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9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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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保 |
영어음역 | Jeong Bo |
이칭/별칭 | 설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변은숙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설곡(雪谷). 할아버지는 문충공(文忠公) 포은(圃隱) 정몽주이며, 아버지는 이조참의 정종성(鄭宗誠)이다. 어머니는 죽산박씨로 제학(提學) 박중용(朴仲容)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박씨로 병마사(兵馬使) 박등(朴登)의 딸이다. 아들은 정윤정(鄭允貞)·정윤화(鄭允和)·정윤관(鄭允寬)이고, 사위는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문강공(文康公) 이석형(李石亨)이다.
[활동사항]
정보(鄭保)는 일찍이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문과에 급제하여 예안현감(禮安縣監)이 되었다가 사헌부감찰에 이르렀다. 1456년(세조 2)에 감찰(監察)로 있던 정보는 성삼문(成三問) 등이 죄가 없다고 한말이 빌미가 되어 유배를 가게 되었다.
당시 정보는 한명회(韓明澮)의 첩이었던 이복누이의 집을 방문했다가 한명회가 성삼문을 추국하는 일 때문에 대궐로 갔다는 말을 듣고서는 “성삼문·박팽년(朴彭年)은 바로 정인군자(正人君子)인데, 이들을 살해하면 후세에 반드시 악명을 남기게 될 것이다.”라고 큰소리로 꾸짖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한명회는 즉시 이같은 사실을 조정에 아뢰게 되었고, 정보는 추국을 받게 되었다. 정보는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있다고 소리 높여 항언하였고, 세조는 처형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정보는 충신 정몽주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특별히 석방되어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丹城)으로 유배되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에 있다. 묘갈의 비문은 판돈령(判敦寧) 이민보(李敏輔)가 짓고 13세손 정환조(鄭煥祖)가 썼다.
[상훈과 추모]
정보는 1699년(숙종 25)에 복위되었으며,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1701년(숙종 27)에 정몽주를 모신 용인의 충렬서원(忠烈書院)에 배향되었다. 1732년(영조 8)에 영월 사람들이 8현사(八賢祠)를 짓고 배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