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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669
한자 改新敎
영어의미역 Protestantism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효범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설]

공주 지역은 역사적으로 백제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그 후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의 중심지로서 문화, 행정적으로 중요한 위상을 지녀왔다. 따라서 종교적으로도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왔을 뿐만 아니라 인근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종교적 인구 밀도를 가지고 있다

[변천]

한국의 개신교 전래는 이미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1866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 이후 여러 번 선교사들이 선교를 시도했지만 직접적인 선교는 불가능했고, 만주 지역에 있는 한국인을 중심으로 전도가 이루어졌다. 1883년 이수정은 일본에서 야스가와 목사의 세례 집례로 최초의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

이수정의 요청으로 1884년 장로교에서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1885년 감리교에서는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오게 된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광혜원을 설립하였고, 아펜젤러 선교사는 배재학당을 설립하였다. 그밖에 침례교는 캐나다의 맬콤 팬윅에 의해, 성공회는 1890년 영국 성공회의 존 코프 주교와 사제들에 의해서 전래되었다.

[현황]

1. 감리교

감리교(監理敎, Mehtodist Church)는 1729년 영국의 존 웨슬리에 의하여 시작된 개신교의 한 종파로 교리보다는 실제적인 생활과 성경의 진리를 실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1884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 맥클레이(R.S. Maclay)가 고종으로부터 교육과 의료 사업에 국한한 선교 사업의 허락을 얻게 되고 이후 감리교의 전도가 본격화 되었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선교를 시작한 것은 북감리회 선교사들이었다. 1898년 스웨어러(W. C. Swearer) 선교사가 서울 이남 전담 선교사로 임명받은 후, 공주 선교의 중요성을 알고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1903년 7월 1일 원산에서 의료 선교를 하던 미국 감리회의 맥길(William B. McGill) 선교사가 공주에 도착하여 이용주 전도사와 함께 공주시 중학동에 초가 2동을 구입해 선교를 시작했고 이후 공주제일교회의 모태가 되었다.

1905년 맥길이 귀국한 후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인 샤프(Robert Arther Sharp) 목사가 부임하면서 공주 지방에서 최초로 서양식 건물을 짓고 선교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샤프 목사 부인인 사애리시(Alice Sharp)는 1905년 명선여학교를 설립하여 여학생들을 가르쳤으며, 1906년 북감리회 선교사인 윌리암스(Rev.Frank Earl Cranton Williams)가 중흥학교(현 영명중·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1912년 한국에는 서울지방·평양지방·평양서지방·영변지방·원주지방·해주지방·수원지방·공주서지방·공주동지방 등 9개 지방·66개 구역에 입교인과 학습인을 포함한 감리교인은 총 2만 5818명이었다. 이중 공주동지방은 아산, 온양, 신창, 평택, 음성, 직산, 진천, 목천, 연기 등이 포함되었고, 공주서지방은 청양, 홍주, 회덕, 강경, 공주, 논산, 서산, 당진 등에 걸쳐 있었다. 1917년 공주동지방이 천안지방으로, 공주서지방은 공주지방으로 명명되었다.

1920년대 중반까지 공주지방은 꾸준히 교세가 성장하였다. 당시 공주지방은 감리사로 아멘트 선교사가 있었고 강경, 공주, 경천, 논산, 부여, 대전이 공주지방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이후 1932년 충청남도 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공주는 큰 성장을 할 수 없었으며 1953년 3월 대전지방과 공주지방이 분할되었다.

2008년 현재 감리교의 조직은 총회, 연회, 지방회, 교회(구역회) 등으로 되어 있으며, 충청 지역은 남부연회 소속으로 21개 지방, 586개 교회에 103, 631명의 교인이 활동하고 있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은 공주지방과 공주서지방으로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공주지방 소속의 교회 32개와 공주서지방 소속의 교회 24개 등 총 56개의 감리교회가 있다.

