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가전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가전리(佳田里) 고인돌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가전 1리 상백 마을 입구의 도로변에 위치한다. 이 지역은 남으로 병천천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고, 세성산[해발 218m]이 하천변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북쪽과 동쪽으로는 낮은 구릉 지대가 동서로 이어져 있는 범람원상의 지형에 해당한다....
-
개항기 충청남도 천안 출신의 문신. 강노(姜㳣)[1809~1887)는 흥선 대원군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기중(期中), 호는 표운(豹雲)·정은(貞隱), 시호는 익헌(翼憲)이다. 현감을 지낸 강이구(姜彛九)의 아들이다. 1837년(헌종 3) 진사시를 거쳐 1848년(헌종 14) 증광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50년(철종 1) 정자(正字)...
-
조선 시대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명지(明之), 호는 죽간(竹磵)이다. 시강원 문학을 지낸 강중진(康仲珍)의 증손자이며, 아버지는 강유선(康惟善)이다. 강복성[1550~1634]은 1579년(선조 12) 사마시에 합격한 뒤, 참봉·직장(直長)·찰방(察訪) 등을 지냈다. 1595년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장현광(張顯光) 등과 함께 발탁되어...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무신. 강사흡(姜泗흡)은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당시 직산현을 지켰다. 지군사(知郡事)를 지낸 강중선(姜仲善)의 후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났을 때 별장(別將)으로 직산현에 있었다. 이인좌의 반란군이 몰려오자 직산 현감과 이속들이 모두 도망쳤으나 강사흡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상의하여 “반란군이 경계를...
-
고려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자는 자야(子野)이고, 호는 매계(梅溪)이다. 부인 문씨(文氏)는 광주 갑향(光州甲鄕) 사람인데, 1388년(우왕 14) 왜구에게 붙들려가는 도중 몽불산(夢佛山) 극락암 근처에서 순결을 지키기 위해 절벽 밑으로 뛰어내렸다. 이에 왜구는 그의 큰아들을 죽이고, 부인은 나무덩굴에 걸려 오른팔이 부러진 채 구출되어 『고려사』에 열녀로 입전되어 있다....
-
고려 시대 거란족의 침입으로 왕이 천안부를 거쳐 남쪽으로 피난한 사건. 거란족은 몽고족의 일파로 요하(遼河) 상류 유역을 중심으로 916년에 흥기(興起)하고, 980년에 먼저 정안국(定安國)을 정복했다. 거란은 중국을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고려와는 친선 관계를 맺어 후환을 없애려 하였다. 이에 거란은 942년(태조 25)에 사신을 보내 낙타 50필을 바치면서 교섭을 벌여왔다...
-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기원 전후부터 7세기 중후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까지의 역사. 한국의 고대는 고구려와 삼한의 여러 소국들을 병합한 백제, 신라, 가야 등이 형성, 발전한 시기이다. 당시 한반도의 중부와 남부 지역은 마한·변한·진한으로 구분되었으며, 70여 개의 소국(小國)이 있었다. 백제와 신라도 각각 백제국(伯濟國)과 사로국(斯盧國)이란 이름의...
-
918년 고려 개국 때부터 1392년 고려 멸망 때까지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의 역사. 918년 궁예(弓裔)를 축출한 여러 장수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오른 왕건(王建)은 국호를 고려(高麗)로 바꾸고 연호를 천수(天授)로 고쳤으며, 수도를 철원에서 자신의 세력 기반인 송악으로 옮겼다. 이렇게 왕위에 오른 왕건은 후삼국 통일 정책에 박차를 가하여 936년 드디어 후삼국 통일의 대업을...
-
충청남도 천안시에 분포하는 선사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분묘. 고분(古墳)이란 옛 무덤을 뜻하기도 하지만 고고학에서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 한정된 시대의 지배층의 무덤을 말한다. 여기서 한정된 시대란 선사 시대 부족 사회에서 고대 왕조가 확립되는 삼국(三國)의 건국으로부터,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불교의 영향으로 화장(火葬) 무덤이 성행하여 고분 축조가 쇠퇴된 시기까지를 말한...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백석동에 있는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통일 신라 시기, 조선 시대의 유적. 백석동(白石洞) 고재미골 유적(遺蹟)은 천안 유통 단지 조성 과정에서 조사되었다. 신석기 시대 주거지, 청동기 시대 주거지, 구덩 유구[수혈 유구(竪穴遺構)], 통일 신라 시기의 돌덧널무덤[석곽묘], 조선 시대 건물지, 주거지, 구덩 유구, 가마, 주공열(柱...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경숙(敬叔) 또는 지숙(智叔), 호는 경한재(景寒齋)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시정(寺正)을 지낸 곽회영(郭懷英), 아버지는 사헌부 집의를 역임한 곽지흠(郭之欽)이다. 아버지 곽지흠의 첫째 부인은 선교랑(宣敎郞) 성준웅(成俊雄)의 딸 창녕 성씨(昌寧成氏)이며, 둘째 부인은 도사를 역임한 김옥(金鋈)의 딸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신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봉수대. 봉수대란 높은 산봉우리에 봉화를 올릴 수 있게 설비해 놓은 곳을 말한다. 광덕 봉수대(廣德 烽燧臺)는 돌로 쌓은 것으로 2013년 현재 둘레 60m 정도가 잔존하고 있다. 조선 후기 공주의 고등산 봉수에서 연락을 받아 북쪽 천안의 태학산 봉수로 전달하던 곳이다. 현재 봉수대의 주변 시설인 방화벽 및 연료 창고,...
-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광덕리에 있는 고대 시기의 산성. 광덕산성(廣德山城)은 동면사무소를 지나서 진천 방향으로 국도 21번 도로로 가다가 삽다리를 넘게 되면 바로 광덕리의 돌 팻말이 나온다. 팻말에서 약 2㎞ 정도 들어가면 광덕리 두촌 마을이 나오는데, 광덕산성은 두촌 마을의 배산인 광덕산 정상에 위치한다. 성의 규모는 약 300m 정도로 성벽의 축조는 외견상...
-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죽계리에 있는 산성. 천안시 동면 면사무소에서 동북쪽으로 21번 국도를 따라 3㎞ 정도 가다 보면 동면 죽계리 상장 저수지가 나오는데, 여기서 동쪽 395m의 정상부에 국사봉 산성(國師峰 山城)이 있다. 국사봉 산성은 산 정상부를 둘러쌓는 테뫼식 산성이며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정상부 가장 높은 곳에는 건물지가 있었던 흔적도...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자정(子靜)이고, 호는 백인당(百忍堂)이다. 할아버지는 만호(萬戶)를 지낸 김신충(金藎忠), 아버지는 선무 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김원개(金元凱)이다. 아들로 김진명(金振溟)이 있으며, 동지(同知) 김만진(金萬珍)이 손자이다. 김구연(金九淵)[1582~?]은 임진왜란 때 아버지를 따라 왜적을 섬멸하여 선조(宣朝)가...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김규석(金奎錫)[1844~1908]은 익산시(益山) 출신으로, 천안 군수로 재직 시 현창과 창고를 중수하였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구서(龜瑞), 호는 국헌(菊軒)이다. 늦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뒤 참봉(參奉)을 거쳐 천안 군수, 통정대부(通政大夫), 중추원 의관(中秋院議官)을 지냈다. 1883년(고종 20) 10월에 녹비(鹿...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언양(彦陽). 고려 시대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김취려(金就礪)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증 좌승지(贈左承旨) 김응상(金應祥), 할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김정립(金挺立)이다. 아버지는 사산 감역관(四山監役官) 김절(金晢)이며, 어머니는 도정(都正)을 지낸 유덕신(柳德新)의 딸 문화 유씨(文化柳氏)이다. 부인은 감사(監司)를 지낸 홍득일...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청양(靑陽), 자는 창숙(昌叔)이다. 부사과(副司果)를 지낸 김의건(金義建)의 아들이다. 김득대(金得大)[?~?]는 1707년(숙종 33) 무과에 급제한 후 천안 군수를 역임하였다. 천안 군수 재임 시 『선생안』[역대 천안 수령의 명부]을 중수하고, 서문을 지었으며, 천안의 『문헌록』을 다시 간행하였다. 군수가 쓰는 판공비의...
-
조선 후기 천안 목천 지역에 우거했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백곡(栢谷) 또는 귀석산인(龜石山人)이다. 할아버지는 충무공(忠武公) 김시민(金時敏), 아버지는 경상 감사(慶尙監司)를 지낸 안흥군(安興君) 김치(金緻), 어머니는 목첨(睦瞻)의 딸 사천 목씨(泗川睦氏)이다. 장령(掌令)을 지낸 김성발(金聲發)의 딸 경주 김씨(慶州金氏)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고, 다시 이...
-
조선 후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학자. 본관은 연성(蓮城), 호는 지재(志齋)이다. 모기재(慕箕齋) 김필(金珌)의 후손이며, 순조 때의 학자 심재(心齋) 송환기(宋煥箕)의 문인이다. 김만종(金萬鍾)은 경학에 밝았으며, 「상례 의절(喪禮疑節)」과 「향약 통편(鄕約通編)」 등을 지었다고 전한다. 이중명(李重明)의 시문집인 『안곡집(安谷集)』과 이심영(李心永)의 문집인...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여류 시인의 무덤. 김운초(金雲楚)[1820~1869]의 호는 부용(芙蓉) 또는 추수(秋水)이며, 황해도 성천에서 가난한 선비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네 살 때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열 살 때 당시(唐詩)와 사서삼경에 통하였다고 한다. 열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그 다음해 어머니마저 잃게 된 김부용은 퇴기의 수양...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여량(汝兩)이다. 현종의 장인인 청풍부원군 김우명(金佑明)의 아들이며, 명성 왕후(明聖王后)의 동생이다. 김석익(金錫翼)[?~1686]은 23세 때 빙고 별검(氷庫別檢)에 임명된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쳤다. 1680년(숙종 6)에 인평 대군(麟坪大君)의 아들 복창군(福昌君)과 복선군(福善君), 그리고 허적(許...
-
조서 후기 이인좌의 난 때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공을 세운 무인 김선재(金先才)는 조선 영조(英祖) 때의 인물이다. 『영성지(寧城誌)』의 기록에 따르면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당하여 천안군(天安郡)의 초관(哨官)으로 있으면서 의(義)로서 살기를 작정하고 충성을 다하여 보국하였다. 군졸을 모집하여 적을 사로잡고 고을을 굳게 지켰다. 양무 이등 공신(揚武二等功臣)에 책훈...
-
조선 전기 천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면오(勉吾),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지평(持平)을 지낸 아버지 김충갑(金忠甲)과 어머니 창평 이씨(昌平李氏) 사이에서 4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인은 서응문(徐應文)의 딸 부여 서씨(扶餘徐氏)이다. 슬하에 자식이 없이 순국하였는데, 사후 문중에서 큰형인 김시회(金時晦)의 넷째 아들 김치(金緻)를 양자로 입양시...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문신·의병. 본관은 강릉(江陵). 증조할아버지는 군기시 판관(軍器寺判官)을 지낸 김유악(金由岳)이고, 할아버지는 사재감 정(司宰監正)을 지낸 김혼(金渾), 아버지는 사직서 영(社稷署令)을 지낸 김광렬(金光烈)이다. 어머니는 용인 현령(龍仁縣令)을 지낸 성효원(成孝元)의 딸이다. 아들은 김찬종(金纘宗)이다. 김응명(金應命)[1567~1625]은 감역...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무신. 김응상(金應祥)[?~1583]은 조선 선조 때의 무관으로, 1578년(선조 11) 종계변무(宗系辨誣)의 임무를 띠고 명나라에 간 주청사(奏請使) 황림(黃琳)의 종사관이 되어 연경에 다녀왔다. 그 뒤 왕으로부터 비변사에 ‘인재 천거령’이 내렸을 때 곽흘(郭屹)에 의해 추천되었으며, 뒷날 병마절도사에 올라 함경도 지방을 노략질하던 여진족의 침략...
