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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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소학동에서 용못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스님을 냉대하여 벌을 받는 이야기로 주인공의 인색함과 악행으로 징계자로부터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1959년 7월 9일 충청남도 공주군 계룡면 소학리에서 임헌도가 채록하여 『한국전설대관』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이석주(남)이다. 옛날 백제시대에 지금의 공주시 소학동 삼거리에서 논산 방면으로 오른쪽,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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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사곡면·신풍면 일원에서 불리던 충청남도의 지명과 특색을 열거하며 공주 등을 노래한 민요. 「충청남도 창부 타령」은 단가인 「호서가」와 함께 충청남도를 노래한 대표적인 민요이다. 공주(금강), 부여(팔경), 논산(은진미륵), 보령(마애불), 서천·한산(세모시), 온양(온천), 천안(역전), 연기·조치원(역전), 대전(역전)을 돌아보고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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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서 발행하는 일반 주간 신문. 신용희는 공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도 중부권의 발전과 금강 유역 지역민들의 생존권 확보와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고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총망라한 지역 언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2006년 5월 23일 금강뉴스창간위원회를 발족한데 이어 동년 6월 1일 『금강뉴스』를 창간하였다. 판형은 대판으로 12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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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중동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공주 지역 최초의 온라인 신문. 2006년 11월 6일 김광섭(金廣燮)은 공주 지역의 정치, 시사 및 각종 정보와 뉴스를 보도하여 지역 사회의 올바른 여론 형성에 기여하고자 (주)공주뉴스 법인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11월 9일 법인 등록을 마쳤다. 같은 해 11월 28일 『공주뉴스』를 정기 간행물로 등록한데 이어 12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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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신문을 뒤져보면 갑사와 관련한 기사들이 주목된다. 현재 마을에 거주하는 80세 이상의 노인들이 어린 시절인 해방 이전의 마을 모습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사적인 일에 제한되어 있어 당시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한 신문기사를 통해 80여년전 갑사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해 보자. 동아일보 1924년 9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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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개신교의 한 교파. 감리교(監理敎, Mehtodist Church)는 1729년 영국의 존 웨슬리에 의하여 시작된 개신교의 한 종파로 교리보다는 실제적인 생활과 성경의 진리를 실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사랑에 의하여 구현되는 신앙과 종교적 경험을 강조하고 이성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며 타 종파에 비해 신학적 이론을 비교적 자유롭게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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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갑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사적비. 공주에서 논산으로 향하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0㎞를 가면 계룡면소재지로 빠지는 길목이 있고, 이곳에서 계룡저수지를 지나 6㎞ 거리에 갑사 입구가 있다. 갑사 일주문을 통과해 사천왕문에 이르러 왼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면 갑사 부도군 옆에 갑사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화강석 자연 암반을 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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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공주 지역은 역사적으로 백제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그 후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의 중심지로서 문화, 행정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지녀왔다. 따라서 종교적으로도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왔을 뿐만 아니라 인근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종교적 인구 밀도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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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경천역에 관한 기록은 여러 지리지나 읍지에 위치, 소속된 말과 노비의 수 따위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세조실록』에는 “세조 6년 2월 5일자 기사에서는 성환도, 일신도, 증약도, 율봉도를 합하여 성환도라 칭하고 증약도찰방으로 책임을 맡게 하였다.” 이 기록에 따르면 경천역은 공주의 광정역·유구역·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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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 있는 터널. 2007년 1월 11일 준공되었으며, 2개의 터널로 이루어져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방동에서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온천리까지의 10㎞ 구간에 건설된 계룡산 관통도로 상에 축조되어 있다. 