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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0137
한자 公州市
영어음역 Gongju-City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원회

[정의]

충청남도의 동부 중앙에 있는 시.

[개설]

차령산맥 일부가 공주시의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어 무성산[613.6m]·국사봉[590.6m]·금계산[574.8m]·갈미봉[515.2m] 등의 산들이 사곡면·정안면·유구읍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공주시의 북부 지역은 비교적 높은 산지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남동 지역은 국립공원인 계룡산[845.1m] 지괴가 분포하고 있다. 중앙부에 금강 본류가 동에서 서로 흐르고 있으며, 지류인 유구천·정안천·대교천·용성천 등의 하천들이 흐르고 있어 하천 주변에는 약간의 평야를 이루고 있다.

공주시의 평균 해발 고도는 대체로 200m에서 300m 사이의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다. 기후적으로는 중위도상에 있어 온난 다습한 기후 지역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후는 온대 계절풍대에 속하여 한서의 차가 심한 편이다. 공주시의 연 평균 기온은 10.9℃, 연 강수량은 1,280㎜, 풍향의 경우에는 겨울철에 북서 계절풍, 여름철에는 남풍 또는 남서풍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주시의 총 면적은 940.49㎢로 충청남도 총 면적 8584.76㎢의 10.96%를 차지하고 있어 충청남도 내의 15개 시·군 중에서 가장 넓은 지역을 가지고 있다. 이는 남한 총 면적 99,407.9㎢의 약 0.95%에 해당한다. 공주시의 행정구역별 면적을 보면, 정안면유구읍이 가장 넓으며 중학동봉황동이 가장 좁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공주시의 토지 구성 면적을 보면, 논과 밭의 경지 면적은 180.0㎢로 나타난다. 공주시의 지질 분포를 보면, 선캄브리아기의 운모편암과 편마암, 중생대의 안산암, 화강암류, 공주군층, 신생대 4기의 충적층 등이 나타난다. 공주시는 차령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있으며, 산지 지형과 분지 지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주분지의 중앙부에는 금강이 동서 방향으로 관통하고 있다.

[인구]

2006년 12월 31일 현재 공주시의 총 인구는 129,862명(남자 65,473명, 여자 64,389명)으로 충청남도 전체 인구 1,974,433명의 6.5%를 점유하고 있는데, 매년 감소 추세에 있다. 인구 밀도는 138명/㎢, 세대 수는 49,744세대, 세대 당 인구 수는 2.6명 등으로 모든 수치가 감소 추세에 있다. 동별 세대 수를 보면, 신관동이 신흥 주거와 상업지로 두드러지면서 아파트가 밀집되어 세대 수가 10,079세대로 가장 많았다. 동별 인구 밀도를 보면, 중학동이 5,262.3명/㎢으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은 산성동 2,610.8명/㎢, 신관동 1,576.0명/㎢ 순서로 나타난다.

인구 이동은 전입보다 전출이 많은 전출 초과를 나타내고 있고, 시·군 간 인구 이동보다 시·도 간 인구 이동이 더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인구 동태를 보면, 출생·사망·혼인·이혼 모두 감소 추세에 있다. 직업별 종사자 수는 총 33,001명에 이르는데, 제조업 종사자 수가 5,651명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촌락]

1. 일반 농촌 취락

우리나라 일반 농촌의 입지는 대체로 산을 뒤로 등지고 앞으로 냇물과 들을 바라보는 이른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입지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일반 농촌의 입지는 한 방향이 터져 들로 이어지고 나머지 세 방향은 산지나 구릉으로 둘러싸여 이른바 골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많다.

우리나라의 일반 농촌이 이러한 골형의 입지를 선호하는 이유는 식량과 식수를 얻기 쉽고 농경지를 아낄 수 있는 이점 외에 기후의 영향을 지적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겨울은 길고 춥다. 그러므로 난방 재료로 땔감에만 의존했던 과거에 마을 배후의 산지는 연료 채취지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추운 북서 계절풍을 막아주는 방풍 효과도 발휘할 수 있었다.

