從)하였다. 이후 심대는 서울 탈환을 위해 남하하다가 전사하였다. 임진왜란이 평정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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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이숙(頤叔), 호는 현재(玄齋). 증조부는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沈之源), 할아버지는 심익창(沈益昌), 아버지는 포도를 잘 그렸던 심정주(沈廷胄)이다. 포도와 인물을 잘 그렸던 정유승(鄭維升)의 외손자로 친가와 외가 모두 서화를 잘 그렸다. 정선(鄭敾)의 문하에서 그림을 공부하였으나 후에 남종(南宗)산수화에 심취하여 스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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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시호는 양혜(良惠). 증조부는 전리정랑(典理正郞) 청화부원군(靑華府院君) 심용(沈龍)이고, 할아버지는 좌정승(左政丞) 청성백(靑城伯) 정안공(定安公) 심덕부(沈德符)이며, 아버지는 부윤(府尹) 심징(沈澄)이다. 아들은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심선(沈璿)이다. 세종의 장인인 심온(沈溫)의 조카이며, 세종의 비인 소헌왕후(昭憲王后)의 사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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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화가.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명중(明仲), 호는 죽창(竹窓)·청부(靑鳧).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沈之源)의 증손이며, 성천부사를 지낸 심익창(沈益昌)의 아들이고, 남종화의 대가인 심사정(沈師正)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사간을 지낸, 포도와 인물을 잘 그린 화가 정유점(鄭維漸)의 사위이다. 1724년 아버지 심익창이 과거 부정사건과 왕세제인 영조를 살해하려는 역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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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심존지는 1819년(순조 19) 9월 21일 용인현령으로 부임하여 1820년 2월 29일까지 용인현령을 지냈다. 담양부사로 있을 때인 1829년(순조 29) 전라좌도 암행어사 유성환(兪星煥)이 잘 다스렸다고 조정에 보고하여 포상을 받았다. 용인현 백성들은 현령으로 재직할 때의 공덕을 기려 선정비를 세웠는데 이 비가 지금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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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원지(源之), 호는 만사(晩沙)이다. 증조부는 심금(沈錦), 할아버지는 심종열(沈宗悅), 아버지는 심설(沈偰)이다. 외조부는 청원도정(靑原都正)이었던 이간(李侃)이고, 부인은 윤종지(尹宗之)의 딸이며, 그의 아들 심익현은 효종의 딸 숙명공주와 결혼해 효종과는 사돈관계였다. 1620년(광해군 12)에 정시문과에 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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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자장(子章), 호는 창주(滄洲). 심탁(沈倬)의 아들이며, 정엽(鄭曄)의 문인이다. 심지한은 1618년(광해군 10) 동학유생(東學儒生)으로 조경기(趙慶起) 등 8인과 함께 폐모론을 주도하는 이위경(李偉卿)·정조(鄭造)·윤인(尹認) 등을 극형에 처하도록 상소하였다. 이 일로 아버지 심탁과 함께 가산이 적몰되고, 문외출송(門外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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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있는 심환지(沈煥之)[1730-1802]의 초상화. 사모와 단령(團領)을 입은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의 초상화로 2004년 청송심씨(靑松 沈氏) 응교공파(應敎公派) 종중에서 기증하여 현재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기증 당시 초상화를 보관하던 함(函)과 함께 2006년 보물 제1480호로 일괄 지정되었다. 화면 상단의 표제가 ‘영의정문충공만포심선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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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처인성에서 ‘안터골’ 방향으로 들어서면 ‘예향교회’가 나타나는데 유적은 교회 바로 앞 구릉 경작지에 자리한다. 아곡리 북동편 구릉지 경사면의 밭에서 유백색을 띤, 구석기시대 규암제 찍개 1점이 채집되었다. 발견된 규암제 찍개는 위쪽 끝부분을 인공 타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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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유물산포지. 해발 216m의 어산에서 남동편으로 흘러나간 가지 능선부에 위치한다. 유적이 위치한 능선의 북쪽에는 형진농장이라고 하는 묘목농원이 넓게 자리하고, 동편으로는 진위천에 합류되는 완장천이 흐르며 아곡제2저수지가 인근에 위치한다. 아곡리 유물산포지가 위치한 능선은 해발 80m 가량으로 협장한 상태지만, 능선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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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자기산포지. 아곡리 자기산포지는 18세기경의 유적으로, 아곡제2저수지를 중심으로 아곡리 유물산포지1·아곡리 유물산포지2와 삼각형 형태로 분포한다. 아곡리 자기산포지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처인성 맞은편 매릉동 뒤 야산에 위치한다. 199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이 용역 지역 전체에 대한 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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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안동권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안동권씨 족보. 권자본(두루마리본)이며, 필사본이다. 표제는 안동권씨 족보(安東権氏 族譜)이다. 크기는 가로 248㎝, 세로 11.8㎝이다. 안동권씨 안양공파(安襄公派) 시조인 권행(權幸)부터 32세손 권사흠(權思欽)·권중흠(權中欽)까지를 기록한 계보이다. 휴대가 간편하게 수진본(袖珍本)으로 제작하였고, 시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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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안동권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고문서. 안동권씨가 고문서는 조선 후기의 무신인 권심(權諗)과 부인 유인 김씨와 관련한 교지 및 녹패(祿牌)로,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안동권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다. 백패(白牌) 1점, 임용 교지 4점, 녹패 1점, 유인 김씨 임용 교지 1점 등이 낱장 형태로 보존·유지되고 있다. o백패-16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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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이인좌의 난 연루자. 지리학교수(地理學敎授)를 지내던 안호(安鎬)의 동생이다. 1728년 이인좌의 난으로 나라가 혼란한 틈을 타 경기도 용인 주변 지역에서도 군사를 모아 변란을 도모하려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양성현 송전리(지금의 용인시 이동읍) 에 살던 장흠이 주도했다. 안박은 장흠에 포섭되어 변란 도모에 동원할 군사를 규합하던 중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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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선비. 용인 직곡(直谷) 출신으로 아버지는 진사(進士) 안헌국(安憲國)이다.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 당시 양성(陽城)의 권서린(權瑞麟), 용인 직곡의 안지원(安趾遠), 과천(果川) 상포(霜浦)의 이인좌(李麟佐) 형제 등과 함께 이사성(李思晟)의 집에 모여 역모를 꾀하였다. 이들은 신임사화를 기화로 반드시 노론이 소론을 제거하려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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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죽계(竹溪). 자는 흥숙(興叔), 호는 우졸재(愚拙齋)·백암(栢巖). 관찰사(觀察使) 안종도(安宗道)의 증손이며, 좌찬성으로 추증된 안세복(安世復)의 손자이며, 순양군(順陽君) 안몽윤(安夢尹)의 아들이다. 첫째 부인은 판서 이경황(李慶滉)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성주이씨(星州李氏)이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가는 봉림대군(鳳林大君)[효종]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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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1728년(영조 4) 당시 용인·양성(陽城) 두 지역을 중심으로 양성의 권서린(權瑞麟), 용인 직곡의 안엽(安熀)·안정 형제와 안지원(安趾遠), 과천(果川) 상포(霜浦)의 이인좌(李麟佐) 형제 등은 이사성(李思晟)의 집에 모여서 무신의 난을 일으켜 역모를 꾀하고자 하였다. 이들은 신임사화를 기화로 ‘임금이 소론(少論)을 쓰기 때문에 노론(老論)이 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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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신경(藎卿). 찬성사 안문개(安文凱)의 9대손이며, 안언필(安彦弼)의 둘째아들이다. 안홍국은 1583년(선조 16)에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 임진왜란 때 선전관으로 임금을 의주까지 호종하였고, 삼남 지방을 돌며 왕명을 전달하였다. 그 공로로 뒤에 호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그 뒤 3도수군통제사 이순신(李舜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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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을 관할하던 지방 행정 구역. 고려시대 지방 제도를 정비하기 위해 전국을 5도와 양계로 나누면서 이전에 충청도 지역을 1314년(충숙왕 1) 양광도라 개칭하였다. 현재의 충청남도·충청북도 일원과 강원도 일부 및 고려시대 용인 지역의 명칭이었던 용구현(龍駒縣)을 포함한 경기도 남부 지역이 해당된다. 『고려사』「지리지」와『세종실록』「지리지」에 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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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할아버지는 양우(梁祐), 아버지는 양석륭(梁碩隆)이다. 부인은 전주부윤 권담(權湛)의 딸이고, 눌재(訥齋) 양성지(梁誠之)가 그의 아들이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대대리에 있다. 의정부우찬성 남원부원군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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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양량부곡은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고려 이래 조선 초기까지 특수한 행정 단위의 하나로 기능했다. 일반적으로 부곡은 군현으로 삼아 운영하기에는 인구와 토지가 적은 곳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양지현(陽智縣)조에 “본래 수주(水州)에 속한 양량촌부곡(陽良村部曲)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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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양지현감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증조부는 판위위시사(判衛尉寺事) 양석륭(梁碩隆)이고, 할아버지는 예빈시윤(禮賓寺尹) 양구주(梁九疇)이며, 아버지는 남원군(南原君)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문양공(文襄公) 양성지(梁誠之)이다. 1466년(세조 12) 양원은 진위현령(振威縣令)이었는데 외람되게 도둑을 잡은 공에 공신의 아들이란 점이 작용되어 상직(賞職)을 받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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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 터. 양지관아의 옛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로 1899년 당시 양지군수 신용균(申容均)이 만들어 중앙에 올린 『양지군읍지』가 있다. 『양지군읍지』공해조(公廨條)에 따르면 양지관아는 동헌(東軒)이 12칸, 내동헌(內東軒)이 29칸, 책실(冊室)이 4칸, 향장청(鄕長廳)이 4칸이었다. 또한 순교청(巡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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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양지리 유물산포지는 모두 다섯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양지리 유물산포지1에서 양지리 유물산포지5로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양지리 유물산포지는 용인과 이천을 잇는 국도 43호선에 자리한 양지읍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유물산포지1은 진흥 6차맨션아파트 주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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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9년(정종 1)부터 1895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본래는 수주(水州)에 속해 있던 양양촌부곡(陽良村部曲) 또는 양량부곡(陽良部曲)이었다. 1399년(정종 1) 군현제 정비 과정에서 부곡을 현으로 소속시키면서 양지현으로 고쳐 처음 감무(監務)를 설치했다. 1413년(태종 13) 양지현감을 파견했고, 읍치를 광주의 임내(任內)인 추계향(秋溪鄕)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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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0년(정조 4)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조선 후기인 1780년(정조 4) 수원부 양지현(현재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사는 문덕봉이 김덕희(金德希)와 함께 술에 취해 돌아오는 중에 비틀거리며 쓰러진 김덕희를 무릎으로 쳐서 죽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김덕희의 사인(死因)을 두고 고의인지 과실인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였다. 김덕희 사체에서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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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단묘(壇廟). 여단(厲壇)은 떠돌이 귀신들에게 제사를 드리거나, 지방의 부락(富樂)을 지켜주는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이는 집 안에 터줏대감을 모셔두는 터주가리가 있듯이 군현 단위의 터줏대감 구실을 하는 지역 신을 모셔두고 제를 올리던 사당이다. 용인현의 경우 조선 서변면의 보수원에 있었고, 양지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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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에 있는 양지현감·군수 7인의 송덕비군. 양지면사무소 안에 있는 7기의 송덕비는 원래 양지관아 입구 대로변에 세워져 있었다. 이후 도로 확장 공사 등으로 방치되었던 것을 1997년 양지면에서 예산을 확보하여 청사 내로 이전하게 되었다. 송덕비군은 형태상 7기의 비 모두 비좌에 비신 월두형이다. 각각의 비의 크기는 총 높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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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능내의 양천허씨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허준의 의학 서적.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능내 양천허씨 문중에 보존되어 있는 의학서로 전체 25권 25책 중 20권 20책만 전한다. 『동의보감』은 1597년(선조 30) 어의 허준(許浚)[1546~1615]이 왕명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의학서적을 하나로 모아 편집한 책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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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양천허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고문서. 양천허씨가 고문서는 증직 교지 두 점으로, 1806년(순조 6)에 문신인 허집을 학행으로 통정대부 이조참의에 증직하고, 부인 유인 이씨 역시 남편의 품계에 따라 숙부인으로 증직함을 알리는 교지이다.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양천허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다. 증직 교지 두 점 모두 필사본이며, 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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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안동권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권근의 시문집. 『양촌선생집(陽村先生集)』은 조선 전기 태종 대의 문신인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의 시문집으로, 1674년(현종 15)에 중간한 후쇄본이다. 19권 4책이며 목판본이다. 표제는 양촌선생집(陽村先生集)이다. 크기는 가로 20㎝, 세로 27.5㎝이다. 『양촌선생집』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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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어비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송전에서 국도 45호선으로 안성시와의 경계에 이르면 도로 서편에 해발 143m의 안산이 보인다. 이 곳에서 이동저수지 방면으로 진입하면 안홍국정려각에 이르고, 정려각에서 소로를 따라 50m 쯤 나아가면 안산 정상부로 향하는 산길이 나타난다. 이 산길로 15m쯤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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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1699년(숙종 25) 과거 시험에 이성휘(李聖輝)가 제출한 시권(試券)에 부정이 발견되어 이에 여러 사람들이 문초를 받는 기묘과옥(己卯科獄)이 발생하였다. 문초를 받던 사람 중에는 이성휘와 함께 과거 시험을 본 송성(宋晟)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송성의 매부가 바로 어사주(魚史周)였다. 송성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고자 어사주에게도 증인이 되어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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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언남동 유적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낮은 구릉 지대가 형성되어 있는 곳에 위치해, 일찍부터 선사시대 유적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이 있어왔다. 언남동 유적은 용인향교가 위치한 구릉의 동편에 있었으나 아파트 건설 공사로 인해 모두 훼멸되었다. 유적의 남쪽으로는 탄천이 흐르고 그 언저리에는 현재 영동고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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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있는 조선 중기 연안부부인 전씨의 묘. 연안부부인 전씨(田氏)는 성종의 장모이자 중종의 외할머니로, 영원부원군(鈴原府院君) 윤호(尹壕)의 부인이다. 윤호가 신창현감으로 있을 때인 1462(세조 8)년 6월 26일 낳은 딸이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이다. 본래 성종의 비는 한명회의 딸이었으나 19살로 요절하였고, 뒤를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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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시집. 1723년(경종 3)에 오명준(吳命峻)[1662~?]이 사신으로 청나라의 연경(燕京)에 가게 되자, 이를 송별하기 위한 연회에서 동생과 친구들이 지어 준 시를 모아 간행하였다. 불분권 1첩이며, 필사본이다. 표제는 연행별어(燕行別語)이다. 크기는 가로 32.2㎝, 세로 48.5㎝이다. 동생 오명항(吳命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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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조영복이 북경을 다녀오면서 쓴 일기와 동료 대신들과 주고받은 송별시 및 편지 등을 모은 첩. ‘연행일록, 연행별장 외 명현간찰(燕行日錄, 燕行別章 外 名賢簡札)’은 이지당(二知堂) 조영복(趙栄福)[1672~1728]이 지은 『연행일록(燕行日錄)』 1책, 『연행별장(燕行別章)』 1책, 『명현간찰(名賢簡札)』 34건 등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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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영문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영문리 선사유적은 모두 세 곳에 분포되어 있어, 각각 영문리 선사유적1과 영문리 선사유적2, 영문리 선사유적3으로 구분한다. 영문리 선사유적1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영문리에 경안천과 접하는 배머루산에 자리한다. 배머루산의 북서편 건너 구릉지인 참샘봉에 선사유적2가, 시무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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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시문첩. 오도일(吳道一)[1645~1703]이 1686년(숙종 12)과 1694년(숙종 20) 두 차례에 걸쳐 주청부사로 청나라의 수도 연경(燕京)을 다녀올 때, 그와 교유하던 인사들이 지은 송별 시문을 엮은 시문첩이다. 1686년의 연행에는 54명, 1694년의 연행에는 44명이 시작(詩作)에 참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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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계휘(季輝), 호는 추담(秋潭). 오경민(吳景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선공감역을 지낸 오희문(吳希文)이고, 아버지는 오윤해(吳允諧)이며, 어머니는 최형록(崔亨綠)의 딸이다. 경기도 송탄의 이충부락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19세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634년(인조 12) 별시 문과(別試文科)에 장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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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오달천(吳達天)[1598~1648]은 조선 중기 선조 대부터 인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으로 한성(漢城) 숭교방(崇敎坊)[현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해주(海州). 할아버지는 오희문(吳希文)이고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이다. 1620년(광해군 12) 모친상을 당하여 삼년상을 마치고 벼슬길에 나아가 사산현역(四山縣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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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이중(爾重).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역임한 오윤겸(吳允謙)이며, 오달천(吳達天)의 둘째 아들이다. 부인은 함평이씨이다. 47세의 나이로 죽어 현달하지 못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선영에 있다. 숭정대부 좌찬성겸 지의금부사 세자이사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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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관지(貫之). 호는 서파(西坡). 영의정 오윤겸(吳允謙)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오달천(吳達天)이며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 도사(都事) 조간(趙幹)의 딸이고, 아들은 오수채(吳遂采)이다. 오도일(吳道一)[1645~1703]은 4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에게서 자랐다. 성강(星江) 조견소(趙見素)에게 글을 배웠으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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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오도일의 초상화. 오도일 초상은 1703년 울진의 고산서원(孤山書院)에 오도일(吳道一)[1645~1703]의 위패를 배향하면서 모사하였던 초상화로 추정된다. 이후 1864년(고종 4) 고산서원이 서원철폐령으로 철향될 때 용인 가묘의 영당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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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사상(士常), 호는 모암(慕菴)·영모당(永慕堂)이다. 고조부는 영의정 오윤겸(吳允謙), 증조부는 오달천(吳達天)이고, 아버지는 오수량(吳遂良)이다. 외할아버지는 여성제(呂聖濟)이고, 부인은 최기창(崔起昌)의 딸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1705년(숙종 31)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1709년 교리를 거쳐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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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오명항의 초상화와 양무공신 교서. ‘오명항영정병함부양무공신교서(吳命恒影幀幷函附揚武功臣敎書)’는 오명항 초상화 한 점과 일등공신으로 책록하는 교서 한 부 그리고 그것들을 담았던 나무로 만든 함 등 총 세 점의 유물을 말한다. 오명항 초상화는 1979년 9월에 해주오씨 문중에서 「오명항 양무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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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사수(士受), 호는 체천(棣泉)이다. 증조부는 오윤겸(吳允謙), 조부는 오달천(吳達天), 아버지는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오도일(吳道一)이다. 외조부는 정엄(鄭淹), 부인은 윤행교(尹行敎)의 딸이다. 아들은 오명보(吳命普)이다. 음보로 주부(主簿)가 되었고, 영조 11년(1735)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부수찬(副修撰)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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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오수채의 초상화. 오수채 초상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오수채(吳遂采)[1692~1759]의 초상화 두 점으로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다. 모두 반신상으로 한 점은 사모단령의 관복상이고, 또 한 점은 양관조복의 관복상이다. 오수채 초상 두 점 역시 해주오씨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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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 자는 정지(貞之). 석성현감을 역임하였다. 후손들이 매우 번창하였는데, 사후 2백여 년이 지나는 동안 자손들이 거의 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손자 오희문(吳希文)[1539~1613]은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오희문의 아들 오윤겸(吳允謙)[1559~1636]도 영의정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척화신으로 심양에 잡혀가 순절한 삼학사(三學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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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익(汝益), 호는 추탄(楸灘) 또는 토당(土塘). 사헌부 감찰을 지낸 오경민(吳景閔)의 손자이고, 선공감역 오희문(吳希文)의 아들이며, 부인은 이응화(李應華)의 딸이다.