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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간행된 충청남도 공주의 사찬 읍지. 『공산지(公山誌)』는 영조 대의 구읍지를 바탕으로 관찰사, 판관 등의 협조를 받아 공주 지역의 유력 향반이 보완하여 제작하였다. 편찬 작업에는 임정회(林挺會)·이익형(李翼亨)·오흠(吳欽)·노기웅(盧基雄) 등이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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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의 이문에서 정월 14일에 부녀자들 중심으로 올리는 민간의례. 경천리 이문제는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마다 마을의 안녕과 태평을 위하여 이문(里門)에서 지내는 제의이다. 이문은 마을입구에 만든 출입문이다. 경천리 이문제는 마을의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행한다. 제관은 보통 부녀회장이 맡는데, 무당을 불러다가 굿을 벌이기도 한다. 경천리 이문제를 치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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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에 있는 조선 중기 학자 서기의 묘갈. 고청 서기 묘갈은 서기의 무덤 앞에 세운 작은 돌비석이다. 서기(徐起)[1523~1591]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본관은 이천(利川)이며, 자는 대가(大可), 호는 고청(孤靑)·귀당(龜堂)이다. 서경덕(徐敬德)·이중호(李仲虎)·이지함(李之函)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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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일을 시조로 하는 충청남도 공주의 세거 성씨. 시조 이천일은 기원전 53년(신라 박혁거세왕 5) 중국 한나라로 가서 뛰어난 문명으로 대장군에 올라 흉노적(匈奴賊)을 정벌한 공훈으로 요동백(遼東伯)에 봉해졌다. 그러나 병으로 인해 나아가지 않고 귀국하였으며, 귀국 이후에 여러 관직을 거쳐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이르고 공산군(公山君)에 봉해졌으며, 문무(文武)라는 시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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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주목에서 강상죄인(綱常罪人)이나 배역자(背逆者)가 생겼을 때 강등하여 부르던 이름. 『인조실록』권 47, 인조 24년(1646) 5월 1일 기사에 처음으로 공산현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공청도(公淸道) 공주목을 강등하여 공산현으로 삼고, 이산(尼山)·연산(連山)·은진(恩津)을 혁파하여 1개현으로 합하여 은산현(恩山縣)이라고 하고, 공청도를 홍청도(洪淸道)로 바꾸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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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귀산리에 있는 노응환·노응탁·노응호 3형제의 생가 터. 노응환(盧應皖)[1555~1592], 노응탁(盧應晫)[1560~1592], 노응호(盧應皓)[1574~1592] 등은 본관이 만경이다. 이들은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아들로서 일찍이 공주목사였던 중봉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공부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이 의병을 모아 왜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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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이 6곳이니 일신·광정·경천·이인·단평·유구이다.”라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 북쪽 45리에 있다. 설장수의 시에 ‘아침 해 둥그렇게 뜨자 광정역을 떠나니, 흰 구름이 깊숙이 일만 산 푸른 것을 깊이 감추었네. 들꽃 난만히 주인 없이 피어서 봄빛을 단장하여 그림 병풍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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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인간 및 재화 또는 정보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는 공간적 이동. 교통이란 인간 및 재화 또는 정보의 공간적 이동을 의미한다. 교통 기관의 발달은 생활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경제 생활 및 사회 문화를 발달시키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좁은 의미에서의 교통은 그 중 인간과 재화의 공간적 이동만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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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충신.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문백(文伯), 호는 관류당(觀流堂)이다.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노응환(盧應晥)[1555~1592]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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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계회(季晦), 호는 국재(菊齋)이다. 공주의 만경노씨 입향조(入鄕祖) 노혁의 5대손으로,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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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시회(時晦), 호는 체헌(棣軒)이다. 공주의 만경노씨 입향조(入鄕祖) 노혁의 5대손으로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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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명원(明遠), 호는 수암(守庵)이다. 공주의 만경노씨 입향조(入鄕祖) 노혁의 5대손으로,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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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단평역은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존재하였던 조선시대 중요한 역참이다. 