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울릉문화대전 > 울릉의 마을 이야기 > 저동마을 > 동해안 어업전진기지가 되기까지 > 박정희 의장과 저동항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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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및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박정희 의장이 울릉도에 도착한 것은 1962년도의 일이다. 당시 그는 군함을 타고 울릉도를 방문하였다. 그가 도착한 것은 도동항. 도동항 은 말이 항구이지 방파제나 접안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한 초라한 어촌에 불과하였다. 국가원수격인 박의장의 방문에도 울릉의 항구는 별다른 대책을 마련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접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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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의장이 물에 빠지자, 가장 당황했던 사람들은 박의장 자신은 물론 수행원들이었다. 박의장은 귀경하자 마자, 곧장 ‘울릉종합발전계획’을 수립하게 되고, 온전한 방파제 하나 없던 저동에는 불과 2년 만에 방파제가 만들어졌다. 저동이 동해안 어업전진기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울릉도 주변해역의 풍부한 수산자원 때문이겠지만, 울릉도에서 제일 먼저 방파제가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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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의장의 울릉도 방문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와 감사의 취지는 관해정 내의 「朴議長閣下記功碑趣旨文」에 잘 나타나 있다. 1963년 7월에 건립한 기공비는 1962년 10월 10일 박의장 방문 이후, 울릉도의 변화상 및 기대감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의 원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朴議長閣下記功碑趣旨文 東海의 孤島인 鬱陵島는 大韓民國의 領土이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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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의장이 울릉도를 방문하기 전까지, 저동항은 자연항이었다. 주민들이 해마다 촛대바위 부근에 석축을 쌓았으나 태풍이 한번 불면 여지없이 휩쓸려 나가곤 했다. “옛날에는 망태기에 줄 매가지고 미고 했는데, 20년 했는데, 저기 보이는 촛대바위라고 있지요. 저기 3분지 1도 못 했어. 지금 높이가 10m 되는데 그전에는 큰 파도 한 번 치면 무너지고, 또 쌓아놓으면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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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의장의 방문으로 저동 지역의 개발은 본격화되었다. 1967년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되어 1979년 12월에는 항만공사가 완료된 저동항은, 울릉도에서 가장 큰 항구이다. 동해안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되면서, 가장 시급한 것은 방파제 건립이었는데, 방파제가 완성되어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 이루어진 셈이었다. 현재의 방파제는 그때 만든 방파제에서 약 4m 가량 높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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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원수격인 박정희 의장이 울릉도를 방문한 지도 어언 40여년이 훌쩍 지났다. 저동이 동해안 어업전진기지로 지정됨으로써, 박 의장의 약속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울릉 주민들은 40년이 지나도록 완성을 보지 못하는 일주도로에 대해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울릉도 주민들은 아직도 일주도로가 완성되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이 많습니다. 40년 전에 울릉도 일주도로 건설은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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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동항 에는 2개의 등대가 있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등대까지는 약 30분가량 걸어야 한다. 방파제와 더불어 이들 등대는 바닷가의 경관과 정취를 한층 풍요롭게 한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는 등대의 색깔에도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다. 그리고 야간에 점멸하는 등대의 불빛도 마찬가지다. “배는 항구로 들어오는 배가 우선입니다. 들어오는 배의 우측에 붉은 색을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