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한 뒤 문음으로 영릉참봉(英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다시 봉선전참봉(奉先殿參奉)에 임명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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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오윤겸의 묘. 오윤겸(吳允謙)[1559~1636]의 자는 여익(汝益), 호는 추탄(秋灘), 또는 토당(土塘)이다. 오윤겸의 본관은 해주이며, 보물 제1096호인 『쇄미록(瑣尾錄)』을 남긴 선공감역 오희문(吳希文)의 아들이다. 오윤겸은 어머니가 용이 하늘로 오르는 태몽을 꾼 뒤 잉태하여 초명을 성룡(星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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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군신(君信), 호는 추은(楸隱). 좌승지를 지낸 오경우(吳景愚)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오경순(吳景醇)의 아들로 경우에게 입양된 오세공(五世恭)이다. 어머니는 삭녕최씨의 딸이다. 첫 부인은 김황(金晃)의 딸이고, 둘째 부인은 이민신(李敏信)의 딸이다. 7세 때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슬퍼함이 성인과 같았다고 한다. 광해군 때 문음으로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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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화(汝和), 호는 만운(晩雲). 아버지는 오희문(吳希文)이며, 큰아버지 오희인(吳希仁)에게 입양되었다.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의 아우이고, 오달제(吳達濟)의 아버지이다. 선조 말년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1610년(광해군 2) 세자익위사부솔(世子翊衛司副率)이 되고, 이해 별시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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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비연(斐然). 석성현감(石城縣縣監) 오옥정(吳玉貞)의 손자, 장성현감 오경민(吳景閔)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남인(南寅)의 딸이다. 부인은 연안이씨로 이석형(李石亨)의 증손녀이고, 외할아버지는 익양군(益陽君) 이회(李懷)이다. 외가인 영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으나 집은 서울 관동(館洞)[지금의 명륜동]에 있었다.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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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 오희문의 일기집. 『쇄미록(瑣尾録)』은 조선 중기에 선공감 감역을 지낸 비연(斐然) 오희문(吳希文)[1539~1613]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여러 곳으로 피난하며 10여 년간 쓴 일기이다. 1991년 9월 30일에 보물 제1096호로 지정되었다. 오희문이 난리 중에도 이와 같은 글을 남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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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해주오씨의 용인 입향조. 본관은 해주(海州). 오희보(吳希保)[1360~1426]는 해주오씨 8세손으로, 고려조에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을 지낸 오인유(吳仁裕)를 1대조로 한다. 증조부는 녹사(錄事) 오승(吳昇), 할아버지는 풍저승(豊儲丞) 오효충(吳孝冲), 아버지는 부정(副正) 오사렴(吳士廉), 어머니는 김윤부(金允富)의 딸이다. 부인은 원평서씨인 서민(徐敏)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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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옥산리 선사유적은 두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산90번지의 옥산리 선사유적1과 1002번지의 옥산리 선사유적2로 구분한다. 옥산리 선사유적1은 백암면 옥산리 청미천 가까이 북쪽으로 뻗은 능선 말단부에 유적이 자리한다. 또 도로 25호선 동편 옥산리 옥천마을 뒤편 구릉지 동쪽 경사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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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의 동계 규약과 계원 명단을 적은 계첩(契帖). 용인시 기흥구 중동 동계에서 만든 『완의』는 일종의 상하 합계로, 동계의 규약과 계원 명단을 적은 것이다. 1873년 10월 27일에 성책한 이후로 지금까지 보존되어 온 것은 그동안 동계에서 이 규약을 성실히 지키고 지속해 왔다는 물증이기도 하다. 보통 완의(完議)는 제일 먼저 모 완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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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 일대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마 터. 현재 완장리 일대에 조사·보고된 가마 터는 여섯 곳에 달한다. 각각 완장리 요지1, 완장리 요지2, 완장리 요지3, 완장리 요지4, 완장리 요지5, 완장리 요지6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데, 대부분 조선 중기에서 후기의 백자나 옹기 가마 터이다. 완장리 요지1은 도기 가마 터, 완장리 요지2는 분청사기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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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 알미골에 있는 조선 전기의 자기산포지.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처인성에서 북동편으로 아곡리에 있는 아곡제2저수지를 지나면 아곡리와 완장리의 경계부에 이르고, 이곳에서 다시 약 60m를 더 가면 속칭 ‘매랭이’라 불리는 야산이 나타난다. 이 야산 일대가 완장리 자기산포지이다. 199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 조사 때에는 완장리 초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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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왕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유물산포지. 용인과 광주를 잇는 국도 45호선을 따라 북상하면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입구가 나오고, 이 곳에서 약 1㎞ 더 올라가면 아래담마을이 오른편(동쪽)에 있는데, 왕산리 유물산포지는 이 마을의 뒤편 야산 남사면 경작지에 위치한다. 수습 유물은 조선 백자편들이다. 접시·완 등의 일반 용기와 흑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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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왜구가 경기도 용인 인근에 침입한 사건. 우리나라에서 왜구의 침략은 고려 말 약 40년간 제일 심했다. 왜구의 발생은 2차에 걸친 여몽 연합군의 일본 정벌과 일본 국내의 내란으로 몰락한 무사와 농민들이 노예와 미곡을 약탈하면서 생겨났다. 그들은 지방 호족들의 보호와 통제 아래 행동했으며, 근거지는 쓰시마[大馬島]·마쓰오라[松浦]·이키[壹岐] 등이었다. 조운선이나 조창을 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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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신선도 병풍. 『요지연도(瑤池宴圖)』는 일반적으로 주나라 목왕(穆王), 또는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서왕모(西王母)의 거처인 곤륜산(崑崙山)의 요지(瑤池)에서 연회를 베풀었다는 전설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즉 환상적인 곤륜산 요지에서 아름다운 여신 서왕모와 지상의 인간이 만나 연회를 즐기는 장면을 8폭 병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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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기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고려 건국 초기에는 지방에 수령이 파견되지 못하고 호족들에게 일임되고 있었는데, 성종 때 지방관의 설치를 보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지방에 외관을 파견한 것은 983년 12목의 설치를 시초로 하였다. 그 뒤 몇 차례의 개폐를 거듭하다가 1018년 지방 제도가 일단락되었다. 용구현(龍駒縣)은 고려 건국 초기에 지방 제도를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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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고안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가마 터. 용인 고안리 분청사기 도요지는 고안리 요지라고도 불리며, 15세기 분청사기의 요지이다. 유적의 크기는 가로 30m, 세로 40여m에 이른다. 백암면 고안리의 지내마을 남쪽에 있는 일명 사랑골 안의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한다. 근래 유적이 위치하는 구릉의 좌측에 묘지가 조성되면서 많이 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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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 주내마을에 있는 선사시대의 선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두창리 삼층석탑의 인근에 있다. 선돌의 크기는 길이 194㎝, 너비 65㎝, 두께 35~73㎝이고 단면은 직사각형이다. 선돌 주변에는 여러 개의 장대석(長大石)이 놓여 있으며, 앞쪽에는 제단의 기능을 하였던 판자돌이 자리하고 있다. 용인 두창리 선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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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맹골마을의 입구에 있는 노인회관 뒤편의 포장도로와 민가의 창고 건물 사이에 자리한다. 이 곳의 지세는 해발 411m의 건지산과 해발 344m의 수정산 사이에 형성된 곡간 지대로 고인돌은 산기슭의 끝쪽 해발 120m의 평지에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크기가 길이 340㎝, 너비 310㎝,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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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있는 신라 시대에서 통일 신라 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 사거리에서 신갈로 가는 도로를 따라 남하하다 보면 오른편에 삼막곡 저수지로 가는 조그만 도로가 있다. 이 도로를 따라 약 100m 가량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소실봉에서 남으로 뻗은 능선 말단부가 보이는데, 고분군은 이 능선 말단부의 남사면을 따라 넓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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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가마 터. 용인 서리 고려백자 요지는 서리 요지 두 곳 가운데 하나로, 서리 요지1로 불린다. 서리 중덕부락의 진입로 북편에 커다란 느티나무들이 서 있는 낮은 구릉이 있는데, 이 구릉이 바로 가마에 사용된 갑발더미이다. 1984년, 1987년, 1988년 3차례에 걸쳐 호암미술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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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내지봉수(內地烽燧). 석성산 봉수는 동쪽으로 건지산 봉수(직선 거리 15.5㎞), 북쪽으로 천천산 봉수(18.75㎞)와 교신하였다. 석성산 봉수는 석축으로 규모는 둘레 65.7m, 높이 5m 가량이다. 상부는 평탄한 대지를 이룬다. 봉수대의 동쪽으로는 높이 2.5m 가량의 암반과 암반 사이에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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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왕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모현읍소재지의 사거리에서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쪽으로 가면 오른쪽에 연립주택이 있는 평지가 나타나고, 고인돌은 해발 60m쯤 되는 편평한 곳에 자리한다. 유적의 서쪽에는 경안천이 흐르고 동쪽에는 해발 500m 안팎의 비교적 높은 산들이 있다. 1호 고인돌은 굄돌과 막음돌이 있는 탁자식이며, 덮개돌의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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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주북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용인시청에서 98호선을 따라 양지 방향으로 가다가 고림교를 지나면 숲원이마을이 있다. 지석묘는 이 곳의 백산수목원 안에 자리한 김해허씨 묘역에 위치한다. 주변 지세를 보면 고인돌은 주북천과 대대천이 합류하는 충적 대지의 편평한 평지에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은 길이 295㎝, 너비 250㎝, 두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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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권3 예전(禮典) 상장조(喪葬條)에는 “경성에서 10리 이내와 인가의 백 보 내에는 매장하지 못한다.”는 분묘에 대한 규정이 있었다. 오늘날 용인을 비롯한 서울 근교에 조선시대 명신들의 분묘가 다수 잔존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으로, 특히 용인 지역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인간의 사후 음택인 분묘가 조성되기에 가장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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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창리에 있는 선사시대의 선돌. 창리 마을 앞에 펼쳐진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창리천의 건너편 감바위골 골짜기의 입구에 위치한다. 현재 선돌 유적의 정면 쪽에 공장 ‘준일산업’이 자리하고 있어 들판 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감바위골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에 유적이 있다. 선돌의 크기는 길이 200㎝, 너비 70㎝,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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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되었던 관리들의 숙박 시설. 객관의 건축적 형태는 궐패(闕牌)와 전패(殿牌)를 모시는 상징적 기능을 가진 주사(主舍)와 숙박 장소인 양 익사(翼舍)로 이루어지는데 주사의 지붕이 양 익사의 지붕보다 높게 되어 있어 공간의 위계를 나타내고 있다. 건축의 구조적 면에서도 주사의 양식이 익사의 양식보다 고급스러운 기법을 사용하여 우월한 공간 성격을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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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마성리 할미산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 산성. 할미산성은 성 내부를 남북으로 양분하는 길이 180m의 공유 벽을 기준으로 북쪽의 내성, 남쪽의 외성으로 구분된다. 북쪽의 내성은 정상부를 포함한 높은 지대에 축조되었고, 남쪽의 외성은 비교적 낮은 지대에 조성되었는데, 형태상 사모형(紗帽形)이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651m로, 할미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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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도암 이재가 지은 향교·서원 등에서 지켜야 할 학칙서. 『용인향숙절목(龍仁鄕塾節目)』은 향교나 서원 등의 교육·의례를 행하는 학칙서로, 이재(李縡)[1680~1746]의 『도암집(陶庵集)』제25권 잡저편에 기록되어 있다. 경기도 용인시의 우봉이씨 종중에서 소장하고 있다. 절목에는 용인현의 양 서원, 즉 충렬서원과 심곡서원, 그리고 관내의 서당에서 강회(講會)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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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1403년(태종 3)과 1406년(태종 6)에 고려 말 이래의 문란된 지방 제도를 개편하려 했으나 시행되지 못하다가 1413년(태종 13)에 이르러서야 개편하였다. 이때의 군현제 정비 과정에서 용구현과 처인현을 합치고 내부의 면리를 형성했다. 『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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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정조 7)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김원철이 자기 아내의 묘를 박 여인 시아버지 산에 몰래 썼다. 여러 차례의 송사에서 김원철이 매번 패했으나 묘를 파가지 아니하자 박 여인이 사사로이 파내었다. 이에 김원철이 박 여인을 구타하였는데, 사흘만에 죽었다. 1784년(정조 8) 5월에는 고의적인 살인으로 사형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그 해 김원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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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정조 20)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발생한 강간 사건. 조선 후기 유교 윤리가 보편적으로 되면서 여성의 정절이 강조되었다. 따라서 자발적인 간통만이 아니라 강간 및 강간 미수마저도 정절을 해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강간 미수나 간통했다는 소문만으로도 정절을 잃은 것으로 인식해서 자살하는 예가 많았다. 그리고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여인에 대해서는 정표(旌表)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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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9년(정조 3)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1779년(정조 3) 7월에 정익한이 강대득(姜大得)으로부터 솥을 강제로 빼앗으려다가 구타하여 살해하였다. 몽둥이로 때렸는데 죽었다고 진술하였는데도 결안이 되지 않아 강대득의 동생 강대순(姜大順)이 글을 올려 다시 조사하였다. 강대순의 상언으로 다시 조사한 결과 정익한과 그의 숙부가 공범임이 분명해졌다.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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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정조 20)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두 사람이 함께 한 사람을 구타하여 사망하였는데, 정범(正犯)과 종범(從犯)을 분간할 수 없고, 직접적인 사인은 구타가 아니어서 모두 석방하였다. 살인에 대해서는 사형을 집행하였는데, 인명을 중시하여 살인사건을 신중하게 처리하는 정조대왕의 흠휼사상(欽恤思想)이 배경이다. 살인사건을 증거에 입각하여 합리적으로 처리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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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 중말 마을회관 서북쪽의 야산 산자락 일대에 형성된 유물산포지이다. 199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의 지표 조사에서 발견된 곳으로, 그 때 다량의 통일신라시대 토기편이 수습되었다. 이런 양상은 2003년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이 실시한 지표 조사에서도 다량의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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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안동권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시를 지을 때 운(韻)을 참고하기 위해 지은 책. 『운고초(韻考抄)』는 시를 지을 때 상평성(上平聲)·하평성(下平聲)·상성(上聲)·거성(去聲)·입성(入聲)에 따라 운을 배열하는 데 참고하기 위해 지은 책이다. 책의 규격이 작은 것으로 미루어 외출이나 여행 등에 항시 휴대하기 위해 만든 수진본(袖珍本)이다. 불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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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에 있는 시대 미상의 돌무지. 운학동 돌무지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의 중간말이 끝나는 곳에 있는 노거수 아래에 위치한다. 평면 원형, 단면 반원형에 가까운 돌무지는 한 변의 길이가 10~40㎝ 되는 잡석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밑지름 370㎝, 높이 200㎝ 정도의 규모이다. 돌무지의 남쪽 가장자리에 접해 최근의 것으로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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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에 있는 시대 미상의 돌무지군. 운학동 돌무지군은 해발 346.2m의 국사봉 남서 끝자락에 위치하며, 운학동 석실묘에서 북서쪽으로 약 10m 정도 떨어져 있다. 8기의 돌무지가 군을 이루고 있다. 돌무지는 한 변의 길이가 4~5m, 높이 50~100㎝ 정도인데, 평면 평태는 일정하지 않다. 운학동 돌무지군은 경기도 용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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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고분. 운학초등학교의 남동편에 있는 해발 346.2m의 국사봉 남서자락에 위치한다. 이 곳에서 남서쪽으로 약 10m 떨어진 곳에는 경기도 용인시에서 원삼면으로 가는 국지도 57호선이 있다. 석실은 평면 형태가 배가 부른 방형에 가까우며 길이와 폭이 각각 170㎝ 정도이다. 현재 관찰할 수 있는 벽은 4단 정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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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운학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 터. 운학동 요지는 운학동 요지1과 운학동 요지2로 나뉘는데, 운학동 요지1은 17세기 백자 가마 터로 구체적인 유적의 범위는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이고, 운학동 요지2는 15~16세기의 백자 가마 터로 유적의 범위는 폭이 30여m, 상하 길이가 20여m에 달한다. 운학초등학교에서 내어둔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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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선조가 원균에게 내린 선무공신 교서. 1592년(임진년)과 1597년(정유년)에 발발한 두 차례의 전란이 수습된 뒤 선조(宣祖)[1552~1608]는 국란의 위기 속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을 공신으로 책봉하였다. 선무공신은 임진왜란 당시 직접적으로 무공을 세웠거나 명에 병량 주청사(兵糧奏請使)로 다녀온 이들 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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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원암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마 터. 원암리 요지는 두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원암리 요지1은 사기막골 끝(원암3리 5번지[원암로 294])에서 남동쪽으로 약 300m 계곡 깊숙이 들어간 숲속에 위치한다. 관목으로 둘러싸여 있어 보존 상태는 좋은 편이다. 원암리 요지2는 여기에서 40여m 떨어진 윗쪽[남서쪽] 골짜기에 있다. 발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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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의병.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광보(廣甫). 병마절도사를 지낸 원준량(元俊良)의 차남으로 태어나 큰집인 원수량의 양자로 갔다. 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에 추증된 원균(元均)의 동생이다. 경기도 송탄시 도일동(현재 경기도 평택시 송탄동)에서 태어났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였지만 벼슬길에 나가지는 않았다.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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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현령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원주. 자는 자용(子容), 호는 형설(螢卨)이다. 1759년(영조 35) 무과에 급제하여 1764년 용인현령으로 부임하였다가 이듬해에 평양 중군으로 옮겼다. 충청도수군절도사로 재직하고 있을 때인 1782년(정조 6) 진천에서 행적이 수상한 자들을 미리 파악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진천현감 박인영 등과 함께 파직되었다. 다음 해 여주목사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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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전주. 선조로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 시 의병장으로 외삼촌인 경상우도관찰사 김성일(金誠一) 휘하에서 활약하다가 성이 함락당하자 김천일(金千鎰)[1537~1593] 등과 함께 자결한 유복립(柳復立)[1558~1593]이 있다. 아버지는 유은(柳訔)이다.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뒤 경기도 용인시에 낙향하여 은거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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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는 선사시대의 유물 분포 지역. 용인 지역은 한강 수계에 속하는 경안천과 탄천, 안성천 수계의 진위천 등과 그 샛강들이 흐르고 있으며 구릉 지대가 넓게 분포하고 있어 선사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수습되고 있다. 용인 지역에는 기흥구의 동백동 유적을 비롯하여 현재까지 약 80여 곳의 유물산포지가 분포한다. 이러한 유물산포지는 일부 지역에 한정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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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의병장. 본관 전주(全州). 자는 군서(君瑞), 호는 묵계(墨溪)이다. 할아버지는 부제학 유윤덕(柳潤德)이고, 생부(生父)는 유성(柳城), 양부는 참봉인 유지(柳墀)이다. 유복기(柳復起)와 유복립(柳復立) 형제는 외가에 맡겨져 외조부의 손에서 컸으며 외숙인 학봉 김성일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음보로 종부시주부(宗溥寺主簿)가 되었고, 1592년(선조 25)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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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유생.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 때 통덕랑(通德郞) 한홍제(韓弘濟)와 함께 결사대를 조직하여 반란군이 좌찬고개를 지나지 못하게 막아 공을 세웠다. 유상한(劉相漢)은 이인좌의 난이 평정된 당시에는 포상되지 않았다가 1788년(정조 12) 정조가 당시 반란 진압에 참여하였으나 포상 받지 못한 공신들을 다시 찾을 때 알려져 그 후손이 상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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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 증조부는 유한규(柳漢奎)이며 조부는 유희(柳僖), 외조부는 반남박씨 박형수(朴衡壽)이다. 아버지는 유성소(柳聖昭)이며 생부는 유성무(柳聖武), 부인은 동래정씨 정한조(鄭漢朝)의 딸이다. 28세 때인 1887년(고종 2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를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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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여회(汝懷), 호는 성곡(聖谷). 문성공 유순정(柳順汀)의 9대손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 유진운(柳振運)이다. 남구만(南九萬)에게 수학했으며, 문필로 이름이 있었다. 1706년(숙종 32) 진사시에 급제한 뒤 괴음현감(槐陰縣監)을 지냈으며, 1721년(경종 1)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였다. 이후 영남어사(嶺南御使)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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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유수(柳綏)의 초상화와 영정함. 유수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자는 여회(汝懷)이고, 호는 성곡(聖谷)이다. 