-
조선 시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직산현의 아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파죽지세로 진격함에 천안을 비롯한 주변 지역도 피해를 면할 수 없었다. 특히 천안은 국토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요지로 관군과 의병이 빈번히 왕래한 곳이라 군량의 조달과 통신의 편의가 요구되는 곳이었다. 또한 정유재란 때는 직산현과 평택 사이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으니 소사 전투가 그것이다. 이는 육전에...
-
조선 전기 천안에 우거한 문신·학자. 김일손(金馹孫)[1464~1498]은 흔히 사초에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실어 무오사화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거론된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또는 소미산인(少微山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의흥 현감을 지낸 김서(金湑), 할아버지는 효성이 지극하여 사람들에게 절효(節孝) 선생이라 불린 김극일(金克一)...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무인이자 의병. 김진희(金晉熙)는 천안 출신으로, 이인좌의 난 때 공을 세웠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겸숙(兼叔)이다. 아버지는 공조 참판을 지낸 김이환(金李桓)이며, 우의정을 지낸 갑봉(甲峯) 김우항(金宇杭)의 조카이다. 김진희는 어려서부터 기운이 장사였고 담력이 있어 고을 사람들이 장수의 재목이라고 했다. 청주 상당성 아래에 우...
-
조선 전기 천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字)는 서초(恕初), 호(號)는 구암(龜岩)·오죽산인(悟竹山人)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수형(金壽亨)이고, 할아버지는 종사랑을 지낸 김언묵(金彦黙)이며, 아버지는 진사 김석(金錫)이다. 외할아버지는 기형(奇逈)이며, 부인은 창평 이씨(昌平李氏)이다. 아들은 김시회(金時晦)와 김시민(金時敏)인데, 김시민은 임진왜란 때 진주성...
-
조선 후기 천안 지역에 우거한 문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정(士精), 호는 남봉(南峰)·심곡(深谷)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석(金錫), 할아버지는 헌납을 지낸 김충갑(金忠甲)이다. 아버지는 부사를 지낸 김시회(金時晦)이며, 어머니는 양언개(楊彦漑)의 딸 청주 양씨(淸州楊氏)이다. 임진왜란 때 진주 대첩의 전공을 세우고 순국한 충무공 김시민(金時敏)에게 입양되었다. 조선...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신. 김치룡(金致龍)[1654~1724]은 천안 목천 출신으로, 성품이 단아하고 서(書)·사(史)에 몰두하였으며 일처리에 민첩하였다. 본관은 언양(彦陽), 자는 천용(天用)이다. 아버지는 문경 현감을 지낸 김남갑(金南甲), 어머니는 감사(監司)를 지낸 홍득일(洪得一)의 딸 남양 홍씨(南陽洪氏)이다. 출생지는 직산인 것으로 추정되며, 목천면에는 후...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신. 남공철(南公轍)[1760~1840]은 조선 후기 정조와 순조, 헌종 등 3대에 걸쳐 왕을 보좌한 학자 겸 정치가, 문장가이다. 1778년(정조 2) 정조가 아버지 남유용의 시문을 모아 간행할 때, 남공철이 직접 왕명을 받아 이를 수행하였다. 1824년에 목천이 승지(勝地)이고 선비들이 많아 후진을 양성할 만한 곳으로 인식하여 동헌 가까운 곳...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남관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 유적. 남관리 선사 유적(南館里 先史 遺蹟)은 동양 철관 천안 공장 설립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주거지가 확인되었는데, 출토 유물은 주로 생활 용구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남관리 산1-8과 31-1번지에 위치한다. 남관리 유적은 19...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남태기(南泰耆)[1699~1763]는 천안 군수를 역임한 뒤 벼슬이 예조 판서에 이르렀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낙수(洛叟), 호는 죽리(竹裏), 시호는 정희(靖僖)이다. 할아버지는 남상훈(南尙熏)이고, 아버지는 의빈도사(儀賓都事)를 지낸 남근명(南近明), 어머니는 부사(府使)를 지낸 이만봉(李萬封)의 딸 전의 이씨(全義李氏)이...
-
조선 시대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노대하(盧大河)[1546~1610]는 임진왜란 때 김응남(金應南) 휘하의 종사(從事)로 있으면서 식량 수송에 공을 세웠다. 천안 군수로 있을 때 처음으로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하였으며, 왕실의 행재(幸宰)로 쓰이던 화축관과 객사를 건립하였다. 천안 군수 임기를 마치고 이천 부사로 승진하였다.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수오(受吾),...
-
조선 후기 안정복이 편찬한 목천읍지. 『대록지(大麓誌)』는 1779년(정조 3) 당시 목천 현감(木川縣監)이던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이 편찬한 읍지이다. 이후 1871년(순조 17) 조국인(趙國仁) 등에 의해 목활자본으로 복간되었다. 안정복은 읍지를 한 지방의 역사서로 파악하고, 각 군현도 읍지를 편찬하여 자기 고장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
-
충청남도 천안시 성남면 대정리에 있는 산성. 대정리 산성(大井里 山城)은 충청남도 천안시 성남면 대정리에 있다. 성남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91번 도로를 타고 조치원 방향으로 가면 성남면 대정리 초정 마을이 나온다. 초정 마을에서 북서 방향으로 있는 산의 정상부에 대정리 산성이 위치한다. 대정리 산성은 산의 정상부를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지표상...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대정리에 있는 약수. 성남면 대정리에는 초수(椒水)가 나오는 초정(椒井)이 있다. 초수는 호초 같은 맛이 나는 물이란 뜻이다. 여러 질병을 고치는 데 효험이 있다 하여 조선 세종 대부터 국가적으로 관심을 갖고 관리하였다. 성남면 대정리는 조선 시대 목천현에 속했던 마을이다. 대정리는 1914년에 대티리, 초정리, 마산리...
-
조선 시대 천안 지역에 위치했던 도기 굽는 곳. 관수용품이나 민간에서 쓰이는 도기와 자기를 굽는 가마 시설은 고려 시대부터 전국 곳곳에 위치하였다. 조선 건국 후 국가는 공물로서 도자기의 제작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전국의 도기소(陶器所)와 자기소(磁器所)의 정보를 수집하였는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기록이 바로 그러한 제도의 산물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천안군, 목...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도림리에 있는 원삼국, 백제, 조선 등의 고분 유적. 도림리 고분 유적(道林里 古墳 遺蹟)은 도로 건설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원삼국 시대 주거지, 백제 시기 분묘, 조선 시대 주거지, 조선 시대 분묘가 확인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도림리, 해발 74~96m의 구릉 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도림리...
-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도원리, 동면 화계리에 위치한 백제 산성. 도원산성은 동성산성에서 남향한 산맥의 지류를 따라 남쪽 500m 정도에 위치한 산정상부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성벽의 형태는 북벽이 비교적 잘 남아 있고, 대부분 무너져 내렸으며 그 외의 성벽은 확인되지 않는다. 병천면사무소에서 북쪽으로 약 3km 정도 가면 도원리 도원 마을이 나...
-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삼곡리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백제 시기의 산성. 도토성 터는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삼곡리에 자리한다고 전해진다. 천안에서 진천 방향으로 향하는 국도 34번 도로를 따라 보면 남서울 대학교를 지나 성거읍 삼곡리로 들어가면 소로를 만나게 된다. 이 소로를 따라 직진하면 시구리 마을이 나타나는데 도토성은 시구리 마을 서쪽에 위치한다고...
-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 도원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천안시 병천면 병천면사무소에서 북면 방면으로 시도 6호선 도로로 약 4㎞ 정도 가면 천안시 병천면 도원리 가정 마을이 나오는데, 그 마을 동쪽의 동성산 정상부에 동성산성(銅城山城)이 위치한다. 동성산성은 표고 237m의 동성산 정상부에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축조 방법은 토석(土石) 혼축의...
-
충청남도 천안시 풍세면 두남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두남리 산성(斗南里 山城)은 충청남도 천안시 풍세면 두남리에 있다. 풍세면사무소에서 천안 방면으로 가다 보면 남관리가 나온다. 남관 1리 마을 배산에 남산이 있는데, 두남리 산성은 남산[태봉산]의 정상부에 자리한다. 두남리 산성은 돌출된 야산의 정상부에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성의 길이는...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두정동 일대에 있는 원삼국 시대, 백제 시기의 유물 산포지. 두정동 유적(斗井洞 遺蹟)은 두정동 일대에서 확인된 유적이다. 원삼국 시대부터 백제 때의 주거지, 움무덤[토광묘], 독무덤[옹관묘], 구덩식 돌방무덤[수혈식 석실묘(竪穴式石室墓)],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 분구묘(墳丘墓) 등이 확인되었다. 3세기부터 4세...
-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백자리에 있는 산성. 망경산성(望京山城)은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백자리에 있다. 수신면사무소에서 남쪽으로 난 691번 도로를 따라서 연기군 전동면 방면으로 4.4㎞ 가다 보면 천안시 수신면 백자리와 연기군 전동면의 경계인 고소재 고개가 나온다. 고소재 고개 동편에 있는 망경산 정상에 망경산성이 위치한다. 망경산성은 망경산 정...
-
고려 후기에 천안을 비롯한 충청도 지역에서 공주 명학소민들이 신분제 타파를 목적으로 일으킨 봉기. 망이·망소이 난은 무신집권기인 1176년(명종 6)에 충청남도 공주 명학소(鳴鶴所)에서 망이(亡伊)·망소이(亡所伊) 등 농민과 천민들이 신분제의 타파를 목적으로 일으킨 봉기이다. ‘공주 명학소의 난’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난의 여파로 1176년 3월에는 충...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매성리에 있는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 매성리 유적(梅城里 遺蹟)은 골프장 사업 부지 조성 과정에서 조사된 유적이다. 삼국 시대 토기 가마, 추정 작업장, 구덩 유구[수혈 유구(竪穴遺構)], 고려 시대 이후의 움무덤[토광묘(土壙墓)], 고려 시대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매성리 33...
-
고려 초부터 1413년까지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세종실록지리지』 충청도 청주목 목천현 조에 의하면 “본래 백제의 대목악군(大木岳郡)인데, 신라에서 대록군(大麓郡)으로 고쳤고, 고려에서 목주(木州)로 고쳐 청주(淸州)의 임내로 삼았다가, 명종(明宗) 2년 임진에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던 것을, 본조(本朝)에서도 그대로 따랐다. 태종(...
-
삼한 시대 때 직산 지역을 관할했던 소국(小國). 목지국(目支國)은 초기 철기 시대 이래 충청남도와 전라남도·전라북도 지역에서 형성, 발전되어 온 토착 정치 집단의 하나로, 백제(百濟)가 성장하기 전까지 마한 소국 연맹체의 중심 세력이었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에는 월지국(月支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목지국의 존속 시기 및 진왕(辰王)의 지배 영역과 지배 성격...
-
조선 후기 이인좌의 난 때 반란군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켰던 목천 사족 16명.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반란군이 청주를 장악하고 서울로 향하기 위해 목천현에 머물 때 군사를 일으켜 반란군을 격파한 뒤 조정으로부터 양무원종공신(揚武原從功臣)에 책봉된 16명을 가리켜 ‘목천 16의사’라고 한다. 1728년(영조 4) 소론과 남인 일부는 영조와 노론 세력을 제거하려는 목적에서 반...
-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면 남화리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목천 토성(木川 土城)은 충남 대학교 박물관에서 1983년 12월부터 1984년 3월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또한 목천 토성은 다른 이름으로 남화리 토성으로도 불린다. 목천 토성은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면 남화리에 있다. 독립 기념관 주차장 부근에 해당하는 곳으로 독립 기념관에서 목천읍사무소...
-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읍 서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목천현의 관아 터. 목천(木川) 현아(縣衙) 터는 조선 시대 목천현(木川縣)의 관아가 있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 지방 행정 구역이 개편되고 목천군이 천안군으로 통합됨에 따라 목천의 관아 건물이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 목천 초등학교가 개교하였다. 또한 목천 현아 터는 ‘목천현 관아, 목천현 공해’로도 불린다....
-
충청남도 천안시 동쪽 지역의 조선 시대 행정 지명. 목천은 백제의 대목악군(大木岳郡), 신라의 대록군(大麓郡)이었던 것이 고려 성종 때에 목주(木州)로 개칭되면서 청주에 속했다가, 1172년(명종 2)에 이르러서야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된 현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1413년(태종 13)에 목천(木川)으로 고치면서 종전의 감무 대신 현감이 파견되기 시작했고,...
