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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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간행된 충청남도 공주의 사찬 읍지. 『공산지(公山誌)』는 영조 대의 구읍지를 바탕으로 관찰사, 판관 등의 협조를 받아 공주 지역의 유력 향반이 보완하여 제작하였다. 편찬 작업에는 임정회(林挺會)·이익형(李翼亨)·오흠(吳欽)·노기웅(盧基雄) 등이 참여하였다. 『공산지』의 사본이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후대의 필사본 산질(散秩)인 『공산지』와 발췌본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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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가교리에서 올리는 산신제와 여제(厲祭). 가교리의 산신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승과 팔월 말에 길일을 잡아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제일이 결정되면 제관, 축관, 제주(일명 화주)를 선정한다. 제물은 고기(생 것), 떡, 과일 등을 마련하여 올린다. 가교리의 거리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동네 어귀에서 지낸다. 제물은 떡, 과일 등으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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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경천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경천역에 관한 기록은 여러 지리지나 읍지에 위치, 소속된 말과 노비의 수 따위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세조실록』에는 “세조 6년 2월 5일자 기사에서는 성환도, 일신도, 증약도, 율봉도를 합하여 성환도라 칭하고 증약도찰방으로 책임을 맡게 하였다.” 이 기록에 따르면 경천역은 공주의 광정역·유구역·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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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고려 개국 때부터 1392년 멸망 때까지 충청남도 공주시의 역사. 통일신라시대의 웅주는 940년(태조 23) 공주(公州)로 개명되었다. 당시 전면적인 주(州)·부(府)·군(郡)·현(縣)의 명칭 개정이 있었는데, 그 일환으로 오늘날의 이름인 공주가 탄생한 것이다. 이후 고려 초기에 공주도호부가 되었다는 『공산지(公山誌)』의 기록이 있으나 정사인 『고려사(高麗史)』나 『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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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제작된 공주의 지도. 공주의 고지도는 지도책에 포함된 지도, 단독 지도, 읍지에 포함된 지도 등이 있으며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제작된 자료들이다. 공주의 옛 지도를 크게 지도책에 포함된 지도와 읍지에 포함된 지도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공주의 고지도가 수록된 전국 지도책으로서는 『여지도(輿地圖)』(18세기 중엽), 『해동지도(海東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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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누각. 일반적인 누정들이 주변 풍광을 고려하거나, 강학 위주로 건립되었다면 공산성 만하루는 공산성 동쪽 누대에 있는 군사적 기능이 중심이 된 누정이다. 공주시청에서 공주고등학교를 지나 옛 공주시내버스터미널 방면으로 약 3㎞ 정도 가면 공산성의 입구가 나온다. 만하루는 공산성 동편에 있는 깊이 9m의 연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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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공주목에서 강상죄인(綱常罪人)이나 배역자(背逆者)가 생겼을 때 강등하여 부르던 이름. 『인조실록』권 47, 인조 24년(1646) 5월 1일 기사에 처음으로 공산현이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공청도(公淸道) 공주목을 강등하여 공산현으로 삼고, 이산(尼山)·연산(連山)·은진(恩津)을 혁파하여 1개현으로 합하여 은산현(恩山縣)이라고 하고, 공청도를 홍청도(洪淸道)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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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계룡산 산신에게 제사하던 제향 건축물. 1879년(고종 16) 중수한 건축한 건물이지만, 계룡산신에 대한 제사 공간으로서의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계룡산은 신라의 제사 규정에서 중사(中祀)에 속한다. 신라 5악 신앙에 의한 국가적 제사의 전통이 후대로 계승된 것이다. 15세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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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조선시대까지 공주 지방을 맡아 다스린 정3품의 외직(外職) 관리. 고려시대의 지방 제도는 성종 때 이르러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졌다. 983년(성종 2)인 983년에 최승로의 건의를 받아들여 전국의 12개 주에 주목이란 외관을 파견하였는데, 12개의 주목 중에서 공주도 포함되어 상주하는 외관이 파견됨으로써 충청 지역 행정 중심지로 부각되었다.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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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소장되어 있는 1507년(중종 2)과 1625년(인조 3)에 간행된 공신 녹권. 『공주순천박씨공신녹권』2책은 계룡면 양화리에 세거하는 순천박씨가에 소장되어 있는 『십공신회맹록(十功臣會盟錄)』1책과 『정사원종공신녹권(丁巳原從功臣錄券)』1책 등 2책을 가리킨다.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순천박씨가는 중종반정의 주체인 박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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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 소라실에서 정월 대보름날 남·여 장승을 합궁시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공주탄천장승제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8호로 1989년 12월 29일에 지정되었다. 공주탄천장승제는 송학리의 소라실에서 마을의 안녕과 길일을 축원하는 마을 축제이다. 특히 축원에 의하면 칠성(七姓) 즉 공주의 토성(土姓)이 그 대상인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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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이 6곳이니 일신·광정·경천·이인·단평·유구이다.”라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 북쪽 45리에 있다. 