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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추계리에 있는 고려 중기의 문신 충숙공 문극겸(文克謙)[1122~1189]을 기리는 유적. 공주 유구역 인근에 있는 고간원은 고려 후기의 충신 남평문씨 문극겸의 충간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사당이다. 그러나 건립 시기나 건립 배경, 건립 주체 등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여러 가지 기록을 통해 대강의 상황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1792년(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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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윤각의 처 광주김씨 정려. 광주김씨열녀정려는 광주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1725년(영조 1) 명정을 받아 세워졌다. 열녀 광주김씨는 진사 김명뢰(金命賚)의 딸로 조선 후기 무신 윤각(尹慤)[1665~1724]과 혼인했다. 남편이 통제사를 거쳐 총융사가 되었으나 신임사화에 연루되어 평안도 삼화에 유배되자 유배지에 따라가 귀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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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이선(而善)이다. 공주의 예안김씨 입향조(入鄕祖) 김숙량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김해이다. 예안김씨가 공주에 정착하게 되는 배경은 조선 초기 당진감무(唐津監務)를 지낸 김숙량(金叔良)이 공주이씨를 후처로 맞이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예안김씨는 입향 초기부터 공주 지역에서 사족으로서의 위치를 굳혀 간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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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문신. 순천김씨는 원래 순천에 세거하였던 성씨였으나 김종서의 조부 김태영(金台泳) 때에 이르러 공주에 세거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世宗實錄)』과 『단종실록(端宗實錄)』의 여러 기사를 통해 공주에 김종서의 집과 농장이 있었으며 선대의 묘도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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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충신.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김승길(金承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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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노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김시산의 정려. 공주시청에서 백제 큰 다리를 건너 국도 32호선을 따라 유구 방면으로 가다 보면 유구읍소재지 직전에 만년교가 있다. 만년교를 지나 100m 정도 유구읍 쪽으로 가면 왼쪽에 노동리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약 4.3㎞ 정도 가면 노동리에 이른다. 김시산 정려 충신문은 마을회관 뒤쪽으로 1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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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광성군(光城君) 김정(金鼎)의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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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성주(星州). 성산부원군 이직(李稷)[1362~1431]의 후손으로 선산김씨 가문의 김원발과 결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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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국경(國卿), 호는 절재(節齋)이다. 할아버지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김태영(金台泳)이고, 아버지는 공주에서 도총제(都摠制)를 지낸 김추(金錘)이며, 어머니는 성주배씨로 대사헌 배규(裵規)의 딸이다. 3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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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대학리 굴덕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인 김충수의 처 금성나씨의 정려. 공주에서 부여로 가는 국도 651호선 ‘백제큰길’을 따라 약 23㎞ 가다 보면 96번 도로와의 연결 지점이 있다. 이때 96번 도로로 들어가면 대학리 입구가 있는데 대학리 굴덕 안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구릉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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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사회(士晦), 호는 설송(雪松)이다. 아버지는 행영흥도호부사(行永興都護府使)를 지낸 김반천(金半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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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김해(金澥)와 아들 김경원(金慶遠)의 정려. 공주시청에서 예산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2.5㎞ 정도 가면 연미산이 있으며, 이 산을 지나면 도로 오른쪽으로 우성면 신웅리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다시 2.5㎞ 정도 더 가면 현재는 폐교된 청산초등학교가 나오는데, 학교 직전 다리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마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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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동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노숙의 정려. 공주에서 천안으로 가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2㎞ 정도 가다가 목천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해서 길을 따라 3㎞ 정도 더 가면 우성면 동곡리가 나온다. 동곡교를 건너면 오른쪽에 동곡리 조왕골이 있는데, 노숙정려는 이 마을 가운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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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성노(聖老)이고, 호는 학촌(鶴村)이다. 아버지는 박이순(朴頤淳)[1751~1816]이고, 어머니는 전주최씨로 승의랑(承議郞) 최홍야(崔弘倻)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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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를 받아 세운 열녀문. 공주에서 국도 40호선 ‘백제큰길’을 따라 부여 방면으로 가다가 공주시와 이인면 경계에서 4㎞ 정도 가면 도로 오른쪽에 오룡리 숭선군 묘로 가는 문화재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1.5㎞ 정도 들어가면 오룡리 마을회관 뒤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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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평산(平山).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19세손으로 영의정에 증직된 신화국(申華國)과 첨정 벼슬을 지낸 윤양정(尹讓貞)의 딸 파평윤씨 사이에서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또한 충주전투로 유명한 충장공(忠莊公) 신립(申砬)[1546~1592]이 셋째 형이며, 둘째 형 신급은 피난 중 왜군을 만난 어머니가 벼랑에서 투신하자 그 뒤를 따라 뛰어내려 모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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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충신 신할의 정려. 