역참은 주요 도로 30리마다 존재하였으며, 단평역은 공주의 다른 역참인 이인역·경천역·광정역·유구역과 함께 중요한 도로 교통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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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사람이나 차가 다니는 비교적 넓고 큰 길. 공주시 지역은 과거 수로 교통이 발달하였으나 일제 강점기 이후 철도 교통과 도로 교통이 급격히 발달하였다. 1933년 건설된 금강교는 공주가 철도 교통 대신 도로 교통의 중심으로 다시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공주시의 도로 포장률은 국도 100%, 지방도 78.7%, 시·군도 57.7%로 도로 정비가 비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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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도천리에서 동짓달 초사흗날과 이듬 해 정월 대보름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공주시 우성면 도천리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에 정해진 단위이다. 1923년 간행된 『공산지(公山誌)』 천(天)에 의하면, 우정면(牛井面)의 약천리(藥川里), 도산리(道山里), 해포리(蟹浦里), 중윤리(中尹里), 경사동(京士洞), 남부면(南部面)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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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옛사람들이 남겨 놓은 유·무형의 자산. 공주 지역은 60여 년간 백제의 왕도로서 역사상 특별히 부각되고 있고, 공주 공산성이나 무령왕릉 같은 유적들이 그 위상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공주의 역사는 비단 백제시대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백제의 왕도였다는 사실에 비해 더 길고 오랜, 그리고 복잡한 역사의 흔적들이 공주 지역에 남아 있다. 공주는 조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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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조선시대의 통신 수단. 봉수제도는 변방의 다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군사적 목적으로만 사용하였다. 봉수대는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횃불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횃불 3개, 국경을 침범하면 횃불 4개, 전투가 벌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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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봉정동 반선말 반선봉에서 매년 음력 정초에 지내는 산신제. 마을 이름이 ‘반선말’, ‘반선리(伴仙里)’이다. 앞에서 보듯이 18세기 후반에는 ‘반선동’이었다. 건넌말의 남동쪽으로 반선봉의 아래이다. 마을 뒤에 있는 산이 신선이 바둑을 두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반선봉이라 하고 마을 이름도 그렇게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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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는 선현이나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셔 두고 제사를 지내는 곳. 사당은 제사를 드리는 의례 공간으로 가족 차원에서는 가묘(家廟), 국가 차원에서는 종묘(宗廟)라고도 한다. 또한 서원이나 향교를 비롯한 학문 공동체나 지역 사회에서도 제사를 드리는 의례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에 전래된 주자학과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조선시대부터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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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공주 지역의 정치와 사상의 흐름을 주도한 양반 지식인 세력. 공주 지역은 지리적으로 호서 지방의 중앙에 위치하지만, 역사적으로 그 비중이 더욱 심원하다. 공주 지역은 오랜 역사를 지낸 고도일 뿐만 아니라 고려 말 조선 초 이후로는 유서 깊은 유향으로서 청주, 충주 등과 더불어 호서 사림의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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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월송동 아랫사송정에 있는 조선 후기 정자. 사송정은 공주시 월송동 금강 인근에 자리한 정자이다. 현재 공주 사람들은 사송정을 공산이씨(公山李氏)와 연관된 정자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송정이 위치한 아랫사송정에 충절사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련 기록인 『희암선생집(希菴先生集)』을 보면 사송정은 여주이씨 이상의(李尙毅)[1560~1624]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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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동일한 인물을 시조로 하는 성들. 우리나라에서 성씨가 발생한 것은 단군시대부터라고 하며, 중국 제도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고조선 때에 왕족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귀족 관료층을 중심으로 성씨가 일반화되고 고려시대에 본관 제도가 확립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 본관제의 의미는 퇴색된 채 동일한 성은 본관이 다르더라도 거성(巨姓)의 본관에 합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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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세동리 상세동에서 과거 대한제국 왕실에 대한 상축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유구읍의 세동리는 상세동·중세동·하세동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세동리의 자연마을에서는 각각 산신제를 지냈으나, 현재는 상세동의 산신제만이 유지되고 있으며, 일반 마을 산신제와 같은 수준에서 소략하게 올려진다. 