계룡산 관통도로는 국도 1호선 논산과 공주 사이의 일부 구간을 직선화한 4차선 도로로, 국도 32호선과 국도 4호선을 직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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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 일대에서 무당이나 법사와 보살이 굿을 전문적으로 올리는 제의 장소. 계룡산 일대에는 70여 개의 굿당이 산재해 있다. 여기서 올려지는 굿은 소위 ‘계룡산굿’이다. 여기서 ‘계룡산굿’이란 서울과 경기와 이북 지역의 춤추는 무당이 담당하는 굿과 도교 계통의 충청 지역 일대에서 법사들이 올리는 설위설경, 즉 송경을 합하여 재생산된 현대의 굿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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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은 공주, 대전, 논산에 걸쳐 있는 충청의 명산이다. 통일신라시대 때부터 국가에서 신성시하며 제사를 지냈던 ‘5악(동악 토함산, 남악 지리산, 서악 계룡산, 북악 태백산, 중악 팔공산)’ 중 하나였다. 유교주의 국가였던 조선에 와서도 명산이라 하여 국가에서 매년 봄·가을에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하였던 산이다. 계룡산의 서쪽에는 ‘으뜸’을 뜻하는 갑사(甲寺)가 자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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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가 낮은 지형 형태.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고개는 보통 그 지역의 지명이나 전설과 관련된 명칭을 가지고 있으며 장고개와 같이 주민 생활과 관련되어져 이름이 붙여진 경우도 있다. 고개와 관련된 지명으로는 재, 치, 티 등이 있다. 『공주지명지』를 중심으로 살펴 본 공주의 고개는 대략 190여 곳으로 파악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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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에 있는 동학농민운동 격전지. 공주 우금치 전적은 1894년 11월 동학농민군이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을 상대로 항전을 전개한 곳이다. 전봉준이 지휘하는 농민군은 1894년 9월 재봉기 이후 논산에 머물며 공주를 공격 목표로 설정하는 작전을 세웠다. 당시의 공주는 충청도 감영(監營)이 있는 곳이었고, 또 우금치는 공주에서 부여 방면으로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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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소학동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효자 향덕의 정려비. 755년(경덕왕 14)에는 심각한 기근이 신라 전국을 휩쓸고 전염병까지 나돌았다. 부모 공양이 막연해지자 공주 판적향(공주시 소학동 일대)에 살던 향덕은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 부모를 봉양하였다. 또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종기를 입으로 빨아 치료하였다. 신라 경덕왕은 향덕의 효행이 보고되자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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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의 동부 중앙에 있는 시. 차령산맥 일부가 공주시의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어 무성산[613.6m]·국사봉[590.6m]·금계산[574.8m]·갈미봉[515.2m] 등의 산들이 사곡면·정안면·유구읍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공주시의 북부 지역은 비교적 높은 산지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남동 지역은 국립공원인 계룡산[845.1m] 지괴가 분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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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연세 60대 이상의 어른들은 누구나 기억하는 소리꾼이 있다. 삼거리마을에 살았던 김재익. 그는 공주의 민간 재인 중 마지막 우두머리 재인이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유명한 재인이었고,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배운 실력이 청출어람이라 소문이 자자했다. 살아있다면 100살쯤 되었을까. 미인박명이라더니 6·25 전쟁 직후에 사망했다. 젊은 시절에는 중장2리인 오미마을에 살다 삼거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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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인간 및 재화 또는 정보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공간적 이동. 교통이란 인간 및 재화 또는 정보의 공간적 이동을 의미한다. 교통 기관의 발달은 생활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경제 생활 및 사회 문화를 발달시키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좁은 의미에서의 교통은 그 중 인간과 재화의 공간적 이동만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통 수단은 일반적으로 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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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복룡리에 있는 고개. 산세의 형국이 돼지의 구수와 같다 하여 구수티고개라고 한다. 구수는 구유(가축의 먹이를 담는 통)의 방언이다. 시대 미상의 화강암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구수리고개 정상 부근의 높이는 약 80m 정도이다. 구수리고개 남쪽과 북쪽 모두 금강으로 유입되는 지류의 계곡 상류부에 해당된다. 구수리고개는 이인면 이인리와 복룡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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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에서 봉암리까지 연결되는 국도. 국도1호선은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평안북도 신의주시까지 연결되는 도로로, 총 길이는 498.7㎞이다. 그 중 왕복 2차선은 152.9㎞, 왕복 4차선은 279.6㎞, 왕복 6차선은 64.9㎞이다. 미포장 도로는 636m, 미개통 도로는 400m이고, 도로 포장률은 99.8%이다. 