공주시청에서 백제큰다리를 건너 예산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약 19㎞를 가다 보면 신풍면과 사곡면의 경계에 들어서게 된다. 경계를 지나 다시 1.5㎞ 더 가면 냉정리와 영정리의 경계가 나오고,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서 예산 쪽으로 100m정도 더 가면 도로 왼쪽으로 신할의 사적비가 보인다. 신할 충신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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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남원(南原). 남원양씨의 공주 입향조(入鄕祖)인 양계무(梁季武)의 8세손으로 양정규(梁廷揆)와 홍관휴(洪觀休)의 딸 남양홍씨 사이에서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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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안동권씨의 정려. 안동권씨는 동흥군 권상의 5세손인 권세헌의 딸로, 덕이 높고 행동이 정숙하며 말수가 적은 인물이었다. 어린 나이에 강화최씨 집안의 최백복[1733~1753]에게 시집을 와서 시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기며 효부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남편 최백복이 1753년(영조 29)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안동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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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회원의 처 부령김씨의 정려. 열녀 김씨 정려는 1812년(순조 12) 10월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열녀 김씨는 김홍필(金弘弼)의 딸로 본관은 부령이다. 신풍면 만년동(萬年洞)에서 살았다. 삼수도호부사(三水都護府使)를 지낸 유회원(柳晦源)[1751~1798]에게 시집갔으나 남편이 후사 없이 죽자 양자를 들여 장례를 치른 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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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충신. 본관은 보성(寶城). 자는 경도(景圖)이다. 보성오씨 시조 오현필(吳賢弼)의 13세손이다. 아버지는 오응두(吳應斗)이고, 어머니 전의이씨 이경우(李景佑)의 딸이다. 부인은 연안이씨 이희정(李希程)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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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오대붕의 정려. 공주에서 논산 방면 국도 23호선을 따라 2.8㎞ 정도 가면 도로 오른편에 효포초등학교가 있다. 오대붕 정려는 효포초등학교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마을 안쪽으로 500m 정도 들어간 곳에 동북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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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 살던 효부. 본관은 창녕(昌寧). 아버지는 참봉 성언홍(成彦弘), 남편은 오몽렬(吳夢烈)이다. 슬하에 아들 오복립(吳復立)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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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오백령의 사우. 이괄의 난 때 인조를 호종했던 오백령의 사우로, 영정을 봉안하던 것이 사우로 발전한 경우이다. 건립 시기가 명확하지 않으나 조선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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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아버지는 오한영(吳漢英)이고, 어머니는 공산이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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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의 열녀. 본관은 진주(晋州). 아버지는 정자(正字)를 지낸 유명전(柳命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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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의 열녀. 본관은 해주(海州). 조부는 지돈녕(知敦寧) 정효준(鄭孝俊)이며, 아버지는 판서 정익(鄭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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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있는 오정창의 처 해주정씨 정려. 공주에서 청양 방면으로 국도 32호선을 따라 7㎞ 정도 가면 우성면소재지가 나오는데, 그곳에 조금 못 미쳐 도로 오른쪽에 단지리가 나온다. 오정창 처 해주정씨 정려는 도로변 왼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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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열녀. 본관은 남원. 아버지는 찰방 윤형준(衡俊)이다. 손자 오시수(吳始壽)[1632~1681]가 공주 지역에 전장을 마련하고,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 월굴에 오시수의 종숙(從叔) 오정창(吳挺昌)의 묘를 쓰면서 후손들이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세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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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유학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르는 말. 유교는 불교 및 기독교와 함께 한국 3대 종교의 하나로 한국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는 전통 종교라는 차원을 넘어 정치·경제·문화 등 한국 사회와 역사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한국 유교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전환점은 조선의 성립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유교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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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진주(晉州). 충경공(忠景公) 유형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유취장(柳就章)이고, 어머니는 전주이씨, 부인은 경주이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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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진주유씨 공주 입향조.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통제사 유형(柳珩)이다.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진주유씨의 입향조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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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열녀. 본관은 부령. 김홍필(金弘弼)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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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아버지는 윤수(尹脩)이며,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숙부 윤건(尹建)에게 양자로 입계하였다. 