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5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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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菴集 |
영어의미역 | Collected Poems of Songam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유산 |
유형 | 문헌/단행본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백원철 |
[정의]
1936년에 초간되고 1998년에 중간(重刊)된 공주 출신 문인 최종화의 문집.
[개설]
최종화(崔鍾和)[1859~1918]는 공주목 연기현 동리에서 태어났다. 1892년 33세 때에 과거 공부를 뿌리치고 간재 전우(田愚)[1841~1922]의 문하에 들어가 경학에 전념하여 기호학파의 학맥을 잇는 신진학자로서 촉망을 받았다. 한말 국가의 정세가 위태할 때 공주목 정안현(현재 공주시 정안면)에 은거하던 스승을 좇아 학문을 닦으면서 동문 사우들과 우국충정을 토로하였다. 이때 동문 사우로부터 문장과 언사가 강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스승 간재가 공주에 은거하고 있을 즈음인 1903년에 「화동충의록(華東忠義錄: 일명 충의록)」을 저술하여 스승의 서문을 받아 출간하였다. 저자 만년의 강학은 주로 공주 지역에서 행해졌다. 1905년경에는 곧 덕절(德節)의 ‘정씨강사(鄭氏講舍)’에 우거한 바 있고, 1918년에 공주 금동(錦洞) 이씨강사(李氏講舍)에서 생애를 마친 것으로 추정된다.
[편찬/발간경위]
저자 사후 18년이 지난 1936년에 초간본이 발간되었는데, 이는 저자의 문인인 임자경(林子敬) 등이 주선한 것이었다. 이후 60년이 지난 뒤에, 종손인 최병문과 증손인 최용섭 등이 초간본의 체제를 유지한 채 번역문을 붙여 1998년에 중간하였다.
[형태]
1998년에 중간된 문집은 2권 1책으로 4×6배판 양장 인쇄본이며, 표제는 『송암집(松菴集)』이다.
[구성/내용]
책머리에 정동휘(鄭東暉)의 「송암집중간서(松菴集重刊序)」가 있고, 저자의 묘지 사진[松菴處士江華崔公諱鍾和之墓]이 있으며, 이어 송의섭(松毅燮)의 「송암집서(초간본)」가 있다. 문집 끝에 이광규(李光珪)의 초간본 발문이 있고, 이어서 최용섭의 중간 발문이 있다.
권1은 부(賦) 2편, 제발(題跋) 10편, 찬(贊) 8편, 잠(箴) 1편, 명(銘) 10편, 자사(字辭) 5편, 상량문 3편 잡저 10편으로 구성되었다. 권2는 제문 12편, 애사(哀辭) 6편, 행장 12편, 묘지(墓誌) 4편, 묘지명 10편, 묘갈명 8편, 모표 1편, 유허비명 1편, 가장(家狀) 1편, 전(傳) 2편으로 되어 있다. 부록에는 저자의 행장과 묘지명, 유사, 제문, 만사, 경모비명을 싣고 있다.
최종화는 문집 중에 실린 시 「동요를 듣고[聞童謠]」에서, “내 어디로 떠날고, 내 어디로 떠날고/ 남쪽바다 북쪽바다 어느 곳으로 갈거나/ 날 저문 텅 빈산에 비바람만 세찬데/ 높은 가지에 겨우 약하게 의지해 있다네(我那離我那離 南溟北海欲何之 日暮空山風雨急 弱棲寄在最高枝).”라 읊은 바 있다. 이는 조선 말기와 일제침략기의 암울한 시대상을 토로한 것이다.
한편 성리설(性理說)에서는, “심(心)은 기(氣)요 성(性)은 이(理)이다. 성은 심의 체(體)가 되고 정(情)은 심의 용(用)이 되는 바, 성과 정을 거느려 일신을 주재(主宰)하는 것은 심이다. 발(發)하는 것은 기요 발하게 하는 것은 이(理)이다(心氣也 性理也 性爲心體 情爲心用 統性情而主宰一身者心也 發之者氣也 所以發之者理也).”라고 하여 율곡 이이와 우암 송시열과 자신의 스승 간재(艮齋)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학설을 충실히 신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송암집』에 실린 최종화의 시문은 문학적 수준을 갖추었다는 평가뿐만 아니라 간재학파(艮齋學派)의 사상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