유순정(柳順汀)의 9대손이다. 1721년(경종 1)에 증광시(增廣試)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724년(영조 즉위년) 승지가 되었고, 1725년(영조 1)에 함종부사(咸從府使)를 지냈으나 이제항(李齊恒)의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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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문인으로서 무인을 능가하는 무예를 가지고 있었다. 야인(野人)을 정벌하여 정세를 편안히 하였으며, 중종의 즉위에 공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이 되었으며, 이과(李顆)의 옥사를 다스려서는 정난공신(定難功臣)에 추대되었다. 또한 삼포왜란(三浦倭亂)을 토벌한 공으로 영의정에 오르기도 하였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지옹(智翁), 호는 청천(菁川). 증조부는 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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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기계. 자는 사호(士鎬), 호는 대재(大齋)이다. 권상하(權尙夏)·이재(李縡)의 문인이다. 유일로 천거되어 세자시강원 자의(諮議)가 되었다. 그 후 사헌부 지평, 집의, 경연관 등을 역임하였고, 이조·형조·호조의 참의를 거쳐 돈녕부도정에 이르렀다가 사직한 후 안성에 은거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1782년(정조 6)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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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유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 지방도 321호선을 따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에서 포곡읍 쪽으로 가다가 삼성교통박물관을 지나면 소운마을이 나타난다. 소운마을의 구판장에서 마을 안쪽으로 있는 작은 길을 따라 200m쯤 가면 길이 굽어지는 지점에 고인돌이 있다. 유적이 자리한 곳은 해발 70m쯤 되는 하천 옆의 평지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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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유운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선돌군. 유운리 입석군의 건립 동기에 대하여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첫째,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 장군과 함께 왜군과 싸워 평양 수복에 큰 공을 세운 이일 장군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이일 장군은 어려서부터 힘이 장사였는데,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양쪽 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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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유운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에 있는 에버랜드의 주차장 북동편인 유운리 소운마을에 자리한다. 주변 북쪽으로 100m 거리에 ‘유운리 지석묘군’이 위치한다. 유적 동편으로는 경안천이 북류(北流)하고, 경안천과의 사이에 강안 충적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다. 서편으로는 해발 236m의 시루봉에서 흘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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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단오(端五), 자호는 애오로(愛吾盧). 문성공 유순정(柳順汀)의 9대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유진운(柳振運), 아버지는 유담(柳紞)이다. 부인은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쓴 사주당(師朱堂) 이씨이며, 『언문지(諺文志)』의 저자 유희(柳僖)의 아버지이다.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벼슬은 높지 않았으나, 담운(澹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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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석천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류형원의 묘 류형원(柳馨遠)[1622~1673]의 자는 덕부(德夫), 호는 반계(磻溪),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류형원이 죽은 지 100년 뒤에 영조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위한 제도 개혁을 주장한 『반계수록(磻溪隨錄)』을 높이 평가하여 이를 인쇄하여 세상에 널리 반포하도록 명하였다. 이를 계기로 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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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반정공신이자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자연(子淵). 증조부는 부지돈녕부사 유자해(柳子偕), 할아버지는 광주목사 유양(柳壤), 아버지는 영의정(領議政) 유순정(柳順汀), 어머니는 별좌 권효충(權孝忠)의 딸이다. 딸은 중종과 숙원홍씨(淑媛洪氏) 사이에서 태어난 해안군(海安君) 이희에게 출가하였다. 어려서부터 무예를 익혔으며, 1506년의 중종반정 당시 이를 주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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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의 유태홍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의 무신 유홍의 초상화. 유홍 초상은 가슴 부분까지만 그려진 반신상으로 유홍(柳泓)[1483~1551]의 또 다른 초상화인 전신상을 보고 이모(移模)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1990년 11월 22일에 용인시 향토유적 제16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유홍의 후손인 유태홍이 소장하고 있다. 유홍의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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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실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초명은 경(儆), 자는 계중(戒中), 호는 서파(西坡)·방편자(方便子)·남악(南嶽). 영의정 유순정(柳順汀)의 11세손이며, 아버지는 목천현감(木川縣監) 유한규(柳漢奎), 어머니는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쓴 사주당(師朱堂) 이씨이다. 영조 대에서 헌종 대까지 살았던 학자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 몰두하여 『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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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신백(信伯), 호는 신곡(薪谷)이다. 할아버지는 교리 윤섬(尹暹), 아버지는 현감 윤형갑(尹衡甲)이다. 외조부는 황치경(黃致敬)이고, 부인은 박정원(朴鼎元)의 딸이다. 그의 친동생 윤집은 청나라 와의 화의를 강경하게 반대한 3학사의 한 사람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7년 정묘호란 때 상소하여 척화를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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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여진(如進), 호는 과재(果齋)이다. 증조부는 윤시영(尹時英), 조부는 윤징(尹澄), 아버지는 윤우신(尹又新)이다. 외조부는 유문윤(柳文潤), 부인은 원경심(元景諶)의 딸이고, 아들은 윤형갑(尹衡甲)이다. 1583년(선조 16)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검열(檢閱)·지평(持平) 등을 지냈다. 1587년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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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덕풍(德豊). 자는 기지(起之). 증조부는 윤경복(尹景福), 외조부는 윤완(尹完), 조부는 윤춘령(尹春齡)이며, 아버지는 윤집(尹鏶), 부인은 이수길(李綏吉)의 딸이다. 1584년(선조 17) 수원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출생하였으며, 1627년(인조 5)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부사를 역임하였으며, 1635년(인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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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중옥(仲玉), 호는 퇴암(退巖). 아버지는 용안군(龍安君) 윤종주(尹宗柱)이며, 아들은 청주목사(淸州牧使) 윤행엄(尹行儼), 증영의정(贈領議政) 윤행임(尹行恁) 등이 있다. 영조·정조 시대에 활동한 문인으로 청렴한 자세로 이름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하였고 진사시 급제 후 여러 고을의 원을 하였는데 특히 금산군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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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단국 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와 개항기 문신이자 서화가인 윤용구가 남긴 복식 유물. 윤용구 유물(尹用求遺物)은 조선 제23대 순조(純祖)의 셋째 딸 덕온 공주(德溫公主)[1822~1844]의 남편인 남령위(南寧尉) 윤의선(尹宜善)의 양아들 윤용구(尹用求)[1853~1939]가 생전에 입었던 현녹색 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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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유생. 윤여호(尹汝虎)의 아들이다. 조부는 참봉을 지낸 윤소안(尹紹安), 증조부는 경기도도사를 지낸 윤필경(尹弼卿), 외조부는 안산(安山) 김오(金汚)이다. 첫째부인은 청주 한응록(韓應祿)의 딸이고, 둘째부인은 문경공(文敬公) 창평추씨의 딸이며, 셋째부인은 청주 이성록(李成綠)의 딸이다. 아들은 넷을 두었는데, 윤신원(尹莘元)·윤신성(尹莘聖)·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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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원. 자는 성숙(成叔). 증조부는 윤곡(尹曲), 외조부는 조유형(趙惟珩), 조부는 윤형태(尹衡泰)이며, 아버지는 윤상(尹床), 부인은 우세중(禹世重)의 딸이다. 1704년(숙종 30) 10월 임금은 윤취은을 포함한 관학 유생들에게 친히 강경(講經)을 시험한 후 직부전시(直赴殿試)하도록 명하였다. 1705년(숙종 31) 윤취은은 식년문과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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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윤행엄(尹行儼)[1728~1799]은 음서 출신이었으나 실무에 밝았고 북벌의 뜻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어머니의 죽음에 슬픔이 극에 달하여 이듬해 세상을 떠났을 정도로 효자였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경보(敬甫), 호는 수묵당(守黙堂). 조부는 용안군(龍安君) 윤종주(尹宗柱)이며, 아버지는 익찬(翊贊) 윤염(尹琰), 부인은 달성서씨(達成徐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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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윤행임(尹行恁)[1762~1801]은 시파(時派)의 중추적인 인물이다. 시파와 벽파(辟派)의 당쟁이 극심하였던 정조 대에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나 탄핵 또한 빈번하여 자주 유배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성보(聖甫), 호는 방시한재(方是閑齋)·석재(碩齋). 조부는 용안군(龍安君) 윤종주(尹宗柱)이며, 아버지는 익찬(翊贊) 윤염(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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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숙보(叔保). 윤관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문하평리 충간공(忠簡公) 윤승순(尹承順)이고, 할아버지는 좌명공신(佐命功臣) 소정공(昭靖公) 윤곤(尹坤)이며,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영천부원군(鈴川府院君) 윤삼산(尹三山)이다. 아들은 윤은로(尹殷老)와 정국공신(靖國功臣)인 윤탕로(尹湯老)이다. 딸이 성종의 세 번째 왕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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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에 있는 조선 중기 문신 이자의 묘. 이자(李耔)[1480~1533]의 본관은 한산, 호는 음애(陰崖), 시호는 문의(文懿)이며 목은 이색의 후예이다. 이자가 남긴 『음애일록』은 1509년(중종 4) 윤9월부터 시작하여 1516년(중종 11) 12월까지의 기록으로, 당시의 정치상황은 물론이고, 왜구와 교섭한 일, 농사에 관한 옛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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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한산이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 이자(李耔)[1480~1533]의 일기. 『음애일기(陰崖日記)』는 『음애일록(陰崖日錄)』, 또는 『음애잡기(陰崖雜記)』라고도 하는데,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음애 이자(李耔)[1480~1533]가 1509년(중종 4) 9월부터 1516년 12월까지 조정에서 일어난 일 등을 기록하고 있는 일기문이다.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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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의령남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고문서. 의령남씨가 고문서는 조선 초기에 남은(南誾)[1354~1398]이 남긴 유서(분재기)와 남재(南在)의 왕지, 조선 중기에 남타(南柁)·남일성(南一星)·남식(南烒)·남이성(南二星)에게 내린 교지 5점 및 남처관(南處寬)의 교첩, 조선 후기의 남구만(南九萬)·남학명(南鶴鳴)의 준호구 등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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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국가가 위급할 때 백성이 스스로 조직했던 자위군. 의병이란 나라 안에 위급한 일이 발생했을 때 국가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자원 종군하는 민군(民軍)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의병의 전통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었으며,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조선 말기에까지 이르렀다. 특히 조선 말기의 의병은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었다. 이러한 의병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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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의원군 이혁 일가 묘에서 나온 출토 유물. 의원군 이혁 일가 묘 출토 유물은 1999년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에 위치한 의원군(義原君) 이혁(李爀)[1661~1722] 일가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130종 181점의 복식과 서간(書簡)·지석(誌石)[죽은 사람의 행적을 적은 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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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원(聖源). 할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장양공(壯襄公) 이일(李鎰)이고, 아버지는 이숭의(李崇義)이다. 1644년(인조22)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좌수사(慶尙左水使)에 이르렀다. 경상좌수사로 있을 때 할아버지 이일의 전공을 묘사한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壯襄公征討時錢部胡圖)」 등을 그려 문중의 여러 파(派)에 배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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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 자는 효백(孝伯). 증조부는 이선흥(李善興), 조부는 이후배(李厚培), 아버지는 이만림(李萬林)이며, 부인은 권만경(權萬慶)의 딸이다. 유학(幼學)으로 47세 때인 1747년(영조 23) 식년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찰방과 정랑(正郞)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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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이경석(李景奭)[1595~1671]은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 산림의 학자들을 대거 천거하여 요직에 오르도록 도와주었으나 훗날 그가 천거한 송시열과 정적이 되어 노소분당(老少分黨)이 이루어지면서 소론의 비조가 되었으며, 조선 중기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주관하였던 명상(名相)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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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경석의 궤장과 화첩. 이경석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 화첩은 1668년(현종 9) 11월 현종(顯宗)이 원로대신인 이경석(李景奭)[1595~1671]을 예우하기 위해 의자인 궤(几) 1점과 지팡이인 장(杖) 4점을 내려 준 것을 축하하는 연회 장면을 그린 화첩 등 6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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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때 용인의 험천 전투에서 전사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아명(兒名)은 경민(慶敏). 초명(初名)는 경징(慶徵). 자(字)는 군선(君善) , 호(號)는 남포(藍浦), 벽오(碧梧) 이시발(李時發)의 다섯째 아들이다. 이경선(李慶善)은 1624년(인조 2)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진사(進士)가 되고, 1632년(인조 10)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길에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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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이경장(李敬長)[1482~1561]은 은의(恩義)로 백성을 다스렸으며 근면함을 생활신조로 삼았다. 두루 관직을 역임하면서 80세가 되도록 큰 허물이 없었으니 모든 사람들이 칭송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흠중(欽仲). 호는 역헌(櫟軒). 증조부는 증 좌의정(贈左議政) 이회림(李懷林)이고, 조부는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이석형(李石亨)이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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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한산, 자는 계행(啓行), 호는 송서(松西), 시호는 문간이다. 현감 이희선(李羲先)의 아들이다. 1822년(순조 22)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직각·이조참의·이조참판·평안도관찰사·대사간·대사헌·한성판윤 등 내외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1849년 철종이 즉위하자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고종 때 영의정에 올랐고 1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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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성(汝省), 호는 송음(松陰)·미강(眉江). 할아버지는 절도사 이원, 아버지는 군수 이통(李通)이다. 어머니는 영의정 유전(柳㙉)의 딸이다. 1613년(광해군 5), 19세의 나이로 진사가 되었으나, 당시 폐모론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두문불출하다가 인조반정 후인 1624년(인조 2)에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처음 전적에 임명되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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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자는 경담(景膽). 1567년(선조 즉위년) 임금에게 기묘사화(己卯士禍)에 화를 당한 사람들을 포증(褒贈)하기를 청하였으며, 그것이 허락되자 『기묘록(己卯錄)』에 기록되었다. 1589년(선조 22) 장성현감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을 떠나자 도보로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러 삼등현령(三登縣令)에 임명되었으며, 군사를 다스리는 일과 양곡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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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사무(士武), 호는 우계산인(雨溪散人). 증조부는 사간원사간 이의무(李宜茂), 할아버지는 좌의정 이행(李荇), 아버지는 도사 이원상(李元祥), 어머니는 동부승지(同副承旨) 신옥형(申玉衡)의 딸이다. 1567년(명종 22) 생원이 되고, 1574년(선조 7)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어 권지성균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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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에서 활동한 문신. 1776년(정조 즉위) 영조의 서녀(庶女) 화완옹주(和緩翁主)와 함께 정조의 즉위를 반대하던 홍인한·정후겸이 죽임을 당한 뒤인 7월 훈련원정으로 있었을 때, 헌납 신응삼(辛應三)이 이광운의 형인 무관 이철운(李喆運)이 홍인한의 총애를 받았다는 사실 등을 이유로 탄핵하여 사판(仕版)에서 삭제되었다. 1788년 경기도 용인에서 살다가 “세자를 세워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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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백첨(伯瞻), 호는 석음와(惜陰窩). 호는 배우는 데 힘쓰고 시간을 아껴 매사에 부지런히 하라는 뜻으로 송시열이 지어주었다 한다. 고조부는 증직제학 병조정랑 이신충(李藎忠), 증조부는 증집의 정선군수 이영인(李榮仁), 조부는 증좌승지 이사익(李士益),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이후망(李堠望)이다. 송시열과 동향으로 송시열의 자손들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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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수지(修之), 호는 계은(桂隱). 증조부는 대호군(大護軍) 이승안(李承顔)이고, 조부는 상호군(上護軍) 이정공(李靖恭)이다. 아버지는 증좌의정(贈左議政) 이원발(李元發)이며, 어머니는 성천김씨(成川金氏)로 중랑장(中郞將) 김남보(金南寶)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홍언수(洪彦修)의 딸인데 후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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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이귀산(李貴山)[?~1424]은 형 이귀령(李貴齡)과 함께 태조가 임금이 되기 전의 친구였으나 태조 대에는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하고 주로 태종 대에 활동하였다. 각 도의 관찰사를 역임하면서 지방 행정을 담당하여 국초의 창업 기틀을 잡는 데 공헌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흥서(興瑞), 호는 괴은(槐隱, 塊隱). 증조부는 대호군(大護軍) 이승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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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용인 출신의 개국공신이자 용인이씨의 시조. 왕건의 누이를 아내로 맞이하여 고려조의 첫 부마(附馬)가 되었다. 신라 말에 용구(龍駒)[경기도 용인시의 옛 이름]에서 태어난 토호(土豪)였는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왕건이 고려의 태조가 되었을 때 개국공신의 예우로서 식읍(食邑) 500호를 하사하고 산성군(山城君)에 봉하고자 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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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이자 의관.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청백리인 이백지(李伯持), 조부는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이수령(李守領),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이효검(李孝儉)이며 어머니는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권복(權復)의 딸이다. 부인은 윤사흔(尹士昕)의 딸이며, 아들 이원량(李元亮)을 두었다. 형제로는 이개보(李介甫)와 이우보(李祐甫)가 있다. 1457년(세조 3) 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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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한산. 자는 계야(季野). 목은 이색(李穡)의 5세손으로서 증조부는 이숙무(李叔畝), 조부는 지중추원사를 지낸 이형증(李亨增), 외조부는 종사랑(從仕郞) 품계를 지낸 선산(善山) 김관안(金寬安)이다. 부인은 찰방을 지낸 최홍보(崔洪輔)의 딸이다. 1495년(연산군 1) 증광시에 진사로 합격하였다. 이후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역임하였으며 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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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능(幼能)이며, 호는 정관재(靜觀齋)·서호(西湖)다. 증조부는 이계(李啓), 할아버지는 좌의정 이정구(李廷龜), 아버지는 대제학 이명한(李明漢)이다. 외조부는 박동량(朴東亮), 부인은 이행원(李行遠)의 딸이다. 1649년(인조 27)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설서(說書)·대교(待敎)·교리(校理) 등을 거쳐 이조와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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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중구(仲久), 호는 정존재(靜存齋). 아버지는 도승지로 추증된 이종유(李宗蕤)이며, 어머니는 영월엄씨(寧越嚴氏)이다. 부인은 경세인(慶世仁)의 딸이다. 12세 때 부친을 여읜 후 학문에 힘써, 동리 가까이 살던 학덕이 높은 유우(柳藕)의 문하가 되었다. 결혼 후에는 장인 경세인에게 사사하며 식견을 넓혀 나갔다. 이후 천문, 산술, 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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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상여(相如). 아버지는 이백주(李白州)이다. 1651년(인조 20) 아버지 이백주가 시험관으로 있던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남달리 총명하고 시문(詩文)이 아름다우며 풍도(風度)가 있었다. 그러나 부친의 병간호로 마음을 졸이고, 부모상을 당하여 몸이 상하여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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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사추(士秋), 호는 귀락당(歸樂堂)·행호거사(杏湖居士)이다. 좌찬성에 추증된 이할(李劼)의 증손이며,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의 손자이며, 우의정 이숙(李䎘)의 둘째 아들이다. 후에 사헌부 지평(持平)에 추증된 중부(仲父) 이흡(李翕)의 후사가 되었다. 부인은 안동김씨로 영의정 김수흥(金壽興)의 딸이다. 효종 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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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가구(可久)이다. 좌찬성에 추증된 이할(李劼)의 증손이며,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측실에게서 출생한 진사 이휘(李翬)이다. 첫째 부인은 청송심씨(靑松沈氏)이며, 둘째 부인은 광산김씨(光山金氏) 김장생(金長生)의 서손(庶孫)이다. 『주역(周易)』을 즐겨 읽어 앞날을 예측하였다. 