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6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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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俊龍 |
영어음역 | Kim Junryong |
이칭/별칭 | 수부,충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필기 |
[정의]
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광교산 전투에 참여한 무신.
[가계]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수부(秀夫). 할아버지는 전설사별좌(典設司別座) 김영(金瑛)이고,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두남(金斗南)이며, 어머니는 도호부사 김희필(金希弼)의 딸이다.
[활동사항]
1608년(선조 41) 무과에 급제, 선전관을 거쳐 황해도·경상도·함경도의 병영에 근무하였다. 1617년(광해군 9) 인동부사가 되었고, 1628년에는 황해병사가 되었으며, 북병사(北兵使)를 거쳐 1636년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청나라 태종이 쳐들어오자 1637년(인조 15) 임금을 비롯한 주요 병력이 남한산성으로 대피하였다. 이때 전라도병마절도사로서 군사를 거느리고 구원하러 들어와 수원과 용인 사이에 있는 광교산(光敎山)에 주둔하여 청 태조의 부마 백양고라(白羊高羅) 외 두 대장을 사살하고 대승하였다.
당시 남한산성이 오래도록 포위되어 안팎이 막히고 단절되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구원병의 소식이 이르렀으므로 성 안에서 이를 믿고 안정을 되찾았다. 이후 청나라 군사의 공격을 받았으나 이시방(李時昉)이 구원군을 보내지 않아 광교에서 패배를 당하였다.
이에 패군한 죄를 물어 유배될 뻔 하였으나 광교산 싸움에서 한 차례 대승리하였다는 비변사의 건의로 사면되었다. 뒤에 어영중군(御營中軍)·김해부사·경상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양(忠襄)이다. 현재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하광교동에 경기도 기념물 제38호인 김준룡 장군의 전승지 및 비가 있다. 수원 광교산 중턱 해발 400m쯤 되는 곳의 자연 암벽에 ‘충양공김준룡 전승지(忠襄公金俊龍戰勝地)’라고 새기고 좌우에 ‘병자호란 공제호남병근왕 지차살청 삼대장(丙子胡亂公提湖南兵覲王至此殺淸三大將)’이라고 새긴 전승비가 있다. 규모는 세로 135㎝, 가로 4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