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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01202
한자 長岐面同族村
영어의미역 Janggi-Myeon Single-Clan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집필자 홍제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집성촌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에 있었던 집성촌.

[형성 및 변천]

부안임씨가 연기와 공주 일원에 뿌리를 내린 시기는 고려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후기에 공조전서로 봉직하던 임난수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맞이하여 신하 된 도리로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충절을 지키기 위해 낙향한 곳이다. 당시 임난수제천리의 이웃 마을인 연기군 남면 양화리에 터를 잡았고 이후 현재까지 양화리를 중심으로 2,000여 명 이상의 집단 취락을 형성하며 현대까지 살아오고 있다.

양화리를 생활의 근거지로 삼았던 부안임씨 중 제천리로 이사한 사람은 임난수의 아들로서 양양도호부사(襄陽都護府使)를 지낸 전서 임목(林穆)이다. 양양도호부사 재직 때 선정을 베풀고 향교를 융성하게 하여 지금도 양양에는 선정비가 남아 있는 인물이다.

현재 확인된 바로는 조양동에 임재길의 선친이 6·25전쟁 직전까지 서당을 운영하였고, 그 전에는 4대의 대를 이어 서당을 운영한 것으로 회자되었다. 그 이전에는 부안임씨 중 누군가가 운영하던 서당이 조양동으로 옮겨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암리, 송선리, 금흥리는 전주이씨의 집성촌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중 금암리는 워낙 마을들이 곳곳에 산포되어 있는 데다가 현재는 다양한 성씨들이 함께 모여 살고 있다. 전주이씨는 원래 경기도 김포 일대에서 살다가 약 400여 년 전 난리를 피해 우성면 내산리를 거쳐 이곳으로 입향하였다고 한다.

사덕골에는 궁정대부 의정부 우찬성을 지낸 이구순(李久洵)의 신도비가 종산 아래에 있는데, 이는 2004년에 공주 지역의 전주이씨 후손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것이다. 또한 금암리의 사기정골에 전주이씨가 많이 살고 있는데, 10년 전에 새로 지은 전주이씨의 재실이 있다.

장기면 하봉리는 조선시대 말엽에는 공주군 장척면 지역으로, 봉황새가 비래(飛來)하여 내려앉는 지역이라 하봉리라 했고,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하산리, 운동리, 도계리 일부와 요당면의 봉곡을 병합하여 하봉리라 하고 장기면에 편입되었다. 2012년 7월 장기면은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과 한솔동, 충청남도 공주시 월송동으로 해체·편입되었다.

원래 진주유씨의 세거지는 경기도 고양 지역이었다. 공주 지역으로 처음 이거한 사람은 유형의 장남 금사공 유충걸로 추정되며, 시기는 광해군의 폐모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보아 1620년 전후로 보인다.

공주에 세거하던 진주유씨 집안은 무인 집안으로서 꾸준히 중앙 정계에 진출하여 정치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다. 하봉리에는 유형(柳珩)을 제향한 충렬사가 있는데, 이 사우의 건립을 청한 상소문도 있어 진주유씨들이 공주 지역에서 사족 활동을 활발하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진주유씨가 예전에 비해 많이 살고 있지는 않으나 아직도 하봉리에는 다른 성씨에 비해 많은 편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12.16 [형성 및 변천] 내용 추가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과 한솔동, 충청남도 공주시 월송동으로 해체·편입된 내용 추가
이용자 의견
ㅇ* 장기면은 현재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과 한솔동, 충청남도 공주시 월송동으로 해체·편입되었습니다.
  • 답변
  • 디지털공주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 및 보완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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