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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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䃴 |
영어음역 | Kim Jeo |
이칭/별칭 | 학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홍영의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학광(學光). 증조는 지중추부사 김영유(金永濡), 할아버지는 첨정 김훈(金薰), 아버지는 김세필(金世弼)이며, 외조는 이탁(李鐸)이다.
[활동사항]
김저는 1539년(중종 34) 문과에 급제하고 홍문관 박사, 이조좌랑을 지냈다. 1545년(명종 1)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중형을 받고 안동으로 유배되었으며, 1547(명종 2)년 벽서(壁書)의 변으로 삼수(三水)에 이배되었다가 사사되었다.
뒤에 이이(李珥)의 상소로 복관되었고, 숙종 때 남구만이 아뢰어 그의 형 승지 김구의 아들 김중경(金重慶)을 후사로 삼아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1785년(정조 9)에 진사 이우형(李宇炯) 등 경기도와 충청도 유생들이 당시 화를 당한 신하 가운데 유독 김저만 증직이나 시호가 내려지지 않았다는 건의가 있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대지마을에 있다.
[상훈과 추모]
유생들의 건의로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