설장수의 시에 ‘아침 해 둥그렇게 뜨자 광정역을 떠나니, 흰 구름이 깊숙이 일만 산 푸른 것을 깊이 감추었네. 들꽃 난만히 주인 없이 피어서 봄빛을 단장하여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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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단평역은 공주시 우성면 단지리에 존재하였던 조선시대 중요한 역참이다. 역참은 주요 도로 30리마다 존재하였으며, 단평역은 공주의 다른 역참인 이인역·경천역·광정역·유구역과 함께 중요한 도로 교통망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은 여섯 곳이니 일신·광정·경천·이인·단평·유구이다.”라고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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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도천리에서 동짓달 초사흗날과 이듬 해 정월 대보름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공주시 우성면 도천리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에 정해진 단위이다. 1923년 간행된 『공산지(公山誌)』 천(天)에 의하면, 우정면(牛井面)의 약천리(藥川里), 도산리(道山里), 해포리(蟹浦里), 중윤리(中尹里), 경사동(京士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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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동혈사가 있는 천태산은 ‘동혈산(銅穴山)’, 혹은 ‘동혈산(東穴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절 이름도 지금처럼 ‘동혈사(銅穴寺)’로 부른 것 외에 『신증동국여지승람』·『공산지(公山誌)』에는 ‘동혈사(東穴寺)’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이것은 동혈사가 공주 지역의 혈사(穴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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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에 있는 백제시대 절터. 동혈사는 백제 때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로, 1481년(성종 12)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사찰 이름이 보이나, 1799년(정조 23)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폐사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폐사의 이유는 전하지 않고 있으며, 이후 1859년(철종 10) 임정회(林挺會)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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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불과 연기를 이용한 조선시대의 통신 수단. 봉수제도는 변방의 다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군사적 목적으로만 사용하였다. 봉수대는 수십 리마다 눈에 잘 띄는 산꼭대기에 설치하여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신호를 보냈다. 평상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횃불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횃불 3개, 국경을 침범하면 횃불 4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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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사당. 부조묘는 불천위(不遷位)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다. 예부터 종갓집에서는 제사를 지낼 때 위로 4대에 해당하는 선조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게 되어 있었다. 문제는 제사를 모시던 자가 죽은 경우인데, 죽은 후 그 후손은 뒤를 이어 제사를 모실 때 죽은 이를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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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공주 지역의 정치와 사상의 흐름을 주도한 양반 지식인 세력. 공주 지역은 지리적으로 호서 지방의 중앙에 위치하지만, 역사적으로 그 비중이 더욱 심원하다. 공주 지역은 오랜 역사를 지낸 고도일 뿐만 아니라 고려 말 조선 초 이후로는 유서 깊은 유향으로서 청주, 충주 등과 더불어 호서 사림의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계룡산과 금강을 배경으로 천험의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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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불상을 모셔 놓고 공적으로 불교 신행을 행하는 장소. 사찰은 절, 사원(寺院), 정사(精舍), 가람(伽藍)이라고도 한다. 불교가 발생한 인도에서 수행자들이 우기를 피해 한 곳에 모여 생활을 하는 공동 주거지의 성격을 띠었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종교 의례를 행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변모하였다. 충청남도 공주는 475년(문주왕 원년) 백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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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산학리에서 정월 대보름날 농기에 제를 올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민속 의례. 충청남도 공주시 장기면 산학리는 1923년 간행된 『공산지(公山誌)』천(天)에 의하면, 장척면(長尺面)의 효제동(孝悌洞), 송학리(松鶴里), 소학리(巢鶴里), 학림동(鶴林洞), 산학리(山鶴里), 행정리(杏亭里), 중산리(中山里), 우산리(牛山里) 각 일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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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동일한 인물을 시조로 하는 성들. 우리나라에서 성씨가 발생한 것은 단군시대부터라고 하며, 중국 제도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고조선 때에 왕족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귀족 관료층을 중심으로 성씨가 일반화되고 고려시대에 본관 제도가 확립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 본관제의 의미는 퇴색된 채 동일한 성은 본관이 다르더라도 거성(巨姓)의 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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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목천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우물. 