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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582
한자 烈女權氏旌閭
영어의미역 Memorial Monument for Virtuous Lady of Andong Kwon Clan, Choe Baekbok's Wif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 38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해준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7년 6월 5일연표보기 - 열녀 권씨 정려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14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4년 5월 17일 - 열녀 권씨 정려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14호에서 공주시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성격 정려
양식 익공양식
건립시기/일시 1803년연표보기
정면칸수 1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 381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공주시 유형문화유산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내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열녀 안동권씨의 정려.

[개설]

안동권씨는 동흥군 권상의 5세손인 권세헌의 딸로, 덕이 높고 행동이 정숙하며 말수가 적은 인물이었다. 어린 나이에 강화최씨 집안의 최백복[1733~1753]에게 시집을 와서 시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기며 효부로 칭송받았다. 그러나 남편 최백복이 1753년(영조 29) 스무 살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자, 안동권씨는 남편의 장례를 정성을 다해 치른 뒤 뱃속에 아이가 없음을 확인하고 네 살 된 아들 최영필을 남겨 둔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공주의 유생들이 이러한 안동권씨의 열행을 기릴 것을 조정에 청원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400여 명의 유생이 참여하기도 했다. 그 결과 조선 조정은 안동권씨의 효성과 절개를 기리기 위해 1755년(영조 31) 열녀로 정려하였다. 그 후 1803년(순조 3)에는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정려각이 세워졌으며, 1869년(고종 6)에는 안동권씨에게 숙인(淑人)을 증직하였다.

[위치]

공주터미널에서 국도 32호선을 따라 예산 방면으로 가면 연미터널이 나오는데 그 터널을 지나 0.5㎞ 정도 가다가 질마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우성면 도천리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다시 2.5㎞ 정도 거리에 서북쪽으로 보이는 마을이 우성면 내산리이다. 내산리 부전동 일대는 강화최씨 뜸밭파의 동족 촌락이 형성된 곳으로 강화최씨 뜸밭파는 조선 후기 공주 일대의 대표적인 사족으로 활동하였다. 열녀 권씨 정려는 뜸밭파 동족 촌락이 자리한 마을 남산의 능선 하단부에 있다.

[변천]

열녀 권씨 정려안동권씨(安東權氏)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1755년(영조 31)에 명정을 받아 1803년(순조 3)에 창건되었는데, 1850년(철종 1)에 1차 중수가 이루어졌다. 그 후 1924년에 2차 정려 중수가 이루어졌으며, 1940년에 또 한 번의 중수를 했는데, 이때 명정 현판도 현재의 것으로 바꾸었다. 현재의 정려는 1999년 최백복의 8세손 최한석(崔漢錫)이 주도하여 기와 등을 보수한 것이다.

[형태]

열녀 권씨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익공 양식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8각 고주(高柱)이며, 뒷면은 벽으로 막혀 있고 나머지 삼면은 중간 상단만을 홍살로 처리하였다. 정려 중앙에는 ‘열녀증통훈대부사복시정최백복처증숙인안동권씨지려영조을해명정(烈女贈通訓大夫司僕寺正崔百福妻贈淑人安東權氏之閭英祖乙亥命旌)’이라고 적힌 명정 현판이 걸려 있다.

[현황]

열녀 권씨 정려는 외곽의 아랫부분이 벽돌로 둘러싸여 보호되고 있다. 1997년 6월 5일 공주시 향토문화유적 제1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4년 5월 17일 조례에 따라 공주시 유형문화유산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의의와 평가]

최백복의 처 안동권씨가 죽은 후 2년 만에 명정을 받게 된 점 등은 당시 강화최씨 뜸밭파가 공주 지역에서 유력한 사족 가문이었음을 알 수 있는 증거이다. 또한 안동권씨의 포장을 청하는 상서는 모두 4건으로 충청남도 도정 사료실에 보관되어 전해진다. 이러한 문서는 정려의 건립과 관련되어 그 가치가 매우 높이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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