부인은 동래정씨(東萊鄭氏)로 공주목사(公州牧使)를 역임한 정유순(鄭惟醇)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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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효자 윤빈의 정려. 윤빈은 칠원윤씨 윤수(尹脩)와 단양우씨 사이에서 태어나 숙부 윤건(尹建)에게 양자로 입적되었다. 어려서부터 효심과 우애가 깊어 주위의 칭찬을 자주 받았다. 이후 봉림대군의 사부를 지냈으며, 1650년(효종 1) 봉림대군이 즉위하자 서전(書傳), 강목(綱目), 주자의 주차(奏箚) 중 치국의 도와 관련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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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윤행대(尹行大)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로 이형욱(李亨郁)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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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에서 1598년까지 2차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은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을 요구하면서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상륙을 시발로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에 조선은 관군과 각처에서 모집된 의병 등이 총력전을 펼쳤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명(明)이 개입하여 조선과 연합군을 형성, 일본에 대항하는 한편, 일본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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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대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세 쌍의 효열 정려. 전의이씨삼위효열정려는 1729년(영조 5)에 명정을 받은 이연회(李延會)[1648~1690]와 1736년(영조 12)에 명정을 받은 이연회의 처 열녀 청송심씨, 그리고 1724년(영조 1)에 명정을 받은 이진성(李晋聖)[1668~1708]의 효행과 절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전의이씨삼위효열정려는 2012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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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충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진주. 호는 애일당(愛日堂). 판중추부사 문정공 정이오(鄭以吾)[1347~1430]의 아들이다. 그러나 정분에게 자손이 없어 종가에 봉사손(奉祀孫)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홍주목사 정효안(鄭孝安)이 자신의 장자인 정지산(鄭之産)을 그 종숙(從叔)인 정분의 계자(系子)로 입양시켜 대를 잇게 했다. 진주정씨가 이곳 호계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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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충신 및 효자 정분·정지산의 정려. 공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국도 32호선을 타고 14㎞ 정도 가다 보면 사곡면소재지가 나온다. 호계리는 면소재지에서 지방도 629번을 따라 북쪽으로 0.5㎞ 떨어진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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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동래. 자는 춘원(春元), 호는 송정(松亭)이다. 중종 때 재상을 지낸 정광필(鄭光弼)[1462~1538]의 6세손이다. 정세화(鄭世和)와 남양홍씨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인 파평윤씨는 윤오거(尹五擧)의 차녀이며 용서(龍西) 윤원거(尹元擧)의 질녀이다. 또한 윤증(尹拯)[1629~1714]과는 재종매 사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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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언평(彦平), 호는 포신(逋臣) 또는 포옹(逋翁)이다. 생부는 홍주목사 정효안(鄭孝安)이며, 어머니는 진주유씨이다. 우의정을 지낸 종숙(從叔) 정분이 후사 없이 죽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정효안이 자신의 장남인 정지산을 정분의 계자로 입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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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열녀. 최백복 처 권씨의 본관은 안동이다. 아버지는 동흥군(東興君) 권상(權常)의 5대손 권세헌(權世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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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최익항(崔益恒)은 병환 중인 부모가 한겨울에 배(감)가 먹고 싶다고 하자 이를 구하기 위하여 산속을 헤매다가 비몽사몽간에 산신령을 만났다. 이때 산신령은 최익항에게 서쪽으로 가라고 말하였다. 최익항은 길을 가다 만난 까치 둥우리에서 과일을 구하여 부모에게 드려 병환을 낫게 하였다. 또 약초를 구하러 다니던 중 산길을 헤매다가 마곡사 근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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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운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최익항의 정려. 최익항(崔益恒)의 자는 원구(元久)이다. 1684년(숙종 10) 최준(崔浚)[1656~1722]과 진주정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성품이 매우 착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주위에서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어느 해, 부친이 병환 중에 배[혹은 감]가 먹고 싶다고 하였으나 한겨울이라서 산속을 헤매도 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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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월송동 사송정에 있는 여말선초 학자 이명성과 이명덕의 학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 충절사에 배향된 이명성(李明誠)의 본관은 공주(公州)공주, 자는 경장(敬章), 호는 송은(松隱)이다. 전공판서 충정공 이엽(李曄)의 아들로 목은 이색의 문인이며 정몽주와 교유하였다. 적성감무(積城監務), 감찰어사(監察御史)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그러나 고려가 망하고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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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세운 정분(鄭苯)과 정지산(鄭之産)을 배향하는 사우. 공주시에서 예산 방향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가다 사곡면소재지를 지나 마곡사 방면으로 가다 보면 호계리에 이른다. 마을 입구에 충효사의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도로 왼쪽으로 약 300m 정도 가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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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충신과 효자와 열녀를 아울러 이르는 말. 