2. 침례교

침례교(浸禮敎)는 1612년 영국의 청교도 J. 스미스와 T. 헬비스에 의해 런던에서 세워진 교파로서 성서를 신앙과 생활의 유일하고 절대적인 권위와 규범으로 삼고 있다. 또한 자각적인 신앙 고백에 기초한 침례를 행하며 유아 세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1895년 미국 보스톤의 클라렌튼 침례교회가 엘라 씽 선교회를 조직하고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1896년 미국 엘라 씽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인 스테드맨, 엑클스, 엘머 선교사에 의해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인 공주침례교회(현 꿈의교회)가 설립되었다.

1901년 스테드맨 선교사가 본부로 송환되자 원산에 있던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선교사가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선교 임무를 인계받았다. 펜윅은 1903년 2월 공주시 반죽동에 교사의 신축과 함께 성경학원을 설립하고 신명균을 원장으로 임명하여 많은 목회자를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같은 해 3월에는 윤자학 집사가 공주시 탄천면 신리에 신리교회(현 신영침례교회)를 설립하였다.

이후 1940년대 말까지 공주 지방회의 모체인 충청남도 구역회에는 공주침례교회, 신영침례교회, 태성침례교회, 대교침례교회, 송담침례교회 등 5개의 교회가 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1958년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구역회에 속한 교회는 총 10개로 늘어났다. 또한 1968년 충청남도 구역회에서 공주 구역회가 분리될 당시에는 소속 교회가 21개에 이를 정도로 공주 지역 침례교는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2008년 현재 충청남도 공주시에는 39개의 침례교회가 있다.

3. 성결교

성결교(The Honyness Church)는 19세기말 미국에서 감리교의 창시자이자 영국 성공회 사제였던 웨슬리의 완전주의적 입장을 강조하며 형성된 교파이다. 중생(重生)·성결(聖潔)·신유(神癒)·재림(再臨)을 4중 복음으로 내세우고 불세례 체험과 성결의 은혜를 강조한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성결교회는 1940년 오영필(吳永必) 목사와 유을희(柳乙喜) 전도사가 신자 17명과 함께 한 가정집에서 예배를 보면서 태동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에 공주시 중학동에 교회당을 세우게 되면서 본격적인 전도가 시작되었으나, 1943년 오영필 목사가 일제의 탄압으로 경찰에 구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1944년에는 교회까지 강제로 폐쇄되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폐쇄되었던 이전 예배당에서 재건 예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1946년에는 오영필 목사의 재부임과 더불어 공주시 반죽동의 일제 신사당 건물을 매입하여 교회를 이전하였다. 1953년 차보근(車甫根) 목사의 부임 이후 교세가 본격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하여 많은 성결교 교회당이 공주 지역에 세워졌다. 2007년 현재 충청남도 공주시에는 29개의 성결교회가 있다.

4. 장로교

장로교는 16세기 스위스 제네바에서 프로테스탄트 개혁자 J. 칼뱅의 신학과 신앙고백을 모체로 하여 발전한 개혁 교회의 한 지파이다. 신앙 표준은 웨스트민스터의회의 교리문답과 사도신경에 두고 있지만 최고의 표준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에 두고 있으며 교리의 핵심은 예정론과 신의 영광에 두고 있다.

예배는 간결하며 설교와 사도신경에 대한 충실을 강조한다. 성찬예식(聖餐禮式)은 전통적으로 지켜지도록 되어 있으며 설교와 성찬을 교회의 두 기둥으로 삼고 있다.

장로교는 국내 개신교 중에서 가장 많은 성도와 가장 많은 교단을 가지고 있는 교파이다.

한국의 장로교는 1884년 의사 알렌(Horace N. Allen)이 선교하면서 처음 시작되었으며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목사에 의해 교세가 많이 확장되었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장로교는 1947년 4월 27일 공주시 반죽동 정영환의 집에서 최영실(崔永實) 장로를 비롯한 30여 명이 첫 예배를 보게 되면서 전파되기 시작하였으며, 2008년 현재 공주시에는 총 53개의 장로교회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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