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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현서원 출입인물의 성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7A01010004
지역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선빈

충현서원 은 주자영정을 모신 사액서원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 부임하는 지방관은 물론 경향각지 유림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충현서원 소장문서인 『심원록 尋院錄』에는 광해군 3년(1611)부터 연산의 돈암서원이 사액 받는 현종 원년(1660)까지 50년간 충현서원을 방문한 854명의 유림인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들을 분석해 보면, 우선 지방관의 서원 방문이 눈에 띈다. 충청도 관찰사와 도사는 대부분 재임기간 중에 서원을 방문하였다. 『심원록』이 작성된 50년간 충청도 관찰사에 재임한 사람은 『금영공안』을 통해 확인해 보면 모두 53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25명이 『심원록』에 등록되어 있다. 충청도 도사의 경우에는 같은 기간 66명이 재임하였는데, 인적사항의 확인이 가능한 65명 중에서 22명이 『심원록』에 올라 있다. 이처럼 충청도 관찰사나 도사로 부임하면 대체로 충현서원을 방문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공주목사(혹은 공주현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공산지』의 「읍선생안」이 정유재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라서 1643년 이전의 자료는 부실하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수치의 제시는 어렵지만, 공주의 수령들도 재임기간 중에 거의 모두 충현서원을 방문한 것으로 확인된다. 뿐만 아니라 수령들의 충현서원 방문은 인근의 고을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심원록』 명단에는 진잠현감·니산현감·은진현감·회덕현감·예산현감·임천군수·면천군수·충원현감 등이 종종 눈에 띄며, 그 외의 외관으로는 율봉찰방·성환찰방·이인찰방 등이 보인다.

이 시기 충현서원 방문은 당색을 초월하여 이루어지고 있었다. 『심원록』 등록인물 가운데 당색의 확인이 가능한 인물을 찾아보면, 서인계 인물 26명 남인계 10명 북인(소북)계 3명으로 한 당파의 출입으로 경직되었던 후대와는 달리 삼색당파가 모두 충현서원을 방문하였다.

충현서원 방문이 당색을 초월하여 이루어진 것은 주벽으로 주자가 모셔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이 시기의 충현서원은 서인계 서원이 아니었으며, 이 시기 공주지역 사림도 서인 일색으로 경색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이 지역의 명현(名賢)인 조헌·김장생·송준길·송시열 등이 추배되는 과정에서 충현서원은 서인-노론계 서원으로 경색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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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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