1681년(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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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사하(士夏)이다. 좌찬성에 추증된 이할(李劼)의 증손이며,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의 손자이며, 우의정 이숙(李䎘)의 둘째 아들이다. 병조판서를 지낸 이만성(李晩成)의 형이며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아버지이다. 외가인 부안에서 출생하였으며, 10세 전에 경사(經史)에 통달하는 총명함을 드러내었다. 1675년(숙종 1)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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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청해(靑海). 자는 이질(而質). 개국공신(開國功臣) 1등에 책록된 청해군(靑海君) 이지란(李之蘭)의 후손이다. 증조부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고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된 이옥(李沃)이다.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하고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된 이인기(李麟寄)이다. 아버지는 이명노(李明老)이고, 부인은 밀양박씨 박영신(朴榮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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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백눌(伯訥), 호는 풍서(豊墅) 또는 상와(常窩)이다. 증조부는 부제학 이단상(李端相),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이희조(李喜朝), 아버지는 사간원 대사간 이양신(李亮臣)이다. 1747년(영조 23) 진사시에 합격하여 음보(蔭補)로 시강원의 동궁요속(東宮僚屬)에 임명되었고, 장악원정을 거쳐 1788년 동부승지에 특배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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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함(景涵), 호는 동암(東巖)·북산(北山)이다. 증조부는 이달선(李達善), 할아버지는 이공인(李公仁), 아버지는 이중호(李仲虎)이다. 외조부는 윤구(尹衢)이고, 부인은 박이(朴苡)의 딸이다. 전라남도 남평에서 출생하였다. 1568년[선조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573년 문과에서 장원급제하였다. 이듬해 사가독서(賜暇讀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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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판서를 지낸 이광시(李光時)이고, 할아버지는 홍복도감판관(弘福都監判官)을 지낸 이중인(李中仁)이다. 아버지는 호조판서를 지낸 이사위(李士渭)이고, 어머니는 지군사(知郡事) 임세정(任世正)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대호군(大護軍) 윤보(尹寶)의 딸이었고, 사별한 뒤 판관(判官) 권경(權敬)의 딸을 둘째 부인으로 맞았다. 아들은 증이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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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원(聲遠). 시호는 충정(忠貞).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의 재종손이며, 영의정 이의현(李宜顯)의 조카이다. 아들인 이경호·이중호 형제를 비롯하여 후손 6명이 대과에 급제하였고, 손자 이재협은 1789년(정조 13)에 영의정을 지냈다. 이보혁이 1728년(영조 4) 성주목사로 있을 때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났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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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선명(善鳴). 문강공(文康公) 이석형(李石亨)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이조판서 이만상(李萬相), 어머니는 예조판서 오준(吳竣)의 딸이다. 부인은 전라감사 홍주삼(洪柱三)의 딸이며, 아들은 송벽당(松檗堂) 이정신(李正臣)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하여 1669년(현종 10) 진사시에 급제하였으며, 정릉참봉(貞陵參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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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사언(士彦). 증조부는 신종군(新宗君) 이효백(李孝伯), 조부는 장연령(長淵令) 이은동(李銀同), 아버지는 순안령(順安令) 이여귀(李如貴)이다. 외조부는 윤맹경(尹孟卿)이고, 부인은 남정진(南廷縉)의 딸이다. 1576년(선조 9)에 식년시(式年試) 문과의 병과(丙科) 7위로 급제하였다. 묘비에 의하면 고양군수였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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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이선(理善), 호는 쌍곡(雙谷). 조부는 병조정랑 이신충(李藎忠), 아버지는 진사 출신 이계인(李啓仁)이다. 어머니는 세종의 6세손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외가에서 자랐다. 1590년(선조 23) 생원 급제 후 1601년(선조 34) 식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다.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으로 시작하여 병조좌랑·형조좌랑·예조좌랑과 삼화현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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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호는 평은(平隱). 구성부원군 이중인(李仲仁)의 맏아들이다. 이사영(李士穎)[?~1406]은 일찍 문과에 급제하여 청주목사(淸州牧使), 안동부사(安東府使), 형조전서(刑曹典書)를 거쳐 1391년(공양왕 3) 밀직사우대언(密直使右代言)에 임명되었으나, 정몽주(鄭夢周)가 격살된 후 당여(黨與)로 몰려 이색(李穡), 이숭인(李崇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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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지후(祗候) 이석(李奭)이고, 할아버지는 판서(判書) 이광시(李光時)이다. 아버지는 홍복도감판관(弘福都監判官) 구성부원군(駒城府院君) 충숙공(忠肅公) 이중인(李中仁)이다. 문효공(文孝公) 전신(全信)의 외손이다. 형제로는 전서(全書)를 지낸 형 이사영(李士潁)과 지주사(知州事)를 지낸 아우 이사이(李士彛)가 있다. 아들은 이백지(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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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의 문인.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조 태종의 서자인 경녕군(敬寧君)의 11대 손으로, 남편은 목천현감인 유한규(柳漢奎)이고, 아들 유희(柳僖)는 『언문지(諺文志)』를 저술한 한글학자이다. 충청도 청주(淸州) 서면(西面) 지동(池洞)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녀자의 솜씨를 익히고 옛 열녀를 마음으로 사모하여 이에 『소학(小學)』, 『가례(家禮)』, 『여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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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이석(頤奭). 정종(定宗)의 왕자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의 7세손이고, 아버지는 사직서참봉(社稷署參奉) 이전(李瑑)이다. 이상경(李尙敬)[1609~1674]은 인조 대부터 현종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1636년(인조 14)에 무과에 급제한 뒤 선전관(宣傳官)으로 등용되어 도사(都事)가 되었다.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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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회(汝恢). 정종의 일곱째 아들 이덕생(李德生)의 후손으로 승지에 추증된 이징후(李徵厚)의 손자이다. 양주(楊洲) 조희석(趙禧錫)의 외손자이며, 아버지는 대사헌(大司憲)에 추증된 이제상(李齊尙)이다. 아들은 이정인(李廷仁)이다. 이상성(李相晟)[1690~1741]은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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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용인 전투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부평(富平). 자는 문거(文擧). 군수 이덕일(李德一)의 아들이며,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 이자신(李自新)의 외손자이다.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3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승문원에 등용되어 저작에 올랐다. 1636년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이 되었다. 이해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충청도관찰사 정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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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치수(稚秀). 아버지는 이학연(李學淵)이고, 할아버지는 이익원(李益原), 증조부는 이회만(李會晩)이다. 외조부는 의령 출신의 남경하(南敬夏)이며, 처부는 전주 출신의 이사의(李師義)이다. 이상준은 용인에서 태어나 거주하다가 1786년(정조 10) 식년문과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벼슬로는 정6품인 사간원정언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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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용인에 은둔한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남곡(南谷). 판도판서(判圖判書)를 지낸 이송현(李松賢)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경덕재생(慶德齋生) 이흡(李洽)이며, 어머니는 영천윤씨(永川尹氏) 윤취(尹就)의 딸이다. 이석지(李釋之)는 이곡(李穀)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341년(충혜왕 2) 목은(牧隱) 이색(李穡)과 함께 성균시(成均試)에 급제하여 진사(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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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이석형(李石亨)[1415~1477]은 세종 대부터 성종 대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김반(金泮)의 문인이다. 뛰어난 학문으로 당대 8대 문장가로 꼽히기도 하였다. 집현전학사였으나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死六臣)에는 포함되지 않으며,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를 짓는 것에 그쳤다.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에 “중국은 다만 성곽(城郭)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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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차옹(次翁), 호는 졸옹(拙翁). 할아버지는 참판을 지낸 이중손(李仲孫)이고, 아버지는 판관(判官)을 지낸 이희안(李希顔)이다. 이성동(李成童)은 조선 중기 연산군 대에 활약한 문신으로 기묘명현의 산사람이다. 1495년(연산군 1) 생원으로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지평(持平)·사간(司諫)·직제학(直提學)·대사간(大司諫)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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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중경(仲庚), 호는 북계(北溪)·우사(雩沙). 파주목사 이정악(李挺岳)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 동지중추부사 김광찬(金光燦)의 딸이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외증손이며, 외삼촌은 유명한 문곡공 김수항(金壽恒)이다. 아들 이의현(李宜顯)은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는데, 부자 정승으로 유명하였다. 특히 용인이씨 가계 중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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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지숙(持叔). 증조부는 대사간 이사경(李士慶), 아버지는 나주목사 이하악(李河岳)이다. 1669년(현종 10) 사마시에 합격한 후 1694년(숙종 20) 알성 문과에 을과로 합격하여 전설사별검(典設司別檢)·장흥고주부(長興庫主簿)·감찰·공조좌랑·황주판관·남원현감·성균관직강·병조좌랑·병조정랑·시강원사서·문학·사헌부지평·정언·경기도도호부사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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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청해(靑海). 자는 일경(一卿). 개국공신(開國功臣) 1등인 이지란(李之蘭)의 후손으로 첨정(僉正) 이문주(李文柱)의 손자이며, 금구(金溝) 이준생(李俊生)의 외손자이다. 아버지는 증참판(贈參判) 이후(李詡)이며, 부인은 통덕랑(通德郞) 안두극(安斗極)의 딸이다. 이수민(李壽民)[1651~1724]은 숙종 대에서 경종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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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중우(仲羽), 호는 일휴정(逸休亭). 관찰사 이지신(李之信)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승지(承旨)에 추증된 이할(李劼)이다. 아버지는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유겸(李有謙)이며, 어머니는 윤홍유(尹弘裕)의 딸이다. 부인은 박호(朴濠)의 딸이다. 이숙(李䎘)[1626~1688]은 인조 대부터 효종, 현종, 숙종의 4대 35년간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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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이숙기(李淑琦)[1429~1489]는 세조와 성종 대에 활동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으며, 기개가 넘쳐 무신의 자질이 뛰어났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할 때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에 봉해졌고, 건주위(建州衛)를 정벌하는 등 국경을 수비하는 데 힘을 기울인 명장(名將)이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근(公瑾). 증조부는 판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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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주이씨의 용인 입향조이자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효령대군의 5대손이고, 평창군수 이유언(李幼彦)의 아들이다. 이순수는 무과에 급제하여 종부시정의 벼슬을 지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에 주로 세거하는 전주이씨들의 입향조이다. 묘소는 원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 하마산마을 뒤에 있다가 갈담리 독점 뒷산으로 이장하였다. 도승지 겸 예문관직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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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여순(汝詢), 호는 죽유(竹牖). 아버지는 개성유수 이후산(李後山)이고, 어머니는 풍산김씨로 판서 김수현(金壽賢)의 딸이다. 1663년(현종 4)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이듬해 정릉참봉(靖陵參奉)에 임명되었다. 1673년(현종 14) 빙고별검(氷庫別檢)이 되었으나 파직 당하였다가 1678년(숙종 4) 복직되었으며, 이어 동몽교관(童蒙敎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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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사인(士人).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화보(和甫).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으로 문강(文康)이라는 시호를 받은 이석형(李石亨)의 손자이고, 별좌(別座)를 지낸 조계남(趙繼男)의 외손자이다. 아버지는 사예(司藝)를 지낸 이혼(李渾)이다. 첫째 부인은 문화류씨(文化柳氏)이고, 둘째 부인은 장연변씨(長淵邊氏)이다. 이순장은 음직(蔭職)을 받았지만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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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경제(景制)이며, 호는 망은(忘隱). 1575년 청백리에 녹선된 이백지(李伯持)의 아들로 태어났다. 1606년에 진사가 되었고, 덕산현감과 종묘서령(宗廟署令)을 지냈고, 초서와 예서에 능했다. 서법에 대한 책을 간행한 것이 있다고 전하지만 제목은 알 수 없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호암미술관 뒤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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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효자. 통덕랑 이승진(李升鎭)은 용인 출신으로 효행이 뛰어나서 1817년(순조 23) 3월에 예조에서 정려(旌閭)할 것을 허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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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해(靑海). 자는 치도(稚度). 아버지는 이창석(李昌錫)이며, 할아버지는 이송연(李松然)이다. 증조부는 이경장(李慶章)이며, 외조부는 구수훈(具壽勛)이다. 처부는 남양 출신의 홍윤조(洪胤祚)이다. 이승헌은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거주하였다. 정5품 품계인 통덕랑(通德郞)으로서 1826년(순조 26) 정시문과(庭試文科) 병과로 급제하였다.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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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중화(仲和).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이석형(李石亨)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형조정랑(刑曹正郞) 이빈(李贇)이며, 어머니는 찬성(贊成)에 추증된 전의(全義) 이언우(李彦佑)의 딸이다. 부인은 현감 수안(遂安) 이형장(李亨章)의 딸이다. 이시정(李時程)[?~1653]은 선조 대에서 광해군, 인조, 효종의 4대에 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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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성유(聖兪), 호는 죽창(竹窓)이다.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이석형(李石亨)의 6대손이며, 할아버지는 이정현(李廷顯), 아버지는 청암도찰방(靑巖道察訪) 이빈(李賓)이다.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3년(인조 1) 별제가 되었다. 1624년(인조2) 직장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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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기재(器哉). 이조판서(吏曹判書) 이경증(李景曾)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대사간(大司諫) 이혜(李嵇)이다. 아버지는 광주목사(光州牧使) 이희담(李喜聃)으로, 이희담에게는 부인이 두 명 있었다.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은 모두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첫째 부인은 현감 홍수업(洪受業)의 딸이며, 둘째 부인은 홍현(洪鉉)의 딸인데 이식은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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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종한과 관련한 계회도와 교지류. ‘「이십삼상대회도」 및 「김종한교지」(二十三霜臺會圖 및 金從漢敎旨)’는 1487년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십삼상대회도(二十三霜臺會圖)」1점과 김종한에게 내려진 교지 5점을 말한다. 김종한(金從漢)은 1465년(세조 11)에 문과에 급제하고 선무랑훈도를 거쳐 종사랑·훈도(訓導)를 지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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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이애(李薆)[1363~1414]는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1396년 태조의 8남 5녀 중 맏딸인 경신공주(慶愼公主)[?~1426]와 혼인하여 상당군(上黨君)과 상당후(上黨候)가 되었다. 본관은 청주(淸州). 아명은 백경(伯卿). 초명은 이저(李佇). 아버지는 청허자(淸虛子) 이거이(李居易)이며, 청평부원군에 봉하여졌다가 공신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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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전의이씨 용인 입향조. 이언념은 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 일대에 거주하는 전의이씨의 입향조이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정이(靜而), 자호는 백석산인(白石散人)이다. 이언념은 선교랑(宣敎郞)의 벼슬을 지냈다. 1617년(광해군 10)에 충정공(忠貞公) 홍무적(洪茂績)과 더불어 인목대비(仁穆大妃) 폐모(廢母)에 항의하는 상소를 올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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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충렬서원의 원장을 세 차례나 지냈고,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에 있는 덕봉서원의 원장도 역임하였다. 본관은 덕수. 자는 치보(治甫)·자삼(子三). 호는 수곡(睡谷)·수촌(睡村)·포음(浦陰)이다. 아버지는 시정(寺正) 이신하(李紳夏)이고, 할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이식(李植)이다. 증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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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불린(不磷). 고조부는 목은(牧隱) 이색(李穡). 증조부는 제학을 지낸 이종학(李種學)이며, 할아버지는 이숙묘(李叔畝)이다. 아버지는 이형증(李亨增)이고, 어머니는 조아(趙雅)의 딸이다. 부인은 선산김씨로, 김관안(金寬安)의 딸이다. 아들은 좌참찬(左參贊) 이자(李耔)이다. 이예견은 성종 대에 활약하였다. 승사랑(承仕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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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평보(平甫). 이조판서 이경증(李景曾)의 증손이며, 대사간 이혜(李嵇)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광주목사(光州牧使) 이희담(李喜聃)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로 현감 홍수업(洪受業)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박씨(密陽朴氏)로 참판 박봉령(朴鳳齡)의 딸이다. 이완은 큰아버지 통덕랑(通德郞) 이희유(李喜濡)가 일찍 죽어서 그 양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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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이완(李莞)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때 활약한 무신으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조카이다.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을 도와 공을 세웠는데, 1598년(선조 31) 노량해전(露粱海戰)에서는 이순신의 전사를 알리지 않고 병사를 독려하여 대승을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열보(悅甫). 이정(李貞)의 손자이며, 진주(晋州) 강세온(姜世溫)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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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호원(浩源), 호는 포곡(蒲谷). 아버지는 이숭의(李崇義)이다. 이용(李涌)은 조선 중기 선조 대부터 현종 대까지 활약한 무신이다.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대왕을 공주까지 호종(扈從)하였다. 그 공훈으로 의금부도사를 제수받았으며, 원종1등공신 영국공(寧國公)에 녹선되었다. 또한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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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양지현감을 역임한 문신. 이용신은 1724년(경종 4) 7월 양지현(현재의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현감으로 부임하여 1728년(영조 4) 4월까지 역임하였다. 재임 기간에 아이들의 성과 이름을 초록(抄錄)해 두었다가 책(冊)을 만들었다. 그들이 장성하기를 기다렸다가 군액(軍額)에 충정(充定)하여 군영(軍營)에는 수효가 모자람이 없게 하고, 고을에서 백골(白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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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치명(穉明), 호는 종산(鍾山). 증조부는 이숭호(李崇祜), 조부는 이재학(李在學), 아버지는 이규현(李奎鉉), 외조부는 박사소(朴師邵), 처부는 서이순(徐彛淳)이다. 1829년(순조 29) 문과 급제 후 1849년(헌종 15) 성균관대사성을 비롯하여 이조참의·이조참판·경기도관찰사·형조판서를 거쳐 사헌부대사헌을 세 번 역임하였다. 18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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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경원(景元). 6판서 집안으로 아버지는 예조판서 이삼현(李參鉉)이다. 1867년(고종 4)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가 되었다. 1880년(고종 17) 성균관대사성에 등용된 뒤 이듬해 이조참의·사간원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883년(고종 20)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정사(正使) 민종묵(閔種黙)과 함께 청나라에 가서 흥선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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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수익(受益), 호는 만회(晩悔). 할아버지는 관찰사 이지신(李之信), 아버지는 증승지(贈承旨) 이력이다. 광해군 때 스승 조수륜(趙守倫)이 화를 당하여 죽자 스승의 친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는데 그가 예에 따라 습렴을 하였다. 또 인목대비의 폐비론이 일자 그에 대한 잘못을 직언하여 죄를 받았다. 이때 초야에 있으면서 당시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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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이영발(李英發)이고, 이명민(李命敏)의 조카이다. 1453년(단종 1) 이명민(李命敏)이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김종서·황보인 등과 함께 살해되자 조카 이은동은 연좌(緣坐)되어 관노가 되었다. 1468년(세조 14)에 임금의 병이 심하여 세자(世子)가 계유년(癸酉年) 이래의 난신(亂臣)의 숙질(叔姪)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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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덕재(德哉), 호는 도곡(陶谷). 증조부는 찬성공 이후연(李後淵), 조부는 파주목사 이정악(李挺岳), 아버지는 좌의정 이세백(李世白)이다. 어머니는 정경부인으로 군수 정창징(鄭昌徵)의 딸이고, 홍익한(洪翼漢)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서울 북부 진장방(鎭長坊) 소격동의 외가에서 출생하여, 21세 때 도승지로 있었던 아버지 이세백이 기사환국(己巳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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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화진(和軫). 