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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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肅慕殿大祭 |
영어의미역 | Great Rites at the Ancestor's Shrine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산1번지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원철 |
성격 | 제례|전통 제향|초혼제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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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시기/일시 | 음력 3월 15일[춘향]|음력 10월 24일[동향] |
의례장소 | 숙모전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에서 숙모회의 주관으로 매년 봄·겨울에 개최되는 전통 초혼제향.
[개설]
숙모전대제는 사단법인 숙모회에서 봄과 겨울에 지내는 전통제향으로서, 숙모전과 동계사 및 삼은각에서 차례로 거행한다. 숙모전은 조선의 단종 임금과 사육신 등 96인의 위패를 봉안하고, 삼은각은 고려 말의 충신 정포은 등 6인을, 동계사는 신라의 박제상, 고려의 유차달 등 2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연원 및 변천]
숙모전대제의 시작은 조선 초기 야은(冶隱) 길재(吉再)가 지낸 초혼제로부터 시작되었다. 길재는 1394년(태조 3) 동학사의 서쪽에서 고려의 왕과 스승에게 제사를 지냈고, 1399년(정종 1)에는 금헌(琴軒) 유선생(이름 미상)이 단을 만들어 고려의 왕과 포은·목은을 초혼하였다. 이후 1400년(정종 2) 이정간(李貞幹)이 수령으로 부임하여 비로소 각(閣)을 세웠다. 이어 여기에 야은 길재를 배향하여 양은각(兩隱閣) 또는 삼은각(三隱閣)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1456년(세조 2) 김시습이 삼은각 옆에 사육신 초혼단을 만들었는데, 1457년(세조 3) 세조가 동학사에 들렀을 때 삼은각과 사육신 초혼단을 보고 자신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사육신과 그 밖의 신하 100여 명, 고려의 왕들을 제사 지내게 하였다. 다시 1년 뒤 단종과 안평대군, 그 밖에 100여 명 신하의 명단을 추가로 내려보내 모두 200여 명을 제사하게 하였다.
후대에 오면서 제사를 주관하던 동학사와 초혼각이 불타고, 하사받았던 토지 등 재산도 없어져 제향이 중단되었다. 1814년(순조 14) 이후 절과 초혼각의 중건이 시작되어 1830년 완공되었고, 뒤에도 몇 차례 중수와 증축을 거쳐 1956년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1963년 숙모회가 발족되어 봉안 대상과 의례 절차를 정비, 매년 봄과 겨울 두 차례 제향을 거행하고 있다.
숙모전대제는 매년 춘향(春享, 봄 제사)은 음력 3월 15일, 동향(冬享, 겨울 제사)은 음력 10월 24일에 거행된다. 춘향일은 매월당 김시습 등이 단종의 원혼을 불러 최초로 제사한 날에서 비롯된 것이며, 동향은 단종이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에서 사사된 날을 택한 데서 비롯되었다.
[절차]
제향은 ①축원제, ②숙모전제, ③삼은각·동계사제의 3단계 절차로 이루어지는데, 당일 10시경에 먼저 동학사 대웅전에서 축원제를 지낸다. 이는 동학사의 주지 및 승려가 주관하며, 봉안 대상자를 축원문에서 거명하면서 불교 의식으로 치르는데, 유림 대표도 참여한다. 대략 20~30분 시간이 소요된다.
11시에 숙모전에서 본제를 거행하는데, 먼저 초혼례(招魂禮)를 행한다. 이때 병자원적(丙子寃籍: 1456년 병자년 세조가 자신에 의하여 죽임당한 신하들의 명단을 기록하여 보낸 문서) 등에 기재된 유신들을 거명하며 그 영혼을 부르는 예를 행한다. 다음으로 정전인 단종위를 중심으로 한 제사를 올리는데, 일반 유교식 제례와 형식이 같다. 즉, 축문이 있고 3헌(초헌·아헌·종헌)의 절차를 다 거친다. 이때 동·서무에서는 각각 분헌관들이 축문 없이 단잔을 올린다. 다음으로 12시경부터 삼은각과 동계사에서 각각 유교식 제례를 행하여 분축과 음복의 절차를 거친다.
[현황]
숙모전대제는 비록 중간에 중단된 적은 있었으나, 조선 초기부터 행해온 오래된 제례 의식이며, 특히 불교와 유교의 의식이 함께 거행되는 큰 규모의 의식에 속한다. 대체로 관련 인물들의 후손과 지방 유림들이 주로 참여하며, 그 수는 300~350명 수준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