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8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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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致性 |
이칭/별칭 | 성존재(成存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항덕 |
[정의]
조선 후기 천안 지역에서 활동한 문인·학자.
[가계]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백헌(柏軒), 호는 성존재(成存齋)이다. 고려 말 청백리로 알려진 백헌(栢軒) 전신(全信)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전도원(全道源)이다. 아들 전재유(全在裕)는 혜민서 참봉(惠民署參奉)을 지냈고, 손자 전창국(全昌國)은 1822년 식년시(式年試) 율과에 3위로 등과하였다.
[활동 사항]
전치성(全致性)은 평소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돈독하며, 문장을 짓는 실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일찍부터 성담 송환기(宋煥箕)의 문하에 출입했으며, 이론(理論)이 정연하여 경전을 풀이하는 것이 마치 물이 흐르는 것과 같아서 스승에게 성존재라는 호를 받았다고 전한다.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에서 발간한 『조선 시대 잡과 합격자 총람』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보인다. 또, 『일성록(日省錄)』에도 전치성과 관련하여 두 건의 기사가 검색된다. 먼저 1786년(정조 10) 1월 22일에 사포서 별제(司圃署別提) 전치성이 공상청(供上廳)을 설치할 것을 건의하였다는 내용이 있으며, 1793년(정조 17) 12월 26일에 전라 감사 이서구(李書九)의 장계에 의해 전 진도 감목관(珍島監牧官) 여러 명이 마필을 흠축(欠縮)낸 혐의로 추징당하고 정배될 때 전치성이라는 이름이 함께 거론된다. 정황으로 볼 때 이때 거론된 인물이 『천안시지』에 나오는 전치성이 아닐까 추정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