전국 25개 남북 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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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역사. 한국 역사에서 근현대라 함은 보통 일제의 대한제국에 대한 주권 침탈에 의한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1910년 8월부터 해방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시기까지를 말한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는 크게 1910년대의 무단통치기, 1920년대의 문화정치기로 불리는 민족분열통치기, 1930년대 이후부터 1945년 일제 패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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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걸쳐 충청남도 공주에서 금강 수계를 이용하여 발달했던 수운. 조선시대에 공주 지역은 충청도 일대의 수위 도시로서 금강과 주변의 산지들이 방어 기지가 되는 군사적 요충지였고, 금강수운의 주요 하천 항구였다. 공주시의 주요 도시 기능 가운데, 교육과 교통 기능의 원형은 대체로 일제강점기에 부여된 것인데, 이는 조선시대의 도시 기능과도 관련되어 있다.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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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에 강은 지리적으로는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고, 문화와 문화를 연결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금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넓은 충적평야와 낮고 완만한 구릉들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선사시대 이래로 생활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고, 이러한 금강을 따라 펼쳐진 선사 유적은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상을 보이고 있다. 금강 유역에서 조사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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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금대리에 있는 평야. 우리나라의 자연 취락은 대부분 전면에는 평지와 하천을, 후면에는 산을 둠으로 배산임수의 형태를 취해 입지해 왔다. 이 중 전면의 평지는 보통 해당 지역 또는 마을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금대들도 그렇게 지어진 명칭 중 하나이다. 금반형의 명당이 있는 곳에 세워진 마을이라 하여 금대리라 지어졌으며 전면의 평야를 금대들이라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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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절 터. 공주-논산 간 국도변 오른쪽의 공주시 월성산이 남쪽으로 흐르는 신기동 뒷산 해발 160m 지점 계곡 사이에 있다. 현재 능엄사지로 알려진 곳에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능엄사(陵奄寺)라는 암자가 있는데, 이 사찰의 건립 과정에서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작은 불상 3구가 발견되었고,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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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분강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선비인 박경래를 제향하는 사우. 대도사는 원래 재실이었으나, 1955년부터 박완식(朴完植), 박기대(朴基大) 등의 후손들과 구행서(具行書), 이계철(李啓哲) 등 공주·부여·논산의 유림들이 박경래의 유덕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대도사 건립을 발의, 3년여의 준비 끝에 1958년 건립되었다. 공주에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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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있는 대전지방노동청 산하 고용 지원 기관. 구직자의 고용 촉진과 사업주의 인력 확보가 용이하도록 직업 소개, 직업 지도, 고용보험 등 고용 안정 업무를 수행하는 지방 노동 행정 기관으로서 고용 정책의 추진을 통한 일자리 마련, 직업 훈련에 의한 능력 향상 등의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근로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지역 경제의 균형 발전을 도모할 목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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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사람이나 차가 다니는 비교적 넓고 큰 길. 공주시 지역은 과거 수로 교통이 발달하였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철도 교통과 도로 교통이 급격히 발달하였다. 1933년 건설된 금강교는 공주가 철도 교통 대신 도로 교통의 중심으로 다시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공주시의 도로 포장률은 국도 100%, 지방도 78.7%, 시·군도 57.7%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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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었던 축구 동호회 성격을 띤 체육 단체. 1918년 회장 김응근을 비롯하여 청년과 학생 약 70여 명을 중심으로 조직된 단체이다. 일제강점기에 공주는 충청남도 도청 소재지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학교가 설립되어 충청남도의 다른 지역보다 근대적 체육 보급이 빨랐다. 1918년 조직된 축구 모임인 동우단은 군내는 물론 예산과 논산 등 주변 지역에 원정 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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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9월 재봉기를 선언한 동학농민군은 서울로 북상하기 위해서는 중부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라 할 수 있는 공주를 점령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 전봉준이 이끄는 주력 부대와 손병희의 북접 부대가 결합한 동학농민군 연합 부대는 논산에 집결하여 공주를 점령하기 위해 진격하였으나, 2차에 걸쳐 전개된 공주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척왜’와 ‘보국안민’의 기치 아래 전개된 동학농민혁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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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계룡면 중장리는 총 3개의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바로 중장 1리. 