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5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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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烈女金氏旌閭 |
영어의미역 | Memorial Monument for Virtuous Lady of Buryeong Gim Clan, Ryu Hoewon's Wife |
이칭/별칭 | 유회원 처 부령김씨 정려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화장마을길 99-56[동원리 9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해준,박범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7년 6월 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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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4년 5월 17일 - 열녀 김씨 정려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19호에서 공주시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
성격 | 정려 |
양식 | 이익공 |
건립시기/일시 | 1812년![]()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화장마을길 99-56[동원리 93]![]() |
문화재 지정번호 | 공주시 유형문화유산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회원의 처 부령김씨의 정려.
[개설]
열녀 김씨 정려는 1812년(순조 12) 10월에 명정을 받아 건립되었다. 열녀 김씨는 김홍필(金弘弼)의 딸로 본관은 부령이다. 신풍면 만년동(萬年洞)에서 살았다. 삼수도호부사(三水都護府使)를 지낸 유회원(柳晦源)[1751~1798]에게 시집갔으나 남편이 후사 없이 죽자 양자를 들여 장례를 치른 뒤 3개월이 지난 1798년(정조 22) 11월 6일에 약을 먹고 자결하였다. 이러한 열행이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
[위치]
공주에서 예산 방향으로 가는 국도 32호선을 따라 20㎞ 정도 가면 신풍면소재지가 나오는데, 신풍면소재지 직전에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면 동원리 화정골이 있다. 열녀 김씨 정려는 화정골 작은 언덕 위에 있다.
[변천]
1812년(순조 12) 명정된 이후 1829년 8월에 아들 유상목(柳相穆)이 호서병마절도사(湖西兵馬節度使)에 제수되자 부령김씨는 정부인에 추증되었고, 같은 시기에 정려도 중수되었다. 정려 안에는 1998년 10월에 6세손인 유근무가 짓고 최병무(崔秉武)가 쓴 정려비가 세워져 있고, 정려 앞에는 1998년 12월에 6세손 유근창(柳根昌)이 지은 비가 세워져 있다.
[형태]
현재의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이익공이며 팔각 고주 위에 기둥을 세웠고 사면을 홍살 처리하였다. 1830년에 쓴 부령김씨 정려 앞면에는 1830년에 쓴 「중수기」 현판[烈女 贈嘉善大夫 兵曹參判 兼同知義禁府事 訓鍊院都正 行通政大夫 三水都護府使 柳晦源之妻 贈貞夫人 扶寧金氏之門 上之卽位十二年壬申十月 命旌 己丑八月日子相穆除拜 湖西兵馬節度使 蒙恩追贈庚寅八月日更爲修建]과 정려비가 있다.
[현황]
열녀 김씨 정려는 1997년 6월 5일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19호로 지정되었다가 2024년 5월 17일 조례에 따라 공주시 유형문화유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화정골에는 남편 유회원과 합장된 묘가 있다. 또한 1998년 10월과 12월에 세운 2기의 비가 있다.
[의의와 평가]
열녀 김씨 정려는 조선시대 공주의 세거 사족인 진주유씨가 공주 일대로 그 터전을 확장해 가는 과정에서 조선 후기에 활발했던 사족 활동을 했음을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향촌 사회 내에서 문중 활동이 가장 활발하던 18세기에 집중적인 정려 건립 활동으로 18세기 후반 삼강정려를 완성하였으며 열녀 김씨 정려는 사족들의 문중 활동으로 정려 증설 현상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