-
고려 시대 1277년(충렬왕 3)에 몽고가 직산에서 금을 채굴하게 한 사건. 몽고와 강화한 이후 고려의 자주성은 많은 손상을 입었다. 원은 고려 조정을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나오게 하고 고려의 왕을 원의 공주와 혼인시켜 부마국으로 삼았다. 고려 왕실의 호칭과 격은 부마국에 걸맞은 것으로 바뀌었으며, 아울러 관제도 개편되고 격도 낮아졌다. 원은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원정을...
-
1231년(고종 18)에 몽고가 사신 저고여(著古與) 살해 사건을 구실로 침입한 후 6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략한 사건. 1225년에 고려에 와서 무례한 행동을 하던 몽고 사신 저고여 일행이 귀국 도중 압록강 가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몽고는 이 사건을 구실로 삼아 1231년(고종 18) 살례탑 부대를 보내 고려를 침략했으나, 귀주성(龜州城)에서 박서(朴犀) 부대의...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무신. 민영(閔韺)[?~1637]은 천안 군수 재임 시 수선정이라는 정자를 건립하고,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에게 기(記)를 짓게 하였다.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정보(正甫)이다. 아들은 민광렬(閔光烈)이다. 의주 부윤을 지내고 1635년(인조 13)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승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과감히 척화론을...
-
조선 후기 천안 지역에 묘소를 쓴 문신. 박문수(朴文秀)[1691~1756]는 조선 후기 숙종과 영조 때 활동했던 정치가로, 호포제의 주장과 탕평론에 적극 동참하는 등 일찍부터 국정의 개혁에 적극적이었다. 박문수가 관직 활동을 하던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노론과 소론이 격심하게 대립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 박문수는 소론의 당색을 가지고 당론을 가장 추종하던 인물로 활동하였다...
-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은지리의 고령 박씨가에서 전승되어 온 어사 박문수의 유품. 천안시 북면 은지리에는 고령 박씨(高靈朴氏) 재실과 충헌사가 있다. 이곳에 영정과 전적, 고문서, 민속 유물 등 어사 박문수(朴文秀)의 유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전하는 박문수 유품 209점 가운데 전적은 5점, 고문서는 219점이 있다. 전적류는 『기은고 목록(耆隱皐目錄)』, 『충...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 천안 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후기 박문수의 초상. 박문수 초상(朴文秀 肖像)은 조선 후기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1691~1756]를 그린 초상화 2점이다. 천안시 북면 은지리 일대는 박문수가 영조 대에 이인좌의 난에 공을 세워 분무공신에 녹훈된 후 받은 사패지(賜牌地)로 박문수가 사망하자 이곳에 묘를 조성했으며 자손들도 대대로...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은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박문수의 묘.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은지리 일대는 박문수(朴文秀)[1691~1756]의 사패지(賜牌地)[임금이 내려준 논과 밭]로 알려져 있다. 박문수는 조선 후기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분무공신(奮武功臣)에 녹훈되면서 이 지역의 땅을 하사받았고 사후에 은지리 은석산에 장사 지내면서 고령 박씨(高...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박병(朴炳)[1587~1663]은 천안 군수 재임 시 병자호란 때 불탄 관아를 다시 지었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소문(小文)이다. 할아버지는 군자감 정(軍資監正)을 지낸 박응천(朴應川)이고, 아버지는 참봉 박동민(朴東民)이다. 큰아버지인 박동현(朴東賢)에게 입양되었다. 어릴 때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배웠고, 이후 김현성(...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의숙(宜叔)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 박안현(朴顔賢)의 아들이다. 박순의(朴純義)는 1633년(인조 11) 증광시(增廣試) 증광 진사 3등 30위로 입격하였으며, 천안 군수를 역임하고 이후 원주 목사를 지냈다. 원주목사 재임 시 선정을 베풀어 선정비가 세워졌다. 원주시 가곡 1리에 선정비와 순덕각...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문신. 박자응(朴自凝)[1589~1645]은 광해군 재위 시 조정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나, 인조반정 후에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진도로 이배되었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정길(正吉), 호는 읍백당(挹白堂)이다. 영의정 박승종(朴承宗)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김사원(金士元)의 딸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1609년(광해군 1) 사마시에 합격하...
-
고려 시대 천안 출신의 문신·문인. 백문보(白文寶)[1303~1374]는 충숙왕(忠肅王) 때 문과에 급제해 벼슬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렀고, 직산군(稷山君)에 봉해졌다. 본관은 직산(稷山), 자는 화보(和父), 호는 동재(動齋) 또는 담암(淡庵),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아버지는 승평 부사를 지낸 백견(白堅)이고, 어머니는 영해 박씨(寧海朴氏)이다. 부인은 황서(...
-
삼국 시대 천안 지역을 관할했던 고대 국가 중의 하나. 기원전 18년에 성립되어 660년 나·당군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한반도 서남부에 존재했던 나라로 마한(馬韓) 50여 개의 소국을 병합하여 고대 국가로 발전하였다. 백제(百濟)는 한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마한 소국의 하나인 백제(伯濟)가 주변 소국들을 병합하면서 고대 국가로 발전되었다. 건국 설화에 의하면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보산원리에서 확인된 삼국 시대의 고분 유적. 보산원리 1구 고분군(寶山院里 一區 古墳群)은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보산원리 1구 가능골 뒷산에 있다. 천안에서 광덕면 광덕사 방면으로 진행하면 보산원리 1구가 나온다. 고분군은 보산원리에서 다시 약 1.7㎞ 정도 안으로 들어가면 가능골에 이르는데, 가능골의 뒤편 야산에 위치한다....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백석동과 봉명동 경계에 있는 산성. 봉서산성은 천안 시청의 동쪽에 있는 해발 158m의 봉서산 정상부에 있으며, 산 정상을 둘러쌓는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250m 정도이다. 성벽은 현재 동벽과 남벽이 잘 남아 있고, 북벽과 서벽은 자연 경사면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남벽의 높이는 3m 정도이고, 내벽의 높이는 1m 정도이다. 성문터[門址...
-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횃불과 연기로써 알리는 조선 시대 신호 체계. 선사 이래 문명의 발달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불이다. 인류는 다양한 용도로 불을 사용하였고, 한층 더 진화하여 신호 체계로까지 이용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봉수(烽燧)이다. 우리나라에서 불을 신호 체계로 이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삼국 시대로 추정되지만 봉수제가 체계적으로 확립된 시기는 고려에서...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불당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 유적. 불당동 청동기 유적(佛堂洞 靑銅器 遺蹟)은 천안 불당동 택지 개발 과정에서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 (세)장방형 주거지, 원형 또는 방형 주거지, 저장 구멍[貯藏孔], 통일 신라 시기 돌방무덤[석실분], 고려 시대 돌방무덤, 조선 시대 움무덤[토광묘]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주거지의 공간...
-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 성산에 축조된 삼국 시대의 산성. 직산 사산성(稷山 蛇山城)은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 성산의 정상에 구축되어 있으며, 산 정상을 둘러쌓는 테뫼식 산성[산 정상을 둘러쌓는 방식]의 형태와 포곡식 산성[성 내에 계곡을 포함하는 방식]이 함께 연결된 형태로 남아 있는 특수한 산성이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직산 사산성은 흙으로 쌓은 성으로...
-
조선 전기 천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목천(木川)이다. 자는 기부(起夫), 호는 송현(松峴)·범허재(泛虛齋)·향일당(嚮日堂), 시호는 성안(成安)이다. 찰방(察訪) 상보(尙甫)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연안 김씨(延安金氏)로 박사(博士) 김휘(金徽)의 딸이다. 상진(尙震)[1493~1564]은 조실부모하여 큰누이의 집에서 자랐는데, 매부는 하산군(夏山君) 성몽정(成夢井)이다...
-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수남리에 있는 백제 시기부터 조선 시대의 산성. 서림산성(徐林山城)은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수남리에 있다. 동면사무소에서 21번 도로를 타고 병천 방향으로 가서, 화계교에서 남쪽인 좌측으로 돌아가다 보면 송연 1리 삼한 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남동쪽으로 길을 따라 약 1.2㎞ 정도 가면 서림산이 나오는데, 산 정상부[330m]에 서림산성...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수부(秀夫), 호는 사봉(沙峰)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서충우(徐忠佑)[또는 徐忠祐]이며, 동생은 서정지(徐挺之), 부인은 정민(鄭旻)의 딸이다. 서정연(徐挺然)[1588~?]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희암(希菴) 현덕승(玄德升)에게 사사(師事)하고 1612년(광해군 4) 생원시를 거쳐 1625년(인조...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인.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군석(君石), 호는 복재(復齋)이다. 아버지는 선무랑(宣務郞)을 지낸 서정지(徐挺之)이며, 큰아버지는 사봉(沙峯) 서정연(徐挺然)이다. 서한주(徐漢柱)[1622~?]는 조선 후기 성리학의 대가인 포저(浦渚) 조익(趙翼)의 문인이다. 1646년(인조 24)에 생원시에 2등 1위로 합격한 후 교관·주부·좌랑·정랑·사평...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석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적. 석곡리 청동기 유적(石谷里 靑銅器 遺蹟)은 동산 C&G 공장부지 조성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주거지, 토광 및 소형 수혈 유구, 시대 미상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석곡 4리 산24-1에 있다. 유적은 해발 210m의 정양봉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내...
-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석기를 도구로 사용하던 시기.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는 전기·중기·후기로 구분되고 있는데, 전기는 12만~10만 년 전, 중기는 10만 년 전에서 3만 5000년 전까지, 후기는 그 이후부터 1만 2000년 전까지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 구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중기를 25만 년 전까지 소급시켜 보는 견해도 있다. 구석기 유적...
-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역사적 사실을 문자로 기록하기 이전의 시대. 선사 시대(先史時代)는 문자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 이전의 시대로 역사 시대라는 용어와 대칭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가 선사 시대에 속하며, 초기 철기 시대는 원사 시대로, 그 이후부터는 역사 시대로 구분된다. 우리나라 선사 시대는 각 시대별로 시기를 세분하고...
-
조선 후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고려 때 대제학을 지낸 설장수(薛長壽)의 후예이다. 설약순(偰若純)은 시율(詩律)이 뛰어나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될 정도였다고 한다. 직하 이선생의 만사에 ‘이월 강남에 봄기운 생동하니, 매화 끝 혼령은 새싹을 돋우도다[二月江南春氣生梅梢魂返草心萌].’ 같은 구절이 유명하다. 충청도 유생들과 함께 179...
-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성거산 정상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성거산성(聖居山城)은 충청남도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에 있다. 성거읍사무소에서 입장 방면인 천흥 저수지의 남쪽 상류로 가면 만일사가 있고, 그 배산에 동북쪽으로 성거산이 있다. 성거산성은 성거산의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다. 성거산성은 성거산[해발 579m] 정상부에 둘러쌓는 테뫼식 산성으로...
-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 있는 침입이나 재해로부터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인위적 시설. 성(城)이란 보통 성벽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매우 넓다. 처음에는 흙을 파서 도랑을 만들거나 흙으로 쌓았으나 사람들의 지혜가 발달하면서 나무로 만든 목책(木柵)과 돌로 쌓은 석축(石築), 벽돌로 쌓은 전축(塼築)도 생겼다. 전형적인 성곽은 네모꼴로 쌓은 성과 다시 그 바깥에 네모꼴...
-
조선 전기에 직산에 관한 시를 남긴 문신. 성석린(成石璘)[1338~1423]은 19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국자학유(國子學諭)를 시작으로 벼슬길에 올라 전리총랑(典理摠郞), 밀직대언지신사(密直代言知申事), 동지사사(同知司事), 정당문학(正堂文學) 등 요직을 거치고 영의정에 올랐다. 시문에 능하고 명필로도 명성 높은 관료였다.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字)는 자수(自修)...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정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분묘 유적. 성정동 분묘 유물 산포지(星井洞 墳墓 遺物 散布地)는 천안시 성정동 일원의 천안 축구센터 건립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조선 시대 움무덤[토광묘], 시기 미상의 구덩 유구와 소성 유구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정동에 위치한다. 성정동 유적은 2006년 7월...