갑사의 아랫마을이다. 갑사 사찰은 계룡산 둘러둘러 골짜기마다 자리잡은 고풍스러운 여러 사찰 중 가장 으뜸되는 절이니, 매년 갑사를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중장1리 마을을 지나고 있다. 불자가 아니더라도 계룡산을 등산하는 등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갑사에서 고개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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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에서 민중들이 일상적인 삶을 통해 불러온 전통적인 노래. 공주는 충청남도의 중심부에 위치한 고장이다. 지리적인 여건으로 볼 때 북서쪽의 차령산맥권과 동쪽의 계룡산권과 남쪽의 평야 지대로 나뉜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지역에 따라 다른 성질의 민요가 도입되었다. 북쪽으로는 경기 민요의 영향을 받아 경조의 소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동쪽의 계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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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만 사용하는 특유한 언어나 언어적 용법. 충청남도 공주시는 백제의 고도로서,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중앙에 도심지역과 외곽지역에 농촌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도·농 통합형 도시이다.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중앙부이며 충남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즉 동쪽으로 대전광역시와 연기군, 서쪽으로 청양군과 예산군, 남쪽으로 부여군과 논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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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조선시대의 통신 수단. 봉수제도는 변방의 다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군사적 목적으로만 사용하였다. 봉수대는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횃불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횃불 3개, 국경을 침범하면 횃불 4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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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물품 매매업. 상업은 넓은 의미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재화의 사회적 유통 활동을 지칭한다. 따라서 사회적 유통 활동을 촉진·조성하는 금융업, 운송업, 보험업, 창고업 등도 넓은 의미로는 상업에 포함된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의 상업은 단지 상인의 영리 목적에 의해서 행하여지는 재화의 매매 활동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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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있는 평야. 상평의 순 우리말은 위들이며, 이곳의 자연 취락으로 마룻들의 위쪽이라는 뜻의 위들말이 있었다. 마룻들은 경천리 전면에 있는 들로서 현재는 화평들로 불리는 것 같다. 위들말은 현재 상평이라고 불리며, 상평들은 이곳 상평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생평들이라고도 하며, 생평은 상평이 변화된 형태이다. 상평들은 계룡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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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있는 창작 오페라단. 충청남도와 대전 지역의 오페라 문화를 개척하며 우리나라 창작 오페라 활성화 및 창작 오페라 세계화 운동을 전개하여 우리나라 오페라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창단되었다. 충남오페라단이 민간(백기현, 공주대학교 교수) 주도로 1991년 창단되었다. 오페라 공연에 필요한 기업의 후원과 독지가의 후원을 구하는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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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던 지방 행정 구역. 속군(屬郡)은 속부(屬府), 속현(屬縣) 등으로 구분될 수 있으나 통상 속현으로 총칭된다. 지방관이 파견된 지역을 주현(主縣)이라 하였는데,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을 통하여 인근 속현을 간접 통치하는 주현·속현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공주 지역은 1018년(현종 9)의 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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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던 공주 지역의 행정 구역. 속현(屬縣)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지역을 말한다.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을 통하여 인근 속현을 간접 통치하는 주현·속현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공주 지역은 1018년(현종 9)의 관제 변화와 함께 목(牧)에서 지주군(知州郡)의 위치로 격이 낮추어졌고 목사 대신 지주군사가 수령으로 부임하여 왔다.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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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일반적으로 시장은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을 말한다. 상설 시장은 일정 지역 내 하나의 건물 안에서 영업자가 항시 물품의 매매 교환을 할 수 있는 시장을 말하며 정기 시장은 일정 구역 안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을 말한다. 따라서 시장은 상품 교환의 발생 빈도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느냐 연속적으로 매일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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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 성재산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축 산성.