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500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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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翰洙 |
영어음역 | Im Hansu |
이칭/별칭 | 익여,송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울릉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상규 |
[정의]
조선 말기 일본인이 울릉도에서 벌목을 한다는 사실을 고한 문신.
[가계]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익여(翼如), 호는 송석(松石).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임기진(林箕鎭)이다.
[활동사항]
1846년(헌종 12) 식년시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48년 정언·교리·종부시정(宗簿寺正)을 지냈다. 1863년(철종 14) 경상감사 김흥근(金興根)이 철종에게 무례를 범했는데도 언관들이 논핵하지 않았다고 하여 임한수 등을 유배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1864년(고종 1)에는 양주목사로 재임했을 때의 치적이 뛰어나 표창을 받았다.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군대를 이끌고 여현(礪峴)에 포진하였다.
1867년 선혜청에서 양주 대동에 상납분을 돈으로 바꿔 상납하도록 하고 독촉까지 했는데 그가 거행하지 않아 먼저 파직하였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고종은 양주는 능원(陵園)이 있는 곳이므로 스스로 응역(應役)하도록 하고, 그의 논죄는 그만두라는 교지를 내렸다. 이때 또 경기 암행어사의 보고에 따라 포상되었다.
1875년 진하 겸 사은부사(進賀兼謝恩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의주부윤과 강원도관찰사로 있을 때는 일본인들이 울릉도에서 벌목하는 사실을 알아내어 조정에 보고하였다. 임오군란 후까지 강원도관찰사로 있다가 함경도관찰사로 전임되었다. 한편 부호군(副護軍) 이규원(李奎遠)이 울릉도검찰사(鬱陵島檢察使)로 임명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