-
충청남도 천안시 성환읍에 위치한 전통 시대의 역. 성환역은 서울에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내려가는 중간 기착지로 교통의 요지였다. 『고려사(高麗史)』에 역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고, 조선 시대에는 충청도에 있는 6개의 도찰방역 중 하나로 여러 개의 속역을 관리하였다. 역참제도는 육로교통의 필수 요건이었다. 요로의 교통이 편리한 곳에 역이 존재하게 된 것으...
-
삼국 시대 천안 출신의 신라 장수. 소나(素那)[?~675]는 일명 ‘금천(金川)’이라고도 한다. 백성군(白城郡) 사산(蛇山)[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출신이다. 심나(沈那)의 아들이다. 백제가 망한 뒤 한주(漢州) 도독(都督) 유공(儒公)의 청으로 문무왕은 소나로 하여금 북쪽 변경의 아달성(阿達城)에 머물며 변경을 방어하도록 하였다. 백제에 이...
-
조선 후기 정유재란 중 천안 지역의 직산 소사벌에서 벌어진 명군과 일본군과의 전투. 정유재란이 시작되자 명은 조선의 급보를 받고 양호(陽鎬)를 경리 조선 군무(經理朝鮮軍務), 마귀(麻貴)를 제독(提督)으로 삼아 조선에 원병을 파견하였다. 이때 북상하던 일본군은 전주를 점령하고 계속 공주(公州)·전의(全義)·진천(鎭川)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일본 흑전장정 부대가 직산(稷山)에 이르렀...
-
고려 후기 천안부 판관으로 근무한 문신. 고려 시대에 천안부(天安府)에서 판관(判官)으로 근무를 할 때 근무 성적이 우수하여 공역서 승(供驛署 丞)으로 진급하였던 인물이다. 고려사 권102에 고려 시기의 자녀 상속에 대한 손변(孫抃)[?~1251]의 판결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수주인(樹州人)이며, 처가(妻家)가 왕실의 서족(庶族)[서자 자손의 혈족]이기 때문에 그는 대성(臺省)...
-
조선 시대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효자. 손여성(孫汝誠)[?~?]은 효행으로 천거되어 관직이 제수되었으며, 천안 군수 재임 시 처음으로 『천안 문헌록』을 작성하였다. 치적이 높이 평가되어 남원 부사로 영전되었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극일(克一), 호는 용담(龍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손위(孫渭), 할아버지는 손수창(孫秀昌)이다. 일찍이 아버지가 병이 들자, 목욕...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신방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유적. 신방동 선사 유적(新芳洞 先史 遺蹟)은 천안 신방통정 지구의 도시 개발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 구덩 유구[수혈 유구(竪穴遺構)], 도랑 등이 조사되었으며, 그 외에 조선 시대 주거지와 움무덤[토광묘] 등이 조사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신방동 331-1번지 일원에 위치...
-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오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신자경의 묘. 세조 때 활동한 신자경(申自敬)[1402~1454]의 무덤이다. 신자경은 본관이 평산이고, 태조 원종공신 신효창(申孝昌)의 아들이다. 신자경은 조선 세조 때의 문신으로 군자감, 오위 대호군, 상호군, 병조 판서 등의 관직을 거치며 중앙에서 활약하였다. 아버지 신효창의 묘는 경기도에 있지만, 충청도 목...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신풍리에 있는 원삼국 시대의 유적. 신풍리 원삼국 유적(新豊里 元三國 遺蹟)은 지표 조사를 통해 발굴되었으며, 조사 결과 파괴된 움무덤[토광묘]를 포함하여 분묘 6기와 매납(埋納)으로 추정되는 유구 3기가 확인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신풍리 산40-3번지에 있다. 신풍리 원삼국 유적은 1997년...
-
삼국 시대 천안 출신의 신라 장수. 심나(沈那)는 이름을 황천(煌川)이라고도 한다. 생몰년은 알 수 없다. 문무왕 때 아달성전투(阿達城戰鬪)에서 전사한 소나(素那)의 아버지이다. 백성군(白城郡) 사산(蛇山)[현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출신으로, 힘이 남보다 세며 날래고 민첩하였다. 사산 지역은 백제와의 접경지대로서, 백제와 크고 작은 충돌이 있을 때마...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에 있는 삼국 시대와 조선 시대의 유적. 쌍용동 용암 유적(雙龍洞 龍岩 遺蹟)은 쌍용 지구 도시 개발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삼국 시대 숯가마, 조선 시대 기와 가마, 토기 가마, 숯가마, 조선 시대 주거지, 움무덤[토광묘] 등이 확인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쌍용동 산12-1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쌍용동...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군망(君望), 호는 시북(市北) 또는 자시자(自是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안여경(安汝敬), 할아버지는 덕흥 대원군의 사위이며 선조의 매부인 광양군(廣陽君) 안황(安滉), 외할아버지는 최철강(崔鐵剛)이다. 아버지는 사간원 정언을 지낸 안응원(安應元)이고, 한성부 좌윤을 지낸 안응형(安應亨)이 숙부이다. 조성립(趙誠立)의 딸과...
-
조선 후기에 목천 현감을 지낸 인물.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백순(百順), 호는 순암(順庵)·한산병은(漢山病隱)·우이자(虞夷子)·상헌(橡軒)이며 제천(提川)에서 태어났다. 고조할아버지는 안시성(安時聖)으로 현감을 지냈고, 증조할아버지 안신행(安信行)은 종 8품의 빙고별검(氷庫別檢)이었다. 할아버지 안서우(安瑞羽)는 예조참의이고, 아버지 안극(安極)는 증 오위도총부부총관이며, 어...
-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양곡리 웃말에 있는 조선 초기의 분청사기 가마터. 양곡리 분청사기 요지(陽谷里 粉靑沙器 窯址)는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양곡리의 웃말에 있는 분청사기 요지이다. 마을에서는 이곳을 ‘즘터’라 불러 왔고 분청사기 조각과 가마터가 남아 있었다. 양곡리 분청사기 요지는 서향 사면의 구릉 하단부로, 목장이 들어선 계곡을 사이에 두고 양측...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학자.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순서(舜瑞), 호는 기원(杞園)이다. 어세공(魚世恭)의 9대손이고, 한성부 우윤을 지낸 어사형(魚史衡)의 아들이며, 경종의 장인인 어유구(魚有龜)의 형이다. 어유봉(魚有鳳)[1672~1744]은 사마시를 거쳐 1699년(숙종 25) 대과(大科)에 응시했다가 시험의 부정을 보고 과거를 포기하였다. 뒤에...
-
천안군·목천현·직산현의 건치 연혁과 천안의 역사. 천안은 충청남도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충청북도의 청원군, 진천군과 접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아산시와 남쪽으로는 공주시, 세종특별자치시에 접하고, 북쪽으로는 경기도 평택시, 안성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현재 천안은 국토의 중핵 도시로서 수도권의 배후이자 충청남도 서부 지역의 관문이며, 국도·철...
-
충청남도 천안시 중남부 지역의 조선 전기 행정 지명. 고려 충선왕 때 천안을 영주(寧州)로 고쳤다가 공민왕 때에 다시 천안부로 환원하였다. 조선 건국 후에는 1413년(태종 13) 영산군(寧山郡)으로 고쳤다가 3년 후 천안으로 환원함으로써 단 3년간 쓰였던 지명이다. 영산군은 조선 시대 천안군 고을의 영역으로 지금의 천안시 중남부 지역 일대가 이에...
-
1852년에 편간된 천안군의 읍지. 『영성지(寧城誌)』는 1852년에 편간된 2권 2책의 천안군 읍지이다. 상권은 읍지이고 하권은 『문헌록』이다. 원래 천안에는 선생안(先生案)에 인물의 사적을 함께 수록한 「문헌록(文獻錄)」이 있었다. 「문헌록」은 1577년(선조 10)에 천안 군수로 부임한 손여성(孫汝誠)이 만들기 시작했다. 이를 1627년(인조 5)에 도임한 정지경(...
-
고려 왕건이 충청남도 천안 지역의 지형을 이른 말로 천안부 설치의 계기가 된 용어. 후삼국통일 전쟁 중에 왕건은 풍수지리설을 통하여 각 지방의 호족이나 일반 백성의 인심을 자신에게 모으는데 이용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전략적인 요충지를 확보하고 그에 따라 확대된 전선을 연결하는 데에도 풍수지리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였다. 오룡쟁주지세(五龍爭珠之勢)가 곧 대표적인 예이다....
-
조선 전기 천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보성(寶城)이고 자(字)는 길보(吉甫)이며 시호는 양무(襄武)이다. 오자경(吳子慶)[1414~1478]은 1454년(단종 2) 무과에 급제하여 별시위(別侍衛)를 거쳐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함길도진무(咸吉道鎭撫), 경원부사(慶源府使)를 지내고 1466년에 무과중시와 등준시무과에 급제하였다. 그로 인해 자헌대부에 올랐다. 1467...
-
백제 온조왕은 B.C. 18년 한강 유역에 국가를 세우고 국호를 백제라 하였다. 이때 백제의 도읍으로 삼은 곳은 위례성이었다. 그런데 온조는 B.C. 5년(온조왕 14)에 다시 도읍을 하남 위례성으로 옮겼다. 따라서 초도 위례성은 한강 이북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체로 중랑천 일대로 비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직산 위례성설이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 기록되어...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에 위치한 것으로 전하는 산성.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제17권 변어전고(邊圉典故) 폐지된 산성 조에 따르면 “천안(天安) 왕자산성(王字山城) 군의 동북쪽 12리에 있다. 고려 태조가 군사를 여기에 주둔시키니, 윤계방(尹繼芳)이 아뢰기를, 다섯 용이 구슬을 다투는 형세라 하였다. 인하여 보루를 쌓고 군사를 점검하였으며, ‘왕자성...
-
고려 시대에 인명을 해치고, 재산을 약탈하던 일본 해적 집단의 침입. 왜구는 13~16세기에 우리나라와 중국 연안에서 약탈과 노략질을 일삼던 일본인 해적의 총칭이다. 우리나라에서 왜구의 활동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가 가장 심하였고, 그 중에서도 고려 말 약 40년간은 특히 그 피해가 커서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었다. 왜구는 1350년(충정왕 2)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출몰하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용곡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의 유적. 용곡동(龍谷洞) 눈돌 유적(遺蹟)은 용곡동 동일 아파트 건립 과정에서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 수혈 주거지, 조선 시대 움무덤[토광묘], 고려 시대 건물지, 조선 시대 수혈 주거지, 시대 미상의 구상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용곡동 눈돌 마을 4...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용곡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통일 신라 시기, 조선 시대의 유적. 용곡동(龍谷洞) 두터골 유적(遺蹟)은 상우 아파트 건설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수혈 주거지, 수혈 유구, 통일 신라 시기의 돌덧널무덤[석곽묘], 조선 시대 주거지,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용곡동 166-11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용곡동에 있는 구석기 시대, 조선 시대, 근대의 분묘 유적. 용곡동 분묘 유물 산포지(龍谷洞 墳墓 遺物 散布地)는 천안 세광 아파트 신축 부지 발굴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구석기 시대 유물, 조선 시대와 근대 이후의 분묘 124기, 수혈 유구 1기 등이 확인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용곡동에 위치한다. 용곡동 분...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마정리에 있는 산성. 용와산성(龍臥山城)은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마정리에 있다. 직산읍사무소에서 10번 도로를 타고 동쪽의 아산 방면으로 약 5㎞ 정도 가면 마정 산업 단지가 나온다. 이곳에서 마정 2리 미륵산[미력산] 방향으로 진입한다. 마정 2리의 배산인 미륵산에서 아산 월량리 쪽으로 약 800m 정도 떨어진 곳에 용...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용원리 일대에 있는 백제 시기의 유적. 용원리 유적, 용원리 고분군으로도 불리는 용원리 백제 유적(龍院里 百濟 遺蹟)은 공주 대학교 박물관과 서울 대학교 인문학 연구소, 충청 매장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1997년 12월부터 1998년 9월까지 조사되었다. 이 결과 청동기 시대 주거지, 원삼국 시대의 주거지, 수혈 유구, 가마, 굴...
