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900741
한자 宋箕
영어음역 Song Gi
이칭/별칭 대은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변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미상
몰년 미상
본관 진천
대표관직 서흥부사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천(鎭川). 호는 대은(大隱). 아버지는 호조전서(戶曹全書) 송광우(宋匡祐)이다.

[활동사항]

고려 우왕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자 낙향하였으나, 조선이 개국된 뒤에 다시 관직에 나왔다. 1417년(태종 17) 6월 형조정랑(刑曹正郞)에 있으면서 황단유(黃丹儒)의 자손인 박은·박자청(朴子靑)·조원(曹瑗) 등과 박송비(朴松庇)의 자손인 정탁(鄭擢)·이숙번(李叔蕃)·이래(李來) 사이의 노비의 시비(是非) 문제와 관련하여 국문을 당하였다.

1419년(세종 1)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거쳐 1424년(세종 6)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었다. 이때에 ‘원일동연의주(元日同宴儀注)’에는 부복(俯伏)한다는 명문이 없음을 들어 부복(俯伏)한 영돈녕(領敦寧) 유정현(柳廷顯)·우의정(右議政) 유관(柳寬)·찬성(贊成) 황희(黃喜)·대제학(大提學) 변계량(卞季良) 등을 탄핵했다가 변계량의 비방을 듣고 사직을 청하기도 하였다.

1427년 지순창군사(知淳昌郡事)를 역임하였으며, 1432년(세종 14)에 다시 사헌부장령에 임명되어 조말생(趙末生)의 탐오(貪汚)함을 탄핵하였으나 태종께 공이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433년(세종 15)에 경창부소윤이 되었으며, 뒤에 부평부사(富平府使)·서흥부사(瑞興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에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