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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응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890
한자 韓應南
이칭/별칭 사명(士明),송암(松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4년연표보기 - 한응남 출생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청주
대표 관직|경력 선공감 봉사

[정의]

조선 시대 천안의 목천 지역에 우거했던 문신.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사명(士明), 호는 송암(松巖)이다. 고려 말 판서를 지낸 한철충의 6대손이다. 할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한팽조(韓彭祖), 아버지는 한민(韓敏), 형은 참봉 한응기(韓應箕)이다. 목천현(木川縣) 근동면(近東面) 반계(磻溪)에서 형인 한응기와 함께 처음으로 살아 목천과 인연을 맺었다. 아들 한덕해(韓德海)는 1610년(광해군 2)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17년(광해군 9)에 문과에 합격하여 장령을 지냈다.

[활동 사항]

한응남(韓應南)[1554~?]은 목천현(木川縣) 근동면(近東面) 반계(磻溪)에서 살았다. 선공감 봉사(繕工監奉事)를 역임했다. 임진왜란 때 어머니를 봉양할 사람이 없어 관(官)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어머니를 봉양했다.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한응남의 묘갈 명에 ‘형은 능히 충을 다하고 아우는 효를 다하였으니 일문의 혁혁한 업적은 백대에 가히 포창할만하다’라고 하였다. 목천의 사원인 도동서원의 원장도 하였다.

[학문과 저술]

형인 한응기와 함께 이잠(李潛)에게 수학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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