-
충청남도 천안시 용원리 유적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의 토기. 용원리 유적은 천안시 성남면 용원리 산직 마을에 위치한다. 용원리 출토 검은 간 토기는 9호 돌덧널무덤[석곽묘]에서 2점, 72호 움무덤[토광묘]에서 1점이 출토되었으며, ‘흑색 마연 토기, 검은색 간 토기’로도 불린다. 용원리 출토 검은 간 토기는 표면이 검고 정선된 태토를...
-
충청남도 천안시 용원리 유적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의 고리자루칼 용원리 유적은 천안시 성남면 용원리 산직 마을 야산에 위치한다. 고리자루칼[환두대도(環頭大刀)]은 용원리 1호 석곽묘[돌덧널무덤]와 5호 석곽묘에서 출토되었다. 천안 지역의 백제 시기 분묘 유적에서는 다수의 고리자루칼이 출토되었는데, 청당동·두정동·화성리 등의 유적에서도 출토되었다. 고리자루칼은 최...
-
충청남도 천안시 용원리 유적에서 출토된 삼국 시대의 중국제 도자기. 용원리 출토 중국제 도자기(龍院里 出土 中國 陶磁器)는 용원리 유적의 백제 분묘에서 발견되었다. 용원리 유적은 천안시 성남면 용원리 산직 마을 야산에 위치한다. 2013년 현재까지 천안 지역에서는 3건 5점의 중국 도자기가 출토되었다. 성남면 화성리 유적에서 청자호(靑磁壺) 1점, 용원리 9호...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용정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원삼국 시대, 통일 신라, 조선 시대의 유적. 용정리 유적(龍井里 遺蹟)은 천안시 국도 대체 우회 도로[소정-배방] 건설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전기의 주거지 17기 및 수혈 4기, 원삼국 시대 숯가마 1기, 통일 신라 시기 돌덧널무덤[석곽묘] 3기와 주거지 1기, 조선 시대 분묘 등이 확인...
-
조선 후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단양(丹陽), 자(字)는 몽뢰(夢賚), 호는 운곡(雲谷)이다. 할아버지는 예조 판서, 아버지는 현령(縣令)을 지냈다. 우남양의 증손자 두 명이 천안(天安)에 살았는데, 모두 무과에 급제하였다고 전한다. 목사(牧使)를 지낸 우복룡(禹伏龍)이 종증손(從曾孫)이다. 천안의 군지인 『영성지』의 인물란에서 소개한 것으로 미루어 우남양이 천안의...
-
고려 시대 천안 목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목천(木川).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를 지낸 우방재(于邦宰)의 아들이다. 부인은 이의방(李義方)의 누이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우학유(于學儒)[?~1179]는 목주(木州)[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면] 출신으로, 성품이 활달하며 기개가 있었다고 전한다. 의종(毅宗)과 명종(明宗) 양대에 왕궁을 숙위(宿衛)하며 충성을 다했다...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운전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유적. 운전리 유적(云田里 遺蹟)은 도로 공사 과정에서 조사되었다. 청동기 시대 주거지 13기, 수혈 유구 10기, 주구 움무덤[토광묘] 19기, 움무덤 3기, 돌널무덤[석관묘] 1기, 돌덧널무덤[석곽묘] 2기, 숯가마[탄요] 1기, 조선 시대 주거지 5기 등이 확인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
천안 지역에 있었던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특수 행정 구역. 월경지는 소속 읍과 따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군현(郡縣)의 특수 구역이었다. 월경지라는 독특한 행정 구역이 존재했던 것은 큰 고을의 물자 조달 문제와 관련이 있다. 월경지는 소속된 고을과 경계를 접하지 않고 다른 지역에 동떨어져 있지만 조세는 소속 고을에서 거두었다. 이것은 과거의 연고지, 생...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쌍용동과 서북구 불당동 경계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월봉산성(月奉山城)은 천안 시내에서 남서쪽으로 쌍용동을 지나 약 1.5㎞ 정도 떨어진 월봉산에 있다. 월봉산은 해발 130m의 경부 고속 철도 천안 아산역 동쪽에 보이는 산으로, 산의 정상부 가까이에 월봉산성이 축조되어 있다. 월봉산성은 산의 정상부를 둘러쌓는 테뫼식 산성...
-
조선 시대 천안에 우거한 문신·학자. 유몽인(柳夢寅)[1559~1623]은 조선 중엽의 문장가 겸 외교가로 크게 활동하였으며, 전서·예서·해서·초서에 모두 뛰어났다. 유몽인의 동생 유몽표의 아들인 유활(柳活)이 목천의 만매촌[현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에 처음으로 살게 되었으며, 유몽인이 처벌될 때 모두 적몰되었고 1794년(정조 18)에 신원(伸寃)되었으나 제...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무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무경(茂卿)이다.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를 지낸 유임(柳稔)이며, 유시경(柳始慶)이 동생이다. 유시화(柳始華)[1691~?]는 1723년(경종 3)에 실시된 무과(武科) 별시(別試)에서 병과(丙科) 35위로 입신하였다. 읍지에 의하면 이인좌의 난에 적을 벤 공적이 있어 양무원종공...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무신. 유의신(柳義臣)[1551~1592]은 임진왜란 당시 전라우수영에 배속되어 혁혁한 무공을 세웠다. 훈련원 첨정으로 한산도 해전에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으나, 적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언정(彦正)이다. 1583년(선조 16) 알성시 병과(丙科) 68위로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1년(선조 24)에는 시사(試射)에...
-
고려 후기 천안 광덕사에 호도를 전래했다고 전하는 문신. 본관은 고흥(高興), 본래 이름은 유비(柳庇), 시호 영밀(英密)이다. 공민왕 때 좌정승을 지낸 유탁(柳濯)의 할아버지이다. 유청신(柳淸臣)[1257~1329]은 장흥부(長興府) 고이 부곡(高伊部曲) 출신으로, 선대도 모두 다 부곡 아전이었다. 당시 부곡 아전은 비록 공로가 있어도 5품을 넘지 못하였는데, 유청신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원성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유효걸의 영정 및 교지. 조선 후기의 무신 유효걸(柳孝傑)[1594~1627]은 진주 유씨 유형(柳珩)의 아들로 이괄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진무공신(振武功臣) 2등에 책록되고 진양군(晉陽君)에 봉하여졌다. 사후에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장의(莊毅) 시호를 받았다. 유효걸 장군 영정 및 교지는 1998년 7월 2...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의 윤장호가 전승 고서와 문서류.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의 윤장호가에서 전승되어 온 고문서들이다. 경서류를 제외하면 대부분 필사본이며, 조선 시대에 성리학을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흔히 소장하고 있던 경서, 시문집, 사서(史書)와 개인 문집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 중에서 천안시의 향토 유적으로 관리되는 『농역기장(農役記帳)...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윤행교[1661~1725]는 1694년(숙종 20)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천안 군수를 역임하였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장문(長文)이다. 대사간을 지낸 윤황(尹煌)의 증손자로, 할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다. 아버지는 우의정을 지낸 윤증(尹拯)이며, 어머니는 한성부 우윤을 지낸 권시(權諰)의 딸 안동 권씨(安東權氏)이다...
-
조선 후기 천안 지역의 목천 현감 및 직산 현감을 지낸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양 할아버지는 형조 판서를 지낸 이목연(李穆淵), 아버지는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이인명(李寅命)이다. 이계하는 양 할아버지인 이목연이 목천에 향저를 마련한 것을 새로이 개축 정비하여 자손들이 오래도록 살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흥선 대원군이 집권한 뒤 전주 이씨 선파(璿派)를 우대하여...
-
조선 후기 인조반정 직후 논공행상에 대한 불만으로 이괄이 내란을 일으키자 인조의 피난 행렬이 천안을 지난 사건. 1623년(인조 1) 서인 세력은 인조반정에 성공하였다. 그 결과 주도적 역할을 하였던 33인을 등위로 나누어 책록하였다. 그중 2등에 녹훈된 이괄(李适)[1587~1624]은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도모하였다. 이에 1624년 인조는 공주로 피난을 떠나게 되어...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독립 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이광악을 선무공신 3등에 봉하는 공신 교서. 선조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전쟁 중에 공을 세운 이들을 공적별로 분류하여 공신(功臣) 책봉을 하였는데, 이때 전장에서 왜적을 치거나 군사와 군량미를 주청(奏請)했던 이들을 선무공신에 봉하였다. 이광악(李光岳)[1557~1608]은 선무공신 3등으로...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응설(應說)이다. 통훈대부(通訓大夫) 이노(李櫓)의 아들이다. 이기빈(李箕賓)[1563~1625]은 1583년(선조 16) 별시(別試) 병과(丙科) 55위로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천 부사에 제수되었고, 1593년에 진주 목사로 승진하였다. 이후 1599년 강계 부사...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무신. 이덕회(李德恢)[?~1597]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어가를 호종하였고, 정유재란 때 남원 판관으로 있던 중 남원성 전투에서 순국하였다. 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경렬(景烈)이다. 아버지는 첨정을 지낸 이극(李克)이다. 이덕회는 직산 삼동면 산음리 출신으로, 20세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
조선 전기 천안 출신의 문신. 이득전(李得全)은 천안의 이속(吏屬) 출신이다. 연산군 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학문을 인정받았지만, 가문이 미미하다는 이유로 체직되어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본관은 천안(天安)이라고 하기도 하고, 『영성지』에는 경주(慶州)라고 되어 있다. 자는 자완(子完)이다. 아버지는 호장(戶長)를 지낸 이치문(李致文)이고, 부인은 장계수(長溪守) 이섬...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향반. 이만림(李萬林)은 직산현 이동면 당곡리[현 천안시 입장면 호당리] 사람으로, 이인좌의 난 때 직산읍의 사무를 적절하게 처리한 인물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 반란군으로부터 직산읍이 위태롭게 되자 당시 현감이었던 전근사(全近思)가 황곡(荒谷)으로 도망가 읍내가 텅 비게 되었다. 이때 이만림이 김근사에게 가서 항의하기를 “...
-
조선 후기 천안에 우거한 문신. 이목연(李穆淵)[1785~1854]은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 대군(廣平大君)의 후예이다. 서울과 광주에서 살아온 문중이지만, 목천이 십승지지(十勝之地)로 꼽히는 살기 좋은 고장이며 학문을 숭상하는 고장이라고 여겨 목천과 인연을 맺었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춘(伯春), 호는 소소(笑笑)이다. 할아버지는 이창중(李昌中)이고, 아버...
-
조선 후기 임진왜란 중인 1596년에 충청도 홍산에서 이몽학 등이 역모를 일으키자 충청·전라 지역민들이 크게 호응하였으나 진압된 사건. 이몽학(李夢鶴)[?~1596]은 왕실의 서얼 출신으로 임진왜란 중 민심이 이반된 틈을 이용해 모속관(募粟官)[식량을 모으는 임무를 맡은 관리] 한현과 함께 거사를 계획하고 충청도 홍산(鴻山) 무량사에서 반란군을 규합하였다. 1596년 7...
-
조선 후기 천안 목천에 묘소를 조성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원(聖元)[성원(性元)], 호는 지산(芝山)이다. 광평 대군의 17대손이며 비서감승(秘書監丞)을 지낸 이계하(李啓夏)의 아들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형조 판서를 역임한 이목연(李穆淵), 할아버지는 판의금부사를 지낸 이인명(李寅命)이다. 대대로 서울과 광주에서 살아온 문중이나 목천이 십승지지(十勝之地)로 꼽히는 살...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효자·의병장. 본관은 수안(遂安), 자는 중수(仲綏), 호는 송담(松潭) 또는 일운 거사(一雲居士)이다. 참판을 지낸 이영견(李永肩)의 고손자이고, 승지 이익령(李益齡)의 증손자이다. 할아버지는 사도시 직장을 지낸 이생은, 아버지는 양양 도호부사를 지낸 이주국이며, 어머니는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동생인 이인장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학문을...
