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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현의 치소 산성이 가까이 있다구요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C020106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동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내수

원골마을에 옛날 원님이 살았기 때문에 지명을 원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과 원님에 얽힌 전설 등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해 주는 유적들을 원골마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골마을 내에 소재하고 있는 유적은 아니지만, 원골에서 바라보이는 현재 신풍면소재지인 산정리의 남쪽에 솟아 있는 나지막한 성재산 정상부에 테뫼식의 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산성은 대략 삼국시대의 백제 때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의 문헌 기록에도 나타나고 있어 이곳이 과거 신풍현의 치소였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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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산

성이 위치한 곳은 남쪽으로 흐르는 유구천과 북쪽으로 흐르는 대룡천이 만나는 곳으로 주변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어 주변지역을 쉽게 감시할 수 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을 따라서 축성되었기 때문에 산성의 전체적인 형태는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전체 둘레는 355m로 비교적 규모가 작은 편이다. 성벽은 대부분 붕괴되어 토성처럼 남아 있는데, 처음부터 이 산성이 토성이었는지, 아니면 석성이었는데 성벽이 붕괴되어 현재처럼 남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신동국여지승람』에는 “신풍산성신풍현 남쪽 3리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데, 석축으로 둘레가 701척이다. 지금은 폐성이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서 적어도 조선 초기에는 석성으로 되어 있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을 보면, 전체가 편축식의 성벽 형태를 하고 있어 석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또한 조선 후기의 기록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와 『공산지(公山誌)』고적조에는 “신풍산성은 주의 서쪽 40리에 있고, 폐허가 된지 오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풍산성은 아직까지 발굴 등 학술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고,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 전부이다. 북벽은 전체 길이가 120m 정도에 이르는데, 성벽이 완전히 붕괴되어 삭토법(削土法)에 의해 축성된 토성처럼 남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무너진 성벽 사이로 군데군데 성돌이 보이고 있어, 원래는 석성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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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산성

성내 곳곳에서 토기조각과 기와조각이 발견되었는데, 북벽과 동벽 근처에서 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는 조선시대의 기와조각도 있었지만, 삼국시대로 소급되는 것도 있어 이 산성이 매우 이른 시기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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