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양화산성(良化山城)은 공주 남쪽 40리 지점에 있는데, 돌로 쌓았으며, 둘레가 1,050척이고, 그 안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양화산성은 석성이었고, 성내에 우물이 한 곳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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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매체를 통하여 사실을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언론은 넓게는 말이나 글로 자기의 생각을 발표하는 일 또는 말이나 글 그 자체를 의미하며 좁게는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밝혀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또는 그 관련 기관을 의미하기도 한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언론이라는 용어는 주로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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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있는 영규대사의 임진왜란 당시 행적을 기리는 비. 영규대사 비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인들의 침략과 약탈을 참지 못하고 승병장(僧兵將)이 되어 승려 수백 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영규대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騎虛)이고, 속성은 박씨이며, 본관은 밀양으로 전해지고 있다. 본래 휴정대사의 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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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살에 중장리로 들어왔다. 그해가 1942년. 해방되기 직전이었다. 원래 고향은 충청북도 옥산이었는데, 선비로 사셨던 아버지는 나라가 일제치하에 들어가자 1934년에 고향을 떠나 10승지지로 알려져 있던 공주로 오셨다. 일곱 살부터 10년간 살았던 동네는 이인면 잣골로, 두 형이 이인에 있던 금광산에서 일을 하며 집안의 생계를 이어갔다. 형들 덕분에 어려서는 직접 고생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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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 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 우금치에서 동학농민군과 조선·일본 연합군 사이에 있었던 전투.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친일내각을 성립하였으며, 6월 23일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친일내각과 함께 동학농민군 토벌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한 반발로 전봉준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다시 봉기하였다. 그러나 전봉준을 비롯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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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월성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봉수대. 월성산 봉수대는 논산 노성산에서 보내는 봉수를 받아 정안면 북계리 고등산 봉수대로 보내고 있다. 월성산 봉수대의 석축은 남북 직경 33m, 동서 직경 13m로, 남북이 긴 타원형의 형태이며, 둘레는 80m에 이른다. 또한 석축의 남쪽에는 봉수대로 출입하기 위한 문지가 남아 있고, 북쪽으로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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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윤원거의 묘. 공주시 계룡면소재지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16㎞를 가다 보면 유평리 계룡초등학교가 나온다. 계룡초등학교를 지나 논산 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50m를 가면 영규대사 묘 입구가 나오고, 그 길을 따라 300m 들어가면 유평리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파평윤씨 묘소 중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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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윤증의 묘. 명재 윤증은 윤선거(尹宣擧)의 아들로, 17세기 조선조의 격동기를 살다 간 성리학자, 예학자이다. 윤증은 주자학적 종본주의를 고수하고, 학문의 자유로운 토론을 억압하며, 시대 변천에 역행하여 당면 과제를 외면하는 당시의 노론 정객과 정면으로 대립하였다. 윤증의 사상은 소론 진보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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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 11월 19일 충청도 공주 이인역에서 동학농민군과 관군 및 일본군의 연합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 1894년 정월 전라도 고부봉기로부터 시작된 제1차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 5월 관군과의 전주화약을 계기로 일시적인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전라도 전역에 집강소(執綱所: 동학농민운동 때 농민군이 전라도의 각 군현에 설치하였던 농민 자치 기구)를 설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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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재환(李載煥)은 1899년(고종 36) 현재의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용진리에서 출생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1911년 독립운동을 펴기 위해 만주(滿洲)로 망명하였다. 그 후 길림성(吉林省)에서 주진수(朱鎭洙)·손일민(孫一民)·우재룡(禹在龍) 등이 조직한 광복회(光復會)에 참여하였다. 1917년 군자금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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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35년간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시기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역사.