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498
한자 靈圭大師碑
영어의미역 Stele of Yeonggyudaesa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 288-1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해준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5월 17일연표보기 - 영규대사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6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영규대사비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 삭제
문화재 지정 일시 2024년 5월 17일 - 영규대사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에서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건립시기/일시 1813년(순조 13)연표보기
관련인물 영규대사
높이 93㎝
너비 43㎝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 288-14 지도보기
소유자 갑사
관리자 갑사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 있는 영규대사의 임진왜란 당시 행적을 기리는 비.

[개설]

영규대사비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인들의 침략과 약탈을 참지 못하고 승병장(僧兵將)이 되어 승려 수백 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영규대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영규대사의 호는 기허(騎虛)이고, 속성은 박씨이며, 본관은 밀양으로 전해지고 있다.

본래 휴정대사의 수제자로, 계룡산갑사 내에 있는 청련암에서 수도하면서 무예를 익혔고,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1,000여 명의 승병을 모아 의병장 조헌과 더불어 청주성 수복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금산성에서 왜군과 항전하였으나 부상을 당하고 지금의 월암리에 이르러 숨을 거두었다. 후에 갑사의 승려들이 공주시 계룡면 유평리 지금의 영규대사묘 자리에 장례하였다. 이후 200여 년 뒤에 영규대사의 공로를 추모하기 위해 정려비를 마련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건립경위]

영규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보여 준 충절로 인해 1592년(선조 25)에 동지중추부사에 증직(贈職)되었다. 그러나 승려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130여 년 동안 명정을 받지 못하다가, 1720년(숙종 46)에 이르러서야 명정을 받게 되었다. 이후 영규대사에 대한 정려비를 건립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영규대사비의 후면에는 건립 연대를 ‘숭정기원후계유(崇禎紀元後癸酉)’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해석하면 비는 1633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그러나 비를 건립한 인물들의 생존 연대 및 앞서 언급한 명정 수여 연도와 비교해 보면, 이 기록은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비를 건립한 주요 인물들의 활동 시기를 검토한 결과, 영규대사비의 실제 건립 연대는 1753년(영조 29) 또는 1813년(순조 13) 계유년 중 하나로 추정된다. 특히 대시주로 참여한 이덕윤(李德潤)은 공주향교우ㅏ 『청금록』 1741년(영조 17)에 등재된 인물로, 그의 생존 시기와 관련된 기록에 비추어 볼 때 1813년이 건립 연대로 가장 타당하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영규대사의 묘비가 1810년(순조 10)에 건립될 당시 밀양박씨 후손들이 영규대사에 대한 봉사(奉祀) 의식을 주관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충절비 역시 이와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을 가능성이 크다.

[위치]

공주시에서 논산 방면으로 가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12㎞ 정도 가면 계룡면 면소재지가 나온다. 영규대사 정려는 도로 우측에 있는 면사무소 바로 앞에 자리해 있는데, 정려비는 이 정려 밖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18~19세기 읍지 기록에는 영규대사비영규대사묘가 모두 계룡면 유평리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영규대사비가 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확한 연대는 미상이다.

[형태]

영규대사비는 높이 93㎝, 너비 43㎝, 두께 12㎝이다.

[금석문]

비석의 전면에는, ‘의병승장영규지문(義兵僧將靈圭之門)’이라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숭정기원후계유오월(崇禎紀元後癸酉五月) 대시주 이덕윤, 유중(劉重), 주사 승 각총(覺聰), 방손(傍孫) 박경태(朴景泰)가 건립한 것임을 기록하고 있다.

[현황]

영규대사비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56호로 지정되었다. 1995년에는 정려각에 대한 중수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 결과 영규대사비는 일시적으로 정려각의 외부로 옮겨 세워졌다. 하지만 2015년 비석의 파손 위험이 제기되면서 다시 정려각 내부로 이전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번호가 삭제되었고,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에서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영규대사비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인 갑사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는데 면소재지에 자리하고 있어 비교적 그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공주 지역 최초의 승병장이었던 영규대사를 통해 이곳의 호국정신을 추측해 볼 수 있으며, 영규대사비를 세울 당시 인물들을 통해서는 당시 마을의 지배 세력을 미루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공주향교 『청금록』에 기재된 인물 및 밀양박씨 인물들이 비석의 마련에 참여했다는 점을 통해 영규대사의 추숭을 둘러싸고 지역 내의 유력자와 부계 친족의 후손들이 참여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