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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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後天 |
영어음역 | Lee Hucheon |
이칭/별칭 | 유야(悠也),백치(白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광준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용인. 자는 유야(悠也), 호는 백치(白痴). 아버지는 대사간 이사경(李士慶)이다.
[활동사항]
1618년(광해군 10) 정시(庭試)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사헌부지평·사헌부장령이 되어 시관(試官) 김륜(金崙)과 임건(林健) 등의 잘못을 탄핵하였다. 이어서 호조정랑·직강·사서를 거쳐 평양서윤이 되었다. 1624년(인조 2) 첨정(僉正)으로 있을 때 명나라 장수 모문룡(毛文龍)이 병력 5천을 이끌고 후금 번호(藩胡)를 친다는 구실로 함흥부를 침공하자, 접빈유격장군(接賓遊擊將軍)을 맡아 임기응변의 계책을 써서 남하를 저지하였다.
1632년(인조 10) 종묘의 춘향친제(春享親祭) 의식을 익힐 때 참석하지 않았다고 하여 파직되기도 하였다. 그 후 제용감정(濟用監正)을 역임한 뒤 예빈시정(禮賓寺正)과 조회·의례를 관장하는 통례원상례(通禮院相禮)가 되었다.
1638년(인조 16) 외직으로 경상도 울산부사로 나갔을 때 군병을 정밀하게 뽑고 포와 화살을 많이 갖추어 놓았다고 표리(表裏) 한 벌을 하사받기도 하였지만 얼마 후 파직되었다. 1647년(인조 25) 해주목사로 복직되었으나 어머니의 상으로 사임하였다. 그 후 종묘서령·안동부사·형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오부읍 시우리 산53-1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