조부는 이경진(李景震), 증조부는 이시정(李時楨), 외조부는 김인태(金寅泰)이고, 아버지는 이세흡(李世翕)이다. 1794년(정조 18) 정시(庭試) 문과 병과(丙科) 31인으로 급제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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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 이익은 효종 대에서 숙종 대까지 활동한 문신으로, 송시열을 추종하여 치열한 사색당쟁 속에서 노론과 성쇠를 같이 하였다. 1659년 정언(正言)이었을 때는 술 마시고 추태를 부리는 대신을 탄핵하여 강직함을 드러냈으며, 1674년 송시열이 유배된 뒤 계속된 탄핵으로 양덕(陽德)으로 귀양 갔다가,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후 1682년 송시열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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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희성. 예문대제학을 지낸 이조년(李兆年)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성산군 이포(李褒)이며, 형은 우왕 때 권신인 이인임(李仁任)이다. 태조의 사위인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 이제(李濟)가 그의 아들이다. 밀직사사, 서경부원수 등을 지냈다. 우왕 때 형 이인임이 권력을 남용하여 원성을 사자 여러 차례 충고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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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인엽의 초상화. 정장 관복본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2000년에 경주이씨 회와공파 종회에서 경기도박물관에 기탁한 이후 다시 기증하였다. 이인엽 영정은 전신상 1점, 반신상 1점으로 총 2점이 경기도문화재로 일괄 지정되었다. 그 외 얼굴과 흉부까지 그린 소본(52.3×35.8㎝)이 현전하고 있는데, 이 소본은 관복본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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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1558년(명종 13) 무과에 급제, 전라도수군절도사로 있다가, 1583년(선조 16) 니탕개(尼湯介)가 경원(慶源)과 종성(鐘城)에 침입하자 경원부사(慶源府使)가 되어 이를 격퇴하였다. 1586년 니탕개가 재차 회령(會寧)에 침공하자 회령부사(會寧府使)로서 그 본거지를 소탕하는 등 공을 세워 함북병마절도사가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순변사(巡邊使)로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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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차야(次野), 호는 음애(陰崖)·몽옹(夢翁)·계옹(溪翁)이다.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대사간 이예견(李禮堅)의 아들이다.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501년(연산군 7)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이때 함께 급제한 김안국(金安國)·성세창(成世昌) 등과 교유했다. 1504년 식년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감찰(監察)·이조좌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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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 이재는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영조의 탕평정치(蕩平政治)에 맞선다는 이유로 자주 파직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였고 만년에는 용인의 한천에서 후학 양성에 매진하는 등 정계와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희경(熙卿), 호는 도암·한천(寒泉). 진사 이만창(李晩昌)의 아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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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출신의 조선 후기 문신인 이재의 초상화. 이재 초상은 초상화의 전신(傳神)기법을 매우 잘 포착한 뛰어난 그림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특히 관복이 아닌 일반 편복을 입고 있는 초상화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안면과 신체의 비율이 적절하여 능숙한 화가의 솜씨가 엿보인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재(李縡)[1680~1746]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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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화가.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원강(元綱), 호는 소당(小塘). 『용인이씨세보』에 의하면 이재관(李在寬)[1783~1837]은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신원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유재건(劉在建)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는 문인화풍의 화가인 이유신(李維新)의 조카라고 되어 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집이 가난하여 그림을 팔아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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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 유학자. 조선 후기 유학자로 『문산집』을 남기었고 특히 노론의 유학자로 남인인 다산 정약용과 시문으로 토론을 벌인 용인의 유학자. 이재의(李載毅)[1773~1839]의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여홍(汝弘), 호는 문산(文山)이다. 덕천군의 14대 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정조 때 병조판서를 역임한 이주국(李柱國)이며,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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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이재학은 조선 후기 영조 대에서 순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이다. 대사간으로 재임할 때는 “오늘날 허다한 하자와 폐단을 이루 거론할 수 없습니다만, 그 병든 근원을 찾으면 오로지 군신상하(君臣上下)가 실(實)이란 하나의 글자를 실행해나가지 않는 데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라고 임금께 당대의 폐단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중(聖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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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여고(汝皐). 조부는 인평부원군 이보혁(李普赫), 아버지는 병조판서 이경호(李景祜)이다. 1757년(영조 33) 정시(庭試) 춘당대에서 장원 급제하였고, 사간원지평·홍문관교리 등 청요직을 역임하였다. 1763년(영조 39) 암행어사로 호서 지방을 감찰하였다. 이어 홍문관교리로서 세자시강원필선·문학 등을 겸임하였고, 사헌부헌납·홍문관수찬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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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처사.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택경(擇卿), 호는 운계(雲溪). 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의 벼슬을 지낸 이언념(李言恬)이다. 이정선은 광해군 시대의 어두운 세상을 당하여 벼슬에 나가지 않고 스스로 고요하게 지냈다. 병자년의 호란을 당하여 절의(節義)를 다할 때는 관(冠)을 쓰지 않고 머리를 빗지 않았으며 북향(北向)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산림에 은거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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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종(伯宗). 아버지는 이익령(李翼齡)이며, 조부는 이진규(李震奎), 증조부는 이명웅(李命雄), 어머니는 박희인(朴希仁)의 딸이다. 1740년(영조 16) 증광시(增廣試)에 병과(丙科) 21인으로 급제하였고, 벼슬로 지평·정언·장령·헌납을 거쳐 형조참판에 이르렀으나 1761년(영조 37)에 파직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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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집(景集), 호는 완서(翫西). 이용규(李用奎)의 아들이다.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에서 출생하였다. 1876년(고종 13)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였으며, 1880년 감찰(監察)로 수신사 김홍집의 수행원으로, 이후 조병호의 종사관으로 활동하였다. 1882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영선사 김윤식의 고선관으로, 또 사은겸진주사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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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쌍계(雙溪). 증조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흡(李洽)이며, 할아버지는 고려 말기 판도판서(版圖判書)로 있다가 물러나 용인현에 은거하며 조선 건국의 혼란기를 벗어났던 이석지(李釋之)이다. 아버지는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을 지낸 이안직(李安直)이고, 어머니는 문화류씨(文化柳氏)로 판의금(判義禁) 유호(柳滸)의 딸이다. 동생은 제주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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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으로 낙향한 문신. 이종겸은 세종 대 문신으로 활동하다가 세조의 즉위에 따른 혼란과 화를 면하기 위해 형과 함께 문종 때 낙향하였다. 조부인 이석지(李釋之)가 은거했던 용인현 남곡(南谷)으로 내려가 효우당(孝友堂)을 짓고 산수를 읊는 등 한가로운 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암곡(岩谷). 증조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이흡(李洽)이며,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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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이종무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활동한 무신으로, 이 시기에 빈번하게 침입한 왜구를 물리치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성질이 순박하고 진실하였으며, 죽은 뒤에 용인시 고기리에 묻혔다. 태종 대에는 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여 통원군(通原君)에 봉해졌으며,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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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무신 이종무의 묘. 이종무(李從茂)[1360~1425]는 14세 때 을진(乙珍) 장군이던 아버지와 함께 강원도에 침입한 왜구를 물리쳤고, 1397년(태조 6)에 옹진만호(甕津萬戶)가 되어 서해안에서 왜구를 물리친 후 상장군에 올랐다. 1400년(정종 2년)에 익대공신(翊戴功臣)으로 통원군(通院君)이 되었고,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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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에서 활동한 문신. 1453년(단종 1), 증광시(增廣試) 정과(丁科) 7인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1481년(성종 12) 7월 13일, 장원서장원(掌苑署掌苑)에 제수되었다. 이전 관직은 양지현감이었는데, 이 때 청렴한 생활을 유지하는 한편 훌륭한 시정을 베풀었기 때문에 고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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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정종의 서자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이주국(李柱國) 장군의 고손이다. 아버지는 참판에 추증된 이재의(李載毅)이다. 1809년(순조 9)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승지 및 포도대장을 역임하였다. 묘소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촌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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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이주국은 건장하고 뛰어난 용모와 강직한 성품으로 부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아 명망이 있었다. 문무의 차이가 심한 사회에서 문신의 횡포를 감내하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아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언(君言), 호는 오백(梧栢). 정종의 서자인 덕천군(德泉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적(李滴)이며, 어머니는 찬성(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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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1625년(인조 3) 이중로에게 발급된 공신 교서. 「이중로정사공신교서」가 1993년 11월 5일 문화재청에 공식 등록된 명칭은 ‘이중로정사공신교서 및 영정’(보물 제1174호)이었다. 이후 2004년 5월 7일에 두 유물이 별도로 분리되어 「이중로정사공신교서」(보물 제1174-1호)와 ‘이중로 영정’(보물 제1174-2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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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무신 이중로의 초상화. 이중로 영정의 경우 1993년 11월 5일 문화재청에 공식 등록된 명칭은 이중로 정사공신교서 및 영정(보물 제1174호)이었으나 2004년 5월 27일에 두 유물이 별도로 분리되어 「이중로정사공신교서」(보물 제1174-1호)와 이중로 영정(보물 제1174-2호)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두 유물 모두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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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문신. 이중인은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충숙왕 2년에 개경의 일청재(一淸齋)에서 태어났다. 소위 ‘두문동(杜門洞) 72현(賢)’ 중 한 사람이다. 본관은 용인(龍仁). 호는 진초(秦楚). 증조부는 내시낭중(內侍郎中) 이유정(李惟精)이고, 조부는 합문지후(閤門祗候) 이석(李奭)이며, 아버지는 판도판서(板圖判書) 이광시(李光時)이다. 어머니는 행주기씨(幸州奇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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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종친. 이증은 세종의 둘째 서자로, 계양군에 봉해졌다. 세종이 끔찍이 사랑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여 공부하기에 게을리 하지 않았고, 특히 글씨에 능하였다. 그러나 세조의 즉위와 관련해서는 수양대군(首陽大君)을 도와 안평대군을 제거하였으며, 좌익공신에 책록되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현지(顯之). 아버지는 세종이고 어머니는 신빈김씨(愼嬪金氏)이다.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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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이지노는 좌의정 박세채(朴世采)가 1694년(숙종 20) 노모 봉양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면서 자신을 대신할 사람들을 천거할 때 거론했던 인물이다. 숙종은 박세채의 사직을 만류하는 한편, 추천한 사람들을 임용하였다. 또한 이조판서 유상운(柳尙運)으로부터도 재차 추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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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함풍(咸豊). 자는 양이(養而), 호는 치암(恥菴). 아버지는 부위(副尉) 이초옥(李楚玉)이다. 이지렴은 인조 대에서 숙종 대까지 활동한 문인으로 학문은 물론, 시와 글씨에 뛰어났다. 김집(金集)의 문인이며, 학문으로 이름을 날려 송준길(宋浚吉) 등의 추천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곧 사퇴하고 후에 부수(副率)를 잠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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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영이(詠而), 호는 송암(松庵). 우의정 이무(李茂)의 후손으로, 아우는 이지례(李之禮)이다. 1567년(선조 즉위년) 무과에 장원급제, 훈련원정으로 있다가 문장에 능통하였으므로 특별히 동반직(東班職)인 주서(注書)에 등용되었고, 곧이어 문무를 겸비한 것을 인정받아 승지로 발탁되었다. 1583년(선조 16)에는 이성현감(利城縣監)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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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이진방은 현종 대에서 경종 대까지 활동한 무신으로 무과에 급제한 뒤 용호위부호군(龍虎衛副護軍)을 거쳐 강진병사(康津兵使)를 지냈다. 묘소는 원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에 있었으나, 1982년에 모현읍 갈담리 갈월마을로 천묘하였다. 사후에 가선대부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부총관(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摠府副摠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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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종친. 이징은 태조의 조카이며, 고려 때부터 벼슬에 나아갔지만 주로 활동한 시기는 태종과 세종대이다. 본래 풍질이 있어 이로 인해 죽었다. 아버지가 제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났을 때 태종을 도와 난을 진압한 공이 있었고, 이징도 태종대부터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특히 일생에 세 번이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외교적인 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하였다. 본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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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무신. 이찬조는 조선 중기 선조 대부터 인조 대까지 활약한 무신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별천선전관(別薦宣傳官)으로 인조(仁祖)를 남한산성까지 호종(扈從)하였다. 이 후 의병을 이끌고 지금의 성남시 세곡동에 이르렀을 때 적군인 청군(淸軍)에게 포위되었다. 민진익(閔震益)과 함께 힘을 다해 싸워 여러 명의 적군을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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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재원(載元), 호는 허주(虛舟). 아버지는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이시정(李時程)이다. 이천기는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서 일찍부터 학문을 닦았고 예의범절에 밝았다. 1653년(인조 13)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별과로 급제하여 승지(承旨)·한림(翰林)·삼사이랑(三司吏郞)을 역임하였고, 벼슬은 감사(監司)에서 그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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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자안(子安), 호는 눌재(訥齋)·목수(木叟). 영의정 이직(李稷)의 현손이며, 증조부는 이계령(李繼寧)이고, 할아버지는 이숙생(李叔生)이다. 아버지는 정자(正字) 이윤탁(李允濯)이며, 어머니는 신회(申澮)의 딸이다. 부인은 용인이씨(龍仁李氏)로, 이효언(李孝彦)의 딸이다. 아들은 이염(李爓)이다. 이충건은 1510년(중종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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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학자. 이행상은 도암(陶菴) 이재(李縡)의 문인으로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학자이다. 후대에 학문 성과를 인정받아 송단(宋湍)·성덕명(成德明) 등과 함께 이재 문하의 삼처사(三處士)로 불리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골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찍부터 사서삼경에 통달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리(公履), 호는 왕림(旺林). 문강공(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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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덕승(德升). 호조참판증영의정(戶曹參判贈領議政) 이정신(李正臣)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증정경부인(贈貞敬夫人) 전주유씨(全州柳氏)이다. 이현보는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으로, 1723년(경종 3)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하였다.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1730년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고 승지(承旨)·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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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이호(而灝). 증조부는 임천부사 이종무(李宗茂)이며, 할아버지는 증 좌의정(贈左議政) 이회림(李懷林)이다. 아버지는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문강공(文康公) 이석형(李石亨)이다. 어머니는 연일정씨(延日鄭氏)로, 감찰(監察) 정보(鄭保)의 딸이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증손녀이다. 부인은 죽산안씨(竹山安氏)로, 사정(司正) 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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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대립(大立), 호는 쌍괴(雙槐). 증조할아버지는 이승충(李升忠)이고, 할아버지는 이봉손(李奉孫)이며, 아버지는 사간 이효독(李孝篤), 어머니는 최명근(崔命根)의 딸이다. 부인은 이규(李逵)의 딸이다. 이홍간(李弘幹)은 1507년(중종 2)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513년(중종 8) 식년문과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권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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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용인. 자는 유야(悠也), 호는 백치(白痴). 아버지는 대사간 이사경(李士慶)이다. 1618년(광해군 10)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사헌부지평·사헌부장령이 되어 시관(試官) 김륜(金崙)과 임건(林健) 등의 잘못을 탄핵하였다. 이어서 호조정랑·직강·사서를 거쳐 평양서윤이 되었다. 1624년(인조 2) 첨정(僉正)으로 있을 때 명나라 장수 모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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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여욱(汝旭). 아버지는 이정준(李廷俊)이며, 어머니는 부평이씨(富平李氏)로 참봉 이희재(李熙載)의 딸이다. 이휘(李暉)[1655~1723]는 숙종 대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비변사낭관·사재감첨정(司宰監僉正)·평안도절제사·금군장(禁軍將)·방어사를 지냈고, 해남현감 및 덕원·곡산·회령 등의 부사와 옥천군수·정주목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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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수(子壽). 이조판서 이경증(李景曾)의 손자이며, 대사간 이혜(李嵇)의 아들이다. 부인은 둘이 있었는데,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이 모두 남양홍씨(南陽洪氏)로 첫째는 현감 홍수업(洪受業)의 딸이며, 둘째 부인은 홍현(洪鉉)의 딸이다. 1701년(숙종 27) 벼슬에 나아가 상의별제(尙衣別提)·금부도사(禁府都事), 한성판관(漢城判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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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동보(同甫), 호는 지촌(芝村)이다. 증조부는 우의정 이정구(李廷龜), 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이명한(李明漢)이며, 아버지는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이다. 1680년(숙종 6) 유일(遺逸)로 전설별검(典設別檢)·의금부도사 등을 거쳐 진천현감(鎭川縣監) 때는 치적을 쌓았다. 1694년 인천현감(仁川縣監)·지평(持平)·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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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일산리 선사유적은 세 곳에 분포되어 있는데, 산19번지 일대의 일산리 선사유적1, 산18-1 일대의 선사유적2, 산23-1의 선사유적3으로 구분한다. 일산리 선사유적1은 모현읍 매산리에서 왕산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 왕산대교 바로 전에 북쪽으로 난 농로로 진행하면 가일리 낚시터에 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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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일산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지방도 57호선을 따라 일산리에서 매산리로 가다보면 도로 오른쪽에 모현중학교가 보이는데, 일산리 유물산포지는 이 학교 동쪽 야산 사면의 경작지 일대에 위치한다. 일산리 유물산포지는 산포 범위는 그다지 넓지 않지만 유물 집중도는 매우 높다. 채집된 유물은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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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성방(聖方), 호는 호재(扈齋). 아버지는 형조참판 임수적(任守迪)이다. 임정(任珽)[1694~1750]은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했던 문신이다. 1723년(경종 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한 뒤 1728년 지평(持平)에 올랐으며, 부수찬(副修撰)·수찬(修撰)·정언(正言)·부정언(副正言)·교리(校理)·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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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운봉(雲峰), 호는 보덕(輔德).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에서 출생하였고, 증조할아버지는 부사(副使) 임세춘(林世春)이고, 할아버지는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임재(林榟)이며, 아버지는 사복시윤(司僕寺尹) 임태순(林台順)이다. 아들은 임인산(林仁山)·임명산(林命山)·임갑산(林甲山)이다. 임정(林整)[1356~1413]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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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대규모의 전투가 벌어졌으며, 조선군과 일본군의 주둔지로 사용될 만큼 중요한 전략 거점으로 활용되었던 임진산성은 원래 임진산의 정상, 곧 수지구 풍덕천동 산 37번지와 기흥구 보정동 산 82-2번지 일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임진산성지·풍덕천동성지·예진산성지 등으로도 불리는 임진산성은 조선 중기와 후기에 편찬된 각종 지리지에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성이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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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쌓은 토성. 