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강점기는 1910년대의 무단통치기와 1920년대의 문화정치기로 불리는 민족분열통치기, 그리고 1930년대 이후부터 1945년 일제 패망까지의 파쇼통치기 등 3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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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지역에 있던 고을을 일컫던 지명. 전막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한다. 하나는 주막거리가 있어서 마차들이 전부 쉬어 갔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구한말 청나라 사람들의 밭이 많았으며, 그 밭을 돌보는 작은 집들이 있었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천막을 오른다는 뜻으로 이곳에 빈촌이 많이 있었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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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성재산 정상부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성. 공주시내에서 논산으로 통하는 국도변에 있는 만큼 공주 남쪽에서 공주시내로 진입하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축조한 산성으로 보인다. 공주에서 논산으로 통하는 국도를 타고 9㎞쯤 가면 계룡면소재지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다시 계룡산 쪽으로 약 800m 정도 들어가면 중장리 성재산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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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있는 평야. 여러 곳 작은 들의 종가(宗家)와 같은 들이라 해서 종평이라고도 부르며 마루처럼 판판한 들이라 해서 마룻돌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평들은 공주시가지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계룡산 국립공원의 서쪽에 위치해 있는 곡저 충적 평야 중 하나이다. 공주~논산에 걸치는 남북의 구조곡에 형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충적 평야로 상평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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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기반을 이루는 지각의 구성 암석 및 광물의 상태. 공주 지역에 나타나는 암석은 지질시대 순으로 크게 선캄브리아기의 변성암류와 중생대 쥐라기의 화성암류, 그리고 백악기의 퇴적암류로 분류할 수 있다. 선캄브리아기 변성암류는 공주 지역의 암석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이 지역의 북서부에 넓게 분포하며, 호상편마암과 운모편암 등이 주를 이룬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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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에서 탄천면 화정리까지 연결되는 고속국도. 천안~논산간고속국도는 천안시 목천읍 응원리의 경부고속국도 천안분기점에서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의 호남고속국도 논산분기점까지 연결되는 도로로, 총 길이는 82.00㎞이다. 인천국제공항고속국도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민간자본에 의해 건설된 도로이다. 천안~논산간고속국도의 개통으로 서울~논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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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 2005년 현재 가톨릭교회는 전 세계에 약 11억 명의 신도를 가진 최대의 공변된 교회이다. 2002년 현재 한국에는 420여 만여 명의 천주교 신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천주교회의 교구 수는 서울·대구·광주의 3개 대교구를 포함하여 모두 14개이다. 본당은 765개이며 공소(公所)는 1578개이다. 성직자는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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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미촌 윤선거(尹宣擧)[1610~1669]는 계룡의 남북으로 명승지가 있는데 공암의 산수가 최고의 경치이고 그 다음이 갑사라 하였다. 공암은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를 말하는데 이곳은 계룡산 산줄기가 뻗은 사이로 용수천이 흐르고 낮은 야산 아래에 절벽이 이어져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지만 공주와 대전의 중간에 위치한 덕분에 급속히 개발이 진행된 상태이다. 그러나 갑사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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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조선 말기 충신 오대붕의 정려. 공주에서 논산 방면 국도 23호선을 따라 2.8㎞ 정도 가면 도로 오른편에 효포초등학교가 있다. 충신 오대붕 정려는 효포초등학교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500m 정도 들어간 곳에 동북향으로 있다. 충신 오대붕 정려는 임진왜란 때 왕을 호종한 공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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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민속극박물관에서 2000년 개최한 계룡산굿으로 지칭되는 설위설경(設位說經) 경연 대회. ‘앉은굿’이란 말 그대로 앉아서 하는 굿이다. 무당이 맡아 하는 ‘선굿’과 대비되는 말이다. 한강을 기준으로 이남은 대개 앉은굿을, 이북은 선굿을 행해왔다는 게 일반적 분류이다. 앉은굿은 앉아서 경문이나 불경을 외며 혼자 북과 양판이란 악기를 두드리며 귀신을 쫓는다. 전에는 전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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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충헌공 윤전(尹烇)의 사우. 공주시 계룡면소재지인 유평리의 계룡초등학교를 지나 논산 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50m쯤 가면 영규대사의 묘소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충헌공 윤전 사우는 그 길을 따라 300여m 정도 들어가면 유평리 중앙에 있다. 