유교 도덕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 강령인 삼강을 의미하는 충효열은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였던 조선시대의 전 기간·전 지역에 걸쳐 강조되었던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충신·효자·열녀를 최고의 도덕을 갖춘 인간으로 여기는 이와 같은 덕목은 당시 모든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더 나아가서는 삶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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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정려 정면에는 장수황씨 가문의 효부·열부 비인 효부벽진이씨지비(孝婦碧珍李氏之碑), 운촌장수황공의명지배효부열녀경주이씨기행비(雲村長水黃公義明之配孝婦烈女慶州李氏紀行碑) 두 기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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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부 오몽렬의 처 창녕성씨 정려. 공주에서 논산 방면 국도 23호선을 따라 2.8㎞ 정도 가면 오른쪽에 효포초등학교가 있는데, 이곳에서 논산 방면으로 300m 정도 더 간 뒤, 도로 오른쪽으로 난 소로를 따라 다시 300m 정도 들어가면 신기동에 이른다. 효부성씨비은 이 마을의 오른쪽 구릉지에 북향으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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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대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김영성의 정려. 공주터미널에서 국도 32호선을 따라 예산 방면으로 20㎞ 정도 가면 신풍면소재지에 약간 못 미쳐 청양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에서 청양 방면으로 3㎞ 정도 더 가면 도로 왼쪽에 대룡초등학교가 있다. 효자 김영성 정려는 대룡초등학교에서 대룡2리로 들어가는 마을 길을 따라 300m 정도 더 들어간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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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박주은의 정려. 효자 박주은 정려는 ‘소라실 박씨 효자 정문’이라고도 한다. 소라실 마을에 세워진 정문이라 붙여진 이름이다.박주은의 본관은 함양이고, 자는 성노(聖老), 호는 학촌(鶴村)이다. 박이순과 승의랑 최홍야(崔弘倻)의 딸 전주최씨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함양박씨 일가는 16세기 중엽 전라도 김제에서 소라실[송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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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백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양진언의 정려. 양진언은 남원양씨 공주 입향조 양계무(梁季武)의 9세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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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오수혁의 정려. 공주에서 논산으로 가는 국도 23호선을 따라 6㎞ 정도 가면 계룡면 소정마을에 이르게 된다. 효자 오수혁 정려는 이 마을의 입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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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청흥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윤직의 정려각. 윤직(尹稷)의 본관은 파평이고, 자는 경도(敬度), 호는 호은(瑚隱)이다. 윤행대(尹行大)와 전주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윤직 효행에 대해서는 1905년(고종 42) 이민교가 지은 「정려기」에 전한다. 어머니가 화상을 입자 화독에 좋은 약초를 구해 오고, 아버지가 병이 들어 돌아가실 지경이 되자 꿈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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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영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이구상의 효자 정려. 이구상(李玖相)[1784~1840]의 본관은 여주이고, 자는 경도(景道), 호는 구화(九華)이다. 여주이씨 공주 입향조인 이지화의 7세손이다. 1784년(정조 8) 이세두(李世斗)와 연안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이구상은 성품이 온화하고 항상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랐다고 한다. 특히 부모가 병이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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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화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이기원의 정려. 이기원(李基遠)[1809~1890]의 본관은 전주로, 덕천군(德泉郡)의 13세손이다. 계룡면 신기동 새터에서 이면원(李勉遠)과 보성오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효행이 지극하여 극진하게 부모를 모셨다고 한다. 부모가 병환 중일 때 정성을 다하여 간호를 하였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는 8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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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효자 이복의 정려비. 이복은 고려시대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눈먼 홀어머니를 정성으로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집이 가난하여 남의 집 일을 해 주고 음식을 얻어 와서 생계를 이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읍내의 부잣집에서 일을 마치고 고깃국 한 그릇을 얻은 이복은 국이 식을까 가슴에 품고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고개를 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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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삼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정이재의 정려. 정이재(鄭以載)[1654~1689]는 어려서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그의 나이 13세가 되었을 때 모친이 병에 걸리자 밤낮으로 병석을 지키며 간호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병환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서 그 피를 드리며 모친을 소생시키기도 하였다. 정이재의 이러한 효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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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대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효자 최성의 정려비. 공주에서 천안 방향으로 가는 국도 23호선로부터 약 21.83㎞ 거리에 정안면소재지가 있다. 면소재지에서 왼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대산리가 나온다. 마을 입구에 있는 대산교를 건너 작은 길을 따라 700m 정도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을 입구 왼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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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성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효자 황춘억의 정려. 황춘억(黃春檍)[1639~1710]은 방촌 황희(黃喜)[1363~1452]의 7세손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매우 지극했다고 하며, 부친이 병이 들자 손가락을 자르고 그 피로 목숨을 살렸다. 모친이 삼복더위에 신열이 나자 강에서 직접 고기를 잡아 올려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하였다. 노부모의 진짓상에 고기가 없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