-
조선 시대 천안에 우거한 학자. 본관은 완산(完山), 호는 여촌(麗村)이다. 감사를 지내고 천안 육현사(六賢祠)에 배향된 이승벽(李承璧)의 고손자이다. 이속(李涑)은 도학과 문장으로 가훈을 계승하였으며, 서울에서 내려와 고상한 도리를 행한 학자이다. 서울에서 내려와 고상한 도리를 행한 환성(歡城)의 유일(遺逸)이라 하는데, ‘환성’은 천안을 말하는 것이고, ‘유일’은 도...
-
조선 후기 천안에 우거한 문신·학자. 이수해(李壽海)[1693~?]는 영조 재위 기간 주로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근무하면서 강직한 언론 활동을 전개하였다. 학행(學行)으로 네 차례에 걸쳐 참봉에 제수되었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일여(一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동명(李東溟), 할아버지는 이정화(李鼎華)이다. 아버지 이광의(李廣義)와 김만증(金萬增)의 딸인 어머니 광...
-
조선 시대 천안 지역에 우거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종규(宗圭), 호는 분곡(盆谷)이다. 아버지는 충의위(忠義衛)를 지낸 이선로(李仙櫓)이다. 이승벽(李承璧)[1554~1638]은 1585년(선조 18) 식년시(式年試)에서 진사(進士) 2등(二等) 16위로 합격하였다. 이승벽은 광해군(光海君)이 인목 대비(仁穆大妃)를 서궁(西宮)에 유폐하고 영창...
-
충청남도 천안시에 묘소를 두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자는 돈시(敦詩), 호는 조암(釣巖),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이수장(李壽長), 증조할아버지는 이기(李夔), 할아버지는 이정화(李廷華)이다. 아버지는 정사공신(靖社功臣)으로 우찬성까지 오른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이고, 어머니는 인동 장씨로 증 참판 민(旻)의 딸이...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시백의 묘. 이시백(李時白)[1581~1660]은 연평 부원군 이귀(李貴)[1557~1633]의 장남으로 부자가 함께 인조반정에서 공을 세워 공신에 올랐다.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등 인조 초기의 국가적 변란 속에서 큰 공을 세우며 활약하였지만, 1650년(효종 1) 김자점(金自點)의 역모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시백의 신도비. 이시백(李時白)[1581~1660]은 연평부원군 이귀(李貴)[1557~1633]의 장남으로 1623년 인조반정에서 공을 세워 정사공신 2등으로 가선대부에 올랐다. 또한 연양군(延陽君)에 봉해졌으며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큰 공을 세웠다. 훗날 연양부원군에 봉해지고 1655년 영의정이 되었으며...
-
조선 전기 천안에 우거한 문인·학자. 이식(李埴)[1463~1502]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진사에 입격한 후 천안에 우거하며 학문과 후세 교육에 힘을 쏟았다. 이식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 아들 이해(李瀣)와 이황(李滉)에게 이어져 큰 성과를 이루었다.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기지(器之)이다. 고조할아버지 이자수(李子脩)는 고려 말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이 통헌대부 판전...
-
조선 시대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이암(李巖)[?~?]은 천안 군수를 역임하는 동안 치적이 뛰어나 청주 목사로 승진되었다. 1594년(선조 27) 천안 군수로 재임 시 도내 수령 중에서 가장 치적(治績)이 뛰어나 이조(吏曹)의 천거로 청주 목사에 특진되었다. 이후 1599년 안동 부사를 거쳐 1604년 연안 부사가 되었다. 이듬해인 1600년 선정으로 명망이 높아 왕...
-
조선 후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졸재(拙齋)이다. 천안 육현사(六賢祠)에 배향된 분곡(盆谷) 이승벽(李承璧)의 7대손이다. 이영록(李永祿)은 강화 유수를 지낸 일신재(日新齋) 홍락명(洪樂命)의 문인이다. 부모에게 효성스럽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었으며, 문학에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여러 차례 임금에게 천거되었으나 끝내 품계를 받지는...
-
개항기 천안 출신의 유학자. 이유흥(李裕興)[1859~1923년]은 근대 개항기에 활동하였던 유학자이다. 동학 농민 운동 당시 다른 집들은 모두 약탈을 당하거나 위협을 받았지만, 이유흥의 집은 참된 학자의 집이라고 하여 침탈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이유흥은 나라의 변란을 미리 예견하고 사람들에게 피난처를 알려 주기도 하였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중(思中),...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이윤신(李潤身)[1689~?]은 1746년(영조 22) 천안 군수를 역임하고 함평 서장관을 지냈다. 천안의 『문헌록』을 속간하였다. 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덕중(德仲)이다. 할아버지는 이지성(李之星)이고, 아버지는 이인상(李寅相), 어머니는 최후식(崔後寔)의 딸이다. 1717년(숙종 43) 숙종이 윤선거(尹宣擧)와 그의 아들 윤증...
-
조선 후기 천안에 우거했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기영(祈永)이다. 용궁 현감(龍宮縣監)을 지낸 이일연(李一淵)의 아들로, 판서 이목연(李穆淵)에게 입양되었다. 아들은 이교하(李敎夏)와 이경하(李敬夏)이다. 양아버지 이목연(李穆淵)[1785~1854]은 세종의 다섯째 아들인 광평 대군(廣平大君)의 후예로 조상대부터 대대로 서울과 광주 지역에서 살다가 목천이 십승지지(十勝...
-
조선 후기 영조 즉위 직후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 일부가 연합하고 이인좌가 중심이 되어 반란을 일으킨 사건. 경종이 재위 4년 만에 죽고 영조가 즉위하자 정권에서 배제된 소론과 남인 일부 세력은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기 위한 반란을 일으켰다. 이인좌(李麟佐)[?~1728]가 대원수가 되어 반란을 지휘하였고, 반란군은 충청도 청주를 점령하면서 북진하기 시작하였다. 이...
-
조선 후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학자.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사흥(士興)이다. 통덕랑(通德郞) 이식(李埴)의 아들이다. 이종렬(李鍾烈)[1734~?]에 대한 기록은 자세하지 않다. 1734년(정조 10)에 태어났으며, 거주지는 천안(天安)이고, 16세 되던 해인 1809년(순조 9) 증광시(增廣試)에서 생원(生員) 3등(三等) 54위로 합격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신. 이중명(李重明)[1605~1672]의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자문(子文), 호는 안곡(安谷)이다. 아버지는 이사금(李師金)이고, 어머니는 상주 김씨(尙州金氏)이다. 부인 김제 조씨(金堤趙氏)와의 사이에 1남 2녀, 춘천 박씨(春川朴氏)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1605년(선조 38) 8월 9일 천안군 고좌리에서 태어났다. 이승벽(...
-
고려 후기 천안 군수를 지낸 문신·학자. 이집(李集)[1314~1387]은 1347년(충목왕 3) 문과에 급제한 뒤, 정몽주(鄭夢周)·이색(李穡) 등과 교유하였다. 본관은 광주(廣州). 본명은 이원령(李元齡)이고, 자는 성로(成老), 호는 묵암자(墨巖子)·호연(浩然)·둔촌(遁村)이다. 고려수절신(高麗守節臣)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이당(李唐)이다. 문과에 급제한 뒤 합...
-
조선 후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아산(牙山)이며, 호는 어은(於隱)이다. 고도암(古道菴) 이심영(李心永)의 아들이다. 이태로(李泰魯)[?~?]는 일찍부터 시서와 예절을 익혀 가정의 가르침을 따랐고, 태화산 암벽의 석실에서도 수행하였다. 중년에 이르러 5대조인 안곡(安谷) 이중명(李重明)의 문집과 아버지 이심영의 문집을 간행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문집이 있...
-
조선 전기 천안 목천 지역에 우거한 문신.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광덕리에는 이곳에 청주 이씨(淸州李氏)가 살게 된 내력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전 장자가 상류동인 절골에 살았는데 청주 이씨의 중시조 이하성(李夏成)이라는 사람이 충청 감사로 있어 이곳을 순시하게 되었다. 내를 건너는데 쌀뜨물이 많이 내려오므로 사연을 물으니 전 장자의 집에서 오늘 일을 하므로 일꾼의 밥을...
-
조선 시대 천안 지역에 우거한 문신. 본관은 성주이며 자는 자용(子用), 호는 남악(南嶽)이다. 부인은 전득중(全得中)의 딸인 천안 전씨(天安全氏)이다. 이협(李筴)[1583~1665]은 진사로 등과하여 영릉 참봉을 지냈다. 광해군 때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낙향하였다. 조정에서 여러 차례 부름을 받았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절...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동보(同甫), 호는 지촌(芝村),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부제학을 지낸 이단상(李端相)의 아들이다. 이희조(李喜朝)[1655~1724]는 1680년(숙종 6)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건원릉 참봉(健元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하였고, 다시 천거되어 전설별검(典設別檢)에 임명되었다. 이어서 의금부 도사·공조...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용곡동 일봉산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일봉산성(日峰山城)은 천안 시내의 서남 방면에 있는 일봉산에 있다. 일봉산성은 주변에 서북의 월봉산성과 봉접산성과 연결되고, 동북쪽에는 사산성이, 동쪽으로는 흑성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일봉산성의 전체적인 형태는 산 정상을 둘러쌓는 방식인 테뫼식 산성으로 볼 수 있으며, 동-서로 길게...
-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충청남도 천안 지역을 포함한 조선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 1591년 일본 전국을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 침공을 계획하고 1592년 수륙 양군을 편성하여 부산포를 통해 조선을 침략하였다. 부산과 김해를 통해 총 20만 명에 이르는 대군이 조선 땅에 이르렀다. 조선은 주요 군관을 임명하여 대비토록 하였으나 충주 전...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매성리에 있는 산성. 천안시 병천읍사무소에서 시도 6번 도로를 타고 북쪽 방향으로 가다가 약 3㎞ 가면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매성리 작성 마을이 나온다. 작성산성(鵲城山城)은 작성산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작성산성은 표고 400m의 작성산 상단부를 둘러쌓는 테뫼식 산성으로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성을 축조한 형식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에 있는 원삼국 시대의 주거지. 장산리 주거지 유적(長山里 住居址 遺蹟)은 천안 상록 휴양소 건립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원삼국 시대 주거지 8기, 관개 수로, 삼국 시대 말기의 돌덧널무덤[석곽묘] 2기와 고려 시대 이후의 움무덤[토광묘] 13기가 확인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장산리 산55-1번지 일대...
-
조선시대부터 활성화된 시장으로, 천안시 지역에서 열리는 5일장. 장시는 조선 시대 이후 형성되었던 시장을 뜻한다. 조선 초기에는 상업을 억제하는 정책 때문에 정기적인 장시가 형성되기 어려웠지만, 향시(鄕市) 형태의 시장은 존재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5세기경 농업 기술이 향상되자 잉여 농산물을 팔기 위해 한양 주변에 장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점차 지방에까지 확산되어 순조 대에...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무신·의병. 장익[1549~1592]은 두지동(斗支洞)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으로 봉직하다가 사직하고 돌아오는 길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에 참여했다. 1592년 10월 죽산과 진천 사이 전투에서 무수히 많은 적을 죽이고 전사하였다. 장익[1549~1592]은 두지동(斗支洞) 출신으로, 1583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수문장에...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출신의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운장(雲長)이다. 태조 때의 개국일등공신(開國一等功臣)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장사길(張思吉)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갑산 군수 장진충(張進忠)이며, 증조 할아버지는 대호군(大護軍) 장득기(張得紀)이고, 할아버지는 내금위장(內禁衛將) 장훈(張訓)이다.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장순...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치등(穉謄)이고, 호는 검와(儉窩)이다. 고려 말 청백리로 알려진 백헌(栢軒) 전신(全信)의 후예이다. 전사성(全泗性)은 일찍부터 학문에 뜻을 두고 오촌 선생(鰲村先生)에게 학문을 배웠다. 항상 바른 자세로 글을 읽었으며, 늙어서도 『주역(周易)』을 열심히 공부하여 고을 사람들이 칭송하였다고 전한다. 1934년 고...