충헌공 윤전 사우는 인조 때 세자시강원 필선을 지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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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에 있는 산. 산봉우리 밑부분의 돌이 여덟 팔자 모양을 띠고 있어 팔재산 또는 팔자산이라 한다. 팔재산은 높이가 350m이며, 전체적으로 편마상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상부는 규장암, 석영반암, 화강반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룡면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와우산, 성화산에 이어지는 남쪽 능선에 해당된다. 동쪽으로는 계룡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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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일생을 거치면서 인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지내는 의례. 평생의례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겪게 되는 의식과 예절로서 ‘통과의례’, ‘일생의례’라고도 한다. 인간의 일생은 연속적인 과정이기도 하지만 몇 가지의 단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단계를 건널 때마다 의례가 따른다. 따라서 평생의례는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변화되었음을 공식적으로 나타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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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서 해방 전까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독립 운동. 일제는 1875년 강화도 침범을 계기로 조선에 대한 제국주의적 침략을 시작하여 1976년 강화도조약으로 향후 조선 지배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후 일제의 조선 지배 야욕은 더욱 노골화되어 1910년 마침내 대한제국의 주권을 침탈함과 더불어 조선에 대한 직접적인 식민지 지배를 단행하면서 우리 민족을 속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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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안동김씨의 열녀비. 향지리 열녀비는 지방 유림의 발의로 군수가 세운 열녀비이다. 안동김씨는 부안임씨인 임완수의 처로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죽는 슬픔을 맞았다. 그러나 흐트러짐 없이 지극 정성으로 3년간 남편의 묘소를 옆에서 보살폈다. 안동김씨는 남편의 3년상이 끝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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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계룡면 화헌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장가 화산(華山) 정규한의 영당. 공주에서 논산 방향 국도 23호선을 통해 계룡면소재지를 지나 4㎞ 정도 가면 화헌우체국이 나온다. 화산영당은 화헌우체국에서 뒤편으로 70~80m 올라간 산기슭에 있다. 「화산영당창건기」에 의하면 정규한이 죽은 후 문인과 후손들이 1830년 문집인 『화산집(華山集)』을 발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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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6년(고종 23) 12월 공주 효가동에서 있었던 고려의 야별초와 몽고군과의 전투. 몽고의 고려 침입은 1231년(고종 18)부터 1259년(고종 46)까지 총 6차(학자들에 따라서는 7차, 9차, 11차로 구분하기도 함)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 사이 호남 지역으로까지 침략군이 남하한 경우는 1236년, 1247년, 1256년, 1257년 등 도합 4회에 이른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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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부 오몽렬의 처 창녕성씨 정려. 공주에서 논산 방면 국도 23호선을 따라 2.8㎞ 정도 가면 오른쪽에 효포초등학교가 있는데, 이곳에서 논산 방면으로 300m 정도 더 간 뒤, 도로 오른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다시 300m 정도 들어가면 신기동에 이른다. 효부 성씨 정려비각은 이 마을의 오른쪽 구릉지에 북향으로 서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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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오수혁의 정려. 공주에서 논산으로 가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6㎞ 정도 가면 계룡면 기산리 소정이에 이르게 된다. 효자 오수혁 정려는 이 마을의 입구에 있다. 효자 오수혁 정려는 오수혁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782년(정조 6)에 명정을 받아 건립한 것이다. 이규헌(李圭憲)이 지은 「효자오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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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화은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효자 이기원의 정려. 공주에서 논산 방향으로 가는 국도 23호선으로 약 9.4㎞ 가면 계룡면 화은리가 나온다. 정려는 화은리 맞은편(도로 오른쪽)에 있다. 효자 이기원 정려는 전주이씨 이기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91년(고종 28)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효자 이기원 정려 안의 비석에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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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년에서 936년까지 존속했던 견훤(甄萱)이 세운 나라. 9세기 말 이후 신라 사회는 심한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리면서 경주 정부의 통제력은 상실되었다. 호남 지역에서 견훤은 전주를 도읍으로 정하고 백제의 부흥을 공언하며, 900년에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이어 철원의 궁예는 후고구려를 세웠다. 견훤과 궁예가 대결하는 후삼국시대, 공주는 양대 세력이 마주하는 접점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