임진산성은 임진왜란 당시 용인 광교산 전투에서 조선군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총통을 비롯한 무기류, 청동기시대의 무문 토기류, 백제시대의 타날문 토기류, 조선시대의 중국제 명문 도자기와 기와류 등이 출토된 복합 유적이다. 한편 유적과 인접한 광교산 일대는 임진왜란 당시 한양 수복을 목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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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4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1번대가 부산진을 침범하였다. 조선 관군은 준비가 잘 된 왜군을 당해내기 어려웠고 왜군은 부산진을 침입한 지 보름 만에 서울까지 점령하였다. 급박한 상황에서 선조는 4월 30일 밤에 서울을 떠났고, 왜군의 1번대와 2번대가 각각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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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장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장평리 율애마을 뒤쪽에 있는 구릉의 꼭대기에 위치한다. 이 곳은 청미천의 가장자리로 유적의 앞쪽에는 들판이 펼쳐져 있고, 서쪽에는 해발 279m의 정배산과 해발 417m의 석술암산 등 산줄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북쪽의 용천천과 남쪽의 율곡천이 청미천으로 흘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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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장평리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장평리 유물산포지는 두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장평리 유물산포지1과 장평리 유물산포지2로 구분하고 있다. 장평리 유물산포지1은 장평리 율애마을 뒤편의 능선 정상부 일대에 형상되어 있다. 유물산포지2는 장평리 유물산포지1이 위치한 능선에서 서쪽으로 뻗어나간 가지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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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반란인. 영조 즉위 후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의 과격파가 연합하여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려는 정변이 일어났다. 이인좌(李麟佐)가 주동이 되었으므로 이인좌의 난, 또는 일어난 해의 간지를 따서 무신란(戊申亂)이라고도 한다. 당시 송전(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송전리) 사람이었던 장흠(張欽)[?~1728]은 이들과 함께 반란에 가담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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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석형의 묘와 신도비. 저헌(樗軒) 이석형(李石亨)은 1441년(세종 23) 사마시에 합격하고 문과에 장원 급제한 후 14년간 집현전에서 여러 관직을 맡았다. 세조의 총애를 받아 황해도관찰사, 사헌부 대사헌 등의 요직을 거쳤다. 봉분은 단분 합장묘이다. 석물로는 묘표, 문인석 2쌍과 상석, 향로석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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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전궁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도기 가마 터. 유적은 남사면 전궁리의 속칭 ‘황새머리’에 자리하고 있는 ‘삼애목장’의 한쪽 모서리에 위치한다. 행정구역상 남사면 전궁리 26번지의 뒤편 언덕에 해당한다. 199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의 지표조사에서 ‘전궁리 통일신라시대 토기 도요지’로 보고되었다. 채집되는 경질도기의 기종은 반구형구연호(盤口形口緣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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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곽묘. 전대리 고분은 포곡읍 전대리의 구릉지 남사면 자락에 위치한다. 에버랜드 대형버스 주차장에서 영동고속도로 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못 미쳐 전관마을로 진입하는 콘크리트 소로를 따라 내려가면, 진입로에서 250m 가량 떨어진 지점의 소로 좌측(북쪽)에 접한 구릉 자락에 있다. 명지대학교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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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전대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의 에버랜드 대형버스 주차장에서 영동고속도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가다가 첫 고개에 이르기 바로 앞에서 전대리 전관마을로 빠지는 콘크리트 도로로 들어서면 속칭 ‘앞고지’ 부근에 해발 123m 구릉이 나타난다. 유적은 동서향으로 길게 뻗은 이 구릉에 위치한다. 구릉 말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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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무신. 무과에 급제, 1482년(성종 13) 전주판관에 임용된 후 훈련원 판관·첨지중추부사·전라우수사 등을 거쳐 1492년 회령부사, 1500년(연산군 6) 해랑도초무사(海浪島招撫使), 1504년 좌상대장(左廂大將), 한성부판윤을 역임하고, 이듬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07년(중종 2) 다시 한성부판윤·판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한성부판윤 재직시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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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유생. 정규채(鄭奎采)는 한천서원(寒泉書院)이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는 데 기여하였다. 정규채 등은 이재(李縡)가 제향된 한천서원의 사액을 바라는 상소를 올렸으며, 당시 영중추부사였던 이병모(李秉模)의 추천으로 한천서원은 사액서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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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성유(聖由). 정몽주(鄭夢周)의 10세손으로, 영장(營將) 정주한(鄭周翰)의 아들이다. 정덕징(鄭德徵)[1657~1739]은 조선 후기 효종 대에서 영조 대에 활동한 인물로 궁술(弓術)과 마술(馬術)에 뛰어났다. 1680년(숙종 6)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에 제수되었고, 훈련원주부·판관·서생첨사(西生僉使)·진안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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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성여(聖餘). 승지에 추증된 정간(鄭侃)의 손자이며, 신창현감(新昌縣監) 정주한(鄭周翰)의 아들이다. 정도징(鄭道徵)[1654~1730]은 1676년(숙종 2)에 무과에 급제하고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1689년(숙종 15)에 도총부도사(都摠府都事)가 되었다. 그 후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중추부사·도총부사 등을 역임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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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몽란(夢蘭)·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의 후손으로 정운관(鄭云瓘)의 아들이다. 1357년(공민왕 6) 감시(監試)에 합격하고, 1360년 문과에 장원하여 1362년 예문관의 검열·수찬이 되었다. 이때 김득배(金得培)가 홍건적을 격파하여 서울을 수복하고서도 김용(金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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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정몽주의 묘. 정몽주(鄭夢周)[1337~1392]는 고려 후기에 이성계와 함께 공양왕을 세우고 개혁을 주도하였다. 조준, 정도전 등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자 정몽주는 고려왕조의 명맥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자 이방원의 부하 조영규 등이 정몽주를 살해하였다. 성리학에 매우 밝았던 정몽주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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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명숙(明叔), 호는 야수(野叟)이다.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의 증손 정속(鄭束)의 아들이다. 1447년(세종 29) 생원으로 별시 문과에 정과로 합격,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가 되고, 감찰을 거쳐 1453년(단종 1) 예조좌랑으로 있었으나 궐내에 기생을 불러들여 가무음주한 죄로 장형(杖刑)을 받았다. 1455년(세조 1) 교리로서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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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설곡(雪谷). 할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포은(圃隱) 정몽주이며, 아버지는 이조참의 정종성(鄭宗誠)이다. 어머니는 죽산박씨로 제학(提學) 박중용(朴仲容)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박씨로 병마사(兵馬使) 박등(朴登)의 딸이다. 아들은 정윤정(鄭允貞)·정윤화(鄭允和)·정윤관(鄭允寬)이고, 사위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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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장수 노인. 1435년(세종 17)에 세종은 각 도의 감사에게 나이가 100세에 이른 노인들에게 쌀 10석과 술, 고기를 주라고 교지를 내렸다. 이로부터 13년이 지난 1448년(세종 30)에는 왕이 법에 따라 100세 이른 노인들을 위문하고 구제하는지 확인하여 보고하라고 명하였다. 정부개(鄭夫介)는 용인 지역에 살았던 최장수 노인이었다. 당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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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성우(聖佑). 고려의 전객서령(典客署令) 정숙(鄭肅)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분사승지(分司承旨) 정승(鄭勝)이다. 어머니는 임경연(任慶衍)의 딸인 풍천임씨(豐川任氏)이다. 정상(鄭相)[1618~1681]은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임금의 친척으로 조정에서도 이름을 떨칠 수 있었지만 세상의 명리(名利)를 가볍게 보아 벼슬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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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용인 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정선의 그림과 화첩. 『정선필 해악 팔경 및 송유 팔현도 화첩』에는 정선(鄭敾)[1676~1759]이 금강산을 그린 산수화 8면과 송대 유학자의 고사를 그린 산수 인물화 8면이 들어 있다. 산수화는 「단발령(斷髮嶺)」, 「비로봉(毘盧峰)」, 「혈망봉(穴望峰)」, 「구룡연(九龍淵)」, 「옹천(甕遷)」,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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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군칙(君則), 호는 동리(東里)이다. 좌의정 정언신(鄭彦信)의 손자이며, 정률(鄭慄)의 아들이다. 1613년(광해군 5) 사마시에 합격하고, 문음(門蔭)으로 의금부도사를 거쳐 화순현령·안산군수를 역임하였는데, 모두 혜정(惠政)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1636년(인조 14)에 조신(朝臣)들의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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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서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1929년 간행된 조광조의 문집. 『정암선생문집(靜庵先生文集)』의 정고본(定稿本)은 조선 중기에 이기주(李箕疇)가 수집한 조광조(趙光祖)[1482~1519]의 유문(遺文)·사적과 이선(李選)이 수집한 유문, 5대손 조위수(趙渭叟)의 가장초본(家藏草本)을 모아 박세채(朴世采)가 교정·편차하고 부록과 연보를 붙인 것을 말한다. 그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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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가중(嘉仲), 호는 월봉(月峰). 할아버지는 소격서령(昭格署令) 정자급(丁子伋)이고, 아버지는 병조참판 정수강(丁壽岡)이다. 어머니는 지평(持平) 김언신(金彦辛)의 딸이고, 부인은 김수연(金壽延)의 딸이다. 아들은 정응두(丁應斗)이다. 정옥형(丁玉亨)[1486~1549]은 1513년(중종 8)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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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세조를 보좌하며 영의정을 지낸 정인지(鄭麟趾)의 증손이다. 정우(鄭瑀)[1536~1599]는 조선 중기 중종 대부터 선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으로 관위(官位)가 통정대부(通政大夫)로 좌승지겸경연관참찬관(左承旨兼經筵官參贊官)에 이르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 상미마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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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 병조판서 정옥형(丁玉亨)의 손자이고, 좌찬성 정응두(丁應斗)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군수 송충세(宋忠世)의 딸이다. 1567년(명종 22)에 사마시에 급제하고, 그해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에 등용되고, 이어 예조좌랑·수찬·집의·우승지·대사성·부제학·도승지·병조판서·동지중추부사 등을 지냈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난이 일어나자 정여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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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압해(押海)[현재의 전라남도 나주]. 자는 추경(樞卿). 아버지는 병조판서 정옥형(丁玉亨)이고, 어머니는 김언신(金彦辛)의 딸이다. 1521년(중종 16) 진사시에 합격하고, 1534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전적·시강원설서를 거쳐 홍문관에 들어가 정자·저작·부수찬·교리·응교를 차례로 역임하고 이조좌랑·정랑·사헌부지평·장령·시강원보덕·사간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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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채제공의 공덕을 기리는 뇌문비. 채제공 뇌문비는 처인구 역북동 낙은마을 채제공의 묘역 입구 산기슭에서 북서향 방향에 있는 비각 내에 보존되어 있다. 네모난 모양의 백색 화강암제 비좌와 흑요색의 비신으로 이루어진 비는 팔작지붕에 옥개석 형태이다. 비신 상부의 전액(篆額)은 “어제뢰문(御製誄文)”이며, 본문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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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사수(士守). 정몽주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정응선(鄭膺善)이다. 정준은 희릉참봉·건원릉참봉을 거쳐 제용감봉사·사재감직장·장흥고주부와 돈령부주부를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조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와서별제(瓦署別提)가 되었다. 이듬해 중국 청(淸)의 태종이 인조의 항복을 받고 이를 기념하는 삼전도비(三田渡碑)를 세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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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무신. 정찬술은 숙종 대에서 영조 대까지 활동한 무신으로 경기도 용인시 왕산리 왕곡마을에서 생활하였다. 83세까지 장수하여 회혼례를 올렸으며, 증손자가 정몽주(鄭夢周)의 사손으로 정해짐으로써 정몽주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술보(述甫). 정몽주(鄭夢周)의 11대손으로 아버지는 수군방어사(水軍防禦使) 정도징(鄭道徵)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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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문신이자 영일정씨 주부공파의 파조.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선술(善述), 호는 구정(駒亭).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7세손으로, 정림(鄭霖)의 둘째 아들이다. 1606년(선조 39)에 식년시(式年試) 2등에 합격하여 진사(進士)에 오르고, 1642년(인조 2)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워 종묘직장(宗廟直長)에서 호조의 광흥창주부(廣興倉主簿)로 2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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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1611년(광해군 3)에 알성(謁聖) 무과에 급제하였고 도총부도사를 역임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을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이르렀으나, 이미 적들이 남한산성을 에워싸고 사태가 위급하게 되자 자원하여 출전하였다. 정탁은 북문 밖으로 나아가 장수기를 흔들고 크게 소리쳐 적의 기세를 크게 꺾고 사력을 다해 싸웠다. 그러나 후원을 받지 못하여 패하였고 그 곳에서 죽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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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사우(士優), 호는 동원(東園). 증조부는 정옥형(丁玉亨)이며, 조부는 정응두(丁應斗), 외조부(外祖父)는 한경상(韓景祥)이다. 아버지는 대사헌 정윤복(丁胤福)이다. 1601년(선조 34)에 진사(進士)가 되고, 같은 해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여 지평(持平)·정언(正言)·수찬(修撰)·응교(應敎) 등을 역임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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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는 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 백암 방향으로 지나가는 국도 17호선 옛 길을 따라가면 양지 제일리로 들어가는 마을 도로 입구에 ‘김상익 효자비’가 나타난다. 이 도로를 따라 300m 더 진행하면 해발 165m의 낮은 구릉에 이르는데, 유적은 이 구릉의 남사면 일대에 자리한다. 주로 빗살무늬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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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제일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제일리 유물산포지는 두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제일리 유물산포지1, 제일리 유물산포지2로 구분하여 부른다. 제일리 유물산포지1은 용인과 이천을 잇는 국도 42호선상에 있는 미수고개의 남쪽 나지막한 잔구성 구릉 일대에 있다. 서쪽으로는 국도 17호선이 지나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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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제촌부곡은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고려 이래 조선 초기까지 특수한 행정단위의 하나로 기능했다. 일반적으로 부곡은 군현으로 삼아 운영하기에는 인구와 토지가 적은 곳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양지현(陽智縣) 조에 “본래 수주(水州)에 속한 양량촌부곡(陽良村部曲)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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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지사. 자는 중익(仲翼), 호는 방은(方隱). 일명은 조광보(趙廣輔)이다. 조광보(趙光輔)는 식견이 고명(高明)하고 직언을 잘하였다. 연산군 때 임사홍(任士洪)의 집권으로 조정이 혼란하자 그를 죽이라고 무인(武人) 박영(朴英)에게 권하였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1507년(중종 2) 참의(參議) 유숭조(柳崇祖), 호군(護軍) 심정(沈貞), 전(前) 승지(承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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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효직(孝直), 호는 정암(靜庵). 증조할아버지는 조육(趙育)이고, 할아버지는 사예(司藝) 조충손(趙衷孫)이며, 아버지는 감찰(監察) 조원강(趙元綱)이다. 부인은 첨사(僉使) 이윤동(李允洞)의 딸이다. 아들은 조용(趙容)이다.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조광조(趙光祖)[1482~1519]는 한성부 중부 행교동(현재 종로구 경운동)에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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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일명 조광좌(趙廣佐). 자는 계량(季良), 호는 회곡(晦谷). 증조부는 도총제(都摠制) 조모(趙慕)이고, 할아버지는 조종효(趙宗孝)이다. 아버지는 군수(郡守) 조훈(趙勛)이다. 형은 조광보(趙廣輔)이고 아우는 조광임(趙廣臨)이다. 조광좌는 1507년(중종 2)에 성균관 유생으로서 박경(朴耕)·김공저(金公著)의 옥사에 연루되어 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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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조변(趙汴)[1500~1582]은 조선 중기 연산군 대부터 선조 대까지 활약한 문신이다. 본래 학식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으나 천성이 매우 명석하였다. 소년시절부터 안처겸(安處謙)과 서로 사이좋게 지내다가 뒤에 그와 동서 사이가 되었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호연(浩然), 호는 금재(琴齋). 학자이며 대사헌을 지낸 조광조(趙光祖)가 족숙(族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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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 조비산 정상부 일대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조비산 유물산포지는 해발 294m의 조비산 정상부에 위치해 있다. 조비산은 융기로 인해 형성된 암산으로 산정부에는 약간의 평지가 조성되어 있지만, 암반이 튀어나온 부분이 많아 그다지 넓은 편이 아니다. 산 정상 조금 못 미쳐 있는 큰 암석 하단부에서 무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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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종친. 본관은 한양(漢陽). 호는 가천재(嘉川齋). 증조할아버지는 부원수(副元帥) 조양기(趙良琪)이며, 할아버지는 용성군(龍城君) 조돈(趙暾)이고, 아버지는 양렬공(襄烈公) 조인벽(趙仁璧)이다. 태조의 조카였던 조사(趙師)는 종친에 대한 예우로 중추부사(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아버지 양렬공을 따라 은거하다가 양양에서 죽었다. 충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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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의 역사. 1413년(태종 13)에 용구현과 처인현을 병합해 만들어진 용인현은 수원진영(水原鎭營)에 소속되었으며 남양부(南陽府)에서 관할하였다. 수원진에 부속된 시기에는 16개 면을 종5품의 현령이 다스렸으며, 훈도(訓導) 1명을 두었다. 1872년(고종 9)에 작성된 『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걸로 보아 이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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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조연(趙捐)[1374~1429]은 벼슬에 나간 뒤 파천된 일이 없었고 4대조에 걸쳐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재화를 탐하지 않고 국정에 힘썼다. 문신이면서도 야인 정벌에 무공을 떨치기도 하였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여정(汝靜), 초명은 조경(趙卿). 아버지는 용원부원군(龍原府院君) 조인벽(趙仁璧)이고, 어머니는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부친인 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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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조영복의 초상화. 「조영복 영정」은 총 두 점으로 1994년 함안조씨 참판공파에서 경기도에 기증하여 현재 경기도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두 점이 일괄로 보물 제1298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중 한 점은 조영복의 동생이자 사대부 화가인 조영석(趙榮祏)이 1725년(영조 1)에 그린 것이고, 다른 한 점은 조영석이 당대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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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인화가. 본관은 함안. 자는 종보(宗甫), 호는 관아재(觀我齋) 또는 석계산인(石溪山人). 경기도 양지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조해(趙楷)이며, 형이 한성부우윤을 지낸 조영복(趙榮福)이다. 1713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천거로 등용되어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 지냈다. 1742년 선조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인 조려(趙旅)의 문집 『어계집(漁溪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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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경민(景敏). 아버지는 조수린(趙壽麟)이며 조인은 여섯째 아들이다. 부인은 영덕정씨(盈德鄭氏)이다. 조인(趙訒)[1555~1631]은 조선 중기 명종 대부터 인조 대까지 활약하였다. 어려서부터 용모와 태도가 크고 위엄이 있어 여러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자랐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벼슬하지 않은 일반인으로 의주까지 임금을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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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유생. 조중우(趙重遇)[?~1721]는 1721년(경종 즉위년)에 왕의 생모로 폐서인이 된 희빈장씨의 작위를 회복시켜 달라는 상소를 올렸다. 조중우는 “장씨는 바로 우리 성상을 낳아서 기르신 사친이신데 성상께서 왕위를 계승하신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아직까지 서인의 지위에 있으므로 내가 상소를 하였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승지 홍치중, 권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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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렬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 조중회는 영조·정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선조인 생육신 조려(趙旅)의 기상을 이어받아 죽음을 불사하고 간언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영조의 빈번한 사묘(私廟) 참례, 장헌세자(莊獻世子)를 죽게 한 처분 등에 대해 통렬히 논박하였다. 1781년부터 이듬해 죽을 때까지 경기도 용인 지역 충렬서원의 제32대 원장을 지냈다. 본관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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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반란인. 1623년(인조 원년)에 인조반정으로 우부승지에서 파직되어 제천에 유배되어 있던 유효립(柳孝立)은 사람들을 모아 광해군을 상왕(上王)으로 삼고, 선조의 일곱째 아들 인성군(仁城君)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를 도모하였다. 