조선 중기 때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하여 공주로 피난을 갔을 때, 소가 기갈이 심하자 물을 먹이고 간 후로 유명해졌으며, 면 이름도 우정면이라 하여 7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에 우성면이 되었다. 『공산지(公山誌)』제2권 36장에 “仁祖大王……馬極駕牛間關過木洞村直一路邊之井駐蹕飮牛 命名曰牛井牛井之(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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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한적골에서 정월 대보름날 농기에 제를 올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민속 의례.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지명의 사용은 1983년부터이고, 그 이전은 장기면(長岐面) 19구(區) 가운데 하나로 신관리(新官里)였다. 신관리는 동부면(東部面)의 매산리(梅山里), 일신동(日新洞), 관동(官洞), 금송동(錦松洞), 기산리(箕山里), 이산리(李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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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골마을에 옛날 원님이 살았기 때문에 지명을 원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과 원님에 얽힌 전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해 주는 유적들을 원골마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골마을 내에 소재하고 있는 유적은 아니지만, 원골에서 바라보이는 현재 신풍면소재지인 산정리의 남쪽에 솟아 있는 나지막한 성재산 정상부에 테뫼식의 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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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 살던 효부. 본관은 창녕(昌寧). 아버지는 참봉 성언홍(成彦弘), 남편은 오몽렬(吳夢烈)이다. 슬하에 아들 오복립(吳復立)을 두었다. 병든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셔 효부라고 칭송되었으며 특히 호랑이에게 물려 간 시아버지를 구출해 낸 일화는 『충효등록(忠孝謄錄)』을 비롯하여 『공산지(公山誌)』, 『호서읍지(湖西邑誌)』, 『금고실기(今古實記)』, 『조선환여승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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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동복(同福). 자는 덕구(德耉), 호는 묵재(默齋)이다. 할아버지는 직장 오극권(吳克權)이고, 아버지는 직장 오세현(吳世賢)이다. 어머니는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참봉 성근(成近)의 딸이다. 오백령은 슬하에 4형제를 두었는데, 오준(吳竣)[1587~1666]은 벼슬이 판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명필로 유명하였다. 오단(吳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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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월은에서 정월에 길일을 잡아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내는 마을 제사.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월은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월산리에 편입되었다. 이때 같이 편입된 마을이 송천리(松川里), 목동(木洞), 중산리(中山里), 호도리(胡桃里), 용운리(龍雲里), 조산리(趙山里), 화평리(花坪里) 일부이다. 월은동은 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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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중산동에서 가을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낸 마을 제사.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중산동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월산리에 편입되었다. 이때 같이 편입된 마을이 송천리(松川里), 목동(木洞), 월은리(月隱里), 호도리(胡桃里), 용운리(龍雲里), 조산리(趙山里), 화평리(花坪里) 일부이다. 1861년 간행된 『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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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유구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유구역이 있던 지역은 호남과 서울을 연결해 주는 중심 통로로 조선시대 교통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행인들의 이동에 편의를 제공하고 나라의 중요 역원으로서 기능을 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역이 6곳이니 일신·광정·경천·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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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열녀. 본관은 부령. 김홍필(金弘弼)의 딸이다. 유회원(柳晦源) 처 부령김씨(扶寧金氏)는 어릴 적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13세에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어른처럼 애석해 했다고 한다. 장성하여 이웃에 사는 충경공(忠景公) 유형(柳珩)의 7대손인 유회원의 세 번째 부인으로 시집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자식을 낳지 못하자 근심이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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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현충(玄忠), 호는 사우당(四友堂)이다. 아버지는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이다. 영의정을 지낸 연양부원군 이시백(李時白), 서봉(西峯) 이시방(李時昉)과 형제지간이다. 호조판서로 증직된 숙부 이자(李資)가 양부이다. 어릴 적부터 글씨와 그림에 뛰어났고, 특히 오언시를 잘 지었다. 1613년(광해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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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계명(季溟), 호는 서봉(西峯)이다. 아버지는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이다. 영의정을 지낸 연양부원군 이시백(李時白), 사우당(四友堂) 이시담(李時聃)과 형제지간이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때 유생 신분으로 아버지와 함께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2등으로 녹훈되었다. 1627년(인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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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있던 역원이다. 