마을 앞의 냇물과 들판은 벼농사 위주의 농업 경제시대에서 필수적인 생산 공간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또한 산지와 평지가 만나는 점이 지대에서는 용천수(湧泉水)가 솟아나는 곳이 많으므로 음료수를 얻기가 용이하다. 이러한 자연 환경 조건 때문에 골형, 즉 배산임수의 입지는 우리나라 일반 농촌 마을의 가장 이상적인 촌락 입지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 환경 조건을 고려하여 얻은 취락입지관(聚落立地觀)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 점차 인간의 심리적 속성으로 정착되어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이나 복거사상(卜居思想)과 결합하기에 이르렀을 것으로 생각된다. 풍수상 길지(吉地)로 평가받는 곳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배산임수의 지형과 일치하는 곳이 많다.

풍수설은 크게 양택론(陽宅論)과 음택론(陰宅論)으로 나누어지는데, 음택론에서는 일반적으로 뒤로 산을 업고[玄武], 좌우가 산에 둘려 있으며(靑龍, 白虎), 물을 얻을 수 있는 곳(得水)에 형국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양택론에서는 뒤에서 내려온 산맥이 끊어지지 않으면서 들을 건너가 봉우리로 솟아나고 지맥이 감싸고 돌면서 골판[洞府]을 만들어 궁내(宮內)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나는 곳이라야 마을의 기본 조건을 갖춘 곳으로 평가한다.

국(局)이라든가 골판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골형을 이룬 지형에 해당한다. 또한 이러한 골형은 조선시대 이래 뿌리 깊이 내려온 조상 숭배의 사상과 결부되어 동족촌(同族村)의 형성으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의 전통적 농촌은 대개 동족촌의 형성과 그 역사를 같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주시의 일반 농촌 취락도 이러한 골형 입지가 일반적이고, 또한 동족촌적 성격을 띠는 것이 대부분이다.

2. 동족촌

동족촌은 일반적으로 같은 조상으로부터 파생되어 동성동본의 혈연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한 마을 또는 한 지방에 집단으로 거주하는 상태나 혹은 하나 또는 두세 개의 동족 집단이 지연을 바탕으로 일정 지역에 공존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러 성씨가 함께 거주하는 일반 촌락과 달리 동족촌이 가지는 특징적 요소로는 씨족의 유대감을 바탕으로 한 혈연, 지리적 유대감을 바탕으로 한 동일 장소, 주민의 의식 구조 등을 들 수 있다. 곧, 동족촌은 지연(地緣)이라는 기초 위에 혈연(血緣)이라는 끈으로 맺어진 가장 기초적인 사회 단위로서의 삶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동족촌은 이러한 독립된 생활이 기초 공간으로서 자연촌(自然村)을 단위로 응집하고 있다. 공주 지역의 경우도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아, 동족촌의 단위는 행정촌이라기 보다는 그 하위의 자연촌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족촌의 발생과 발달의 주된 배경으로는 남계장자(男系長子) 우선의 상속제도, 주자가례(朱子家禮)의 보급과 예학(禮學)의 발달, 종법적(宗法的) 가족 제도의 수용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배경들은 대체로 17세기에 보급화되는 현상으로, 이들이 서로 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조선 사회를 변화시켰으며, 이를 바탕으로 동족촌은 대체로 17세기 이후에 형성되어 18~19세기를 거치면서 보편화되었다.

일반적으로 동족촌은 입향조가 정착하면서 바로 형성된다고 보기보다는 입향조가 정착한 이후 개간과 점유 등을 통해 확보한 토지를 기반으로 그 후손이 증가하고 이들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 지면서 비로소 그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공주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 규모가 큰 동족 마을이 발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원인을 혹자는 공주 지역이 충청도관찰사의 주둔지였다는 점에 두기도 한다. 다만 『조선의 취락』에서 공주 지역에서 50호 이상의 동족 마을로서 의당면 태산리·용현리·용암리·송학리 일대의 전주이씨 동족마을과 계룡면 화은리의 천안전씨 동족 마을이 등재되어 있을 뿐이다.