조헌립은 양지현(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출신으로 이 역모에 가담하였다. 하지만 거사 하루 전날, 이 사실을 알게 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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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군. 좌항리 고분군은 양지면소재지에서 국도 17호선을 따라 원삼면과 면계를 이루는 좌전고개의 서편 능선 동사면 일대에 자리하였다. 현재는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연수원을 건설하려는 계획에 따라 명지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구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고려시대의 석곽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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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좌항리의 관터말에서 사암리 쪽으로 지방도 392호선을 따라가면 대림콘크리트 공장이 있다. 고인돌은 이 공장의 남동쪽으로 뻗어 있는 야트막한 구릉지의 동쪽 기슭에 자리한다. 주변에는 많은 민묘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 고인돌이 위치한다. 드러난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120㎝, 너비 90㎝,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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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의병.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1728]의 난 때 의병을 모집하여, 문성천(文星天)과 함께 죽산현과 양지현 부근의 좌찬현(左贊峴)에서 수백 명의 적을 무찌르는 공을 세웠다.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원종록에 들었으며, 사후인 1788년(정조 12)에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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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있었던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고분군.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과 경기도 용인시 죽전동의 경계를 이루는 숫돌봉에서 서편으로 흘러나간 능선부 중 해발 100m 내외의 야트막한 구릉지에 형성되어 있다. 이 유적은 죽전동에 건설 중인 죽전택지개발지구 내의 유적 조사의 일환으로 기전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한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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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대덕골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집터와 움. 2000년 5월부터 2001년 6월까지 기전문화재연구원에서는 죽전지구 택지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이 유적을 발굴 조사하여 청동기시대 집터 3기와 작은 움 4기, 불땐자리 1기 등을 찾았다. 구릉 가지능선 부분만 발굴조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원 지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나머지 부분에도 집터가 있을 가능성이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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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대덕골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지. 죽전동 선사유적은 세 곳에 분포되어 있어, 죽전택지개발지구 내 현대홈타운 건설부지 일원의 선사유적1, 죽전동 898-2임[용구대로 2737-8] 일대의 선사유적2, 죽전동 산7임 일대의 선사유적3으로 구분한다. 선사유적1은 조사자에 의해 ‘대덕골 유적’으로 명명되었다. 죽전동 선사유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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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도기 가마 터. 죽전동 요지는 죽전동 요지1과 죽전동 요지2의 두 곳으로 나뉘는데, 죽전동 요지1은 원래 죽전동 증명아파트 남쪽에 조성된 단국대학교 진입로를 따라 동쪽으로 약 500m 둔덕에 있었다. 죽전동 요지2는 김세필 묘역(문화재자료 92호) 남단에 위치하였으나 지금은 모두 훼멸되었다. 죽전리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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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있는 백제의 주거 유적지. 죽전동 유적은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에서 실시한 죽전지구 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유적으로 주거지 2기 및 다수의 수혈유구가 확인되었다. 죽전동 유적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위치하는데, 동서로 야트막하게 능선이 둘러싼 곳에 있다. 동쪽 능선 끝부분에 약 20여 기의 수혈유구가 자리잡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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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있는 최유경을 비롯한 조선 전기부터 중기까지의 전주최씨 묘역.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경지(慶之), 호는 죽정(竹亭), 본관은 전주이다. 고려 공민왕 때 태어나 1392년 이성계를 도와 개국원종공신이 되었고, 1393년 축성도감이 되어 한양성을 축성하였다. 최유경은 태조 이성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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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친 가마 터. 용인 동백지구 개발에 따른 구제 발굴로 토기 가마 14기와 기와 가마 1기 및 숯가마 2기가 학계에 보고되었다. 고려시대의 토기 가마 터는 평면이 타원형이고 등고선 방향과 직교(直交)하게 배체되며, 경사도가 30°를 넘는다. 가마 바닥은 반지하식 또는 지하식으로 축조되었고, 가마의 규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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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중동 유물산포지는 두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중동 유물산포지1과 중동 유물산포지2로 구분하고 있다. 중동 유물산포지는 용인 동백지구의 서쪽에 있는 어정가구단지를 말발굽처럼 둘러싼 구릉에서 발견되는데, 유물산포지1은 구릉 남쪽의 어정초등학교 뒤편에 위치하고, 유물산포지2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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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동 경기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5세기에 펴낸 한의서. 『증급유방』은 중국 명나라 때 사람인 섭윤현(葉尹賢)이 편집한 『의가 비전 수신 비용 가감 십삼방(醫家秘傳隨身備用加減十三方)』과 『경험 급구방(經驗急救方)』을 합하여 간행한 한의서다. 2008년 10월 17일 보물 제1577호로 지정되었다. 『증급유방』은 간행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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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지곡동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지곡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여덟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지곡동 유물산포지1에서 지곡동 유물산포지8로 구분한다. 지곡동 유물산포지1은 중동 북쪽에 형성된 산사면 말단부와 비교적 넓은 논·밭 일대에 위치한다. 유물산포지2는 지곡동 유물산포지1과 지곡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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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환관. 양지현(陽智縣)에서 태어난 진입(眞立)은 일찍이 명나라에 건너가 선종(宣宗) 황제 때 환관(宦官)이 되었다. 주로 활동한 시기는 15세기 전반으로, 명나라 황제의 신임과 총애를 두텁게 받아 조선에서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성품이 순박하고 정직하여 황제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다고 전하는데, 조선과의 관계도 원만하였다. 아버지는 진익생(眞益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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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여양(驪陽). 호는 매호(梅湖). 1126년(인종 4)에 일어난 이자겸의 난을 토평한 공으로 여양군(驪陽君)의 봉작을 받은 대장군 진총후(陳寵厚)의 증손이며, 1170년 정중부의 난 때 문신을 보호해 주었던 참지정사(參知政事) 진준(陳俊)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병부상서(兵部尙書) 진광수(陳光脩)이며, 형은 어사대부(御史大夫) 진식(陳湜)과 예빈경(禮賓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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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1720~1799]은 영조, 정조 대에 임금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면서 국정을 주도하였던 문신으로 오광운(吳光運), 강박(姜樸)에게서 수학하였다.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백규(伯規), 호는 번암(樊巖)·번옹(樊翁).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채응일(蔡膺一)이며,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 이만성(李萬成)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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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채제공의 묘. 채제공(蔡濟恭)[1720~1799]의 본관은 평강(平康), 자(字)는 백규(伯規), 호(濩)는 번암(樊巖)·번옹(樊翁)이며,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1743년(영조 19)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도승지였던 1762년에는 살해 위기에 놓인 사도세자를 옹호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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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 있는 고려시대 군사 시설 터. 처인군창은 고려시대에 처인성에 딸린 창고로 건축되었다. 1530년에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용인현편 고적조(古蹟條)의 기록을 보면 “현의 남쪽 25리에 토축이 있는데 지금은 거의 퇴폐되었다. 군창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8세기 중엽에 간행된 『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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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처인부곡은 언제 설치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1018년(현종 9)에 이미 그 이름이 기록에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고려 이래 특수한 행정 단위의 하나로 기능했을 것이다. 『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용인현읍지(龍仁縣邑誌)』(1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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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인성은 현 행정구역상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2리 산 43번지에 있는 성곽이다. 면적은 약 1,764㎡(5,820평)이며, 둘레는 425m이다. 북측면 좌측에 문대(門臺)가 있고 남쪽 면의 서측에 후문이 있었던 흔적이 보였으나 1979년 복원공사 때 이 부분을 절단하여 연대 등을 조사한 후 복토하여 지금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붕괴가 심하여 정확한 축조공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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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년 12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 처인성에서 처인부곡민과 몽고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1231년 몽고의 1차 침입 이후 고려 정부는 1232년 6~7월에 강화로 천도하였다. 몽고는 기존의 화약을 파기한 책임을 물어 1232년 10월 2차 침입을 감행하였다. 몽고의 2차 침입은 고려 정부의 천도가 몽고와의 대결을 전제로 했다는 점이 명백해진 상태에서의 군사적인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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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 수원부에 속해 있던 부곡이었으나 1232년(고종 19) 처인성(處仁城) 전투에서 승첩하자 지역민에 대한 전공의 포상으로 일반 군현으로 승격되어 처인현이 되었다. 「최서묘지명(崔瑞墓誌銘)」·『삼국사기(三國史記)』·『고려사(高麗史)』·『세종실록(世宗實錄)』·『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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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물산포지. 천리 구수동 유물산포지는 해발 306m의 함봉산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구수마을에 위치한다. 주변에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서리천과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진위천이 있고, 유적은 이 물줄기가 서로 만나는 지점의 서쪽 구릉 지대 언덕에 자리한다. 천리 구수동 유적은 1996년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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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는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국도 45호선으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국지도 84호선을 따라 서리 쪽으로 진행하다 보면 서리천이 진위천에 합류하는 천리 구수동에 이른다. 유적은 함봉산에서 흘러내린 능선의 말단부인 구수동의 서편 낮은 구릉 지대에 자리한다. 1996년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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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 터. 천리 요지1은 천리의 노루실을 지나는 포장도로에서 삼미별장에 못 미친 소로 변의 우측 밭에 위치한다. 천리 요지2는 천리의 적동 전원주택단지의 뒤편 포장도로에서 재밀리골 쪽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다.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천리 요지1은 개간으로 심하게 파괴되어 지표에 백자편과 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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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자기산포지. 용인시에서 국도 45호선으로 이동읍 천리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국지도 84호선을 따라 서리 쪽으로 가다 보면, 서리천이 진위천에 합류하는 천리 구수동에 이른다. 천리 자기산포지는 함봉산에서 흘러내린 능선의 말단부인 구수동의 서편 낮은 구릉 지대에 자리한다. 199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의 용인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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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청덕동 유물산포지는 모두 네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청덕동 유물산포지1부터 청덕동 유물산포지4까지 구분하여 이르고 있다. 이 가운데 청덕동 유물산포지3은 발굴조사 후 청덕동 유적2로 개칭되었고, 청덕동 유물산포지4는 유적의 일부가 중동에 포함되어 중동 유물산포지2로 개칭되었다. 여기서는 초기에 구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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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청동기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시대. 청동기시대의 문화 분포 범위는 대체로 청동기의 표지 유물인 동검을 기준으로 하며, 동검의 모습이 중국의 옛 악기인 비파를 닮은 비파형 동검이 많이 찾아지는 요령 지역까지를 포함한다. 청동기시대의 시작은 기원전 13세기 이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이 시기의 경작지는 집터가 대부분 낮은 구릉 지대에 있었던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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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에 있는 고려 후기 청자. 회색의 기면에 백토와 자토를 상감하여 모란문을 시문한 다음 청자유를 얇게 시유하고 환원 번조하였다. 원형에 가까운 몸통에 주구와 손잡이가 달려 있고, 투구 모양의 뚜껑을 갖추고 있다. 몸통 위로 솟은 입 주변에는 양각의 연판문을 돌렸으며 뚜껑에는 작은 연봉형 꼭지와 작은 고리가 달려 있다. 전체 높이 19.2㎝, 입지름 3.4㎝, 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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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에 있는 고려 후기 청자 화분. 화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밑바닥에 6㎝ 가량의 구멍을 뚫어놓았다. 회색의 기면 위에 백토와 자토를 사용한 상감운학문과 음각의 연판문을 시문한 다음, 청자유를 씌우고 환원 번조하였다. 몸통을 크게 이등분하여 위에는 세 군데로 돌아가며 단독으로 구성된 구름과 학을 교대로 배치하고, 아래에는 굵고 가는 음각선으로 연판문대를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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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에 있는 고려 후기 청자 향로. 중국 고대의 의례에 사용된 동기(銅器)를 모방한 장방형의 청자 향로로 몸체 윗면 두 곳에 손잡이가 달려 있고 몸통 네 귀퉁이에 두 마리씩의 매미가 달려 있다. 회색의 기면 위에 얕은 양인각 수법으로 매우 정교하게 꽃 무늬, 번개 무늬, 회오리 무늬 등과 함께 도철문을 장식한 다음, 비색유를 씌우고 환원 번조하였다. 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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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에 있는 고려 후기 청자 대접. 키가 낮고 기벽이 사선에 가까운 대접 안에는 양인각(陽印刻) 기법으로 연당초문을 얕게 시문하고, 바깥에는 흑백 상감법으로 학과 구름을 장식한 다음 담록색의 청자유를 씌우고 환원 번조하였다. 높이 5.1㎝, 입지름 16.3㎝, 밑지름 4.4㎝이다. 양각된 연당초문을 음각선으로 다시 정교하게 표현한 점이 특징적이다. 청자 대접 안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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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에 있는 고려 후기 음각연당초문과 상감국화절지문이 시문된 청자 대접. 기벽이 사선형인 옴폭한 모양의 대접으로, 안에는 가늘고 예리한 음각선으로 연당초문을 꽉 차게 새겼고, 바깥에는 다른 장식 없이 네 곳에 독립된 국화절지문을 도장 찍듯이 또렷하게 상감해 놓았다. 청자유를 고르게 씌우고 환원 번조하였다. 높이 6.9㎝, 입지름 16.6㎝, 밑지름 4.0㎝이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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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초부리에서 출토된 청동검의 거푸집. 1965년 마을 주민이 3점의 청동검 거푸집[鎔范]을 발견해 매장문화재로 신고하였다. 3점의 청동검 거푸집은 모두 활석으로 만들었으며, 그 중 2매는 서로 짝을 이루고, 그 뒷면에도 틀을 갖추고 있어 여기에 다른 용범을 붙여 사용하면 한꺼번에 여러 개의 청동검을 생산할 수 있는 구조이다. 나머지 하나는 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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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최규서(崔奎瑞)[1650~1735]는 경기도 광주시 출신으로 숙종대에 관직에 나아간 이후 경종대에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당쟁이 격화된 당시 소론의 영수로 활동하였다. 영조 즉위 후 낙향한 80세의 몸으로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대한 대책을 올려 공신에 녹훈되고, 영조의 묘정에 배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문숙(文叔), 호는 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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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대(子大), 호는 이재(頤齋). 증조부는 최업(崔嶪), 조부는 최수준(崔秀俊), 외조부는 유영입(柳永立)이고, 아버지는 부사(府使) 최기남(崔起南)이다. 동생은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신인 최명길(崔鳴吉)이고, 부인은 익성군(益城君) 이형령(李亨齡)의 딸이다. 최내길(崔來吉)[1583~1649]은 1606년(선조 39)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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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강(崔士康)[1388~1443]은 태종의 왕자와 세종의 두 왕자 등 왕실과 연혼하면서 갑자기 현귀하게 되었으나 분수를 지킨 까닭에 세종의 은총이 떠나지 않았다. 이를 배경으로 의정부와 육조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세종 성세(聖世)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부는 선부전서 최득평(崔得枰)이고, 할아버지는 전리판서 문정공(文貞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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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용(崔士庸)[1392~1453]은 세종대의 문신으로 학문이 뛰어났다.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당시의 석학인 완역재(玩易齋) 강대민(姜戴敏)과 문절(文節) 김담(金淡)과 교유하였다. 관직은 내외직을 고루 역임하면서 백성을 아끼고 바르게 다스려 선정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관중. 증조부는 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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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최사위(崔士威)[1361~1450]는 고려 말기의 혼란기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는 아버지 최유경(崔有慶)을 따랐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이성계의 개국을 도와 개국원종공신이 되면서, 최사위도 자연스레 조선에서 벼슬을 하게 되었다. 최사위는 조선 전기 태종과 세종 대에 활약하였는데, 주로 군사와 관련한 일을 잘해서 국방을 방비하는 데 힘썼다. 만년에는 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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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형조판서 최조(崔肇)이다. 1452년(문종 2)에 형조도관좌랑을 거쳐 공조좌랑·이조참의·함경관찰사 겸 순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묘소는 원래 과천시 막계동에 있었으나, 1979년에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완장리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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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청반(淸班). 증조부는 한성부윤 최사위(崔士威)이고, 할아버지는 최조(崔肇), 아버지는 관찰사 최선민(崔善敏)이다. 아들은 첨정 최결(崔潔)이며, 최옥호(崔玉浩)는 아우이다. 성종대의 문신으로, 1473년(성종 4)에 충청도도사를 지냈다. 1481년(성종 12)에 경차관이 되어 평안도와 황해도를 살폈다. 1483년(성종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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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증조부는 한성부윤 최사위(崔士威)이고, 할아버지는 최조(崔肇)이며, 아버지는 관찰사 최선민(崔善敏)이다. 아들은 목사 최항(崔沆)이고, 형은 최옥순(崔玉筍)이다. 성종대에 절충장군으로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을 지냈다. 묘소는 원래 과천시 막계동에 있었으나, 1979년 과천서울대공원 건설 때 용인군 남사면 완장리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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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지(慶之), 호는 죽정(竹亭). 조부는 선부전서(選部典書) 상호군(上護軍) 최득평(崔得枰)이고, 아버지는 감찰대부(監察大夫) 최재(崔宰)이며, 어머니는 무안군부인(務安郡夫人) 박씨(朴氏)의 딸이다. 최유경(崔有慶)[1343~1413]은 1372년(공민왕 21) 판도사좌랑(版圖司佐郎)이 되어 각 도에서 의염(義鹽)의 염분(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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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한성판윤 최사위(崔士威)이고, 아들은 이조참의와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한 최선민(崔善敏)이다. 형조판서를 역임하고, 후에 이조판서를 제수받았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묘소는 원래 과천시 막계동에 있었으나, 1979년에 용인시 남사면 완장리로 이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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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용인 전투에 참여한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건(士建), 호는 잠와(潛窩).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증직된 최신보(崔臣輔)의 셋째 아들이다. 최진립(崔震立)[1568~1636]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동생 최계종(崔繼宗)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전공을 세우고, 1594년(선조 27) 무과에 급제하여 부장(部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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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경기도 용인 지역에 있었던 양지현의 치소(治所). 『세종실록(世宗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 『여지도서(輿地圖書)』(1760), 『양지현읍지』, 『대동지지(大東地志)』(1862), 『양지군읍지』(1899)에 관련 기록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토성(土姓)으로 안씨, 망성(亡姓)으로 이씨, 지씨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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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추계추씨의 시조. 본관은 추계. 자는 관중(慣中), 호는 노당(露堂). 추계(秋溪)는 양지현(陽智縣)의 별호로 지금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과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일대를 말한다. 추적(秋適)[1246~1317]은 1260년(원종 1)에 15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한 뒤 안동서기(安東書記)·직사관(直史館)을 거쳐 좌사간(左司諫)에 올랐다. 1298년(충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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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좌항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토축 산성. 