고려 때부터 1894년 갑오개혁으로 역원제가 폐지될 때까지 있었다. 1535년(중종 30)부터 찰방(察訪)이 주둔하여 산하의 9개 역을 관할하였다. 이인면은 한양과 호남으로 통하는 대로에 있어 백제시대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고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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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역참은 중앙 관아의 공문을 지방 관아에 전달하며 외국 사신의 왕래, 공무 여행자에게 말을 제공하고 숙식을 제공하였으며, 주요 도로에 대개 30리마다 두었다. 여러 개의 역을 하나로 편성하여 찰방(察訪) 또는 역승(驛丞)이 이를 관장하는 동시에 교통로 상의 지위를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보고하기도 하였다. 기록에 나타나는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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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일제가 설치한 친일적 회의체와 이에 대항한 유림 단체. 일제강점기에 충청남도는 도령으로 장의회의를 설치하여 각 군 향교의 재산을 관리하고 유생들을 통제하고자 하였다. 각 군의 장의회의는 10명 내외의 유림들로 구성되고, 의장은 군수였다. 이와 같이 일제가 장의회의를 조직하여 지방의 향교 재산을 관리하고 유림들을 통제하여 지방 세력을 장악하려고 시도하자, 유림들은 유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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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역사. 조선시대에 공주는 지방 행정의 중심지인 감영의 소재지이자 관찰사가 위치하는 행정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충청도는 고려 말 1356년(공민왕 5) 양광도를 개칭한 것으로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행정구역의 조정이 이루어져 태종 때에 대체로 그 윤곽이 정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주는 충청도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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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대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서 지방관의 예헌(禮獻)으로 임금에게 올리던 토산물. 진상이란 임금에 대한 지방관의 예헌으로 관할 구역에서 생산되는 토산물을 상납하는 제도이고, 공물(貢物)은 국가의 재정 수요에 충당하기 위해 지방의 토산물을 세금으로 바치는 것이다. 토산물을 상납한다는 점에서는 진상물과 공물이 같은 성격을 지닌다. 조선시대에는 각 도의 감사, 수사, 병사, 계수관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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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가산리에 있는 산. 산이 수려하고 정기가 있으며, 명당의 대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천태산이라 불리운다. 온 산의 바위가 모두 구리빛으로 빛나고, 바위마다 구멍이 뚫려 있어 동혈산(銅穴山)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천태산이란 이름보다는 동혈산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불리운다고 한다. 천태산은 공주시가지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는데, 금강 북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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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에 충청남도 공주 지역에 설치된 충청도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관청. 충청감영은 공주 지역의 유리한 지리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1603년(선조 36)에 공주 지역에 설치되어, 1932년 대전 지역으로 충청남도 도청이 이전될 때까지 있었다. 현존하는 많은 조선 후기의 문서들은 조선시대 충청감영으로의 공주 지역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유적에 대한 훼손 탓에 본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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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현서원 은 주자영정을 모신 사액서원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 부임하는 지방관은 물론 경향각지 유림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충현서원 소장문서인 『심원록 尋院錄』에는 광해군 3년(1611)부터 연산의 돈암서원이 사액 받는 현종 원년(1660)까지 50년간 충현서원을 방문한 854명의 유림인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을 분석해 보면, 우선 지방관의 서원 방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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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충신과 효자와 열녀를 아울러 이르는 말. 유교 도덕에서 기본이 되는 세 가지 강령인 삼강을 의미하는 충효열은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였던 조선시대의 전 기간·전 지역에 걸쳐 강조되었던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충신·효자·열녀를 최고의 도덕을 갖춘 인간으로 여기는 이와 같은 덕목은 당시 모든 사람들의 생활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더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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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노첨(魯瞻), 호는 시와(是窩)이다. 아버지는 장령 한진(韓縝)이다. 청주한씨의 공주 입향조(入鄕祖)이자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한지(韓祉)[1675~?]가 아들이다. 1666년(현종 7) 생원이 되었고 1669년(현종 10) 정시(庭試)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673년(현종 14) 정언, 1680년(숙종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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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효자 이복의 정려비각. 공주시 중동사거리에서 북쪽으로 약 1.08㎞ 정도 가면 도로 오른쪽으로 옥룡동주민센터가 있다. 그 뒤편 언덕에 효자 이복 정려비각이 있다. 효자 이복 정려비각은 원래 옥룡동 비선거리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1978년 이복의 효를 알리기 위해 발기인 이치하와 옥룡동 노인회가 현재의 위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