3. 읍·면 중심지 취락

현재 공주시는 통합시로서 6개 동, 1개 읍, 10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시적 마을인 6개 동을 제외하면, 유구읍과 10개 면에는 각각 읍·면사무소가 소재하고 있는 중심지 취락이 있다. 유구읍석남리·유구리·녹천리, 이인면이인리, 탄천면삼각리, 계룡면월암리, 반포면공암리, 장기면대교리, 의당면청룡리, 정안면광정리, 우성면동대리, 사곡면호계리, 신풍면산정리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읍·면 중심지는 일반 농촌 마을과는 달리 중심지 마을로서 기능하고 있고, 일반적으로 마을의 형태는 가촌(街村)의 형태를 이룬다. 읍·면 중심지에는 행정 기능을 담당하는 읍·면사무소와 우체국, 지서, 예비군 중대, 보건소, 금융 기능을 담당하는 농업협동조합, 교육 기능을 담당하는 초등학교 등이 공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도시]

1. 공주시의 도시 기능

현재 공주시의 주요 도시 기능 가운데, 교육과 교통 기능의 원형은 대체로 일제강점기에 부여된 것인데, 이는 조선시대의 도시 기능과도 관련되어 있다. 조선시대 도시 가운데, 수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는 지방 행정 중심지, 군사적 요충지, 내륙 수운의 하항 등의 기능을 갖고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 대부분의 지방 행정 중심지들은 배산임수나 분지 지형상의 풍수지리상의 길지에 입지해 있었는데, 조선시대의 공주시는 이러한 기능을 모두 갖고 출현한 대표적 사례이다. 공주시는 조선시대 내내 충청도 일대의 수위 도시로서 금강과 주변의 산지들이 방어기제가 되는 군사적 요충지였고, 금강수운의 주요 하항이었다.

한편 공주시는 일제강점기에 이르면서 기존 도시 기능 형성의 요인이 오히려 도시 쇠퇴의 원인이 되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즉 공주분지는 광대한 공간을 전제로 육상 교통의 결절 기능, 육상과 해상 교통의 적환 기능 등을 지향하는 근대 도시의 입지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던 점, 금강과 주변의 산지들이 지형적 개방성을 지향하는 근대 도시의 입지 조건에 부합하지 못했던 점, 금강의 하항 기능이 천정천화로 상실됐던 점 등이 공주시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쇠퇴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공주시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위와 같은 근대 도시로서의 입지적 불리함 등으로 인해 철도 교통을 중심으로 한 교통로의 재편 과정에서 제외됨으로써 조선시대 이래로 갖고 있던 지방 행정 중심지로서의 그 지위가 현저히 약화되게 되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결국, 1932년에는 일본의 식민 통치 정책에 의거, 공주시에 있던 충청남도 도청이 철도 교통의 요지로 급격히 부상한 대전 지역으로 이전됨으로써 공주시는 근대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상실했다.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도청을 대전 지역으로 이전시킴으로써 공주시는 충청 지방의 수위 도시로서의 기능은 상실했지만, 이후 충청남도 도청 이전의 반대급부로 각종 고등 교육 기관들을 설치해 주고, 금강교를 부설해 줌으로써 공주시는 교육 기능을 주요 도시 기능으로 갖게 되고, 수도권과 호남권을 연결하는 도로 교통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다시 갖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대도시들이 급성장하면서 이들 지역의 고등 교육 기관들이 질적·양적으로 급성장한데 비해 공주시의 고등 교육 기관들은 교원 양성이라는 특수 기능만을 갖고 있어 질적·양적 성장에 본질적으로 제한적이었다. 1990년대 이후 공주사범대학이 종합 대학교인 공주대학교로 승격하면서 고등 교육 기관으로서의 위상을 갖추고 있으나, 중소 도시에 입지해 있는 점, 후발 종합 대학교라는 점 등의 여러 가지 제한점을 여전히 갖고 있다.

또한 공주시는 조선시대 이래로 호남가도의 주요한 교통 중심지였다. 그러나 공주시는 호남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호남가도의 주요 교통 중심지 기능을 상실했고, 충청남도 도청이 대전 지역으로 이전해 가면서 교통 중심지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이후 1936년에 금강교의 부설로 호남가도의 교통 중심지 기능이 약간 살아나다가 1980년대에 대전을 지나는 호남고속국도가 부설되면서 공주시는 호남가도의 교통중심지 기능을 다시 상실했다.