태봉산성은 태봉산의 9부 능선을 이용하여 축조한 테뫼식 토축 산성으로, 1985년 용인문화원의 정양화에 의해 처음으로 토축성이라는 게 알려졌다. 태봉산성은 남쪽이 넓고 북쪽이 좁으며, 각이 둥글게 돌아가는 모양으로 쌓았고, 평면 형태는 사다리꼴에 가깝다. 둘레는 서벽 31m, 동벽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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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한문 시첩. 『태창시첩(太倉詩帖)』은 조선시대에 태창(太倉)의 관직을 지냈던 오자중(吳子中) 등의 시를 첩으로 장책한 것이다. 태창은 관리들의 녹봉과 관련한 일을 맡아 보던 광흥창(廣興倉)의 별칭이다. 첩장(帖裝)이며, 크기는 가로 37.2㎝, 세로 25㎝이다. 태창의 관직을 지냈던 오자중과 현도(玄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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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출토된 흙을 빚어 불에 구워 만든 용기. 우리나라에서 토기는 신석기시대부터 사용되었다. 이 시기의 토기는 빗살무늬 토기로 통칭한다. 빗살무늬 토기는 입구가 넓고 바닥은 뾰족하여 포탄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양이다. 청동기시대의 토기는 무문 토기로 통칭되며, 바닥이 납작해지고 문양은 점차 축소되거나 없어진다. 그러나 입구를 두겹으로 겹쳐 만든 후 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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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통삼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남사면 봉무리에서 통삼천을 따라 난 도로를 타고 유평마을을 지나 북으로 1㎞ 가량 올라가면 남으로 뻗은 작은 능선부에 위치한 민초농원에 이르게 된다. 통삼리 유물산포지는 이 민초농원 일대에 형성되어 있다. 민초농원 내에는 묘목이 식재되어 있고 농원 뒤편의 능선 정상부에는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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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부터 고려 건국 이전까지의 경기도 용인 지역의 역사. 북쪽의 발해와 통일신라가 병존한 것을 들어 남북국시대라고 칭하기도 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용인 지역은 685년(신문왕 9)에 한산주(漢山州)로 편제되었다. 통일신라의 서북단에 위치한 한산주는 그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당나라 뿐 만 아니라 북방의 발해와 말갈 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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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적. 전원택지 개발에 따른 구제 발굴조사의 일원으로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 의해 조사되었으며, 조사 후 기록으로만 보존하였다. 평창리 선사유적은 토양쐐기를 기준으로 위쪽에 퇴적된 후기 구석기시대 말기 문화층과 토양쐐기 아래의 중기 구석기 후기 문화층으로 구분된다. 후기 구석기 말기의 문화층에서 규질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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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유물산포지. 양지에서 백암 방향으로 가는 국도 17호선에서 평창리로 진입하는 도로가 분기되는데, 분기점에는 대규모의 전원주택 단지가 위치해 있다. 평창리 유물산포지는 이 전원주택 단지(1998년 서울대학교와 경기도박물관에 의해 구석기유적 발굴조사가 이루어짐)가 조성된 구릉 전 지역이다. 조사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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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충노(忠奴). 피무작금의 성(姓)은 피(皮), 이름은 무작금(蕪作今)이다. 진사 정시익(鄭時翼)의 종으로 죽산도호부 근삼면 외초동(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장평리)에서 살았다. 정시익이 여덟 살 무렵 피무작금은 목천(木川)에 있는 여동생 집에 심부름을 가 있었다. 이때 정시익의 부모가 전염병에 걸려 모두 죽자, 이웃들은 병을 두려워하여 감히 돌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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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유생. 17세기 초반 조선의 조정에는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통론(嫡統論)을 내세워 영창대군을 세자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1608년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일전에 영창대군을 세자로 옹립하려던 유영경 일파가 몰락하고 대북정권(大北政權)이 들어섰다. 이들은 왕통의 취약성을 은폐하기 위하여 선조의 첫째 왕자 임해군을 제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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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학일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야철지. 원삼면 학일리 고초골저수지에서 남서쪽 계곡을 따라 개설된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약 1㎞ 들어간 곳에 나타나는 작은 개울과 그 서편 완사면(緩斜面) 일대에 걸쳐 분포한다. 1999년 한신대학교 박물관과 용인문화원 등이 용인관내 도자기 터를 조사하면서 발견하였다.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철재와 노벽편이 두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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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학일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마 터. 학일리 요지1은 고초골저수지를 통과하여 골짜기 안쪽으로 들어가는 포장도로를 따라 150여m 진입한 구릉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 학일리 산55임, 68전 일원이다. 학일리 요지2는 쌍용저수지 제방 동쪽 가장자리에서 냇가를 따라 임야쪽으로 250여m 올라간 구릉에 위치하며 아래쪽은 급경사를 이루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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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학일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학일리 유물산포지는 학일리 제2저수지 동북쪽의 야산 동사면상 경작지 일대에 형성된 유물산포지이다. 유적의 남쪽으로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고 이 개울의 상류부 안쪽에는 학일리 백자 요지가 위치한다. 학일리 유물산포지의 동쪽 자락은 저수지의 제방과 연결되어 있고, 주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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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회숙(晦叔).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한이(韓頤)이며, 부인은 밀양박씨(密陽朴氏) 박행장(朴行狀)이다. 한명윤(韓明胤)[1542~1593]은 1568년(선조 1)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천거를 받아 연은전참봉(延恩殿參奉)이 되었다. 1592년(선조 25) 9월 27일 영동현감(永同縣監)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고,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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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년 경기도 용인을 포함한 한강 하류 지역을 관할하기 위해 설치한 통일신라시대의 행정 구역. 신라는 685년(신문왕 5)에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9주 5소경의 지방 제도를 새롭게 마련했다. 한산주는 광주를 주치로 하여 한강 하류를 둘러싼 광범위한 지역을 관활하였는데, 지금의 용인 지방인 구성현도 이 한산주에 포함되었다. 한산주는 본래 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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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계형(季亨), 호는 만오(晩悟), 초명은 용구(用九).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한후유(韓後裕)이다. 한용구(韓用龜)[1747~1828]는 영조 대부터 정조, 순조의 3대에 걸쳐 활동하였으며 1772년(영조 48) 황감제(黃柑製)에 장원 급제하였다. 1773년(영조 49)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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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지역에 은거한 무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의성(義成). 한의증(韓義增)[1694~1764]은 1718년(숙종 44)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이 부호군(副護軍)에 이르렀으나 당쟁과 정변이 많은 조정에 회의를 느껴 사직하고 작은할아버지 묘가 있는 용인현(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기흥동)에 은거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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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회이(晦而). 아버지는 성균관진사로서 생애를 마치고 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된 한사범(韓師范)이다. 조부는 한배의(韓配義), 증조부는 한성우(韓聖佑), 외조부는 유명흥(兪命興), 처부는 심봉휘(沈鳳輝), 아우는 한익모(韓翼謨)이다. 1723년(경종 3)에 증광시(增廣試) 문과 병과(丙科)에 급제한 뒤 1725년 예문관 검열이 되었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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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백창(伯昌). 아버지는 대사헌(大司憲) 한현모(韓顯謨)이다. 백창(伯昌) 한후유(韓後裕)[1713~1791]는 숙종 대부터 정조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1748년(영조 24) 35세 때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1751년(영조 27)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을 제수 받은 후, 세손좌종사(世孫佐從史)·사복시주부(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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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함양박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시대 7종 46점의 전적. ‘『나암수록』 외 전적’은 함양박씨 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던 문헌 중에 연대가 오래된 것과 희귀한 것,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는 것 등 총 7종 46점만을 뽑아 보물 제1008호로 지정한 것이다. 각각의 문헌들은 조선 초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편찬 연대가 다양한데, 『나암수록(羅巖隨錄)』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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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용구현(현 용인시) 금령역에 원나라의 합단이 그 무리를 이끌고 침입한 사건. 합단은 1287년(충렬왕 13) 원나라 세조(世祖) 때 반란을 일으켰던 내안(內顔)의 무리에 속한 부장이었다. 1290년(충렬왕 16)에 만주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켜 원나라 장수 내만대(乃萬帶)에게 패배한 합단은 무리를 이끌고 두만강을 건너 고려 동북면에 침입하였다. 하지만 고려는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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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백자 가마 터. 해곡동 별미마을의 서북쪽에 있는 은석골이란 계곡의 구릉에 위치한다. 밭과 묘지 주변에 다량의 백자 파편들이 지표에 흩어져 있다.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곡동 요지에서는 백자편과 소량의 도기편, 요도구들이 발견된다. 백자는 주로 대접과 접시 종류들이며 드물게 사발·잔·제기 등이 보인다. 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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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해주오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후기의 고문서. 해주오씨가 고문서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오윤겸(吳允謙)[1559~1636]에게 내린 교첩 12점과 교지 55점, 오달천(吳達天)에게 내린 교지 13점, 오도종(吳道宗)에게 내린 교지 14점, 오도일(吳道一)에게 내린 교지 81점, 오수현(吳遂顯)에게 내린 교지 17점, 오명유(吳命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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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행군이토성은 산성의 입지, 축조 방법, 유물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초축되어 고려시대를 거쳐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수축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행군이토성의 평면 형태는 남북의 길이가 동서 폭보다 긴 장방형이다. 동벽 약 420m, 서벽 240m, 남벽 50m, 북벽 176m와 정남쪽으로 연결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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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이숙(而肅). 조부는 통제사(統制使) 허임(許任)이며, 아버지는 군수(郡守) 허즙(許濈)이다. 아들은 허선(許選)이다. 허계(許棨)[1798~1866]는 1814년(순조 14) 천거로 선전관(宣傳官)이 되고, 1815년(순조 15) 무과에 급제하였다. 1837년(헌종 3) 함남병마절도사(咸南兵馬節度使), 1841년(헌종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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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양천허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허계의 초상화. 허계 초상은 용인시 원삼면 맹리 능안마을 양천허씨 문중에서 아들인 허선(許選)의 초상화와 함께 소장, 보관되고 있다. 두 초상화는 허계(許契)[1561~?]·허선 부자가 1628년(인조 6)에 일어난 유효립(柳孝立)의 모반 때 공을 세워 ‘갈충효성병기익명영사공신(竭忠效誠炳幾翊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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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許筠)[1569~1618]은 5세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9세 때 시를 지을 줄 알았으며, 12세 때 아버지를 잃고 더욱 시 공부에 전념하였다. 학문은 유성룡(柳成龍)에게 나아가 배웠으며, 시는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하나인 이달(李達)에게서 배웠다. 이달은 둘째 형의 친구로서 당시 강원도 원주의 손곡리(蓀谷里)에 살고 있었는데, 허균에게 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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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미숙(美叔), 호는 하곡(荷谷). 아버지는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서 학자·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허엽(許曄)이며, 어머니는 둘째 부인인 강릉김씨(江陵金氏)로서 예조판서(禮曹判書)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이복형인 허성(許筬)이 있으며, 동생으로 허균(許筠)과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있다. 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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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공신. 본관은 양천(陽川). 아버지는 갈충효성병기익명영사공신(竭忠效誠炳幾翊命寧社功臣)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제수 받았던 허계(許契)이다. 1628년(인조 6) 유효립(柳孝立)은 전(前) 세마(洗馬) 허유(許유)·전(前) 좌랑(佐郞) 정심(鄭沁)·도감초관(都監哨官) 윤계륜(尹繼倫) 등과 내통하여 자기 아들과 추종자를 도성(都城)으로 잠입시켜 광해군을 상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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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양천허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허선의 초상화. 허선 초상은 허선(許選)[1591~1665]이 부친인 허계(許契)[1561~?]와 함께 1628년(인조 6)에 일어난 유효립(柳孝立)의 모반 때 공을 세워 ‘갈충효성병기익명영사공신(竭忠效誠炳幾翊命寧社功臣)’이 된 이후 제작되어 공신각(功臣閣)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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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공언(功彦), 호는 악록(岳麓)·산전(山前). 아버지는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서 학자·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허엽(許曄)이며, 어머니는 둘째 부인인 강릉김씨(江陵金氏)로서 예조판서(禮曹判書)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이복동생인 허봉(許篈)과 허균(許筠)이 있으며, 여동생 허난설헌(許蘭雪軒)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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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태휘(太輝), 호는 초당(草堂). 아버지는 군자감부봉사(軍資監副奉事) 허한(許瀚)이며, 부인은 강릉김씨(江陵金氏)로서 예조판서(禮曹判書) 김광철(金光轍)의 딸이다. 아들은 허성(許筬)·허봉(許篈)·허균(許筠)이고, 딸은 허난설헌(許蘭雪軒)이다. 허엽(許曄)[1517~1580]은 1546년(명종 1)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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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의 양천허씨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허적의 초상화. 허적 초상은 원래 허적(許𥛚)[1563~1640]이 1628년(인조 6)에 일어난 유효립(柳孝立)의 모반을 고변하여 영사원훈공신(寧社元勳功臣)에 책봉되던 당시 인각되어 공신각(功臣閣)에 봉안되었던 것을 후손이 뒤에 가묘본(家廟本)으로 이모(移摸)하여 소장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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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양천허씨 용인 입향조.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요구. 허금(許錦)의 증손이고, 할아버지는 허기(許愭)이다. 아버지는 허추(許樞)이며, 부인은 조선(趙璿)의 딸이다. 아들은 허담(許聃)이다. 허창(許菖)은 1450년(세종 32)에 소과(小科)에 합격하였으며, 1469년(예종 1)에 추장시(秋場試)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신계현령(新溪縣令)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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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1월 2일 경기도 용인에서 충청도 근왕군이 남한산성을 에워싼 청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벌인 전투. 1636년 12월 13일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조선 조정은 강화도-한성-남한산성을 중심으로 거점 방어를 하여 청군을 격퇴할 것을 구상하고, 이 거점들의 방어 태세를 정비하는 한편, 각도 첨사·병사에게 근왕(勤王)을 명령하였다. 그런 다음 비빈(妃嬪)·왕자·종실 및 백관(百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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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호동에 있는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친 가마 터. 호동 요지는 세 곳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호동 요지1의 고려도기 가마 터는 호동의 길업마을 남동쪽의 큰 길업골 안에 있으며 삼림이 울창하고 흔적이 별로 없어 찾기 힘들다. 호동 요지2의 백자 가마 터는 호동의 예직마을 입구에서 서쪽으로 약 300m 떨어진 계곡 안에 계단식 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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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기호 지역에서 일어난 심성(心性)에 관한 학설 논쟁. 호락논쟁(湖洛論爭)은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이라고도 한다. 이는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을 주장한 한원진(韓元震) 등을 지지한 이들이 충청·호서 지역을 중심으로 살았으므로 호론(湖論)이라 하며, 인물성동론(人物性同論)을 주장한 이간(李柬)·이재(李縡)를 지지한 이들은 서울·경기 낙하(洛下) 지역에 주로 살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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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에 존재한 지방 세력. 신라 하대에 진골 귀족 내부의 정쟁으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지방에서는 호족이라는 새로운 사회세력이 독자적 세력으로 대두하였다. 호족은 성주(城主) 또는 장군(將軍)으로 자칭하면서 지방 사회를 통치하였으며, 중앙의 정치 기구를 모방한 독자적인 지배 기구인 관반제(官班制)를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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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순보(純甫), 호는 담와(淡窩). 아버지는 참판 홍우전(洪禹傳)이며, 어머니는 대사헌(大司憲) 이상(李翔)의 딸이다. 담와(淡窩) 홍계희(洪啓禧)[1703~1771]는 영조 대에 활동한 문신으로 시무에 밝고 경세치용(經世致用)에 관심이 많았던 개혁 실천주의자이다. 스스로 노론 이재(李縡)의 문인이라 했으나 대다수의 이재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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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중서(仲瑞). 아버지는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 홍하명(洪夏明)이다. 첫째 부인은 죽산안씨(竹山安氏)이며, 둘째 부인은 의령남씨(宜寧南氏)이다. 홍우구(洪禹龜)[1689~1730]는 1715년(숙종 41) 무과에 급제한 뒤 군수를 역임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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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용인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아버지는 홍수득(洪守得)이다. 홍제(洪霽)[1553~1625]는 명종 대부터 인조 대까지 활동하였으며 무과에 급제한 후 오위낭청(五衛郎廳)을 거쳤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는 군관으로 수원 방어에 공을 세워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책록되었고, 대호군(大護軍)을 역임하였다.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중동에 있으며, 묘소 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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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군석(君錫). 임진왜란 때 선무원종공신(宣撫原從功臣)인 홍제(洪霽)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홍유량(洪有量)이다. 첫째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전주이씨(全州李氏)이며, 둘째 부인은 정부인 진주유씨(晉州柳氏)이다. 형은 홍하창(洪夏昌)이다. 홍하명(洪夏明)[1645~1705]은 현종 대와 숙종 대에 걸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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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성초(聖初). 임진왜란 때 선무원종공신(宣撫原從功臣)인 홍제(洪霽)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홍유량(洪有量)이다. 부인은 숙부인(淑夫人) 진주유씨(晉州柳氏)이다. 아우는 홍하성(洪夏成)과 홍하명(洪夏明)이 있으며, 서제(庶弟)로 홍하업(洪夏業)과 홍하적(洪夏績)이 있다. 홍하창(洪夏昌)[1638~1714]은 현종 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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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화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백자 가마 터. 요지1은 화산리 요산동마을에서 요덕저수지로 가는 길 중간쯤에 위치하는 구릉 끝에서 밭 일부에 걸쳐 있다. 요지2는 화산리 골프장 우측에 인접한 골짜기의 전나무 숲 속에 위치한다. 요지3은 화산리 요산마을 183-4번지에 경사진 능선을 따라 위치한다. 발굴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요지1 가마 터에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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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화산리에 있는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 화산리 유물산포지는 모두 세 곳에 분포하는데, 각각을 화산리 유물산포지 1·2·3으로 구분하고 있다. 화산리 유물산포지1은 용인시에서 이동읍 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가다가 송전리 입구에서 동편으로 난 도로를 타고 들어가면 화산2리에 이르는데, 이 마을 뒤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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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여온(汝溫), 호는 겸제(謙濟). 증조부는 황징(黃澄)이며, 조부는 황준원(黃浚源)이고, 외조부는 조계상(曹繼商)이다. 아버지는 황순경(黃舜卿)이고,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 윤준(尹濬)의 딸이다. 황림(黃琳)[1517~1597]은 1552년(명종 7) 식년시(式年試)에서 을과 4인으로 급제하여 1562년(명종 17) 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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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수효(秀孝)·계효(季孝)[세종실록에는 계효로 되어 있다.], 호는 나부(懦夫)·신부(侁夫). 아버지는 세종조의 명상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황희(黃喜)이며, 형은 판서(判書) 황치신(黃致身)이다. 황수신(黃守身)[1407~1467]은 1423년(세종 5) 사마시(司馬試)에 응시하였다가, 학문이 부진하다고 시관(試官)에게 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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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용인 전투에서 활약한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명보(明甫). 황희(黃喜)의 5세손이며, 아버지는 증좌의정(贈左議政) 황윤공(黃允恭)이다. 황진(黃進)[1550~1593]은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1591년(선조 24)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황윤길(黃允吉)을 따라 일본에 다녀와 미구에 일본이 내침(來侵)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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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본관은 상주(尙州). 자는 자영(子永), 호는 소원(少原). 증조부는 황을구(黃乙耈)이고, 할아버지는 황하신(黃河信)이며, 아버지는 증좌찬성(贈左贊成) 황사간(黃士幹)이다. 아들은 황석경(黃碩卿)과 황준경(黃俊卿)이 있다. 황효원(黃孝源)[1414~1481]은 세조 대부터 성종 대에 걸쳐 활동하였으며, 특히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왕위에 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