세동리 산신제는 세동리의 상세동 산신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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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목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우물. 조선 중기 때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하여 공주로 피난을 갔을 때, 소가 기갈이 심하자 물을 먹이고 간 우물이다. 한자로 ‘우정(牛井)’이라 하였으며, 소물이 위치한 곳의 행정명은 우정면이라 하였다. 우정면은 7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성두면과 합해지며 우성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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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한적골에서 정월 대보름날 농기에 제를 올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민속 의례.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지명의 사용은 1983년부터이고, 그 이전은 장기면(長岐面) 19구(區) 가운데 하나로 신관리(新官里)였다. 신관리는 동부면(東部面)의 매산리(梅山里), 일신동(日新洞), 관동(官洞), 금송동(錦松洞), 기산리(箕山里), 이산리(李山里), 시목동(柿木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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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 쌍령산 정상에 있는 조선 전기의 봉수대. 쌍령산 봉수대는 조선 전기에 설치되었으며, 나라에 병란이나 사변이 있을 때 신호를 받아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를 피웠다. 공주시 정안면 인풍리와 천안시 광덕면 원덕리·무학리에 걸쳐 있는 쌍령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남쪽에 있는 공주의 고등산 봉수에서 연락을 받아 북쪽에 있는 천안의 대학산 봉수로 전달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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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연종리 연마루에서 음력 시월 초이틀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연종리는 원래 사곡면에 포함된 17구의 하나였다가 1973년에 유구읍으로 편입되었다. 연마루에서 산신제를 모시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집안의 발전을 기원하고, 산신이 기도를 들어주어 무병장수하며, 산신제를 모시는 것으로 부자가 되고 아들을 많이 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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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 살던 효부. 본관은 창녕(昌寧). 아버지는 참봉 성언홍(成彦弘), 남편은 오몽렬(吳夢烈)이다. 슬하에 아들 오복립(吳復立)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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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있는 집성촌. 1920년 일제 강점기에 조사된 자료에 따르면 우성면의 반촌리·동곡리·목동리·귀산리·내산리에서는 만경노씨, 상서리·방문리에서는 함평오씨, 방흥리·신웅리에서는 보성오씨, 옥성리·대성리·봉현리에서는 김해김씨, 보흥리·옥성리에서는 단양이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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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칠원(漆原). 아버지는 윤수(尹脩)이며, 어머니는 단양우씨(丹陽禹氏)이다. 숙부 윤건(尹建)에게 양자로 입계하였다. 부인은 동래정씨(東萊鄭氏)로 공주목사(公州牧使)를 역임한 정유순(鄭惟醇)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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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곡리 백실에서 탑에 제를 올리어 금강의 수해를 막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냈던 마을 제사. 이곡리는 1983년에 이인면에 편입되었다. 이곡리의 원래 순수 우리말 이름은 배실이다. 1914년 일본의 행정 구역 개편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배실이 이곡리(梨谷里)로 번안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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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본관 전주(全州). 덕천군(德泉君)의 13대손이며, 아버지는 이면달(李勉達)[1793~1877]이며, 어머니는 보성오씨(寶城吳氏)로 오종헌(吳宗憲)의 딸이다. 공주 지역의 전주이씨들은 덕천군의 후손들로 덕천군의 손자인 상산군(商山君)의 장남 이요년(李堯年)의 아들인 진주목사 이몽경(李夢慶)[1538~1624]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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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로 유배된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옹(中雍), 호는 한재(寒齋). 조선의 개국공신 이백유(李伯由)의 현손이다. 아버지는 증호조참의(贈戶曹參議) 이윤생(李閏生)이며,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아들은 명종 때 청백리에 녹선된 이세장(李世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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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조선의 개국공신 이백유(李伯由)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증(贈) 호조참의(戶曹參議) 이윤생(李閏生)이며, 아버지는 영안도병마평사(永安道兵馬評事)를 역임한 이목(李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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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에 있는 집성촌. 전주이씨는 인물조뿐 아니라 문무관 등 다른 어느 가문보다 돋보인다. 이인 지역에도 전주이씨 등 여러 성씨가 세가하고 있지만 기록이나 내역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어서 확인하기 힘들다. 