최근에는 천안에서 공주를 거쳐 논산까지의 국도 23호선이 확·포장 되면서, 다시 호남가도의 교통 중심지 기능을 회복하고 있다. 이러한 교통 중심지 기능은 천안~논산 간 고속국도가 완공되면서 더욱 증대되고 있다. 이외에도 충청남도의 동남부에 연접해 있는 대전과 충청남도 서해안 지역을 연결하는 각종 도로들이 공주시를 지나고 있어 공주시의 충청남도 내에서의 교통 중심성도 더욱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

2. 공주시 도시 내부의 공간적 특성

공주시의 도시 내부는 1970년대 이래 금강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이원화되어 있는데, 이 두 시가지는 형성 기원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에 도시 내부 구조의 공간적 특성도 서로 다르다.

구시가지의 경우, 대체로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의 도시 내부 구조가 누적되어 있는데다가, 금강과 주변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는 입지상의 폐쇄적 특성으로 인해 상업과 주거가 집결된 중심 지역, 그 주변의 상업·주거·공업·관공서 등이 혼합된 지역, 그 밖의 농업 지역이 동심원상으로 연속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상업·주거 혼합 지역은 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중심 지역을 통과하는 간선 도로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1970년대 이래 구시가지의 내부에서 상업·주거 혼합 지역과 그 주변의 상업·주거·공업·관공서 혼합 지역에서 주거 지역이 점차 축소되어 상업 지역으로 용도가 변환되면서 상업 기능을 주축으로 한 중심 지역의 공간적 범위가 점차 확장되고 있으며, 이들 두 혼합 지역에서 이탈한 주거 기능체들은 시가지 내 대중 버스 교통망의 확장과 자가용 승용차의 보급으로 시가지 외연부나 농업 지역으로 단독 주택·연립 주택·소규모 아파트 단지 등의 형태로 이전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 구시가지의 외연부에서는 대단위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금강 북쪽의 신시가지 외연부에 대규모 저층 아파트 단지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0년대 당시 신시가지의 외연부에 해당했던 신관초등학교 부근의 대단위 저층 아파트 단지는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상업적 중심 지역의 확장으로 주거 지역의 기능을 상실하였으며, 동시에 역으로 상업적 중심 지역의 확장에 장애가 되고 있다.

더욱이 1990년대 후반부에 들어서는 금강 북쪽 신시가지 외연부의 공주대학교 후면에 대단위 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지속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 신시가지는 금강과 반대편 외연부의 아파트 단지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공주시 도시 내부에서의 상업적 중심 지역과 거주 지역의 분리는 1970년대 이전에는 구시가지 내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다가 1980년대 이후에는 신시가지로 금강을 건너 이루어지는데 이 가운데 상업적 중심 지역의 분리는 상업적 기능의 확대, 구시가지의 공간적 협소성과 비효율성 및 교통난에 기인하지만 거주 지역의 분리는 이들 요인 이외에 주민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분화에도 기인하고 있다.

3. 공주시 도시 내부의 형태

공주시 도시 내부의 공간적 형태를 전체적으로 보면, 주변 지역이 낮은 산지들로 둘러싸여 있고, 도시 내부의 가운데를 금강이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금강에 의해서 도시 내부가 일차적으로 강남의 구시가지와 강북의 신시가지로 구분되어 있으며, 강남 구시가지는 다시 제민천을 사이에 두고 양분되고 있다.

공주시의 구시가지는 공산성·송산·정지산·봉황산·일락산·우금고개·봉화대·앵산 등으로 둘러싸인 공주분지 상에 발달해 있어 공간적으로 폐쇄성을 띠고 있다. 신시가지도 주변의 낮은 구릉성 산지들과 정안천으로 둘러싸인 범람원상에 발달해 있어 공간적 폐쇄성에 있어서는 구시가지와 마찬가지이다.

공주시 도로 가로망의 형태는 간선 도로망의 경우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모두 대체로 직교형의 패턴으로 되어 있고, 특히 신시가지가 구시가지 보다 정연한 직교형 패턴을 나타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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