-
삼국 시대 백제 개국공신으로 정선 전씨, 천안 전씨를 비롯한 우리나라 전씨의 도시조(都始祖). 전섭(全攝)은 기원전 18년경에 활동했던 인물로, 온조왕이 백제를 건국할 때 그를 보좌하였던 10명의 개국공신 가운데 한 명으로 전한다. 이후 전섭은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져 천안시 풍세면 지역에 거주하였다고 하며, 천안 전씨를 비롯한 우리나라 전씨의 도시조(都始祖)가 되었다....
-
조선 후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학자.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백헌(柏軒), 호는 성존재(成存齋)이다. 고려 말 청백리로 알려진 백헌(栢軒) 전신(全信)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전도원(全道源)이다. 아들 전재유(全在裕)는 혜민서 참봉(惠民署參奉)을 지냈고, 손자 전창국(全昌國)은 1822년 식년시(式年試) 율과에 3위로 등과하였다. 전치성(全致性)은 평소 효성이...
-
조선 시대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정구(鄭逑)[1543~1620]은 문인인 황종해(黃宗海)를 통해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을 모신 목천의 도동 서원 건립에도 관여한 것으로 확인된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할아버지는 사헌부 감찰을 지낸 정응상(鄭應祥), 아버지는 충좌위(忠佐衛) 부사맹(副司孟)을 지낸 정사중(鄭思中)이며,...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정동만(鄭東萬)[1772~1841]은 천안 군수를 역임한 뒤 남원 도호부사로 승진하였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사복시첨정을 거쳐 광주 판관을 지냈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일원(一元), 아버지는 정언복(鄭彦復)이며, 목사를 지낸 정화순(鄭華淳)에게 입양되었다. 처는 군수를 지낸 박삼원(朴參源)의 딸이다. 1807년(순조 7) 생원시...
-
조선 후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호는 시은(市隱)이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8대손이다. 정재준(鄭在俊)[?~?}은 여러 유학자들과 함께 1789년, 1799년, 1800년 3차례 상소를 하였다. 정재준은 조선 후기의 뛰어난 학자인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의 문인으로, 학문과 문장으로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안곡집...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정존중(鄭存中)[1721~1798]은 천안 군수 재임 시 전염병이 돌아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고 수습했다. 이후 벼슬이 판서에 이르렀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사정(士靜)이다. 영의정을 지낸 정광필(鄭光弼)의 후손이며, 정제선(鄭濟先)의 증손자이다. 할아버지는 판서를 지낸 정형익(鄭亨益)이며, 아버지는 정홍상(鄭弘祥), 어머니...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정지경(鄭之經)[1586~1634]은 천안 군수였던 정근(鄭謹)의 아들로 부자가 모두 천안 군수를 지냈다. 천안 군수 재임 시 전임 군수 손여성(孫汝誠)이 지은 『문헌록』을 바탕으로 『속문헌록』을 간행하고, 고을의 효자와 열녀를 포상하였다.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상백(常伯), 호는 기은(機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정구(鄭球)이고...
-
조선 시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직산현의 아전. 조계남(趙繼南)[?~?]은 직산현 아전으로 있으면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큰 공을 세웠다. 본관은 직산(稷山). 백제 개국공신 조성(趙成)의 후손이다. 대대로 직산의 거족이었으나, 할아버지 대에 가문이 몰락하여 향역에 종사하게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직산현은 교통의 요충지이자 중요한 군사적 거점이었다. 명나...
-
조선 후기 천안에 우거했던 문신.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낙보(樂甫), 호는 수와(睡窩)·휴와(休窩)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형조 판서를 지낸 조계원(趙啓遠), 할아버지는 괴산 군수를 역임한 조희석(趙禧錫), 아버지는 도정 조태래(趙泰來)이다. 어머니는 윤계(尹堦)의 딸이다.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인 조태채(趙泰采)의 조카이다. 조도빈(趙道彬)[1665~1729]은 16...
-
조선 전기 천안 목천 지역에 우거한 문신.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경부(警夫), 호는 인촌(仁村)이다. 태조의 배향 공신이며 개국 공신인 조인옥(趙仁沃)의 증손자이고,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 조뇌(趙賚)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이조 참의를 지낸 조순생(趙順生)이고, 어머니는 사정 원유용(元有容)의 딸 원주 원씨(原州元氏)이다. 조명(趙銘)[?~1478]은 16세에...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조문명(趙文命)[1680~1732]은 천안 군수를 역임하였으며,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렀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숙장(叔章), 호는 학암(鶴巖),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조형(趙珩), 할아버지는 조상정(趙相鼎)이다. 아버지는 도사(都事)를 지낸 조인수(趙仁壽)이고, 어머니는 김만균(金萬均)의 딸이다. 1705년(...
-
조선 왕조가 지속되었던 1392년에서 1910년까지 시기의 천안 지역의 역사. 1914년에 천안군(天安郡)·목천군(木川郡)·직산군(稷山郡)이 통합되어 천안군이 되었고, 1963년에 천안시와 천원군으로 분리되었다가, 1991년에 천원군이 천안군이 되고, 1995년에 다시 통합되어 현재의 천안시가 되었다. 따라서 1914년 이전의 천안시 지역은 천안(天安)·목천(木川)·직산(稷山) 지...
-
충청남도 천안시에 있는 매장 주체부를 중심으로 그 둘레에 도랑을 굴착한 형태의 분묘. 주구묘(周溝墓)는 매장 주체부를 중심으로 그 둘레에 도랑을 굴착한 형태의 분묘이다. 1990년대 초반 천안 청당동과 보령 관창리에서 주구묘가 발견된 이후로 마한의 고지(故地), 특히 한반도 서남 해안을 따라 많은 유적이 조사되고 있다. 낮은 구릉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집단을 이루...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의 삼국 시대 고구려와 신라 당시 행정 지명. 지형이 높아 천수답(天水畓)이 많고 가뭄으로 피[稷]가 무성하여 피산이라 칭하던 것이 직산으로 바뀐 것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직산에 본래 백제의 초도 위례성(慰禮城)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가 졸본부여(卒本扶餘)로부터 이곳에서 개국하고 도읍하였다고 한다....
-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 지역에 설치된 고려 및 조선 시대 지방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직산현 조에 보면 직산현은 “동쪽으로 진천현(鎭川縣) 경계까지 33리[12.96㎞]이고,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경계까지 21리[8.247㎞]이다. 북쪽으로 같은 군(郡) 경계까지 25리[9.818㎞]이며, 남쪽으로 천안군(天安郡) 경계까지 10리[3.927㎞]...
-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 군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직산현의 관아. 직산현 관아(稷山縣 官衙)는 조선 시대 직산현의 관아 시설로,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의 형태이고 일부는 면사무소로 쓰이다가 다시 복원되었다. 조선 후기의 지리지에는 69칸에 이르는 관아 시설물이 기록되어 있지만, 지금은 내동헌(內東軒)·외동헌(外東軒)·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4동의 건물...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치숙(致叔), 호는 지수재(止水齋)이다. 할아버지는 채시경(蔡時鏡), 아버지는 채봉장(蔡鳳章)이다. 채응복(蔡膺福), 채응정(蔡膺禎)은 형이다. 승지와 부사를 지낸 병조판서를 한 채위하(蔡緯夏)가 아들이다. 채응상(蔡膺祥)[1689~1754]은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의 문인이 되어 성리학을 깊이 궁구하였고,...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가전리에 있는 조선 시대 장군 김시민의 생가 유허지. 김시민(金時敏)[1554~1592]은 1554년(명종 9) 충청도 목천현 백전동(栢田洞)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면오(勉吾),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무과에 급제해 훈련원 판관(訓練院判官), 군기시 판관(軍器侍判官), 진주 통판(晋州通判) 등을 역임하였고...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 천안 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후기 박장원의 영정.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은지리 은석산에는 암행어사로 유명한 고령 박씨(高靈朴氏) 박문수의 묘가 있고, 그 아래에 재실인 충헌사(忠憲祠)가 건립되어 있다. 충헌사에 박장원(朴長遠)[1612~1671]의 영정(影幀)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박장원은 바로 박문수의 증조할아버지이다. 박장원 영정...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 천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이귀와 이시백 부자의 영정. 천안 이귀·이시백 영정(天安 李貴·李時白 影幀)은 이귀[1557~1633]와 이귀의 아들 이시백[1581~1660], 이시방(李時昉) 형제가 모두 1623년 인조를 영립하는 데 공을 세워 정사공신(靖社功臣)으로 책록되고 하사받은 영정이다. 천안 이귀·이시백...
-
고려 시대 태조 왕건이 930년(태조 13)에 군사적 목적으로 도솔의 땅을 합해 만든 행정 구역. 백제에 기원을 두고 있는 직산·목천과는 달리 천안군의 출발은 고려 건국 이후였다. 고려 시대 천안 지역은 천안부와 그 영현인 풍세현과 직산현, 그리고 청주의 목주(木州)가 있었다. 930년(태조 13)에 삼국의 전략적 요충지인 동서 두솔(兜率)을 합해 천안도독부로 삼았다....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백석동과 성동동에 있는 백제 토성 및 성 안에 있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유적. 천안(天安) 백석동(白石洞) 선사 유적(先史 遺蹟) 및 백제 토성(百濟 土城)은 천안 제3공단 조성 부지 발굴 과정에서 공주 대학교 박물관이 1996년 실시한 3차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일명 ‘백석동 토성’으로도 불린다. 천안시 백석동 지역으로 동쪽...
-
고려 시대 930년(태조 13)에 도솔의 땅을 합해 만든 행정 구역. 백제에 기원을 두고 있는 직산·목천과는 달리 천안군의 출발은 고려 건국 이후였다. 고려 시대 천안 지역은 천안부와 그 영현인 풍세현과 직산현, 그리고 청주의 목주(木州)가 있었다. 930년(태조 13)에 삼국의 전략적 요충지인 동서 두솔(兜率)을 합해 천안부로 하고 도독을 두었다. 태조 왕건...
-
충청남도 천안시 북면 운용리와 입장면 호당리의 경계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천안 성거산 위례성(天安 聖居山 慰禮城)은 『삼국유사』에 ‘직산에 백제의 첫 도읍지인 위례성’이라는 기록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보면 1,690척(尺)의 성이 있고 우물이 하나 있다고 전해지며, 『삼국유사』에서는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B.C. 5년(온조 13)에 이곳으로부...
-
충청남도 천안시 성남면 화성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천안 세성산성(天安 細城山城)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록지(大麓誌)』 등에 기록이 전하고 있고, 1942년에 간행된 『조선 유적 조사 자료』에는 “성남면 화성리, 세성산의 남쪽 경사면 산꼭대기에 석루의 자취가 남아 있지만 훼손되어 옛 모습을 알 수 없다. 삼한 시대의 농성(籠城)이라...
-
충청남도 천안 지역 선사 시기에서 철을 사용하던 시대. 한국 고고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서기 전 300년에서 서력기원 전후 시기까지를 초기 철기 시대, 서력기원 전후로부터 서기 300년까지를 원삼국 시대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를 합쳐 철기 시대(鐵器時代)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철기를 사용한 시기에 대해 여러 학설이 있으나,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크게...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청당동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청당동 산성(靑堂洞 山城)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청당동에 있다. 천안 시내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1번 국도를 따라 2㎞ 정도 가면 보이는 도리티 고개의 서쪽에 청당동 산성이 위치한다. 청당동 산성의 동향 사면에는 2013년 현재 선문 대학교 천안 캠퍼스가 자리하고 있다. 청당동 산성은 산 정...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청당동에 있는 원삼국 시대의 분묘 유적. 청당동 원삼국 유적(靑堂洞 元三國 遺蹟)은 원삼국 시대 유적으로 1986년부터 1994년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조사되었다. 모두 25기의 무덤이 확인되었으며, 2세기 전반에서 3세기 전반에 해당하는 유적이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청당동 산97-1번지에 있다. 청당동 원삼...