우선 입향 시기로 보면 만수리, 오룡리, 신흥리의 선산김씨, 초봉리와 신영리의 안동김씨, 이곡리 경주이씨들이 1600년대 이인 지역으로 입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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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경(順卿), 호는 석탄(石灘)·고산(孤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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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정숙(靜叔), 호는 눌재(訥齋)이다. 아버지는 이덕사(李德泗)이고, 우암 송시열이 매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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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역참은 중앙 관아의 공문을 지방 관아에 전달하며 외국 사신의 왕래, 공무 여행자에게 말을 제공하고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주요 도로에 대개 30리마다 두었다. 여러 개의 역을 하나로 편성하여 찰방(察訪) 또는 역승(驛丞)이 이를 관장하는 동시에 교통로 상의 지위를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보고하기도 하였다. 기록에 나타나는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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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 있는 집성촌. 정안면 석송리에 가장 먼저 정착한 성씨는 전주이씨라고 한다. 처음 마을에 입향한 사람은 무림군의 후손인 이영춘(李營春)으로, 평안도 벽동군수를 지낸 인물이다. 정확한 입향 사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영춘의 묘는 의당면 중흥리에 있으며, 다른 후손들도 대부분 공주 지역에 묘가 있다. 정안면 석송리에 정착한 후 전주이씨들은 마을의 80여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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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공주목제독을 지낸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여식(汝式), 호는 중봉(重峯)·도원(陶原)·후율(後栗)이다. 아버지는 조응지(趙應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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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충청남도 공주시의 대통교양 쪽 장소에서 열렸던 정초의 민간 제의(祭儀). 중학동 장군제는 대통교를 기준으로 이남과 이북에서 정초의 행사 가운데 하나로 열렸다. 마을 사람들의 친목을 다지고 한해를 준비하는 마을 신앙의 한 형태였다. 가을에 열렸던 중동 별신굿과 함께 공주 지역의 양대 행사였다. 정초의 행사는 예축(豫祝) 제의, 가을에는 감사(感謝) 제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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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의 통일신라시대 지방행정구역. 통일신라시대 경덕왕은 신라 중대에 귀족 세력의 부상으로 전제 왕권이 흔들리던 시기에 왕위에 올라 전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정치 개혁을 시도하여 신라 문화의 절정기를 이끈 인물이다. 이 시기 왕권 강화책의 하나로 전국의 지명에 대한 대대적인 개명 작업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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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시행되었던 향촌 자치 규약. 초려 이유태[1607~1684]가 향촌민의 통제를 위해 향약을 조직하고, 그 규약을 기술하였다. 규약은 오가통(五家統), 향촌 경제의 안정을 위한 사창법(社倉法), 관학 교육으로서 학교 제도 등을 동시에 포괄하는 종합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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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된 충청도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관청. 충청감영은 공주 지역의 유리한 지리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1603년(선조 36)에 공주 지역에 설치되어, 1932년 대전 지역으로 충청남도 도청이 이전될 때까지 있었다. 현존하는 많은 조선 후기의 문서들은 조선시대 충청감영으로의 공주 지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유적에 대한 훼손 탓에 본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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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탑곡리에서 음력 정월 보름날 지내던 마을 제사. 탑곡리 마을제가 언제부터 어떻게 지내게 되었는지 명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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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마암리 금강 변에 있는 일제 강점기 때 세운 공주판관 조병로의 불망비. 조병로(趙秉老)[1816~1886]의 본관은 양주(楊州)이고, 자는 유원(孺元)이다. 아버지는 임파현령을 지낸 조이순(趙頤順)이다. 1849년(헌종 15) 음관으로 처음 출사한 뒤 동몽교관, 보성군수, 합천군수를 거쳐 공주판관에 제수되었다. 이후에도 충주목사, 상주목사 등의 외관직과 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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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이래 현대까지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지방 행정 체제. 현재의 공주시는 충청남도 2시 15군의 하나로, 1읍 10면 6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95년에 도농 복합 형태의 시가 설치되면서 종전의 공주시와 공주군이 통합되었다.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64년간 백제의 왕도에 해당하였고, 고려시대부터 계수관 고을로 지역 행정의 중심지였다. 또한 조선 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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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 입구에 있는 거석 기념물.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는 계룡면 16구(區)의 하나였다. 마을 입구 둥구나무와 논 건너 또 다른 둥그나무에 각각 돌장승, 즉 선돌로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