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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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州李氏烈女門 |
영어의미역 | Memorial Gate for Virtuous Lady of Seongju Yi Cla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 35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춘진,박범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7년 6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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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4년 5월 17일 - 성주이씨 열녀문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23호에서 공주시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
성격 | 정려 |
건립시기/일시 | 1852년![]()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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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번호 | 공주시 유형문화유산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정려를 받아 세운 열녀문.
[위치]
공주에서 국도 40호선 ‘백제큰길’을 따라 부여 방면으로 가다가 공주시와 이인면 경계에서 4㎞ 정도 가면 도로 오른쪽에 오룡리 숭선군 묘로 가는 문화유산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1.5㎞ 정도 들어가면 오룡리 마을회관 뒤편에 있다.
[변천]
남편이 죽은 후 자결한 김원발(金源發)의 처 성주이씨(星州李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1852년(철종 3)에 건립한 것이다. 이씨는 성산부원군 이직(李稷)[1362~1431]의 후손으로, 김원발과 혼인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이씨는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따라 죽고자 하였으나, 어린 자식과 주변인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그 후 남편의 묘를 불길한 곳에 썼다고 하여 이장할 때, 이씨는 드디어 죽을 때가 되었다며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때 이씨의 나이는 23세였다. 남편과 같은 곳에 묻히게 되었다.
1838년(헌종 4) 유신환(兪莘煥)[1801~1859]이 지은 비문에 의하면,고을 사람들은 성주이씨의 행적을 알려 열녀 포장을 청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일단은 각자 지원금을 내서 비석을 세웠다는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후 1852년(철종 3)에 다시 충청감영에서 천거하여 성주이씨의 절개에 대해 정려를 포장받게 되었다. 정려 이후 여러 차례 중수가 있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85년경에 새로 보수한 것이다.
[형태]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사면은 홍살로 처리하였다. 정려 내부에는 ‘열녀선산김원발처성주이씨지려상지삼년임자명정(烈女善山金源發妻星州李氏之閭上之三年壬子命旌)’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현판 아래에는 1838년(헌종 4) 유신환(兪莘煥)이 쓴 성주이씨의 열행 사적을 새겨 놓은 ‘열녀선산김원발처성주이씨지비(烈女善山金源發妻星州李氏之碑)’가 세워져 있다.
[현황]
이인면 오룡리에는 지금까지 후손들이 살고 있어 관리가 잘 되고 있다. 성주이씨 열녀문은 1997년 6월 5일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23호로 지정되었다가 2024년 5월 17일 조례에 따라 공주시 유형문화유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공주 지역 선산김씨의 사족 활동을 보여 주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