-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청동기를 도구로 만들어 사용한 시대. 우리나라에서 청동기 시대(靑銅器 時代)로의 이행은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기원전 9~8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의 연구 성과로 기원전 1300년경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늦어도 기원전 10세기 이전에 형성되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청동기 시대를 특징짓는 가장 큰 요소는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리에 있는 산성. 청룡산성(靑龍山城)은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매당리에 있다. 광덕면사무소에서 신흥교를 건너면 광덕면 매당리 마을이 나온다. 이곳에서 풍세 방면으로 629번 도로를 따라가면 매당 3리 당하 마을의 배산인 표고 150m의 청룡산이 나타난다. 청룡산성은 청룡산의 정상에 위치하며, 청룡산의 동쪽으로는 저지대의 협곡 형태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청수동에 있는 조선 시대 분묘 유적. 청수동 분묘 유물 산포지(淸水洞 墳墓 遺物 散布地)는 천안 청수 지구 택지 개발 과정에서 조사되었다. 통일 신라 시기의 돌덧널무덤[석곽묘], 조선 시대 움무덤[토광묘], 회곽묘, 주거지 등이 확인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청수동에 위치한다. 천안 청수동 유적은 2006년 9...
-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옛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백제 때인 서기 18년(온조왕 36) 탕정성(湯井城)을 쌓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탕정이라는 지명은 백제 건국 당시 이미 있었다. 원래 백제의 탕정군이었는데, 671년(문무왕 11) 탕정주로 승격되었다가 10년 뒤 681년(신문왕 1) 탕정군이 되었다. 경덕왕 때 그대로 탕정군이라 하였고, 음봉(陰峯)과 기...
-
충청남도 천안 지역에서 선사 시대에 점토를 불에 구워 만든 용기. 토기(土器)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용되었는데, 정착 생활에 따른 저장 용기의 필요로 출현하였다. 토기는 보통 500~1,000℃ 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 유약을 바른 것을 자기(磁器)라고 부른다. 토기는 제작이 쉽고 파손이 많아 선사 시대 유물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장송리에 있는 산성. 하장 토성은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장송리에 있다. 동면사무소에서 진천 방향으로 국도 21번을 따라가다 보면 동산리에서 죽계리로 통하는 소로(小路)가 나온다. 소로를 따라 약 1㎞쯤 안으로 들어가 하장으로 통하는 길을 따라가면 하장의 마을이 나오고, 이 마을에서 동남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야산에 하장 토성이 위치한...
-
충청남도 천안시에 묘소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한명회(韓明澮)[1415~1487]는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수양 대군(首陽大君)을 보좌하여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을 세웠으며,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을 좌절시켰다.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워 공신으로 책봉된 이후 성종 조까지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행사하였던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훈구 대신이다. 본관은 청주, 자...
-
충청남도 천안시 천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한명회의 일대기를 기록한 지석. 한명회(韓明澮)[1415~1487]는 계유정난 때 수양 대군을 도와 왕위에 오르는데 공을 세워 공신으로 책봉된 이후 성종 조까지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행사하였던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훈구 대신이다. 한명회의 일대기를 기록한 지석(誌石)은 한명회 사후 10년 천안시 수신면에...
-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속창리에 있는 조선 전기 한명회의 신도비. 한명회(韓明澮)[1415~1487]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 및 사우당(四友堂),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장순 왕후(章順王后)[예종의 비]와 공혜 왕후(恭惠王后)[성종의 비]의 아버지이다. 젊은 시절 수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40세가 다 되어...
-
조선 시대 천안의 목천 지역에 우거했던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사명(士明), 호는 송암(松巖)이다. 고려 말 판서를 지낸 한철충의 6대손이다. 할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한팽조(韓彭祖), 아버지는 한민(韓敏), 형은 참봉 한응기(韓應箕)이다. 목천현(木川縣) 근동면(近東面) 반계(磻溪)에서 형인 한응기와 함께 처음으로 살아 목천과 인연을 맺었다. 아들 한덕해(韓德海)는 16...
-
고려 충렬왕 때에 원(元)나라의 반란군인 합단(哈丹)의 무리가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가 속했던 고려를 침입한 사건. 1287년(충렬왕 13) 원(元)의 세조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내안(乃顔)의 잔당인 합단(哈丹)이 1290년(충렬왕 16) 1월 무리를 이끌고 고려의 동북면으로 침입하였다. 장군 오인영(吳仁永) 등이 원나라에서 돌아와 “내안의 잔당 합단적(哈丹賊)이...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문원(聞遠), 호는 희암(希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현석린(玄碩璘)이고, 할아버지는 현구손(玄龜孫), 아버지는 현숙(玄璹)이다. 동생으로 현덕민(玄德敏)·현덕립(玄德立)·현덕휘(玄德輝)가 있으며, 부인은 정길(鄭吉)의 딸이다. 현덕승(玄德升)[1564~1627]은 1588년(선조 21)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
신라 말 고려 초의 사회 변동을 주도적으로 이끈 천안 지역의 세력. 호족이란 원래 중국의 남쪽에서 산출되는 털이 곧고 질 좋은 짐승을 뜻하는 호(豪)와 친족집단을 뜻하는 족(族)이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다. 따라서 호족은 지방에 있는 뛰어나고 우수한 친족 집단이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호족의 기원은 신라 말 지방으로 낙향한 진골 귀족이나 6두품 계층, 주(州)·군(郡)의 이직자(...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학자.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덕보(德保), 호는 홍지(弘之)이다. 담헌(湛軒)이라는 당호(堂號)로 널리 알려졌다.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지구의 자전을 주장한 실학자 겸 과학 사상가이다. 홍대용(洪大容)[1731~1783]은 1731년(영조 7) 충청남도 천안군 수신면 장산리 수촌의 노론 명문가에서 출생하였다. 할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홍용조(...
-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담헌 홍대용의 묘.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는 조선 후기 북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로 손꼽히는 담헌 홍대용(洪大容)[1731~1783]의 고향이다. 1783년 10월 23일 53세 되던 해에 세상을 뜨자 장례를 마친 후 12월에 현 위치에 묘를 조성하였다. 부인 한산 이씨와 함께 조성된 묘이다. 홍대...
-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 장명 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홍대용의 생가 터. 충청남도 천안시 수신면 장산리 장명 마을은 담헌 홍대용이 태어난 곳이다. 담헌 홍대용(洪大容)[1731~1783]은 조선 후기 북학파의 대표적인 학자 중 한 사람이다. 생가는 목조 기와집이었다고 하는데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었고, 천안시에서 2013년 현재 복원 사업을...
-
충청남도 천안시에 묘소를 두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홍양호(洪良浩)[1724~1802]는 조선 시대 영조 때 실학파의 거두이며 대학자이다. 박학한 문장으로 영조의 총애를 받고 그 이름을 떨쳤다.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초명은 양한(良漢)이었으며, 자는 한사(漢師)이고, 호는 이계(耳谿),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할아버지는 단양 군수를 지낸 홍중성(洪重聖...
-
충청남도 천안시 용곡동 일봉산 중턱에 있는 조선 후기 홍양호의 묘. 이계(李溪) 홍양호(洪良浩)[1724~1802]는 조선 후기 실학파의 대학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특히 문장이 바르면서 숙련되고 법칙이 있어서 당시 조정의 신료 중에 따를 사람이 없다는 평을 받았다. 충청남도 천안시 용곡동 일봉산 아래 묘역은 부인 동래 정씨와 합분(合墳)의 형태이며 상석과 묘...
-
충청남도 천안시 성남면 봉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홍진도의 영정. 홍진도 선생 영정(洪振道 先生 影幀)은 조선 중기 문신인 홍진도[1584~1649]의 공신도상(功臣圖像)으로 추측되는 초상이다. 홍진도는 1613년(광해군 5) 별제(別提)를 거쳐 목천 현감이 되고 의금부로 전임되어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광해군이 능창군(綾昌君)을 살해한 후 능창군의...
-
조선 후기 천안 군수를 역임한 문신. 홍탁(洪雨+濯)[1597~1651]은 천안 군수 재임 시 선정을 베풀었고, 이후 부사에 승진하였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행가(行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부사용(副司勇)을 지낸 홍우전(洪禹甸)이고, 할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홍수(洪脩)이다. 아버지는 사헌부 대사헌을 지낸 홍이상(洪履祥), 어머니는 선무랑(宣務郞) 김고언...
-
천안시 동면 화계리에 위치한 백제 시대 토축 산성. 병천읍사무소에서 북쪽으로 약 3km 정도 가면 도원리 도원 마을이 나온다. 화계리 산성은 도원 마을의 동편에 있는 도원리와 동면 화계리 사이에 있는 산 정상부에 위치한다. 성의 잔존 형태는 그리 양호하지 못하다. 성의 둘레는 약 600m 정도이며 성의 안쪽 부분을 삭토하여 내리는 편축의 방법으로 축조하였다....
-
충청남도 천안시 성남면 화성리에 있는 백제 시기의 무덤. 화성리 고분(花城里 遺蹟)은 1969년에 주민의 신고로 알려졌고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덧널무덤[목곽묘]와 널무덤[목관묘]이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을 통해 지역의 유력한 재지 세력의 무덤임을 알 수 있으며, 중앙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충청남도 천안시 성남...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오룡동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행궁. 화축관(華祝館)은 조선 시대에 천안군에 건립되었던 행궁이다. 천안 군수 노대하(盧大河)가 1602년(선조 35)에 건립하였고, 천안 군수 조경빈(曺敬彬)이 중수하였다. 이에 대한 우암 송시열의 기문이 남아 있다. 그 후로도 수차례 중수하였고 일제 강점기에는 경찰서와 헌병대 건물로 사용되다 이후 모두 철...
-
충청남도 천안시 동면 장송리와 진천군 진천읍 지암리에 걸쳐 있는 삼국 시대 산성. 고문헌 기록에 환희산성(歡喜山城)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어 축조 경위 등의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삼국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1932년에 간행된 『상산지(常山誌)』에 환희산(歡喜山)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산성의 존재는 언급되지 않았고, 그 후 조선 총독부에서 간행한 『조선 보물...
-
조선 후기 천안 출신의 무신. 황박(黃珀)[1573~1637년]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병자호란에 종군하여 전사한 무장이다.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백옥(伯玉), 시호는 장렬(壯烈)이다. 아버지는 장흥 부사를 지낸 충장공(忠壯公) 황세득(黃世得)이며, 어머니는 방인(方寅)의 딸 상주 방씨(尙州方氏)이다. 1592년(선조 25)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 마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 황박의 묘. 황박(黃珀)[1573(?)~1637]의 본관은 성주(星州)이고, 직산(稷山) 출신이며, 임진왜란에서 전사한 장흥 부사 황세득(黃世得)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이 되고 이어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60세가 넘어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지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스스로 근왕병(勤王兵)에...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무신. 황세득(黃世得)[1537~1598]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李舜臣)의 막하 장수로 무공을 세웠다.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사구(士求)이다. 아버지는 감찰을 지낸 황종식(黃鍾植)이며, 어머니는 강위빙(姜渭聘)의 딸 진양 강씨(晋陽姜氏)이다. 부인은 방인(方寅)의 딸 상주 방씨(尙州方氏)로, 이순신의 부인 방씨의 사촌 언니이다. 아들은 임진...
-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 마정리에 있는 조선 시대 무신 황세득의 묘. 황세득(黃世得)[1537~1598]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사구(士求)로 직산(稷山) 출신이다. 아버지는 감찰(監察) 황종식(黃鍾植)이며, 어머니는 진양 강씨(晋陽姜氏)이다. 부인은 상주 방씨(尙州方氏) 방인(方寅)의 딸로, 이순신의 부인인 방씨(方氏)의 사촌 언니이다. 황세득...
-
조선 시대 천안 출신의 문인·학자. 황종해(黃宗海)[1579~1642]는 천안 출신으로,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하이다. 목천에 서원이 없는 것을 한탄하여 후학들의 강학처를 제공하고자 도동 서원을 세웠다. 목천 제1의 유학자로 추앙받고 있다. 본관은 회덕(懷德), 자는 대진(大進)이다. 할아버지는 황윤림(黃潤琳)이고, 아버지는 황덕휴(黃德休), 어머니는 참봉(參奉)...
-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석성. 흑성산성(黑城山城)은 조선 시대의 테뫼식[산 정상을 둘러쌓는 방식] 산성으로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기록이 보인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성의 둘레가 739보(步)이며, 성 안에 우물이 1개소 있는데 동절기와 하절기에 간혹 마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석축(石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