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04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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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鼎峴戰鬪 |
영어의미역 | Battle of Jeongh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정치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윤용혁 |
성격 |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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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연도/일시 | 1376년(우왕 2) 7월 |
종결연도/일시 | 1376년(우왕 2) 7월 |
발생(시작)장소 | 정현[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정치리 일대] |
관련인물/단체 | 김사혁(金斯革)[?~1385]|박인계(朴仁桂)[?~1376] |
[정의]
1376년(우왕 2) 7월 공주목 정현에서 공주목사 김사혁의 부대가 왜구 침입에 대항하여 벌인 전투.
[역사적 배경]
14세기 말은 원의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고려가 벗어나는 시기이지만 또한,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과 함께 전국적인 왜구의 침입이 심각한 현안으로 대두되는 시기였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은 충청도의 경우만 53건이 기록되고 있다.
[경과]
1376년 7월 왜구가 금강을 거슬러서 공주의 정현(현재 탄천면 정치리)으로 침입해오자 공주목사 김사혁(金斯革)이 부대를 이끌고 출동하였다.
[결과]
김사혁의 부대는 왜구를 격퇴하는데 실패하였고, 공주 관아는 함락되고 말았다. 이에 양광도원수(楊廣道元帥) 박인계(朴仁桂)는 공주를 지원하지 않은 회덕현감무 서천부를 참형에 처하고 왜구를 추격하여 연산 개태사에 이르렀다. 그러나 도리어 왜구에 의하여 피살당하였고, 왜구는 개태사(開泰寺)를 노략질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고려 말의 왜구가 단순한 도적 집단이 아닌 상당한 규모의 체계화된 군사 조직이었다는 것과, 또 당시에 왜구의 침입이 해안 지대에 그치지 않고 내륙에까지 이르렀음을 말해 준다.